어버이날 부모님께 감사 편지와 꽃을 바치며

서른넷이 서른다섯에게

by 레푸스


1999년, 근육병이라는 단어는 아직 대중의 언어 속에 깊이 자리 잡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해, MBC 뉴스에서 근육병 관련 보도가 처음 나왔고, 가톨릭신문에도 내 이야기가 실렸다. 어린 시절의 나, 신선비. 내가 이 질병을 처음 마주했을 때, 세상은 무심했고 사람들은 모른다는 이유로 조용히 돌아섰다. 누군가는 동정을 가장했고, 누군가는 아예 나를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당시는 수술이 만병통치처럼 여겨졌던 시대였다. 하지만 근육병은 수술로 해결할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 병의 본질은 '근육 자체가 소실되고, 다시 자라나지 않는 것'이었다. 의사들도 처음엔 그저 관절 문제나 척추 문제로 오진하곤 했다. 희망은 자주 오해였고, 진단은 늘 늦었다. 그 늦음은 한 아이의 시간을 갉아먹고 있었다. 또래들과 나누던 웃음, 뛰놀던 풍경, 미래에 대한 막연한 꿈까지도 하나씩 희미해져 갔다.


치료를 찾아 전국을 떠돌았던 부모님은 결국 수많은 사기꾼들에게 노출됐다. 이 병을 고쳐주겠다는 말에 기꺼이 모든 걸 걸었고, 끝내 면목동에 아파트까지 잃게 되었다. 아이 하나 살리고 싶다는 절실함은 세상의 틈으로 너무 쉽게 스며들었다. 어떤 밤은 너무 추워 차 안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약속했던 진료는 없었고, 기다림만이 병원 복도에 쌓여갔다. 엄마는 라면 국물을 들이켜며 눈물을 삼켰고, 아버지는 주차장 구석에서 절망을 달랬다. 그 누구도 그 시간을 가볍게 지나칠 수 없었다.


어머니는 하루하루를 불안 속에 보냈다. 치료비를 위해 보험을 깨고, 친척들에게 빌리고, 빚을 내기도 했다. 밤이면 몰래 울었고, 아침이면 아무 일 없다는 듯 나를 품에 안아주었다. 병원 대기실에서 내가 지쳐 눈을 감고 있으면, 그녀는 성모 마리아 메달을 쥐고 조용히 기도했다. 무언가, 단 하나라도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기적이란 말조차 감히 입 밖에 꺼내기 힘든 나날들. 그러나 그녀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조용한 기도가 얼마나 강한 것인지 나중이 되어 알았다.


가톨릭신문에 실린 나는 막 병명을 듣고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던 순간의 아이였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나는 이 모든 일이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도 몰랐다. "저 아이는 평생을 누워 살아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저, 어머니가 그 말을 들을 때의 표정만 기억난다. 창백하고 말이 없었다.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눈동자 안에 파도처럼 요동치던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날 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이불을 덮어주었다. 나는 그 조용한 손길 속에서 무너지는 마음을 느꼈다.


그 시절의 나는, 세상이라는 단어를 아직 배우지 못했지만 세상의 외면을 가장 먼저 배웠다. 나를 아프게 한 것은 병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병을 두고 말이 엇갈리는 어른들의 시선, 그리고 어느새 침묵이 되어버린 내 질문들이었다. 교실의 풍경, 쉬는 시간의 소란, 운동장의 먼지조차 내겐 닿을 수 없는 세계가 되어갔다. 친구들의 놀이는 점점 멀어졌고, 나는 점점 더 조용해졌다.


그러나 나는 그저 평범해지고 싶었다. 뛰지 않아도 좋으니, 아이들 곁에 있고 싶었다. 내 책상 위에 올라앉아 나를 구경하던 친구들의 눈길을 견디면서도, 나는 여전히 함께 있고 싶었다. 그것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서른넷이 된 지금에서야 제대로 알겠다. 누군가의 일상에 섞이고 싶었던 그 마음이 얼마나 애절한 것인지, 지금은 내가 매일 쓰는 글 속에서 알게 되었다.


