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출발점에서
고양이와 고양이, 감나무와 감나무. 종(種)이 다를 건 없는데 그 고양이와 이 고양이는 분명히 다르다. 그때 감나무와 지금 눈앞의 감나무가 다른 것은 놀라운 일이다. 아니, 경탄할 만한 마법이다.
그들은 보통의 경우라면 하나하나 객체화되어 있는 개별 존재들일 수 없다. 지난해 이맘때 산에 올라 보았던 소나무와 오늘 출근길 국도변에서 어슴푸레 형체가 보였던 소나무는 그게 그거다. 약용과 목재용으로 활용 가능한 겉씨식물 소나무과의 상록침엽 교목. 회사 근처 구도심 골목을 잽싸게 종횡하는 길고양이의 색과, 몇 집 안 되는 동네 농가들 주변을 주름잡는 비만 길고양이 녀석들의 색도 구분하기 힘들다. 모두 갈색 무늬가 얼룩덜룩한 코리안 숏헤어다. 퉁쳐서 그렇다.
애써 의미부여를 하고 살아가는 땅에서 만나는 것들은 그렇지 않다. 이 버거운 육신이 밥 먹고 책 읽고 누워서 코 골던 곳에서 10미터 거리에 붙박여 있는 감나무의 실존은 진리다. 멍하니 턱을 괴고 앞집 감나무를 바라보면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샐쭉한 표정을 짓는다. 도도하다. 관람료라도 내라는 식이다. 나도 할 말은 있다. 가을이 되어 꽃받침째 떨어지는 초록색 파편을 치우는 것도 나의 몫이고, 꽃이 떨어진 그 자리에서 채 홍시로 성장하기도 전에 추락하는 열매의 끔찍한 핏빛 잔해를 처리하는 것도 나의 몫이니까. 이만하면 거들먹거리며 느긋하게 감상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경계를 넘어온 가지에 달린 열매는 나의 것이라 하지 않는가. 고맙게도 앞집 아저씨는 매년 홍시를 비닐봉지에 넉넉하게 담아내어 주신다. 그러니까 우리 집 앞에 서 있는 저 감나무는 나와 아저씨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덩치 큰 새침데기다.
한라산을 바라보며 5년 전까지 당당히 우리 집 마당에 서 있었던 예전 감나무는 전혀 다른 개별자이다. 꽃과 열매가 떨어지는 자리에는 파쇄석이 깔려 있어서 지저분함이 크게 포착되지 않았다. 빗자루질을 해 달라고 귀찮게 하지도 않으면서 여름이면 넉넉한 그늘까지 내어주는 무던한 녀석이다. 식용 감이 아니라 떫디 떫은 염색용 감이 달렸다. 주홍빛이 산산한 천연의 가을색을 창조하는 예술가의 풍모도 지녔다. 뻗어간 나뭇가지에서는 섬의 추억들이 송골송골 열매가 되어 영글었다.
유별난 기질 때문이다. 이건 방랑벽이라고 부르기도 뭣하고 역마살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주체적이다. 제법 오랜 시간을 살았던 제주 섬에서 다시 바다를 건너고야 말았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6년간, 사회 초년을 보낸 강원도로의 회귀는 무려 19년 만이었다. 돌연 그 땅이 그립다는 감상적인 이유로 강원도 근무를 지원해 버린 나는 가족들에게는 독재자와 다름 아니었다. 성정은 이기적이고 심기는 나약해 빠져서 그리 하지 않고서는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무심하게 툭툭 놓인 듯한 제주의 오름과 스며들어가도 좋은 제주의 옥빛 바다는 몽환의 세계를 넘나드는 것이어서 나 역시 이승의 존재가 아닌 듯하다. 바라보는 눈은 가로로 길어지고 좁아져 물방울을 만들어낸다. 제주사람 다 되었다는 거만한 자세는 겉치레.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제주섬이 주는 알 수 없는 애상은 흩어졌다가도 다시 와 쌓이기를 반복했다.
벼락같은 충격이 필요했다. 봉긋한. 야트막한. 잔잔한. 과 같은 형용사는 강원도에 없었다. 망설임 없이 내달리는 근육질 산맥의 기세는 짙푸른 공포가 엄습하는 동해의 노도와 일맥상통한다. 그러니까 강원도의 산은 곧 바다였던 것이다. 강원에서 나의 눈은 번쩍 뜨여 이마에 주름까지 드리운다. 여기서 눈물이 맺힌다면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동해의 빛은 '쾅!'하고 덮쳐온다. 완충장치 없이 통과해 버린 태양빛은, 여기에선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경각을 강제한다. 그렇다면 성공이다. 봉긋함은 뾰족함으로, 잔잔함은 내달림으로. 그걸 찾아온 것이므로 각오해야 마땅하다.
