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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란 Nov 08. 2020

출판의 생태계를 바꾼 '미디어 리터러시의 힘'

2020 미디어 리터러시 시민대학 



얼마 전 서울 지하철역 몇 곳을 중심으로 큐알(QR) 코드를 통해 오디오북을 들을 수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개인 모바일 기기로 오디오북을 이용할 수 있는 큐알 코드 80여 종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타는 곳 걷는 곳 앉는 곳 언제나 책을 듣다'라는 포스터가 눈에 띈다.  이어서 광주도시철도공사도 각 역사에 오디오북카페, 보조배터리 공유 플랫폼, 스마트 도서관 등 다양한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  확장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오디오북카페'에는 키오스크와 태블릿 PC를 각각 2대씩 설치해 원하는 시민 누구나 약 100여 권의 오디오북을 무료로 자유롭게 체험할 수 있다. 이번 사업은 보다 많은 시민들이 오디오북을 체험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독서 문화가 확산하는 데 기여하고자 기획되었다. 그렇다면 오디오북으로 리터러시 교육도 가능하다는 말인가? 오디오북은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글을 듣는 것이 아닌가?


출처: 출판문화산업진흥원



디지털 시대 리터러시의 의미 

2020년 한 해를 돌아보면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코로나 시대’를 경험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을 바꾸었고,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회사는 재택근무와 화상으로 모든 업무를 대체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시대의 다양한 플랫폼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문해력’, 다른 말로 ‘리터러시’다. 리터러시란 글을 읽고 쓰고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리터러시에 미디어가 합쳐진 말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는 다양한 매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며 또 평가하고 분석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점차 달라진 일상을 보면서 미디어 리터러시의 ‘글을 읽고 쓰고 이해하는 능력’이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글을 읽고 쓰고 이해하는 능력’이라 하면 떠오르는 매체는 적어도 (우리는) 책이다. 그중 종이책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과거 지식 문화의 보고가 종이책이었다면 지금은 지식을 알려주는 매체가 다양해졌다. 글은 종이책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디지털 시대가 오면서 책의 개념이 전자책, 앱북, 오디오북 등으로 확대되었으며 글을 읽는 공간도 다양해졌다. 디지털화와 코로나19의 흐름에 따라 출판 시장이 이렇게 금세 바뀌었다. 그렇다면 출판 산업 측면에서는 어떨까? 결론은 오프라인 서점은 판매가 줄었지만 온라인 판매는 늘었고, 전자책, 오디오북, 웹툰·웹소설 같은 웹콘텐츠 등 다양한 매체의 언택트(비대면) 독자들이 늘었다. 오히려 코로나19로 미디어는 더 다양해지고 가속화된 셈이다. 


오디오북과 출판 환경의 변화 

출처: 예스24


코로나19의 상황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이북(전자책), 오디오북 시장의 활성화다. 이미 예견했다시피 영화도 영화관이 아니라 넷플릭스로 모여들었고, 오디오 구독률도 높아졌다. 그중 오디오콘텐츠 업계에서는 팟빵을 비롯하여 밀리의서재, 윌라 등의 시장이 커졌다. 밀리의서재는 5만 권가량의 독서 콘텐츠를 월정액 구독형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오디오북으로 서비스하는 책의 수는 800권 남짓이다. 그런데 전체 사용량 중 오디오북 사용량이 전체의 20%에 달한다. 하완 작가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채사장 작가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등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오디오북 윌라의 사용자도 올해 들어 늘어나는 추세다. 윌라는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는 ‘전문 낭독 서비스’를 표방한다. 박완서 작가의 단편소설 모음집을 배우 김혜수 씨가 읽어주는 콘텐츠도 있다.




오디오북 수요가 늘면서 교보문고는 2020년 7월 인터넷과 모바일교보문고 안에 오디오북 스토어를 열었다. 약 4,000종의 도서를 음성으로 서비스한다. 약 4,000종에 이르는 오디오북을 구비한 교보문고 독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책은 국내 초단편 소설이다. 10분짜리 초단편 소설을 오디오북으로 만든 ‘10미니츠’ 시리즈가 8월 첫 주 오디오북 베스트셀러 10위권을 모두 차지한 바 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도 오디오북 약 700종 중 소설의 인기가 압도적이다. 8월 첫 주 베스트셀러 10위권에는, 1위에 오른 이보영이 낭독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비롯해 2위에 오른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7위에 오른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10위에 오른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등이 있다. 이제 오디오북도 어엿한 책이다. 

그중 2020년 상반기에 눈에 띄게 판매량이 늘어난 책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다. 이 책은 tvN 예능 프로그램 <요즘 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에서 코로나19 상황과 결부해 “대중의 심리를 정확히 표현한 작품”이라며 집중 조명한 이후 판매량이 급증했다. 또한 《페스트》 오디오북은 본문 텍스트가 포함되어 있지 않고, 전문 성우가 종이책을 요약하여 녹음한 음원이 삽입된 오디오북이다. 2시간 10분, 출퇴근 시간이면 요약된 《페스트》를 들어볼 수 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은 2020년 6월 국내 최초로 오디오시네마 3편을 공개했다. 오디오시네마는 ‘귀로 듣는 시네마’가 콘셉트로 네이버 웹툰 및 웹소설의 인기 원작을 오디오영화로 제작한 작품이다. 오디오클립이 공개한 총 3편의 오디오시네마는 하일권 작가의 웹툰이 원작인 <두근두근두근거려>, 플라비 작가의 웹소설이 원작인 <그대 곁에 잠들다>, 혀노 작가의 웹툰이 원작인 <남과 여>다. 오디오시네마는 공개 1주일 만에 누적 재생 수 70만을 돌파했다. 지금도 인기 웹소설을 오디오북으로 제작하고 있다. 특히 2020년 상반기에는 총 5편을 발표하며 총 누적 재생 수 115만 회를 돌파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웹소설 및 웹툰을 기반으로 한 오디오콘텐츠가 갈수록 인기를 더하며 앞으로도 오디오드라마, 오디오시네마의 영역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출처:예스24


