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준란 Apr 16. 2021

웹툰에서 영화까지 <강철비>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무비 플러스>입니다! <차이나는무비 플러스>는 <길 위의 인문학> 시리즈로 한중일 영화 속 우리의 근현대사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지난 2021년 2월 15일에 백기완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나중에 더 이야기해보겠지만 백기완 선생님은 평생을 민중운동과 노동운동, 통일운동에 헌신하신 사회운동가이자 작가입니다.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하셨고 특히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자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백기완의 통일 이야기』, 『버선발 이야기』와 같은 에세이 역시 유명하죠. 그래서 오늘은 고 백기완 선생님을 추모하고 생전 활동을 기리며 한국의 분단을 다룬 영화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영화 <강철비>입니다.


영화 <강철비>, <강철비 2: 정상회담>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북한 쿠데타 발생, 정보 액션 블록버스터

 

진짜 정상회담은 핵잠수함에서 시작된다.”


 양우석 감독이 연출한 <강철비>는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을 맡은 웹툰을 원작으로 합니다. 그러나 웹툰이 연재하던 2011년과 영화가 2017년의 한반도 정세가 크게 변한 탓에 스토리 작업을 거의 새롭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20년 7월, 새롭게 <강철비2: 정상회담>이 개봉되었죠. <강철비>는 북한 최정예 특수부 요원 엄철우(정우성 분)이 북한 내 쿠데타로 인하여 북한 1호와 함께 남한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운 분)와 함께 여러 사건들을 겪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한편 <강철비2: 정상회담>은 1편의 후속작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스토리가 연결되지 않는 독자적인 이야기를 다룹니다. 1편이 남북 관계에 초점을 맞춘 판타지 영화라면 <강철비2: 정상회담>은 남북을 둘러싼 중국, 일본, 미국 각 국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북한에서 진행된 남북미정상회담 도중 세 정상이 북한 내 쿠데타 세력에 의해 납치된 후 전쟁 위기를 그린 것이죠. 독특한 것은 1편에서는 북한 정보요원으로 연기를 펼친 정우성 배우가 이번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한경재로 열연을 펼치며, 반대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역할이었던 곽도원 배우는 북한 호위총국장 박진우로 나온다는 것이죠. 배역이 뒤바뀐 두 배우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걸프전을 소재로 한 영화 <자헤드: 그들만의 전쟁>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강철비’라는 제목에 대해 살펴보면 실제 전쟁 무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1990년부터 1년간 이라크와 다국적군 사이에 일어난 ‘걸프전’에서 사용된 미군의 다연장 로켓포 M270의 별명이 바로 ‘Steel Rain’, 즉 우리말로 ‘강철비’입니다. 다연장 로켓포라는 이름처럼 수백발의 로켓이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이라크군들이 ‘Steel Rain’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죠. 피할 수도 없이 떨어지는 무기의 모습을 생각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는 무서운 무기입니다. 영화 <강철비>에서는 개성공단에 사용되기도 하였죠. 한편 ‘강철비’라는 우리말을 다시 한자어로 풀면 ‘쇠 철(鐵)’과 ‘비 우(雨)’ 자를 합쳐 철우(鐵雨)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바로 <강철비> 1편 속 주인공들의 이름이죠. 다만 두 인물의 이름 한자를 보면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정우성이 연기한 북한 정보요원 엄철우의 한자는 쇠 철(鐵)과 벗 우(友)를 쓰고 있고, 곽도원이 연기한 곽철우는 밝을 철(哲)과 집 우(宇)를 쓰고 있습니다. 풀이한다면 각각 ‘강철 같은 친구’와 ‘밝고 행복한 집’이라는 뜻이죠. 영화 속 캐릭터들과 비교해보아도 충분히 그들이 처한 상황과 성격과 연관되는 이름입니다.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벼랑 끝에서 단련된 인물이고 누군가는 자유와 평화가 보장된 것만 같은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철우’의 이야기를 보고 싶으시다면 <강철비> 1편을 보시는 것을 꼭 추천드립니다. 

