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m tea debate - Cornwall vs Devon
한 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재미있는 (그러나 전혀 쓸데없는) 논쟁 - 탕수육은 어떻게 먹는 게 더 맛있는가? 소스를 찍어 먹는다 (찍먹파) vs 소스를 부어서 먹는다 (부먹파)
많은 패러디 유머를 낳았으며, 어떤 사람들은 너무 진지하게 (진짜 쓸데없는) 논쟁까지 벌였는데... 다른 나라에도 이런 유머가 있다는 이야기까지 알려지면서 이 논쟁(?)을 더 재미있게 하였다.
영국에도 찍먹파와 부먹파 같은 논쟁이 역시 있다, 그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에 하나이며, 제일 재미있는 것은 크림 티 논쟁 (Cream Tea Debate)이다.
잼을 바른 다음 크림이다 vs 크림을 바른 다음 잼이다.
논쟁 쟁점만 봐도 찍먹/부먹 논쟁 못지않은, 재미있는 (그렇지만 역시 쓸데없는) 논쟁의 느낌이 스멀스멀 온다.
애프터눈 티 (Afternoon tea)로 대변되는, 영국의 차문화는 사실 오랜 전통문화가 아니라 비교적 최근에 생긴 문화다. 일단 차(茶)가 중국에서 전해진 시기가 1630년대이고, 당시에는 비싼 가격과 적은 공급 때문에 상류층만이 즐길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뒤로는 우리가 세계사에서 배운 내용이다. - 늘어나는 차 수요로 인해서 무역 적자에 허덕이던 영국은 아편을 수출해서 무역 수지 균형을 도모했고, 이것은 이른바 '아편 전쟁'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홍콩이 영국에 귀속되었다. 그 이후로 공급이 늘어난 차는 점점 더 대중적인 음료가 되었다. 세계 대전 중에도 영국인들은 꼭 티타임을 가졌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영국인들의 차 사랑은 유명하다. 제대로 차를 파는 티 룸 (Tea room)뿐만 아니라 카페를 가도 차를 많이 마신다 (스타벅스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도 많다). 홍차(Black tea)를 제일 많이 마시지만 사과 차, 딸기 차, 민트 차등 등 다른 종류의 차도 인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홍차가 인기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찻입을 산화/건조시킨 홍차는, 우리는 차의 색깔을 따라 홍차(紅茶)라고 하는데 서양에서는 찻잎의 색깔로 흑차(黑茶), 즉 검은 차라고 한다 - Red Tea는 허브 계열의 다른 종류의 차다. 홍차는 보통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는 어중간하다고 할 수 있다. 커피보다는 덜 쓰고, 녹차보다는 덜 깔끔하고. 그런데 마시다 보면, 묘한 중독성이 있다. 향도 녹차류에 비해서 더 진하고, 특히 단 맛과 굉장한 궁합을 보인다. - 그래서 홍차는 도저히 입에 안 맞다하시는 분들은 단 디저트류와 함께 마시면 오호~ 하는 맛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특히 많이 단 것.
영국에서 그냥 홍차보다는 밀크티를 많이 마신다. 사실 나도 차에 대해선 문외한이지만, 일반적으로 마시는 밀크티는 차라기보다는 그냥 우유 음료 같은 느낌이다. 홍차에 우유를 가득 타고, 거기에 설탕을 듬뿍 탄다. 한때 마시는 사람은 계속 찾는다는 '데X와' 바로 그 맛이다 - 이걸 무슨 맛으로 마시느냐는 내 질문에, 팬인 내 친구는 담배와 최고의 궁합이라고 해줬다. 물론 진짜 홍차는 그 캔 음료보다는 훨씬 괜찮은 맛이지만,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우리 부부에겐 그다지 정이 안 가는 맛이다.
