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 아래 놓인 망자들의 정원, 성 페터 묘지 ②
"이봐, 들었어? 슈툼푀거 그 작자의 부인, 오늘 아침 죽은 채로 발견됐다는구먼."
"이젠 놀랍지도 않네. 그녀가 여섯 번째 부인 아닌가?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아니, 어떻게 된 게 그 조각가와 결혼하는 여자마다 그렇게 허망하네 죽어버리냐고. 남편 하나가 부인 여섯 명째 초상을 치르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러게 말일세. 근데 아무리 봐도 그 성실한 양반이 자기 부인을 죽일 까닭은 없고, 이건 저주네 저주. 그 이유밖에는 설명한 길이 없어. 쯧쯧쯧."
벌써 여섯 번째다. 멀쩡하던 젊은 부인은 아침이 되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고, 이를 수습하러 온 경찰들도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성공한 조각가인 슈툼푀거에게 이번에도 의혹의 눈길이 쏠렸다. 당연한 일이다. 신혼을 벗어나기도 전 의문사를 당한 그의 부인이 벌써 여섯 명째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결론은 원인불명의 돌연사. 철저한 조사를 통해서도 남편을 의심할 만한 점은 티끌만큼도 발견되지 않았다. 시체에서는 사소한 멍 하나 발견되지 않았고, 질식의 흔적도 없었다. 심지어 앞선 아내들과 마찬가지로 옅은 미소를 띤 채 숨진 슈툼푀거의 여섯 번째 부인은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잘츠부르크의 실력 있는 조각가인 슈툼푀거는 인성 좋고 촉망받는 예술가가 아니던가. 살인을 저지를 이유는 눈곱만큼도 있을 수 없었다. 불쌍한 슈툼푀거! 마지막 여섯 번째 부인으로부터 얻은 자식까지 합하면 그의 슬하엔 무려 건사할 스물한 명의 아들 딸이 있었다.
짝 없는 삶을 두려워하는 슈툼푀거는 다시 결혼 상대를 물색했다. 궁전에서 일하며 대주교의 총애를 받을 만큼 잘츠부르크가 인정하는 예술가였지만, 아무리 능력이 있는 슈툼푀거라 해도 이쯤 되면 가망이 없어 보였다. 시집만 가면 백 퍼센트 죽어 나오는 전처들 소식을 듣고, 누가 그와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일곱 번째 결혼을 가능하게 한 건 이전과 마찬가지 힘인 재산이었다. 슈툼푀거는 잘츠부르크 교외에 살고 있던 가난한 집안에 엄청난 액수의 사례금을 지불하고 스무 살이나 어린 신부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역의 셀럽답게 이번에도 결혼식은 아름다운 성 페터 성당에서였고, 잘츠부르크 시민들은 여섯 명의 아내를 차례로 떠나보낸 이 조각가에게 오히려 동정심과 축하를 보내고 있었다.
"이봐 슈툼푀거. 이번엔 정말 사랑하는 부인과 오래도록 행복하기를 바란다네."
"그럼요. 절대 이번에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지 않겠습니다. 항상 옆에서 지켜주고, 언제나 웃음이 끊이지 않게 할 겁니다.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게 해 줄 거라니까요. 맹세합니다."
성대한 결혼식이 끝나고 부부는 행복한 신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이들의 삶 역시 행복했고 아름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잘츠부르크 경찰서에 슈툼푀거의 일곱 번째 부인이 들이닥쳤다. 벌겋게 달아오른 표정으로 황급하게 서장실의 문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것이었다.
"살려주세요, 서장님! 이곳을 나가면 전 죽을 거예요. 절 좀 숨겨주세요."
"아니, 슈툼푀거 부인, 이게 무슨 일입니까? 흥분하지 마시고 자리에 좀 앉아 차분히 말씀해 주세요."
헐떡이던 숨을 간신히 가라앉힌 어린 부인은 물을 한 잔 들이켠 뒤 서장을 바라보며 입술을 뗐다.
"그가 범인이에요. 슈툼푀거, 그가 살인자였다구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시겠지만 여섯 번의 비극이 있는 동안 그는 아무런 혐의가 없었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운이 지독히 없을 뿐이었지요."
