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 6, 위정 7, 위정 8, 이인 21
찬바람이 불어서 인지, 여기저기에서 부고 소식이 많이 들려옵니다. 함께 근무하시는 한 분은 작년 여름에는 아버님을, 겨울에는 어머님을 하늘로 보내셨습니다. 한 해에 두 분을 한꺼번에 보내시고는 많이 힘들어하시는 그 분을 보며, 저도 덩달아 앙상한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모습만 보아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그런 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생명이라는 것이 참 신비한 영역입니다. 사람의 의지가 닿지 못하는 듯 하기도 하고, 닿는 듯 하기도 하고요. 건강하셨던 아버님은 예상치 못하게 급하게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오래 노환으로 반년 넘게 병원에 의식 없이 누워계셨어요. 병원에서는 지속적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고요."
어머님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신 분께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어머님께서 위독하다는 병원의 말과는 달리, 어머님께서는 오랫동안 잘 버티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12월 말, 마침 군대 갔던 큰 아들이 병장으로 말년 휴가를 나왔고,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제 아들이 어머니껜 큰손주거든요. 그렇게 우리 아들이 어머니 손을 잡아 드리고 목소리도 들려드린 날, 잘 버티던 어머님이 돌아가셨어요. 보고 싶은 큰 손주를 봐서 여한이 없다는 듯이, 바로 그날 밤 그렇게 돌아가셨죠. 그런데 돌아가실 때 얼굴 표정이 매우 평안해보여서 제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동료 분의 말씀에 저 또한 생각이 많아 졌습니다. 부모님에게 자손이란 어떤 의미일까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연장해가며 혈육을 기다렸을 할머니의 사랑. 그 사랑이 얼마나 깊으면, 그 혈육이 얼마나 소중하면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도 그런 의지를 보일 수 있을까요?
동료 분의 말씀을 들어서 일까요? 아니면 제 부모님도 조금씩 연로해진 까닭일까요? 논어를 몇번을 읽어도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던 '효(孝)'라는 글자가, 그저 형식적으로 내 눈을 스쳐지나갈 뿐이었던 그 글자가, 이제는 아주 커다랗게 눈에 들어옵니다. 나는 효자일까, 불효자일까 생각해보며 논어를 읽어보았습니다. 나름대로 그리 모나지 않게 살아왔다 자부하고 있으니 효자에 가깝지 않을까 자신하면서요.
논어의 <위정>편에는 '효'에 대해서 각각 다른 세 사람이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공자의 대답이 모두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대답속에서 우리는 효와 불효의 경계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맹무백이 효를 묻자 공자가 답하였다.
"(효라는 것은) 부모가 오직 자기 자식의 질병만 근심하는 것이다."
孟武伯, 問孝
맹무백, 문효
子曰 : 父母唯其疾之憂
자왈 : 부모유기질지우
<위정 6>
맹무백이라는 사람이 '효도'에 대해 묻습니다. 그런데 이 맹무백이라는 사람은 성품이 거칠어 주변을 적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었나봅니다. 부모가 항상 맹무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불안해했던 것을 보면 말입니다. 아마도 맹무백이 가는 곳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식은 어디를 가든지 자신의 안전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하게 신경써서 부모님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안전 수칙을 잘 지키고 자신을 위험한 상황에 노출시키지 않아야합니다. 오로지 질병에 걸릴까만 걱정하게 하는 것이 효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통해 저를 돌이켜보니, 저 또한 맹무백처럼 부모님을 걱정하게 한 적이 많았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나사가 하나 빠진듯 조심성 없는 성격인지라 위험한 일들이 종종 있었더랬지요. 이런 조심성 없는 성격 때문에 20대 때 큰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횡단보도 앞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렸습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마침 내가 타야할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어섰습니다.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보행자 신호가 파란불로 변하자마자, 저는 앞만보고 달렸습니다. 그런데 하필 신호를 어기고 속도를 줄이지 않고 횡단보도를 지나치던 차량에 치이고 말았습니다.
사고를 목격한 선배가 치료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 저에게 말했습니다. 차에 치여 하늘로 붕 떠오른 사람을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고요. 영화 속에서 보던 것보다 더욱 끔찍했다는 말을 덧붙여주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교통사고로 두 달간 걷지 못했습니다. 기대하던 대학교 여름방학을 그렇게 침상에서 보내야했습니다.
벌써 20년 전 일인데다 이미 잘 나아서 활동하는데 무리도 없기에, 당사자인 저는 한참 전에 잊어버렸던 일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부모님과 대화를 하다가 우연히 저의 교통사고 이야기가 다시 화제로 올랐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 때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말을 멈추셨습니다.