그렇게 강원도의 산하를 배경으로 집을 지었다. 매몰찬 강원을 각오했다기엔 민망할 정도의 호사인가. 그러나 태풍급 산바람이 사시사철 불어 들고, 폭설의 정의가 남다른 농촌마을의 자연력은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장쾌한 태백산맥의 옆줄기를 정면으로 부닥치며 조망하는 나날의 감동에도 불구하고, '텅'이라는 한 글자가 헛헛한 배달앱은 진정 매몰찬 시골살이가 뭔지 지난 4년간 확인시켜 주었다. 악천후보다 괴로운 건 배달음식의 부재였던 걸로.
각진 강원도의 기세 속이어도 아기자기함까지 잃어버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야외 화단에 11월 심어둔 귀한 생명들은 단단한 흙을 어미닭 삼아 어김없이 알을 깨고 나왔다. 저 멀리 남쪽에서도 이곳 북쪽에서도 에너지와 양분을 꽁꽁 품고 계절을 났던 튤립 구근은 각자의 품종에 맞는 빛의 향연을 청명 절기에 맞춰 피워 올렸다. 간질거리는 바람에 함유된 봄날의 비린내를 들이마시며 옥수수도 심고 상추도 심고, 로즈메리도 열 맞춰 심어야겠다.
한국이 원산지인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미스김 라일락'의 연보라 꽃은 군집으로 터져야만 매력도 터진다. 목석처럼 박혀 뚫어져라 바라보아도 두 눈에 피로를 주지 않는다. 그윽하되 찬란하다. 자주색 뭉게구름 같은 몽환은 향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유혹하되 찌르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주문할 때부터 수입, 통관시점에 따라 배송이 유동적이라는 안내를 받았으므로 튤립 구근은 확실한 유럽산이다. 봄날 명징하게 피어나는 꽃은 라일락의 집단성과 대척에 놓여 있다. 제법 긴 시간, 명명백백의 아름다움을 뽐내다가 커다란 잎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며 화려한 전시회를 마친다. 교목인 목련이 희거나 자줏빛인 꽃잎을 툭툭 떨어뜨리는 것과 비슷한 최후다. '난 이제 글렀어'를 대놓고 드러낸다. 탄생은 경이롭고 말로는 처참하다. 튤립 역시 색깔별로 하나씩의 개체는 아쉽다. 라일락처럼 나무가 아니라 정직하게 하나의 구근을 심어야 하나의 꽃대가 올라오지만, 최소한 수 십 개는 심어놓아야 화단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고양이도 소나무도 감나무도 라일락도 튤립도 보편적인 건 없다. 시골에서의 삶에선.
주택살이는 곧 에피소드다. 도심의 타운하우스가 아닌 깡촌에서의 주택이라면 계절에 따라 깜짝 이벤트가 생동하는 것이다. 제주도의 태풍철은 긴장 그 자체다. 밤새 강풍으로 뽑힐 듯 전율하던 베란다의 난간과 진동으로 절규하던 창문은 도심의 아파트가 아닌 애월의 시골에 설치된 것을 땅을 치며 한탄했을 것이다. 태풍이 막 육지로 이동한 아침, 맞받아치며 부는 바람의 저항을 이겨내고 가까스로 현관문을 열어보니 보일러실의 두꺼운 철문이 길 한복판에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아래 절반 부분이 휘어진 채로. 엿장수가 있었다면 한 달치 간식거리는 장만했을 뻔했다. 꿈같은 추억도 물론 많다. 마실을 나가려 신을 신고 현관문을 열었던 어느 여름밤, 막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오려 했던 것처럼 반딧불이들이 공중에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넋을 놓고 라이트 쇼를 바라보다 손바닥을 펼쳤더니 닿을 듯 저공비행 모드로 진입했던 그 너그러운 반딧불이를 난 잊을 수가 없다. 하늘의 별이 되지 못한 속세의 별. 황가람 씨는 이걸 봤어야 했다.
강원도 살이는 또 어떤가. 열린 문틈으로 들쥐가 들어와 빛과 같은 속도로 거실을 누비고 다니던 범상치 않은 경험은 일회성이고, 현관 문고리에 걸려있는 비닐봉지의 감사함은 철에 따라 그칠 줄 모른다. 작물의 수확기마다 봉지 안에는 감자도 있고 옥수수도 있으며, 홍시와 단감도 그득하다. 쿨내 풀풀 풍기는 농촌 어르신들의 나눔이다. 며칠 뒤 고맙다는 인사라도 건넬라치면 즉각 돌아오는 손사래. 아, 이토록 츤데레가 모여 사는 마을이라니! 강원도 시골에서 살다 보면 지나친 감사 표현은 결례가 된다.