신기하게도 애프터눈 티의 기원에 대한 역사는 잘 기록되어 있다. 1800년대 영국에서 저녁은 보통 8시 정도에 늦게 먹었다고 한다. 애나 러셀 (Anna Russell)이라는 배드포드 공작부인 (Duchess of Bedford)라는 사람이 아침과 저녁 사이의 긴 공복을 견디기 위해서, 4시경에 간단한 간식거리와 함께 차를 마시던 것이 그 유래라고 한다. 다른 귀부인들을 모아서 같이 마시던 이 습관은 사교적 행사로서 널리 퍼졌고, 곧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일과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전통적인 애프터눈 티를 갖춰서 마시는 사람은 드물다. 바쁜 현대인이 그런 호사스러운 시간을 즐길 시간도 없지만, 무엇보다도 양이 많다! 간식이 시초라고 했는데? 아마 그 공작부인은 대식가였나 보다. 지금은 보통 애프터눈 티라고 하면, 간단히 비스킷 등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던지, 또는 아예 제대로 갖춘 티 룸이나 호텔 같은 곳에서 격식 있게 마시는 이벤트라고 할 수 있겠다 (후자의 주 고객은 관광객). 가장 유명한 리츠 (Ritz), 사보이 (Savoy), 클라리지스 (Claridge's) 호텔 같은 곳에서 애프터눈 티를 마시려면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하고, 드레스 코드까지 요구한다. - 거지같이 입고 오면 안 들여보내 줌, 간단한 옷과 구두를 빌려주는 호텔도 있다고 하네요.
이렇게 양이나 다른 의미로도 부담스러운 '제대로 된' 애프터눈 티 보다는, 대중적으로 마시는 애프터눈 티는 바로 '크림 티'다 (보통 애프터눈 티를 파는 곳에서는 같이 판다). 홍차와 스콘 (scone)에 잼과 클로티드 크림 (clotted cream)을 발라서 먹는다. 여기가 그 유명한 크림 티 논쟁 (Cream tea debate)이 있는 부분이다. 클로티드 크림이란 저온 살균하지 않은 우유를 낮은 온도에서 중탕하거나, 수증기로 찐 후에 천천히 식히는 과정에서 굳은 (clot) 표면을 모은 것이다. 버터와 비슷하지만 맛은 다르다. 좀 더 느끼하고 진하면서 달지 않고 고소하다. 잼과 궁합이 정말 좋으며, 특성상 한번 개봉하면 빨리 먹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것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들었다. 쌉쌀한 홍차-따뜻한 스콘-달콤한 잼-고소한 클로티드 크림, 거기에 즐거운 수다까지.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을 수가 없다. 소녀부터 할머니들까지.
크림 티는 지방 이름을 따서 데본 크림 티 (Devon cream tea) 또는 코니쉬 크림 티 (Cornish cream tea)라고도 한다. 데본과 콘월은 영국 서남쪽 반도 끝에 위치한 지역 이름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차이는 누구나 알기 쉽다. 그러나 다른 지역 사람들은 알기 어려운, 그 지역 주민들만 느끼는 전북/전남의 차이-경북/경남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비슷하게 데본과 콘월은 영국 끝에 딱 붙어있는 지방이지만 여러 면에서 꽤 차이가 있다. 특히 콘월은 독자 언어 (Cornish, 켈트어의 한 갈래라고 한다)가 있으며, 멀리 떨어진 지리적 영향으로 독자적 문화가 상당히 발달해있다. 또한 멋진 해안도로와 이국적인 풍경으로, 휴양지로서도 유명하다 - 영화 어바웃 타임 (About Time)에 나오는 멋진 곳이 여기랍니다.
크림 티는 원래 콘월/데본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지만, 명확한 근거는 없다. 그래서 서로 자기네 지방이 원조라고 주장한다. 최근에 데본에서 11세기에 빵과 잼을 같이 먹었다는 문서 기록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데본 사람들은 자기들이 원조라고 주장한다. 데본에서는 스콘에 크림을 먼저 바르고 그 위에 잼을 올려서 먹는다. 이른바 데본 크림 티다.
콘월의 크림 티는 반대다. 보통 크림 티는 스콘과 함께 먹는다고 하지만, 원래 콘월에서는 스콘이 아닌 코니쉬 스플릿 (Cornih Split)이라고 하는, 둥근 흰 빵에 발라서 먹는다고 한다. 잼을 먼저 바르고 그 위에 크림을 올려서 먹는다. 코니쉬 크림 티다.
뭐야? 결국 그런 걸로 그렇게 논쟁한다는 말이야? 입안에 들어가면 똑같지 않나? - 우리 찍먹/부먹 논쟁도 똑같다. 그냥 재미있으니까 장난으로 하는 거다. 요리가 맛있게 되었느냐의 문제지, 사실은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그냥 개인 선호도 차이다. 실제로 보통 크림 티를 주문하면 크림과 잼은 따로 준비해준다. 취향에 맞게 드세요 - 그런데 간혹 너무 진지한 사람들이 어디에나 항상 있다 - 탕수육의 튀김 상태가 어쩌고 하는 - 그런 사람들은 크림 티 논쟁에도 빠질 수 없다. 그런데 웃자고 하는 이 논쟁에, 그런 진지한 사람들의 스케일이 꽤 크다.