이상한 느낌에 아버지를 돌아보니, 아버지의 두눈에 눈물이 가득차오르고 목이 꽉 메어 입만 끔뻑이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진정하신 뒤 말씀하시길 그 당시 저를 잃을까봐 얼마나 걱정을 했던지, 당시 생각만해도 울컥하신다고, 가끔 아직도 문득 그때가 떠오르면 혼자 눈물을 짓기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고 후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아버지의 그 눈물을 보고서야 저는 그 당시 얼마나 큰 불효를 저질렀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슴에 누름돌을 올린 듯 묵직해지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런 사고를 겪고 나서도 여전히 횡단보도를 건널 때 좌우를 제대로 살피지 않는 지금의 제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불효 중 가장 큰 불효는 부모가 자녀의 신변을 걱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질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과 바이러스로 인한 것이라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거나, 욱하여 다툼을 자주 일으키는 등 자녀가 행동을 신중히 하지 못하여 부모에게 항상 걱정을 끼쳐드린다면 부모의 일상은 얼마나 살얼음판일까요. 제가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 되어 보니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공자가 말했던 불효 중의 가장 큰 불효는 이렇게 자녀의 신변을 걱정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하가 효를 묻자,
공자가 답했다.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일이 있을 때 수고를 대신해 주고,
술과 밥이 있을 때 연장자에게 먼저 드시라고 하는 것,
이것만을 효도라고 할수 있겠느냐?"
子夏問孝,
자하문효,
子曰 : 色難, 有事, 弟子服其勞, 有酒食, 先生饌, 曾是以爲孝乎?
자왈 : 색난, 유사, 제자복기로, 유주사, 선생찬, 증시이위효호?
<위정 8>
이번엔 자하가 효도를 물었습니다. 공자는 '얼굴빛이 어렵다(색난 色難)'라는 말로 효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여러 주석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 당시의 상황과 맥락을 파악하기 어렵기도 하고, 구체적인 동사와 대상을 가리키는 한자가 모두 빠져 있기에 해석하기 나름인 문장인 것입니다.
가장 유명한 '주자(朱子)'의 해석에 의하면 '색난(色難)'은 자녀가 부모 앞에서 자신의 얼굴빛을 언제나 온화하게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자하의 성품과 뒤에 나오는 내용과 연결지어 생각하면 이치가 있는 말입니다.
그래도 자하는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노력한 듯 보입니다. 부모님을 위해 무거운 짐은 자신이 먼저 들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부모님께 먼저 권한 뒤 먹는 등 예의바르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격이 급하고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정때문에 종종 부모님이나 스승 앞에서 자기 주장을 하느라고 목소리가 커지거나 표정이 험악해지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부모님과 대화하며 감정 조절 좀 잘 하라는 공자의 가르침 앞에 저 또한 뜨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춘기 시절은 물론이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뒤에도, 아이를 돌보아주시는 부모님께 감사하지는 못할 망정 날선 말들을 많이도 했습니다. 심지어 부모님의 사랑을 앞에 두고 나의 아이들과 경쟁하기까지 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나 어릴 때 이렇게 예뻐해주지 않았으면서,
왜 저에게만 아이들에게 잘 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나 어릴 때도 손주들에게 했던 대로 해주시기 그러셨어요?"
손주들을 돌보시느라 피곤하고 힘드셨을 부모님께 짜증 섞인 목소리와 화난 표정으로 못난 모습을 참 많이도 보여드렸습니다. 단 한치도 부모님의 입장을 생각해본 적 없이, 당연히 받아야하는 것인 양,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요구했던 내 모습을 되돌아 보면 부끄러울 뿐입니다.
부모님의 염려를, 그저 염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던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자라온 시절과 내가 성장한 시절이 한참 다르다는 것을 고려하지도 않았습니다. 원망의 말 어두운 표정으로 부모님께 많은 상처를 드렸던 저의 지난 날이 '색난(色難)'이라는 말이 매우 적확하게 꾸짖어주고 있었습니다.
자유가 효를 묻자, 공자가 답하였다.
"요즈음 효자들은 부모를 잘 먹여 봉양한다.
집에서 기르는 개나 말도 모두 잘 먹여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가축을 기르는 것과 뭐가 다르겠느냐?"