"믿지 못하실 줄 알았어요. 말씀을 드릴게요. 사실 한 달쯤 전부터 남편이 하루에도 몇 번씩 절 간질이는 거예요. 한 번에 몇 초 동안만 그러길래 처음엔 장난이겠거니 했죠. 안 그래도 간지럼을 잘 타는 편이라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을 얘기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정도가 심해져 일주일 전부터는 절 꽉 안은 상태로 간질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정말 죽을 것 같아 놔 달라고 해도, 제가 거의 탈진할 상태가 돼야 놔주는 게 아니겠어요."
"네? 그게 정말입니까?"
"결국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 사이에는 절 의자에 묶어두고는 발바닥부터 귓불까지 쉬지 않고 간질이는 바람에 죽기 일보직전까지 갔답니다. 간지러워서 죽을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니까요, 서장님."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부인?"
"동이 틀 때쯤 남편이 궁전에 놓일 조각상을 깎으러 가야 한다며 급하게 나가더군요. 집에 돌아오면 더 간질이겠다는 말과 함께 말이죠. 전 손톱에 피가 나도록 허리 쪽 결박을 풀고 이렇게 뛰어온 거예요. 중간에 그이가 집에 들어오면 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미스터리는 풀렸다. 저명한 의사의 소견을 들은 경찰서장은 결론을 낼 수 있었다. 간지러움이 한계에 달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슈툼푀거는 여섯 명의 부인들을 묶어놓고 간지러움을 태워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 틀림없었다. 다만 이미 숨진 그의 아내들에 대한 살인 혐의는 입증되지 않았으며, 천우신조로 살아남은 일곱 번째 아내의 증언으로, 저명한 조각가 슈툼푀거는 그녀에 대한 살인미수죄를 적용받아 엄한 벌을 받았다. 어린 아내와의 결혼식에서 그가 남긴 말을 주변 사람들은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게 해 줄 거라니까요..."
성 페터 묘지의 한편에서 슈툼푀거와 그의 여섯 부인의 묘비가 한데 모여 있는 걸 볼 수 있다. 살아남은 일곱 번째 부인은 그녀의 끔찍한 남편과 함께 묻히지 않았다. 살인의 방식 탓에 더욱 웃어넘길 수 없는 이야기가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철제 묘비에 그려진 부인들의 이름을 하나씩 확인하는 와중에 새어 나오는 근심은 수습할 길이 없다. 이렇게 아내들을 가까이 두면 죽어서도 슈툼푀거가 간지럽히며 괴롭히지 않을까. 내가 묘를 조성하는 사람이었다면 이토록 구제불능인 전 남편의 묘는 멀리 떨어진 곳에 따로 두었을 것이다. 아내들에게 리치가 닿을 수 없는 저 먼 곳으로, 최소한 카푸치너처베르크 중턱 정도는 돼야 했을 것이다.
숨길 수 있는 건 없다는 뻔한 교훈도 드러났으니 낼 수 있는 결론이다. 일곱 번째 부인이 아니었으면 묻혔을 진실을 생각하자니 서늘한 바람이 뒤통수를 훑고 지나가는 것만 같다. 우리가 상상도 못할 기구한 죽음을 덮고 있는 무덤들이 세상엔 얼마나 많을 것인가. 슈툼푀거와 그의 부인들은 괴상하고 변태적인 사건의 집합으로 성 페터 묘지의 땅을 공동 점유하게 됐지만, 적어도 방문객들에게는 어디서도 듣지 못할 잘츠부르크만의 이야기를 남겨 준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잘츠부르크 성 페터 묘지만의 개성은 묀히스베르크가 품고 있다. 절벽은 놀랍다. 시각적인 효과를 넘어 묘지의 일부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암벽을 깎아 만들어진 묘지는 입구에 잘츠부르크 최고의 셀럽을 모시고 있어 묘지 탐방의 하이라이트다. 입장은 유료지만 잘츠부르크 카드가 있으면 무사통과다. 여기까지 와서 슈툼푀거와 그 부인들만 보고 가기에는 사사롭다. 소박한 넓이의 묘지에서 카타콤베의 입구를 놓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빛과 교차하는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