한편으로 2편은 앞서 말한 것처럼 한반도의 정세를 다루면서도 자칫 어둡고 딱딱한 이야기가 1편에 비해 코믹한 요소들도 많으니 또다른 재미를 느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영화 <강철비 2: 정상회담> 스틸컷


그런데 2편에서 특히 영화의 무게감이 덜어진 것은 남북한 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의 특징들과 연관지어 볼 수 있습니다. 한국영화사에서 남북한 문제를 다룬 영화는 1950년대와 1960년대부터 등장합니다. 그 당시에는 한국 전쟁을 다룬 이야기들이 많았죠. 그러나 남북 문제를 잘못 다루게 되면 감독과 제작진이 구속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30년 가량 남북 문제를 다루는 것은 사실상 금기시되었습니다. 이런 역사를 거쳐 민주화가 이루어 지면서 1999년도에 남북 문제를 새롭게 다룬 영화가 등장하는데,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김윤진 등이 출연한 영화 <쉬리>가 개봉된 것이죠. <쉬리>의 성공 이후 <간첩리철진>, <공동경비구역 JSA>, <웰컴투동막골>과 같이 남북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줄줄이 등장합니다. 이는 당시 영화계에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김대중 정부의 ‘팔길이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라는 정책 기조에 힘입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역사들이 축적되면서 이제는 웹툰의 스토리텔링에 힘입어 남북 관계를 새롭게 상상하는 영화가 등장한 것이 <강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의 남북 소재의 영화들이 한국 전쟁이나 JSA, 실미도와 같은 현실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이 위주였다면 이제는 현실을 초월해 새로운 상상력을 동원한 스토리가 등장한 것이죠. 남북 소재 영화에 또다른 터닝포인트가 되기를 기대해 보면서 <강철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차이나는무비 플러스>의 킬러콘텐츠!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말그대로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영화 속에서 살리고 싶은 캐릭터와 이야기, 장면들(TO BE)은 살리고, 그렇지 않은 부분(NOT TO BE)은 다시 자신만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영화에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더해 색다르게 상상해보는 ‘리(Re)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죠! 남북 관계를 소재로 새로운 상상력을 더한 영화 <강철비>와 <강철비2: 정상회담>에서는 어떤 인물과 장면에 주목해볼 수 있을까요?


지갑은 텅 비었지만 지식은 충만한 '신여성'은 <강철비>에서 살리고 싶은 장면을 골랐습니다. 영화에서 두 철우가 차로 이동하는 장면에서 GD의 ‘Missing You’를 듣는 장면입니다. 처음에 회담장으로 이동하면서 처음 GD의 노래를 들은 엄철우는 북에 있는 자신의 딸이 좋아하는 가수라며 이야기하면서도 생전 처음 듣는 노래에 충격을 받죠. 영화 후반부에 GD의 ‘Missing You’를 듣게 되었을 때는 잠시 곽철우에게 신용카드를 빌려 가족들의 선물을 사고 남북이 다시 교류하게 되면 가족들에게 선물을 전해달라 부탁하죠. 이때 ‘그동안 고마웠소’라고 하며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눕니다.


내 맘은 이리 울적한데 말할 사람이 없다

나도 가끔 활짝 웃고 싶은데 곁엔 아무도 없다

 