子游問孝,
子曰 :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위정 7>
위의 문장에서 화두가 되는 말은 '공경(敬)'입니다. 맛있는 음식으로 부모를 잘 모신다고해도, 그 안에 '공경심'이 빠지면, 가축을 먹여 살찌우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모시는 것과 가축을 기르는 일을 비교하는 극단의 어법이 살벌하게 느껴집니다. 이 안에서 저는 또 한번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얼마전 부모님께서 추천해 주신 맛집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먼젓번에 와서 식사를 해보니 무척 마음에 든다며 기분좋게 안내해주신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따라 식당 서비스도 불친절하고 대기 시간도 길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이런 상황에서도 이 음식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며 기다리기를 원하셨지만, 저는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가자고 주장하며 가장 먼저 음식점을 나오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구절을 보면서 당시의 상황을 다시 돌이켜보았습니다. 부모님은 당신들께서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자녀와 손주 모두에게 먹이고 싶어하셨던 마음이 그제야 절실히 이해되었습니다. 맛있게 음식을 먹어 대는 귀여운 손주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음식점의 기나긴 줄을 기꺼이 기다리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당시에는 부모님의 이런 마음을 전혀 염두에 두지 못했습니다. 그저 부모님께서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온 가족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손쉬운 선택안이 있다는 것에 몰두했을 뿐이었습니다. 왜 그 당시에는 몰랐을까요.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그 순간의 내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공자가 말하는 '공경'이란 바로 이런 것이겠지요. '이성'과 '합리'를 떠나 부모님의 마음과 뜻을 존중해주는 것 말입니다. 이것이 '공경(敬)'의 실천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빼박 불효자입니다.
위의 세 구절로 저를 돌아보니 저는 불효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느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음을 알겠습니다. 오늘 돌이켜본 나의 모습 안에는 예상과 다르게 효도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오늘의 효도는 품절되었습니다. 내가 평소 행실에 비해 스스로를 얼마나 후하게 평가했는지 깨달았을 뿐입니다.
공자를 찾아가 뵐 수 있다면 떡볶이 한 그릇 사드리며 묻고 싶습니다. '효도'란 무엇입니까? 하고 말이에요. 그러면 공자는 제가 가장 부족한 부분을 콕콕 짚어 효도란 무엇인지 답해주시겠지요. 마치 개인 과외 선생님처럼요.
'넌 일단 전화도 잘 안하니까 전화부터 자주 해라.'
'아니다, 너는 돈부터 벌어야겠다.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부터 한 번 제대로 사드려라.'
저에게 맞춤으로 이렇게 말씀하실까요? 어쩌면, 너무나 터무니 없는 불효자인 저를 보고 '야야, 그냥 일단 내 책에 있는 내용이라도 제대로 실천한 뒤에 와.'라고 쫓아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子曰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
<이인 21>
처음 이 구절을 만났던 20대에는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의 나이가 왜 나에게 기쁨이 되고 슬픔이 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내 곁에 계시는 것이 마냥 기쁘고 또 언젠가는 보내드려야한다는 생각에 두렵고 가슴 서늘해지는 그 마음을 말이지요.
부모님 곁에 가까이 살면서 작년과는 또 다르게 쇠약해지는 부모님을 지켜보며, 또 내 주변에 먼저 부모님을 보내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저도 조금씩 철이 드나봅니다. 부모님과 함께 할 날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절박함이 생기기 시작했으니까요.
이천년 전 사람들이 했던 '효'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보며, 사람 사는 일이 수천년의 흐름을 타고 넘어도 그닥 변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부모와 자식간의 마음 자리는 어느 정도 정해진 이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해도 따라갈 수 없는 부모의 사랑이라는 이치 앞에서는 저는 참으로 작은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또한 공자의 효에 대한 조언은 저를 더욱더 부끄럽게 만듭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부모님께 '감사함'을 조금씩 더 많이 느껴가고 있는것만으로도 저의 마음이 조금씩 '효(孝)'에 다가가고 있음을 말이에요. '감사'의 자리에서 '공경'이 나오고 '공경'의 자리에서 '예절'이 나오며 '예절'의 자리에서 소통과 사랑이 완성될 수 있을 테니까요.
오늘 하루도 내 안에는 상반된 감정이 공존합니다. 부모님께서 내 곁에 계신 오늘 하루가 기쁘고,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어 두렵지요. 그러나 이 감정들은 부모님과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을 애틋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이 애틋함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터 실천해보겠습니다.
일단은 한 시간 뒤 퇴근길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는 반드시 좌우를 잘 살피고 건너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해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 설날에는 부모님께서 우리를 데리고 가고 싶어 하셨던 그 음식점을 다시 찾아가 보아야겠습니다. 아무리 오래 기다리더라도 꼭 음식을 먹고 나와 아주 맛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효도' 재입고는 시간 문제겠지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설명절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