또한 오디오북 스트리밍 서비스 ‘스토리텔’은 2020년 4월 웹툰 작가 윤지희의 《사기병》을 오디오북으로 재구성했다. 위암 4기 선고를 받은 날로부터 자신의 투병기를 그림과 글로 표현해 인스타그램에 올려 화제가 되었으며 2019년 책으로 출간된 바 있다. 위암 4기라는 무거운 소재를 가벼운 일상툰 형식으로 풀어내 아이 엄마로서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선사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인스타그램 누적 조회수는 5,000만 뷰에 달한다. 코로나19와 같은 어려운 시기에 윤 작가가 직접 녹음에 참여해 독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윤 작가는 “아플 때는 사실 책 읽기도 쉽지 않아 누워서 들을 수 있는 이어폰을 꼭 챙겼다”며 “같은 처지에 있는 환우들에게 이번 오디오북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오디오북 제작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전했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인스타그램에 연재된 웹툰 작가의 이야기가 어느 날 종이책으로 이어지고, 그 종이책이 저자의 목소리를 담아 오디오북으로 이어졌다. 




코로나19 시대와 함께 그에 맞는 미디어 매체를 통해 작가는 이 시대의 불안과 아픔에 공감하고 희망을 잃지 않는 의지에 새로운 감동을 주고자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이처럼 미디어 리터러시는 텍스트를 넘어 사고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또 다른 힘이 있다.      


디지털 글쓰기와 리터러시의 변화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개인의 일상을 글로 다양한 콘텐츠로 표현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욕구가 강해졌다. 그 영향으로 등장한 디지털 글쓰기는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으로 다양해졌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어떤 사람은 SNS나 블로그 등과 같은 매체에 글을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작가가 되어 자신의 책을 내고 싶어한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글쓰기라 하면 대부분 종이책만 떠올렸으나 지금은 글쓰기의 환경이 넓어지고 그로 인해 글쓰기에 접근하기도 쉬워졌다. 게다가 다양한 글쓰기 행태가 관심을 받다 보니 책을 쓰는 저자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이 모든 활동의 바탕에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깔려 있다고 본다.  

창작자에게 새로운 플랫폼을 제시하며 주목받고 있는 글쓰기 공간으로 다음 브런치가 있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공간이다). 브런치의 장점은 글쓰기 편한 환경과 소셜 공유가 쉽다는 점이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면서 대처하는 법》, 《90년생이 온다》 등이 브런치에서 탄생한 베스트셀러들이다.  


출처: 예스24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면서 대처하는 법》의 저자 정문정 작가는 <대학내일>의 디지털미디어 편집장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브런치에 올려 사람들에게 공감을 끌어냈으며 이후 가나출판사의 제안으로 책이 나오게 되었다. 일상에서 만나는 무례한 사람들, 사람마다 관계마다 심리적 거리가 다르다는 점을 무시하고 갑자기 선을 훅 넘는 사람들에게 감정의 동요 없이 단호하면서도 센스 있게 할 수 있는 의사표현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디지털 글쓰기 속에서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그로 인한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90년생이 온다》의 저자인 80년대생 임홍택 작가는 90년대생을 이해하려고 브런치에 <9급 공무원 세대>라는 글을 올리면서 책까지 내게 된 경우다. 임홍택 작가는 90년대생의 꿈이 9급 공무원이 된 지 오래이고, 최종 합격률이 2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 공무원 시험에 수십만 명이 지원하는 현실을 짚으면서 이들을 ‘9급 공무원 세대’라고 일컫는다. 기성세대는 이런 산술적인 통계를 근거로 90년대생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거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세태를 비판하곤 한다. 그러나 그건 변하는 세상에서 ‘꼰대’로 남는 지름길이라면서 중요한 것은 공무원 시험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세대적 특징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그의 글은 공감을 이끌었다. 브런치의 여러 가지 창작 글쓰기를 보면서 이제 저자가 출판사를 찾는 시대가 아니라 출판사가 저자를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출판의 생태계가 달라졌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핵심 

리터러시의 변화는 다양한 매체에서 기인한다.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등 우리가 만나는 다양한 플랫폼으로 사고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어떤 것이 리터러시 교육에 더 중요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인지신경학자 매리언 울프가 쓴 《다시, 책으로》라는 책이 생각난다. 이 책은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깊이 읽기’ 능력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디지털 매체는 읽는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은 다음 세대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등 인쇄물과 디지털 사이의 적절한 열린 길을 안내하고 있다. 또 누구는 ‘초연결 사회’라고 하지 않는가. 초연결 사회에서 플랫폼을 잘 활용하면서 능력을 확실하게 발휘할 수도 있다. 책의 형태가 종이책에서 전자책, 오디오북 다양하게 변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시대적인 니즈에 따른 플랫폼의 변화일 뿐 사람들간에 소통하고 공감하고 싶은 욕구는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이 미디어 리터러시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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