강원도로 유턴 후 살 터를 탐색하던 어느 날, 지금은 앞의 앞 집 이웃이 된 할아버지를 우연히 만났다. 임장길에선 현지 주민이 최고의 정보통인 것. 낯선 곳에서 정착하려는 외지인이라면 응당 물어봐야 하는 잡다한 것들을 잡다하게 여쭤보았다. 필요 이상 정보를 얻고 돌아가려는 찰나, 할아버지의 한 마디.
"꼭 와서 살았으면 좋겠네, 우리야 젊은 사람들 와 있으면 좋지."
제주 애월의 작은 동네에 둥지를 틀려 할 때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 낯선 이를 상대로 익숙지 않은 권유의 한마디를 던지는 토박이 어르신들은 차라리 수줍은 소녀와도 같다. 그럴 때 마음이 약해져 그곳에 그대로 눌러앉게 되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난 항상 촌동네의 활력을 높여주는 청년인 줄 알았는데 어느덧 초로의 나이가 되어버린 게 아닌가. 거울 좀 자주 봐야 한다. 더 이상 동네주민의 평균연령을 낮출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는 걸 실감한 순간, 날 받아주려는 강원도의 품은 더욱 고마울 따름이었다.
ASMR은 '자율 감각 쾌락 반응'이란다. 시각이나 후각 등 감각의 종류에 제한은 없으나 주로 청각을 통해 얻는 안정감이나 쾌감을 나타낼 때가 많다. 유튜브에서 '잠 잘 오는 소리'를 찾아 재생시켜 놓고 꿈나라로 인도받으려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시골 사는 삶이라고 유튜브 감상을 게을리하는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의 ASMR은 애처로운 휴대전화 속 화면이 아니라 광활한 밤하늘의 투명한 공기에 실린 배경음으로부터 비롯된다.
봄날 개구리 소리는 강 약 중강 약이 뒤섞이며 혼란 속 조화를 이룬다. 그것이 번식을 위한 필사적인 부르짖음이라 해도 소파에 누운 게으름뱅이의 귀에는 수 만 마리 합창단의 무해한 코러스 소리일 뿐이다. 개구리가 성악가라면 초가을의 풀벌레는 현악기 연주자다. 쓰르르르 활을 켜는 그들의 기교는 꺾임음 없이 기승전결을 이룬다. 강원도 개구리와 풀벌레의 소리는 짙다. 그들도 사람을 닮아가 투박한 강원도 사투리로 공기를 진동시키는 것일까. 착각일 확률이 크지만 내가 그렇게 들리면 그런 것이다.
대관령의 묵직한 내부가 하릴없이 뚫려 터널이 관통하게 되면서, 영서와 영동은 느닷없이 생얼을 마주한 소개팅에서의 남녀가 돼 버렸다. 매일이 뻘쭘한 나날들이다. 지금은 대관령 옛길로 부르는 과거의 대관령 고갯길은 엄연한 영동고속도로의 일부였는데, 곡선의 이끌림으로 영서와 영동은 은근한 어울렁 더울렁을 할 수 있었다. 공간의 전이가 자연스러웠다는 뜻이다. 령(嶺)의 피부를 타고 돌아내려오는 길에선 바퀴에 전달되는 고개의 기울기도 ASMR이었고, 저 멀리 각각의 크기와 관계없이 작은 태양급 광도를 자랑하는 오징어배의 집어등도 ASMR이었다.
어찌할 수 없는 건 변한 것들이다. 신인의 자세로 감격하며 마주친 강원의 산하는 20년 세월의 풍화도 무색하게 높고 깊었다. 모든 것에 애처로울 만큼 부족한 감각이지만 전설과도 같은 이 고장을 또박또박 말해보련다. 고양된 것은 무엇이고 사윈 것은 무엇인지. 찬란해서 기쁘고 떠나가서 슬픈 것은 무엇인지. 풀벌레 소리 그득한 이곳 베이스캠프 겸 보금자리에서 슬슬 떠날 채비를 해야겠다. 너그럽게 따라와 주시길.
양해를 구해야겠다. 추억과 감상의 켜가 일정한 두께 이상 쌓여있는 곳만을 글로 남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살았거나 살고 있는 곳, 그리고 그 언저리의 이야기를 직조하려 하다 보니 강원 영동지역 위주의 구성이 되었다. 하긴 강원도 구석구석을 전부 훑겠다는 자체가 건방진 일이기도 하고, 애초에 불가능한 작업이기도 하다. 영서지역 도시들의 숨 멎는 아름다움은 그 아름다움을 곁에서 제대로 파악한 사람들의 몫일 것이다.
아, 그래서 자리 잡아 살고 있는 시골동네인 이곳이 도대체 어딘지는 정작 말씀드리지 못했다. 미괄식도 이런 불친절한 미괄식이 없다.
(이 글은 전체 강원도 글의 들어가는 말 형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