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류스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젊은 거장.
by Nouvelle Vague Mar 8. 2024
그저 조용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여전히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마음속에 새기게 해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의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78년생 일본의 젊은 영화감독인 그는 그의 네번째 장편작 <해피아워>를 시작으로 일부 평단의 극찬을 받은 <아사코>와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우연과 상상> 그를 세계적인 거장으로 만들어준 <드라이브 마이 카> 까지 연속된 4편의 장편들을 통해 자신의 영화적 세계를 정립해 나가며 일본을 대표하는 새로운 젊은 거장으로 성장했다.
이렇듯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의 자리에 서게 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여덟번째 장편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 오는 3월27일에 개봉예정이다. 2023년 제80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2등상에 빛나는 심사위원대상을 수상 했기에 한국 개봉일을 기준으로 1년여 전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결국 작년 10월에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BIFF) 에 초청을 받아 개봉일 보다 5개월 일찍 이 영화를 만나볼수 있게 되었다.
필자 또한 이 소식을 접하고 그의 영화를 빨리 만나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고 티켓팅이 1분만에 매진되는 상황속 운이 좋게도 한 좌석을 예매하는데 성공하였다. 부산이라는 지역까지 원정을 간다는 사실에 약간의 피로감이 몰려왔지만 극장에서 나온 순간 그러한 피로감은 사라지고 또 다른 피로감이 몰려왔다.
극장 개봉일까지 이 영화를 다시 한번 볼 수 없다는 피로감 말이다.
이후에 작성할 글은 개봉을 앞두고 있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여덟번째 장편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에 대한 글 들 이다. 스포일러를 포함하지 않는 글 이지만 이 영화에 대한 비하인드와 전체적인 느낌, 연출 방식에 대한 글을 포함하고 있다. 이 영화에 대해 그 어떤 정보도 원치 않는 분 이시라면 읽는걸 권장하지 않는다.
두 시간을 넘지않는 러닝타임
하마구치 류스케가 주목받기 시작했던 영화인 <해피아워>를 시작으로 그의 영화들은 대부분 2시간을 넘는 러닝타임에 영화들 이다. 2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에 이유로는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긴 대사량과 영화를 함부로 축약시키지 않는 롱테이크 장면들, 그런 장치들을 이용해 인물간의 심리묘사를 그 만의 연출방식으로 영화에 스며들게 하는것이 그의 영화들에 매력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작인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교적 짧은 시간인 1시간 46분의 러닝타임 안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짧은 러닝타임 에서도 그의 영화속 특징인 움직이는 자동차 속 두 인물간의 긴 대화 장면이나 대사가 비어있는 공백속의 장면들 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번작이 그의 전작들과는 다른 결말구조로 이야기가 전개 되기에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을 고수 한것 같다.
영화로서의 제작이 목표가 아니였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ost를 담당했던 "이시바시 에이코"의 공연중 상영할 퍼포먼스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기획을 시작했었다.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의 촬영을 마치고 다음 행보를 위해 어떤것을 찍을지 고민하던 때에 이 의뢰가 들어왔고 흥미롭게 생각하여 촬영을 시작 하였다고 한다. 허나 촬영을 하며 배우들의 목소리나 연기의 방식등이 감독의 마음에 들었고 이를 더 많은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자 장편영화로서의 기획을 시작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공연의 퍼포먼스 목적으로 만든 영상은 <기프트>라는 제목으로 벨기에 겐트 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 이라고 한다.
배우들과 연기 디렉팅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연기 디렉팅 방식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에서 엿볼수 있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후쿠의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대사 리딩을 시작한다. 하지만 대사를 읽을때 그 상황에 맞는 감정이입을 하지 않고 국어책을 읽듯이 모든 감정을 배제한 체 오로지 대본에 집중을 한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이러한 대본 리딩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배우들이 대사를 뱉을때 쓰는 근육들을 익숙하게 함 으로서 대사를 몸에 체화 시킨다. 이를 통해 배우들은 영화의 인물에게 동화되며 더욱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게 되며 대화의 자연스러움은 물론 인물간의 동선 같은 것들도 자연스럽게 배어나올때가 있고 그러한 우연의 장면들을 촬영하는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방식이자 그의 영화적 순간이다.
우연의 순간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중요 키워드는 그의 장편작 제목 이기도 한 우연과 상상 이다. 특히 이 영화 에서는 우연의 비중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영화제작의 비하인드 또한 우연에서 비롯된 이야기 이기도 하다.
극중 주인공인 "타쿠미"역의 "오미카 히토시"는 전문적인 배우가 아니다. 그는 <우연과 상상>을 촬영할 당시 촬영팀에 차를 운전 해주는 프로덕션 매니저 였다. 당시 여러장소의 샷을 테스트 하기위해 오미카 히토시가 배우 대신 모델을 하였고 그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그의 신비스러운 느낌의 얼굴과 특유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수없는 무표정한 표정을 보고 타쿠미 배역에 적합한 인물이라 생각해 그를 배우로 활용했다고 한다.
또한 극중 주요 장면에 안개가 등장한다. 이 또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의도가 아닌 자연스레 발생한 현상으로 이런 우연의 순간들이 영화 곳곳에서 등장한다.
단절의 순간
이번작은 전작들과는 다른 계열의 음악들이 사용된다. 보통 그의 전작들에서 음악은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음악들이다. 허나 이번작 에서의 음악은 그렇지 않다. 음산한 느낌의 코드진행과 더불어 곳곳에 배치된 불협화음은 관객들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선사한다. 이러한 음악의 변화를 제외 하여도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전작들과는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단절이다. 본래 그의 영화들은 음악과 장면의 전환이 자연스럽게 연결 되었다. 그러나 이번작은 그러한 전환이 자연스럽지 않다. 음악이 진행되고 서서히 관객들의 심리가 고조될 즈음에 음악이 끊기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게 된다. 마치 "스매시 컷"을 사용하듯 갑작스럽게 전환된다. 전환후에 관객들에게 들리는 음악은 바람이나 새가 짖어대는 고요한 자연의 소리이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감독은 조금 더 관객들이 자연의 소리들에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라는게 아닐까 라는 해석을 하게 되었다.
글을 마치며
이 영화로 인해 하마구치 류스케는 또 다른 영역으로 한 걸음 나아간다. <해피아워>를 시작으로 5편의 걸출한 장편들을 연속으로 공개한 하마구치 류스케. 그는 거장으로서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는 이 영화를 기점으로 새로운 영화적 관점에 직면하게된 시기 라고 생각한다. 확실한건 그는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이며 앞으로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감독이다.
★★★★
별점:4.5/5
한줄평: 악의 근원은 생존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