내가 앓고 있는 병이 어떤 병인지도 잘 몰랐던 그 시절. 세상의 무지와 의료 시스템의 한계, 그리고 부모의 사랑과 절망이 뒤섞인 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시간은 아프지만, 동시에 나를 지켜낸 시간이었다. 그날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 모든 시간 위에, 오늘의 내가 있다. 나는 그 시간들을 등에 지고, 지금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그때 어머니는 서른다섯이었다. 지금 나는 서른네 살이다. 이제는 그 나이에 가까워진 내가, 조금은 그 시절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다. 두려움과 불확실함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마음, 한 생명을 향한 절절한 헌신을. 그녀의 시간은 눈물로 얼룩졌지만, 그 안에는 삶을 일으키는 사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지금도 나를 일으키고 있다.


오늘, 나는 그 서른다섯에게 편지를 쓰듯 이 글을 쓴다. 나를 지키기 위해 세상과 맞섰던 그 어머니에게. 세상의 거절 앞에서도, 사랑만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던 당신에게. 당신의 아들은 이제 서른넷이 되었고, 여전히 살아 있다. 글을 쓰고, 꿈을 꾸며, 걷지 못하는 다리로 여전히 마음의 길을 내고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는, 당신의 기도가 깔려 있다.


글을 쓰며 나는 다시 그 시간의 공기를 마신다. 오래된 기억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은 여전히 선명하다. 에세이란, 기억을 되짚는 일이자, 그 기억 속에서 지금의 나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를 낳은 사랑의 이름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부르는 일이다.


[헌사]


이 글을, 그 시절 나보다 더 많이 아팠을 나의 어머니에게 바칩니다. 삶이 버겁고 희망이 흐릿했던 밤들에도 단 한 번도 나를 놓지 않으셨던 당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단한 용기와, 눈물로 길들인 기도의 시간들. 그 모든 것을 품고도 여전히 미소 지을 줄 아는 당신이, 내가 만난 가장 단단한 사랑입니다.

엄마,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어버이날 편지]


사랑하는 엄마께, 언젠가부터 저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말이 너무 작고, 너무 얕게 느껴져서요.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엄마,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삶의 벼랑 끝에서조차 제 손을 놓지 않으셨던 당신.

어떤 말로도 다 전할 수 없는 그 시간들이, 제 안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걷지 못하지만, 엄마가 지켜준 마음은 단단히 서 있습니다.

저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그건 엄마 덕분이에요.


이제는 제가 엄마의 편이 되어 드릴 차례입니다. 서툴고 부족하지만,

제 모든 마음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버이날, 당신의 아들 신선비 드림.


[묵상]


부모님의 주름진 손에는 세월의 무게와 희생이 담겨있습니다. 아침 이슬처럼 조용히 내려앉은 그 무한한 사랑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제가 넘어질 때마다 일으켜 세워주시고 어둠 속에서도 등불이 되어주신 그 마음의 깊이를 이제야 조금씩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내려가 나자렛으로 가시어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내셨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 루카 복음 2장 51절


말씀 한마디, 눈빛 하나로 전해주신 가르침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 요한 복음 15장 10절


효성은 거창한 행동이 아닌 매일의 작은 감사와 존경으로 피어납니다. 저의 효성이란 예수님의 성심 안에서 성장하고 있어요. 오늘도 부모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순종하셨습니다. 나자렛의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부모님의 말씀 안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자라나셨고, 마침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듯,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그 길은 고요하지만 가장 깊은 사랑의 길이었고, 지금도 우리 안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진: 엄마방, 제 중학생 때 액자와 꽃엄마의 방에 어버이날 꽃바구니가 놓였어요!

밑에 사진은 제 중학생 때 그리고 아기는 저의 조카.


신령성체 기도는 제가 하는데, 엄마가 저를 위한

병자기도, 매일 주시기에

저렇게 해두셨네요.


벽에 있는 성모님께 기도라는 말이 개신교 성도에게 이상하죠?!

가톨릭 교회의 이 말은 전구로 쓰여요.

피조물,

마리아와 성인에게 붙는 기도는

전구해 주십사 하는 겁니다. 전구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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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곡은 그 시절의 엄마와 지금의 나에게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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