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은 인간의 고귀한 선물이자, 동시에 가장 왜곡되기 쉬운 지점이기도 하지요.
성과 간음을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은 본질을 꿰뚫습니다.
성은 사랑의 언어이며,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그 놀라운 친밀함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과 왜곡된 쾌락은 이 거룩함을 오염시키곤 하지요.
우리 천주교 신자들이 바치는 고백기도와 통회 기도문,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지었나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구에서 논의되는 장애인 ‘성 도우미’ 제도는 아무리 복지의 외피를 입었다 하더라도,
복음적 사랑의 맥락 안에서 바라보자면 인간을 도구화하는 세속적 착시일 뿐입니다.
인간은 물건이 아니고, 성은 거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여성에 대한 멸시나 낙인을 경계해야 합니다.
설령 창녀라 불리는 이들이 있을지라도, 그들은 죄인이기 이전에 구조적 폭력과 가난의 희생자이며,
우리 사회가 품어야 할 자매들입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 (요한 8,7)
말하자면 가정과 교회, 사회가 함께 성숙하게 다뤄야 할 주제입니다.
가정사목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요.
가정은 첫 성소이며, 성은 그 안에서 꽃피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성에 대해 침묵하거나, 금기시하거나, ‘깨끗한 체’하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진실한 사랑, 존중, 책임, 그리고 개방된 대화 속에서만 참된 순결과 인간 존엄이 자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성은 도둑질당하고 있고,
사랑은 외면당하고 있으며,
몸과 마음은 거래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깊이
하느님 앞에서 몸의 신비와 사랑의 의미를 묵상하고,
이 땅의 상처받은 육체와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증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