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천

할슈타트 교구성당 묘지 ①

by Total Eclipse







이른 아침에 할슈타트를 걷는다는 건 커다란 축복이다. 호숫가를 왕래하는 관광객들이 사라지고 할슈타터제 수면에서 물안개가 전설처럼 피어오르는 황홀한 장면의 기억 유통기한은 평생일 것이다. 도심 속 이른 아침에 스멀대는, 먹고살기를 위한 준비단계의 긴장감이라곤 여기에 없다. 산은 산대로, 호수는 호수대로 자연스럽게 거기 있을 뿐이다. 모두의 연인이었던 호수 마을은 이 시간만큼은 나만의 사랑이다. 잠에서 깨어 각성의 경지에 도달하기 전 숙소를 나서야 한다.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몽롱한 상태에서 걸음을 떼야 할슈타트의 동화에 흡수될 수 있다.

다시 마을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비좁아 보이던 마르크트 광장은 인적이 없어 이제야 광장답다. 여기서 할슈타트 전망대로 직진하지 않고 왼쪽의 절벽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경사를 이루며 서 있는 집들 사이사이 운치 있는 계단이 숨어있다. 수줍게 나 있는 계단을 찾고 고르는 맛이 쏠쏠하다. 어느 계단을 밟고 올라가도 경치의 변화가 재미있다. 체득해야 할 현지인 바이브에도 종류가 있을 텐데, 여기서부터의 풍경은 할슈타트 주민들이 익숙할 파노라마다. 계단을 오르는 도중 계속 뒤를 돌아다보게 될 것이다. 메두사의 유혹에 굴복해 돌이 되더라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돌아보고 감탄하고 오르고, 돌아보고 감탄하고 오르는 사이클의 무한 반복이다. 미세하게 높아지는 고도만큼 망막에 입력되는 환상도 겹겹이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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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반대편 언덕의 주택가를 오르는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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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_085326.jpg 마을 윗길에서 바라보는 할슈타트


주택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그대로 걸어간다. 잘츠캄머구트 비장의 마을에서도 메멘토 모리를 품기 위해선 먼저 교구 성당을 찾아야 한다. 호수 쪽에서 할슈타트의 전경을 바라보면 가장 눈에 띄는 두 개의 건축물은 아래쪽 루터교회와 언덕의 교구 성당이다. 고개를 들면 빤히 보이던 교구 성당은 같은 높이에서 걷다 보니 굽은 골목 탓에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넓지 않은 동네, 가던 방향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성당의 파사드가 등장하고, 옆을 돌아가니 성당이 품고 있는 묘지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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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_085553.jpg 할슈타트 교구 성당과 묘지


할슈타트 교구 성당의 이름은 성모 승천 성당(Pfarrkirche Mariä Himmelfahrt)이고, '산속의 마리아(Maria am Berg)'란 아름다운 별칭을 갖고 있다.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기리며 그녀를 모시고 있으니 가톨릭 성전임에 틀림없다. 할슈타트의 랜드마크인 호숫가의 루터 교회가 종교개혁의 주인공을 모신 개신 교회라면 호수를 바라보는 언덕 위 성모 승천 성당은 구교의 성당. 할슈타트에선 기독교 신, 구의 성전이 치우침 없이 모두 들어서 있다. 물론 마리아가 승천을 하기엔 한 치라도 높은 자리가 유리할 것이다. 1181년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은 1505년, 당시의 흐름에 따라 고딕 양식으로 리모델링되었다. 마을을 대표하는 유럽의 교회와 성당이 그렇듯 산속의 마리아가 자리 잡은 터는 마을 공동묘지 역할을 해 왔으며,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망자들에게 선사해 왔다.

