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 속에서 찾은 우리의 안식처

by 초율

아이들은 애니메이트의 뜨거운 열기 속으로 사라졌고, 애니메이트 앞 광장에서는 이름 모를 캐릭터 행사가 한창이었다.

캐릭터 이름도 모르는데 사람들이 열광하며 사진 찍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열심히 자기 역할을 다하는 인형 탈 속에서 움직이고 있을 그 사람이 누굴까 더 궁금해졌다.

포토 타임을 한참 구경하다가 남편과 나는 너무 추워져서 따뜻한 차를 마시기로 했다.

광장에서 바로 보이는 카페가 있었지만, 조금 더 분위기 좋은 곳을 찾아보고 싶은 욕심에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람이 차갑고 매서워질수록 광장 앞 카페를 그냥 지나친 것이 후회로 밀려왔다.

이케부쿠로의 건물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유난히 매서워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포토 타임을 한참 구경하다가 남편과 나는 너무 추워져서 따뜻한 차를 마시기로 했다.

광장에서 바로 보이는 카페가 있었지만, 조금 더 분위기 좋은 곳을 찾아보고 싶은 욕심에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람이 차갑고 매서워질수록 광장 앞 카페를 그냥 지나친 것이 후회로 밀려왔다.

이케부쿠로의 건물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유난히 매서워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어디라도 좀 들어가자.”


마땅한 카페를 찾는 것도 일이었다.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기를 몇 번, 마음에 드는 곳은 이미 만석이거나 예약이 필요했다.

둘이 앉을 곳을 찾기가 이렇게 힘든 일인지 탄식하며 한참을 헤매다 겨우 작은 카페 하나를 발견했다.

결국 애니메이트 근처 건물이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었지만, 그마저도 감사했다.

문을 여는 순간 밀려온 따뜻한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그 잠깐의 온기에 팽팽했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나는 따뜻한 라테를, 남편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두 손으로 감싸 쥔 컵의 온기가 손끝부터 천천히 스며들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건너편 남편의 얼굴이 유난히 창백해 보였다.

원래도 추위를 많이 타는 데다, 여행지에서는 유독 체력이 빨리 소진되는 사람이다.

여행 오기 전부터 회사 일로 바빴던 데다 짐 나르고 아이들 따라다니며 하루 종일 걸었으니, 그의 에너지는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더 따뜻한 안쪽 자리로 남편을 옮겨 앉혔다.


“여기가 훨씬 따뜻해. 이쪽으로 앉아.”


별말은 없었지만, 그것이 지친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다행히 나는 괜찮았다.

평소 꾸준히 운동을 해온 덕분인지 오래 걸어도 버틸 만했다.

여행을 다닐수록 절실히 드는 생각이 있다.

적어도 나 하나는 아프지 말아야겠다는 것.

그래야 이 가족이라는 팀이 굴러간다.

운동을 놓지 않았던 지난 시간들이 그날만큼은 참 고마웠다.

길 위의 차가운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도, 실내가 따뜻해지니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 평온했다.

너무 떨었던 터라 따뜻한 기운이 몸속으로 퍼지는 속도가 빠르게 느껴졌다.


우리의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휴대폰 진동과 함께 나루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라인 깔아야 된데 안 그럼 못사'

'줄 섰는데 결제가 안돼'


뒤이어 바다의 짧은 한마디가 도착했다.


'다리 아파'


숨이 턱 막혔다.

주어도 없고 맥락도 없는 아이들 특유의 줄임말 투성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당혹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바다는 언니를 기다리다 지쳐 있을 테고, 나루는 결제창과 씨름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겠지.

바쁘게 움직이는 아이들의 손가락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남편과 나는 짧게 대답해 준 뒤 아이들에게 가기로 이야기를 나눴다.

커피가 반쯤 남았지만 이미 식었으니 미련 없이 일어났다.


“가자.”


잠깐의 휴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우리는 다시 차가운 바람을 뚫고, 아이들이 기다리는 그들만의 성지를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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