GD – Missing You 


 바로 이 장면은 영화가 개봉한 뒤 1년 뒤인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을 연상하게 됩니다. 마치 실제 사건의 프리퀄 같은 느낌이 듭니다. 동시에 서로 손을 잡고 편안하게 헤어지는 모습은 평화라는 것이 엄청난 결단과 선언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음악을 듣고 밥을 먹는 것으로 출발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이어서 책을 사랑하는 책사는 두 철우가 함께 국수를 먹는 장면을 TO BE로 선정했습니다. 남쪽으로 넘어와 며칠 간 밥도 못먹은 엄철우를 위해 곽철우는 군 복무 시절 자주 갔다는 국수집에 데려가 잔치국수를 시켜주죠. 그러더니 엄철우의 양 손에 채워져 있던 수갑 한 쪽을 풀어 자신의 팔에 채우고 바로 옆에 앉아 국수를 함께 먹습니다.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북에서는 ‘깽깽이국수’라고 부르는지 '깽깽이 국수 잘먹었다'고 하는 엄철우의 모습도 인상적이죠. 또한 두 사람의 감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모습이 잘 연출된 장면입니다. 배경을 포함한 풀스크린을 염두에 두는 영화와 달리 눈 앞에 있는 피사체에 집중해 꽉 찬 장면을 사용하는 웹툰에 익숙한 감독의 특징으로 두 사람의 감정선이 잘 나타난 이 장면을 TO BE, 살리고 싶은 장면으로 선정했습니다.


자막달린 중국 영화는 필요 없는 자영업은 <강철비>에서 현직 대통령 이의성(김의성 분)과 대통령 당선인 김경영(이경영 분)을 각각 NOT TO BE와 TO BE, 죽이고 싶은 캐릭터와 살리고 싶은 캐릭터로 골랐습니다. 영화 속에서 이의성은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내에 북한의 도발에 대한 미국의 선제 핵폭격 계획을 통해서 북한을 궤멸시키려는 대북 강경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반대로 김경영은 선제 핵폭 만큼은 절대로 불가하다고 주장하는 입장입니다. 대북 문제를 두고 대립각을 세우는 현직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인의 모습을 보면 대북 문제 있어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생각도 들고 실제 우리 역사 속 대통령들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합니다.


이루고 싶은 꿈이 많아 잠도 많은 '꿈꾸미'는 <강철비2: 정상회담>에서 NOT TO BE 장면을 골랐는습니다. 바로 남북미 3국의 정상이 북한 쿠데타 세력에게 납치되어 좁은 잠수함 화장실에 갇히게 되었을 때 미 대통령 윌리스 C. 스무트(앵거스 맥페이든 분)가 큰 일(?)을 해결하는 장면입니다. 이때 미 대통령의 모습은 우스워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 그의 무례함과 그것을 갇힌 공간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남한과 북한의 정상의 모습에 주목해 본다면 이 장면에서 어떤 상징성을 읽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역겨움과 혐오감을 참아낼 수 밖에 없는 처지를 떠올려보는 것이죠. 그럼에도 그 냄새 때문에 NOT TO BE 장면으로 뽑았습니다!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길 위의 인문학 드레싱’

 이번에는 <차이나는무비 플러스>의 두번째 코너. 영화를 보고 떠오른 역사, 문학, 음악, 철학 등 인문학적 감성을 더하여 조선의 근대를 들여다보는 시간, 길 위의 ‘인문학 드레싱’입니다. <강철비>에 어떤 인문학 드레싱을 얹어 이야기 해볼까요? 


저 신여성은 오늘 <차이나는무비 플러스>에서 <강철비>를 이야기하게 된 이유! 고 백기완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인문학 드레싱으로 가져왔습니다. 1932년 1월 24일 황해도에서 태어나 2021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백기완 선생님의 일생은 그 전부가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45년 광복 이후 1946년에 월남한 뒤 1954년부터 농민운동, 빈민운동 등 사회운동에 활발히 참여하였습니다. 유신정권 집권 후에는 반독재, 한일협정 반대에 앞장서 1974년에는 유신 반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였고 결국 이로인해 긴급조치 제 1호 위반 혐의로 투옥됩니다. 복역 중 석방되었지만 1979년 YW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다시 옥고를 치렀습니다. 