장담하건대 성당 안을 둘러보는 일은 이 축복받은 묘지를 둘러본 다음으로 미루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거쳐온 묘지들과 달리 산속의 마리아가 보살피는 묘지에 누워있는 망자 중엔 생전의 유명인이 없다. 적어도 범 유럽적으로는. 그러나 콕 찍어 참배해야 할 대상이 없다는 사실이 묘지 감상의 집중도를 오히려 높여준다. 풍수지리까지는 모르지만 이곳은 배산임수의 전범(典範)으로, 우리나라의 이름난 지관이 와도 감탄했을 터가 아닐까. 새집을 연상시키는 모양의 나지막한 비목들은 하나같이 할슈타터제를 조망하고 있다. 묘지의 후면에서 바라보는 비목은 마치 이방인들에게 호수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와도 같다. 노랗고 빨간 꽃들이 비목을 떠받치는 소박한 묘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 놓여있음을 스스로 인식하는 듯 편안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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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가 화두가 되고 있다. 병원이나 요양원이 아닌 내가 사는 집에서 노화를 겪다가 그대로 죽음을 맞겠다는 의지가 담긴 용어다. 의학기술의 발달은 대형 병원을 탄생시켰고, 사람의 병을 고치는 병원은 환자의 죽음까지 인수하는 장례식장도 시설 안에 두었다. 죽음을 회피해야 할 극상의 공포로 느끼는 현대인은 생명의 끈을 일 분 일 초라도 연장해 주는 병상에 누워있는 게 표준이 되었다. 환자의 마지막 숨이 넘어가면 시스템은 다시 작동한다. 사망선고를 내리고 서류 작업은 진행되며, 드디어 장례업체의 노련한 일손이 활약할 시간이다. 병원 내 장례 시설과 절차에 정통한 장례업체는 망자의 염을 준비함과 동시에 이미 정해진 장례식장 1호실을 단장하기 시작한다. 위생적이고 효율적인 장례의 과정에 조문객들의 애도행위 역시 일사불란하다. 반복 학습된 유교적 절차는 식은 죽 먹기고, 육개장과 더불어 차려질 반찬의 종류도 짐작하면 백발백중이다. 물론 추모의 진정성에 흠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묵직한 슬픔은 죽어가는 사람의 몫이다. 다들 그렇게 죽어갔으니 나도 별 수 있나 싶어도, 가는 숨을 부여잡고 바라보는 창 밖엔 이웃 병동의 회색뿐이다. 시선을 떨구어보니 내 몸에 꽂힌 호스만 예닐곱은 되는 것 같다. 이게 내가 맞는 죽음의 풍경이란 말인가.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작은 방에 누워있는 할아버지 주위로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아빠, 엄마와 이모들 사이에 낯선 아저씨들이 두어 명 보였다.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이지만 차분한 모습이었다. 마룻바닥에 요를 깔고 누워 계셨기에 할아버지의 모습은 어른들에 가려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어서 그 어린 나이에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걸 깨닫고 내 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버렸다. 그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기억은 분명한데, 죽어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가까이서 볼 수 없었다. 엄마와 이모들이 오열을 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슬피 울었겠지. 아무튼 나의 외할버지는 우리 집 작은 방에서 죽었다. 48년 전에도 아파트에 살던 나는, 사람은 살던 집에서 죽어야 하는 줄 알았다. 당시에는 서울에서도 집에서 임종을 했던 게 자연스러웠다. 앞 동 할아버지도, 1층 할머니도 늘 주무시던 침대에서 돌아가셨으니까.

그러니까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거다, 종합병원의 병상에서 호흡기로 연명하다 날카로운 기계음을 들으며 세상을 하직하게 된 것이. 조선시대로 가자는 것도, 중세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닌 불과 사오십 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돌리자는 것이다. 생명이 빠져나간 신체가 생활공간에 남았다는 게 두려울 수도 있다, 당분간은. 그러나 에이징 인 플레이스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바람은 단순하다. 최후의 순간 역시 나의 일상으로 포섭하고 싶다는 것. 일어나서 먹고 일하고 쉬고 놀고 꿈꾸던 나의 공간에서 긴 꿈을 꾸러 가듯 눈을 감는 것. 생의 마지막에 바라는 단 한 가지는 익숙함의 위안이다.

에이징 인 플레이스가 다시 보편화된다면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몇 백 가구가 한데 들어있는 고층 아파트엔 시시때때로 통곡 소리가 들려온다. 장례업체의 리무진은 오늘도 현관의 차단봉 앞에서 대기 중이다. 거북하고 꺼림칙하다. 기다리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하얀 천이 덮인 시신이 들려 나온다. 결코 쉽지 않을 도심 한복판에서의 에이징 인 플레이스 과정이다. 사는 곳에서의 마지막을 바라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조금씩 늘고 있다. 에이징 인 플레이스가 부활한다면 먼저 농산어촌이나 중소도시에서가 아닐까. 영어로 쓰인 어색한 전문용어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생로병사는 현대의 수십 년을 제외하고 늘 삶의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첨단 의학의 역할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다. 고칠 수 있고, 고쳐야 하는 질병은 최선의 방법을 동원해 병원에서 극복되어야 한다. 다만 의미 없이 연명할 것이 명백한 삶조차 호스로 결박해 병상에 구속시키지 말자는 게 에이징 인 플레이스를 외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자연스러운 소멸의 과정엔 익숙하고 외롭지 않은 환경이 함께 해야 한다는 것. 시대에 맞지 않는 욕심이라 치부할 수 없는 본능의 소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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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이어지던 곳에서 맞는 죽음을 할슈타트의 공동묘지에서 묻힌 원주민들만큼 간절히 바라던 이들은 없을 것이다. 듬직한 다흐슈타인(Dachstein) 산의 보호를 받으며 넉넉한 할슈타터제를 연못 삼아 살아온 그들에게 의탁할 것은 그들의 공간뿐이다. 죽음은 그들에게 미지의 그 무엇이 아니다. 회피의 그 무엇도 아니다. 일생을 피아노 곡으로 비유하자면 종결부의 확실한 타건이 아름다운 끝맺음일 것이고, 문학 작품으로 보자면 종결 문장 뒤 힘주어 찍어 넣는 마침표가 감동적인 마무리일 것이다. 누군가의 이상향에 살다 묻힌 호수 마을의 선조들은 그래서 행복한 넋일 수밖에 없다. 묘지에 잠든 이들의 영혼이 방울져 둥실 떠올라 호수 위로 날아간다. 살랑이는 바람은 방울을 하늘로 올려 보낸다. 할슈타트 묘지의 무명인들은 오늘도 승천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