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벤트, 한다? 안 한다? 공자의 선택은?

헌문(憲問) 8장

by whilelife

1. 나, 사랑해?



"사랑해."

라는 말은 참 달콤합니다. 그러나 연인에게 돌아오는 대답이 "나도." 한 마디라면? 혹은 묵묵부답이라면?

"성의 없이 '나도'가 뭐야?"

"왜 대답이 없는 거야?"

이렇게 싸움이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사실 연인 사이에는 이런 사소한 신경전이 참으로 자주 벌어집니다. 사랑을 확인하고 확인받고 싶은 본능은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미묘한 일로 마음 상해 화를 내고 나면 스스로 한없이 유치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일부러 꾹 눌러 참고 지내다가 어느 날 사소한 일로 크게 터지고는 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 그렇게 유치한 일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연애를 지나 결혼 생활을 해보니, 사랑을 확인하는 일은 오히려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나와 가정에 성실한 배우자를 만나야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요. 그 성실함의 기본 바탕에는 애정과 관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실 난 이벤트 같은 거 못 챙겨.'

결혼 3년째 되던 해에 남편이 제게 했던 말입니다. 지난 2년간 애써 왔다는 말로 들려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 서운하기도 했지요. 그 이후 한동안 남편의 말을 존중해서 결혼기념일을 챙기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조금씩 서운함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처럼, 이벤트 없이 쿨하게 넘어갈 수 있는 내가 되어 보려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몇 년이 지나자 서운함이 쌓여 임계치에 달했습니다.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나의 서운함을 그저 스스로 속 좁은 것이라 치부하며 사는 것이 맞을까? 어차피 한주머니에서 나가는 돈, 이벤트 하느라 돈을 쓰는 것보다는 그 돈을 아껴서 다른데 쓰는 게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서운하잖아. 이 서운함을 그냥 참아야 하는 걸까?'




2. 결혼기념일 이벤트, 해?! 말아?!




혼자서는 도저히 풀리지 않아, 나는 친구에게 전화했습니다.

"결혼기념일 이벤트, 챙겨야 해? 아니면 챙기지 마? 챙기든 안 챙기든 부부가 의견이 같으면 되는데, 나는 챙기고 싶어 하고 남편은 안 그래.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자 한문을 함께 공부했던 그 친구는 내게 이렇게 답합니다.

"의견이 안 맞으면 당연히 이벤트를 해야 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맞지!

공자께서도 말씀하셨잖아. '나는 예식을 아낀다.'라고 말이야."

친구의 말에 '아!'하고 떠오르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깔깔 웃고 말았습니다.

"그래! 공자님도 그랬지! 이벤트는 해야 하는 거야! 이벤트를 하는 건 중요한 거라고!"






자공이 달마다 예식에서 바치는 희생양을 없애려고 하자, 공자가 말했다.

"자공아, 너는 양을 아끼는 것이냐, 나는 그 예식을 아낀단다."


子貢欲去告朔之餼羊,

자공욕거곡삭지희양.

子曰 "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

자왈 "사야! 이애기양, 아애기례."


논어 팔일 17



'논어집주'의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당시 왕의 권한이 크게 축소되어 매달 양을 바치며 집행했던 예식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 예식에서 쓰이는 희생 양을 잡는 일은 계속 이어져 왔던 모양입니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공무를 보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공은 예식도 사라진 마당에 양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깝다고 판단하여 이를 없애려고 했지요. 자공은 계산이 빨랐던 제자이기에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던 듯합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공자는 자공을 말립니다. "너는 양을 아끼는구나. 나는 그 예식을 아낀다."라고 말이에요.


예식이 제대로 거행되지 않으니 이익을 따져보면 양의 희생은 헛된 일입니다. 그러나 양 잡는 일까지 없어지게 되면 예식은 그 흔적마저 완전히 사라져 버리겠지요. 그나마 양을 잡는 일이 있어 그러한 예식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왕의 권한이 강해지면, 그 흔적을 통해 다시 예식이 시작될지도 모를 일이고요.


자공은 예식이란 그저 '형식'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예식의 흔적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식의 흔적을 통해 예식을 떠올리고, 그 예식을 떠올리며 예식에 담긴 마음도 자연스럽게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결혼기념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는 바쁜 일상을 사느라고 코앞의 일을 해치우기에 바쁩니다. 바로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어떤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지, 일 년 중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얼마나 될까요?


결혼기념일은 그런 생각의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항상 함께 하기에 오히려 소홀했던 부분을 잠시 멈추어 서서 깊이 있게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말입니다. 소박한 기념일 이벤트를 통해서, 결혼식을 올렸던 그 떨렸던 순간, 서로가 너무나 소중했던 그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3. 사랑한다면 수고를 아끼지 마세요.







공자가 말했다.

"그를 사랑한다면, 노력하게 하라.

진정 그를 위한다면, 가르쳐라."


子曰 愛之, 能勿勞乎? 忠焉, 能勿誨乎?

자왈 애지, 능물노호? 충언, 능물회호?


헌문 8장




친구와 전화를 끊고 나서 남편에게 결혼기념일을 챙기자고 말해야지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선뜻 말을 꺼내기 어려웠습니다. 상대방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수고'를 강요하는 것 같아서 말이에요. 그러나 공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랑한다면 수고롭게 하라.'라고 말이지요. 또 '상대에게 진심이라면 가르쳐라.'라고도 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이름으로 상대방을 배려합니다. 그러나 그 배려가 지나쳐 상대방에게 무조건 맞추어 준다거나, 상대방의 의무마저도 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이것은 길게 가야 하는 관계에서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서운한 일이 있어도 꽁하게 담아둔 채 말하지 않고 마음에 쌓아두는 것도 상대를 진정 위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필요한 일은 할 수 있도록 서로 독려해 주는 것, 내가 서운한 부분을 알려주고 가르쳐 주는 것. 이런 사소한 일들이 서로의 생각을 알아가고 맞추어 살아가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 사랑한다면, 진정 상대를 위한다면 상대방의 수고를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공자의 가르침입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남편과 대화를 나누며 한 달 뒤에 있을 결혼기념일에 대해 넌지시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앞으로는 결혼기념일 이벤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대신 누구 한 사람을 위한 깜짝 이벤트가 아니라, 함께 준비해서 함께 즐기는 이벤트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결혼기념일 이벤트를 통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진지하게 모색해 보자고도 했습니다.


곤란해할 줄 알았던 남편은 의외로 흔쾌히 좋다고 대답합니다. 남편이 선물을 고르고, 제가 맛집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함께 준비해서 함께 즐기는 이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공자가 말했던 사랑의 모습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가르쳐주고 맞추어 나가는 것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들에게도 공자가 말했던 사랑을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한다면 수고롭게 하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했으니까요! 공부 열심히 하라고 잔소리도 더 열심히 하고, 부모를 위해 집안일도 더 자주 해야 한다고 가르쳐야겠습니다. 아마도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아이들은 제게 이렇게 말하겠지요?

"논어 노노! 공부하지 마세요!"

(참고로, 우리 아이들은 '논어'를 '노노'라고 부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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