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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몽 Jan 14. 2021

달팽이의 필사를 시작하다.

느리게 읽고 쓰고 생각하기

그림책을 필사하는 것 외에 일반 책을 필사하는 것은 처음이다. 필사를 하게 된다면 꼭 하고 싶었던 책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였다. 내 나이 스물세 살, 대학을 갓 졸업하고 부모님을 떠나 서울에서 첫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취업은 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고 불안하던 시절, 연애에도 실패했던 때라 삶의 의욕이 없을 때 우연히 읽게 된 [연금술사]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더랬다.


하지만 죽어가는 불씨를 살렸을 뿐 활활 타오르게는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연금술사]를 감명 깊게 읽고서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을 모두 읽어 보았다. 종교적인 언어와 이야기의 흐름만 바꿔가며 똑같은 내용이 되풀이되는 것에 흥미를 잃고 더 이상 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모든 책이 산티아고의 수행 길에 대한 이야기여서 나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규정지었던 듯하다. 산티아고의 길은 그 길만 있는 것이 아니였을텐데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책이라고 꼽는 '연금술사'가 나 또한 인생책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현재와 나의 현재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리감이 생겼다. 그래서 다시 읽고 싶었다.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게 무엇인지, 마흔이 넘어 읽는 지금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을지 궁금했다. 이야기 형식의 책이라 후루룩 읽히기 쉬워 일부러 손 필사를 하려고 한건데 필사하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다. 눈으로 읽을 때는 이야기의 흐름만 쫓아갔다면 필사를 하며 읽으니 의심병이 돋아난다. 여긴 왜 이 단어, 이 문장이 있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건 무슨 의미일까? 옆에 누가 있다면 계속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다.


본 이야기에 앞서 프롤로그도 함께 필사를 해보았다.




연금술사 필사노트






나르키소스의 전설
p.13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매일 호숫가를 찾았다는 나르키소스.
그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결국 호수에 빠져 죽었다. 그가 죽은 자리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났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수선화(나르키소스)라고 불렀다. 하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이야기는 결말이 달랐다.



나르시시즘의 유래가 되기도 하는 그리스 신화 나르키소스의 전설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이야기는 결말이 달랐댄다!. 오스카 와일드는 얼마 전 그림책으로 [ 행복한 왕자 ] 와 [ 거인의 정원]을 만났더랬다. 그의 얄궂은 인생사가 마음에 닿아 그의 다른 책도 주문을 했는데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했다.




오스카 와일드의 결말
p.14~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를 애도하는 호수를 보며 숲의 요정들은 안타까워했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호수가 슬픔에 빠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호수는 숲의 요정들에게 되묻는다.




나르키소스가 그렇게 아름다웠나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르키소스가 몸을 구부려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을 호수라면 당연히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호수의 대답은 충격적이다.




저는 그가 제 물결 위로 얼굴을 구부릴 때마다 그의 눈 속 깊은 곳에 비친 나 자신의 아름다운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가 죽었으니 아, 이제 그럴 수 없잖아요.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남을 바라보기에 앞서 내가 먼저 보인다. 그것이 당연한 거였다.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비롭고 나누며 살지 못하는지, 가족보다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숨 쉬어야만 하는지, 조금은 위로가 되는 부분이었다면... 넘 이기적일까.


프롤로그만 읽었는데도 소름이 쫘악 올라와서, 이 날의 필사는 성공적이다. 그리고 운명적으로 필사 첫날 오스카 와일드의 책이 도착하였다.



레딩 감옥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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