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서가 아니라, 그립지가 않아서

자한 30, 술이 30

by whilelife


1. 보고는 싶은데 거리가 멀어서




잘 알고 지내던 후배에게 오래간만에 전화가 왔습니다. 후배는 얼굴을 한 번 보자고 이야기했지요. 순간 후배가 어디에서 사는지 떠올려 보았습니다. 제가 사는 곳과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그곳. 약속 장소가 집과 너무나 멀어질까 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뚜벅이인지라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버스 노선이라는 것이 먼 거리도 더욱 빙빙 돌아가니 시간도 체력도 많이 빼앗길 것이 염려되었습니다.


제가 오래도록 뚜벅이임을 알고 있는 후배가 제가 머뭇거리는 이유를 눈치챈 모양입니다. 후배는 최대한 우리 집과 가까운 곳으로 약속 장소를 잡아 제시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저는 퍼뜩 미안한 마음이 들어 후배의 의견을 거절했습니다. 대신 두 집 사이 중간쯤 되는 거리에서 가장 교통편이 좋은 동네로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후배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한 때 매우 죽이 잘 맞았던 후배였습니다. 인생의 동반자로 살고 싶을 만큼 사랑했던 후배였고, 같은 여자로 태어나 서로 아쉽다 말할 만큼 친한 후배였습니다. 그런 후배와 몇 년 만에 다시 만날 약속을 조율하던 통화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거리부터 재고 있었으니, 그리움과 진심이 후배보다 한참 부족했습니다.


그리움, 하니 떠오르는 시 한 수가 있습니다. 공자 선생님이 논어에 그리움에 관한 시 한 편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체지화 唐棣之華 앵두꽃,

편기번이 偏其反而 꽃잎 펄럭이네.

기불이사 豈不爾思 꽃 같은 너 그리워도

실시원이 室是遠而 너 있는 곳 이렇게나 멀구나


그런데 이 시의 내용에 대해, 공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그립지가 않아서이다. 어찌 거리가 멀어서이겠느냐."


子曰 未之思也, 夫何遠之有.

자왈 "미지사야, 부하원지유."

논어 자한 30




위에서 소개한 시는 민간의 가요를 모았다는 <시경> 시 중 하나입니다. 나그네인 한 남자가 우연히 앵두꽃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봅니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앵두꽃을 바라보다 자연스럽게 고향에 두고 온 아내, 혹은 연인을 생각하지요.


나그네는 아내를 떠올리며 말합니다. '왜 당신이 그립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집이 너무 먼 곳에 있네요.'라고 말이지요. 이렇게 시속 화자는 아내를 보러 가지 못하는 이유로 '집이 먼 곳에 있어서'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자는 아내를 보러 가지 않는 이유가 집이 멀어서가 아니라 그립지 않아서라고 지적합니다. 집이 먼 곳에 있다는 것은 자기 합리화이자 변명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제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것과 같은 시평입니다.


잘 안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남 탓으로 돌려버리는 것, 이것은 우리가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실수입니다. 공자는 이렇게 자기 자신은 돌아보지 않은 채, 너무나 쉽게 핑계를 대고 남 탓을 하는 보통 인간의 편의주의적 성향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집이 멀어서 자주 못 가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시의 화자가 공자의 평을 들으면 억울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공자가 지적한 것은 그만큼의 간절함이 없다는 것이겠지요. 간절하다면 아무리 멀어도,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리움의 대상을 찾아갔을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공자 선생님은 저의 마음을 무섭도록 정확하게 들추어냅니다. '보고는 싶은데, 거리가 멀어서.' 이 말은 사실 '먼 거리를 극복할 만큼 보고 싶지는 않아서'라는 말이라는 것을요. 자신을 되돌아보고 대상에 대한 진심 어린 마음을 다시 회복하는 것, 그것이 공자가 제게 바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2. 원한다면 바로 이 자리에




공자 선생님은 '멀다(遠)'는 말이 주는 함축을 자주 활용했습니다. 논어의 첫 장에 기록된 말에도 '멀다 원(遠)'이라는 한자가 사용된 구절이 있습니다.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함께 공부할 벗이 아주 먼 곳에서 찾아옵니다. 이렇게 자신의 학문을 사랑해 주는 이가 먼 곳을 마다하고 찾아오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학문을 사랑하는 이가 근방에 있음은 당연하다는 것을 내포합니다. 이는 앞서의 상황과는 반대됩니다. 함께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진실로 간절하기에 그 먼 곳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는 것이겠지요. 그야말로 '만남'에 대한 희구가 간절하다면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인(仁)이 먼 곳에 있겠는가? 내가 인(仁)하고자 하면 인(仁)은 곧 여기 이 자리에 온다."


子曰 "仁遠乎哉? 我欲仁斯仁至矣."

자왈 "인원호재? 아욕인사인지의."

논어 술이30




공자가 덕성의 최고의 가치로 꼽았던 '인(仁)'. 안연조차도 삼개 월에 한 번 정도 도달했다는 '인(仁)'의 상태를 공자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은 먼 곳에 있지 않다고요. 내가 원한다면 바로 이 자리, 나에게 찾아온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어렵다는 인격의 최고 단계인 '인(仁)'조차도 내가 진심으로 원하면 내게 곧바로 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입니다. 시 속의 나그네 또한 그리움을 담아 아내를 향해 발걸음을 돌려야 했을 것입니다.


"인(仁)이 먼 곳에 있겠는가? 내가 인(仁)하고자 하면 인(仁)은 곧 여기 이 자리에 온다."

공자가 말한 이 문장에서 '인(仁)' 대신 다른 말을 넣어본다면 어떨까요?


"( )이/가 먼 곳에 있겠는가? 내가 ( )하고자 하면 ( )은/는 곧 여기 이 자리에 온다."

바로 이렇게 말이지요.


괄호 안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작성해 봅니다. 다이어트, 건강한 음식 섭취하기, 독서하기, 부자 되기, 보고 싶은 사람들 만나기 등등 으로요. 괄호 안에 넣고 싶은 단어는 머릿속에 뭉게뭉게 피어오릅니다. 그러나 막상 손글씨로 적어 넣으려 하니 꺼려집니다.


이 단어를 책임지기 위해 시도해야 할 많은 일들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결국 내가 그만큼 간절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돌이켜보니 정작 나는 수많은 핑계를 내세우며 편안함과 나태함에 안주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사의 모든 진심을 나태함에 묻어두고 꺼내보지 않았습니다.


멀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그립지가 않아서 약속을 망설였음을 인정합니다. 후배와의 소중한 추억을 건져 내어 거울처럼 깨끗하게 닦아 봅니다. 후배를 진정 사랑했던 그 감정을 다시 퍼올려 마음자리를 은근히 데워내 봅니다. 몇 년 만에 보는 소중한 나의 친구, 즐거운 마음으로 내 진심을 다하여 그녀를 향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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