백기완 선생님 (사진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YWCA 위장결혼 사건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하자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10월 26일 사망한 뒤 또다시 신군부 정권을 장악할 조짐이 보이자 백기완, 윤보선, 함석헌 등이 중심이 되어 같은 해 11월 24일에 개최된 결혼식을 가장한 대통령 직선제 요구 시위였습니다. 신랑 홍성엽의 가족들 모두 결혼식 하객처럼 복장으로 위장하였고 신부 윤정민은 가공의 인물이었습니다. 윤정민이라는 이름은 거꾸로 하면 민정윤인데 ‘민주 정부를 윤보선과 함께’라는 의미로 작명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렇게 11월 24일 오후 5시 30분. 결혼식이 시작하자마자 대회 선언문을 낭독하였고 장내에는 박수가 울려퍼지며 구호를 외치려는 그때 경찰들이 들이닥치면서 앞서 언급한 백기완, 함석헌 선생님 뿐만 아니라 임채정, 최열 등 많은 활동가와 교수들이 구속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는 제 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재야인사로 입후보했지만 후보단일화를 위해 사퇴를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어 1992년 대선에 독자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하기도 하였죠. 이후에는 통일문제연구소 활동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반대운동, 이라크 파병반대,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용산 참사 투쟁,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 이명박 정권퇴진 운동, 민중총궐기 등에 앞장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또한 문필가로서도 계속 활동하면서 우리나라가 식민지에서 벗어나서 전쟁을 겪고 근대사의 산업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한 고민을 글로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꿈꾸미도 백기완 선생님과 관련된 인문학 드레싱을 가져왔는데요 바로 백기완 선생님의 장편시, <묏 비나리> 입니다. 우선 짧게라도 시를 먼저 감상한 뒤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묏 비나리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


맨 첫발

딱 한발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목숨을 아니 걸면 천하없는 춤꾼이라고 해도

중심이 안 잡히나니

그 한발띠기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라


아니 그 한발띠기로 언땅을 들어올리고

또 한발띠기로 맨바닥을 들어올려

저 살인마의 틀거리를 몽창 들어 엎어라


(...)


무너져 피에 젖은 대지 위엔

먼저 간 투사들의 분에 겨운 사연들이

이슬처럼 맺히고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 들릴지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제목인 ‘묏 비나리’는 요즘 우리말로 옮기면 ‘우리 강산을 위한 기도’ 정도로 옮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묏 비나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이기도 한데요, 앞서 잠시 백기완 선생님이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자로 많이 알려져 있다고 했죠. 이 이야기를 위해서는 다시 1974년 투옥 당시 이야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1974년 첫 투옥 당시 백기완 선생님은 굉장히 심한 고문을 겪었다고 합니다. 몸 안에 있는 물과 피가 말라갈 정도로 몸과 영혼이 피폐해질 때까지 고문을 당한 것이죠. 심지어 보안사에서 조차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가석방을 할 정도였죠. 이 당시 백기완 선생님은 시를 혼자서 웅얼거리며 힘든 고문을 이겨냈다고 합니다. 시가 점차 길어지자 작은 글씨로 옮기고 사타구니에 숨겨 가지고 나왔다고 합니다. 시의 뒷 부분에 보면 우리가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익숙하게 듣던 노랫말이 보이죠. 바로 이 부분을 황석영 소설가가 가사로 개사하여 김종률 작곡, 황석영 개사, 백기완 원작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완성된 것입니다. 이 노래는 잘 아시다시피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윤상원과 노동 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 숨진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 때 처음으로 울려퍼지게 되었습니다. 한가지 더 이야기를 보태면 후에 황석영 소설가가 백기완 선생님을 찾아가 원작자로 이름을 넣겠다고 하니 ‘묏 비나리’는 처음 쓸 때와 달리 이제 널리 퍼졌으니 모든 사람의 것이자 민중의 것이 되었다며 자신이 원작자임을 밝힐 필요가 없다고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자영업은 <강철비>에 얹을 인문학 드레싱으로 한국 사회에 통일 정책과 여론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국은 전범국이 아닌 피해국이었지만, 유럽에서 전범국 독일이 동서로 분단된 것과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오히려 한국이 남북으로 갈리게 되는 억울한 일을 겪었습니다. 이후 남과 북에 이데올로기를 달리하는 단독정부가 각기 수립되면서 분단은 고착화 되었습니다. 이때 이승만과 국회는 북진통일론(멸공통일론)을 북한은 남조선혁명론으로 적화통일론을 주장하면서 남북은 모두 무력통일론을 앞세웠습니다. 그 결과는 비극적인 6·25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였죠. 6·25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남북이 상대방을 무력으로 정복, 통일하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정권 집권 당시에는 무력통일론이 계속 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4·19 혁명을 통해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자 평화통일론이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무력통일론을 고수하는 듯했지만, 실제로는 북의 적화통일론에 맞서 실력을 키워 통일에 대비한다는 정책을 세웠습니다. 말하자면 ‘선건설 후통일’을 내세우는 ‘승공통일’이었죠. 그러다가 남북의 경제상황이 균형을 이룰 1974년 최초의 남북공동성명인 ‘7·4공동성명’이 발표됩니다. 이 공동성명은 통일에 실제 기여하지는 못하였지만, 이후 남북 공동 선언과 정상선언에서 반드시 인용되는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중요한 원칙을 합의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 세 가지 원칙을 통해 무력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죠. 