유럽에는 산지 보호 (Protected Designation of Origin, DPO)라는 제도가 있어서, 인정받는 지역의 특산물에 그 이름을 함부로 쓸 수 없게 되어 있다 (당연히 우리나라도 비슷한 시스템이 있습니다). 콘월 지방은 일찌감치 코니쉬 클로티드 크림 (Cornish Clotted Cream)을 등록해서 인정받았다, 즉 콘월 사람들은 진정한 클로티드 크림은 콘월에서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 실제로 코니쉬 클로티드 크림이란 이름은 다른 지역의 생산자는 쓸 수 없다.
이에 맞서서 데본에서는 '데본 크림 티' 자체를 DPO에 등록하려고 하는 캠페인이 있다 - 이들은 제대로 된 크림 티는 데본산 스콘, 클로티드 크림, 잼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몰지각한 상인들이 버터와 공산품 빵으로 사기를 치고 있다며, 제대로 된 크림 티 문화를 유지하기 위한 캠페인이라고 말한다. 콘월 사람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음은 물론이다 - 데본 사람들이 이미 인정받은 콘월 유제품들을 시기하는 것뿐이라고. 분명히 이야깃거리로 웃고 넘겨할 일인데... 문제는 이 논쟁의 배후에는 유제품 회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오랜 영국의 차 문화를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이 유머스러운 논쟁에까지, 자본이 끼어든다는 것이 보기에 썩 좋지는 않아 보인다.
영국에서 일을 할 때, 가장 많이 듣고 보게 되는 것 중에 하나가 'evidence-based', 즉 증빙, 증명이 있는 주장이나 이론 등을 말하는 것이다. - 예를 들어, 간혹 인터넷 포탈에서 별 이상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하면 거의 영국 대학이나 연구소다. 예를 들어 '방귀 냄새를 맡으면 질병 예방 효과가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 같은 업자로서 진짜 연구를 한 것인지 궁금하다. -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렇다. 영국이 또 해냈다. 쉐필드 (Shefiled) 대학의 유지나 쳉 (Eugenia Cheng) 교수가 잼이 먼저인지 크림이 먼저인지를 수학적으로 근거를 제시했다! 어이가 없어서 찾아보니 원래 음식을 수학적으로 해석해보는 유명한 학자라고 한다 - 시카고 아트 대학에서 음악도 가르친다. 천재과인듯.
홈페이지에 가면 연구 결과를 동영상과 함께 볼 수 있다 (http://www.sheffield.ac.uk/news/nr/eugenia-cheng-formula-rodda-cornish-clotted-cream-scone-maths-1.276553) 즉 콘월의 방식이 옳다는 것인데, 그 내용을 요약해 보면,
1. 스콘과 크림과 잼의 비율은 2:1:1 이 최적이다.
2. 맛있는 스콘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래성 같은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밀도 때문에 크림보다는 잼을 먼저 발라야 하는데.......
......저 연구 결과를 보고 진지하게 간추리고 있는 내가 한심하고 자괴감이 느껴져서 그만해야겠다. 뭐, 이왕 이 바보 같은 논쟁의 장단에 맞춰준 김에 한마디 하자면, 쳉 교수의 연구는 콘월의 유명한 유제품 회사의 후원을 받아서 한 연구 결과이기 때문에 그 해석의 객관성을 신뢰할 수 없다.... 아 정말 같이 바보 되는 느낌이다.... 사실 이 글도 이렇게까지 길게 쓸 줄은 몰랐다. 난 크림 티 보다는 그냥 커피가 좋은데.
간혹 영국인들의 집요함에 질릴 때가 있는데, 이 크림 티 논쟁에서는 그 이상한 집요함에 헛웃음까지 났다. 이 결과를 보도하는 인터넷 기사들 밑에 넘치는 댓글 보면서 웃기기도 하고 - 위트 넘치는 참신한 댓글도 많다. 사실 다 같이 어울리는 이런 바보짓은 재미있다. 어떤 칼럼니스트가 이런 말을 했다. '크림 티 논쟁은, 크림 티를 계속 이야깃거리로 만드는 효과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그렇게 크림 티를 즐기면서 친구들과 농담 따먹기 하는 재미는 있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자기가 먹는 방법이 제일 맛있으니까, 정론이고 뭐고 아무도 안 바꾼다, 크림 티건 탕수육이건.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이런 연구나 한번 해볼까나 - '순대의 소스에 대한 고찰; 소금/초장/쌈장에 대한 분석'
혹시 유명해진다면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