 이후 신군부 전두환 정권 당시에는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1982)을 발표하였고, 노태우 정부 때는 자주·평화·민주의 원칙 아래 공존공영·남북연합·단일민족국가에 이른다는, 3단계 통일론인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1989)을 제시했습니다. 이어서 김영삼 정부 때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1994)을 발표했지만 역시 실질적인 진척을 보이지는 못 했습니다. 그러다가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 시점이 최초로 진보정권이 들어선 김대중 정부 이후입니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연합 단계·연방 단계·완전통일 단계로 진행되는 3단계 통일론을 제시했습니다. 첫 단계는 남과 북이 각자 주권국가로서 연합을 이루고, 두번째 단계에서는 연방이라고 하는 하나의 주권 국가 아래에서 자치권을 행사하는 단계를 거쳐 법적·제도적·정치적 통일을 이루는 완전 통일론을 제시하게 됩니다. 이러한 대북 정책 철학에 힙입어 2000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이때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합니다. 뒤이어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는 앞 정부의 정책을 발전시키고 진전시키면서 10·4 정상선언(2007년)에 합의합니다. 영화 <강철비>의 배경이 된 개성공단 역시 김대중 정부 때 기초를 다지고 노무현 정부 때 운영에 들어간 것이죠. 이렇게 남북의 통일정책과 운동의 역사를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책사는 <강철비>와 <강철비2: 정상회담>의 연출을 맡은 양우석 감독을 인문학 드레싱으로 가져왔습니다. 웹툰 스토리 작가로 시작해 <강철비>라는 남북을 소재로 한 영화에 새로운 분기점을 마련한 감독의 행보가 작은 힘이지만 나중에는 통일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감독은 실제로 <강철비>를 작업한 이유에 대해 우리가 통일을 할 수 있을까 혹은 진짜로 통일이 된다면 어떤 과정을 거칠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강철비2: 정상회담>에서 스토리를 완전히 바꾸어 진행한 것 또한 원작과 입장을 바꾼 상태에서 여러 상상력들을 펼쳐보기 위함이라고 하였죠. 또한 영화와 문화는 정치를 넘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며 앞으로는 양우석 감독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와 경계를 넘어서면서 문화적으로 자연스럽게 뒤섞이고 오해와 상처가 씻기는 콘텐츠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이상으로 오늘의 <차이나는무비 플러스>는 마무리하고 다음에 다시 한국의 근대를 볼 수 있는 영화로 돌아오겠습니다.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ㅣ팟캐스트ㅣ
 더 자세한 내용을 들으시려면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www.podbbang.com/ch/13254        


또 있습니다. 팟티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podty.me/cast/182234 


ㅣ네이버 오디오 클립ㅣ

오디오클립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886        

매거진의 이전글 윤심덕과 김우진의 <사의찬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