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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란 Oct 28. 2020

실화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 <택시운전사>

팟캐스트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입니다! 광주 광주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시리즈로 영화 <김군>과 <박하사탕>에 이어 오늘은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 1980년 5월, 광주로 간 택시운전사 “



 <택시운전사>는 5·18민주화운동을 다루는 시대극으로 천만 관객의 심금을 울린 영화입니다. 무거운 소재일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면서도 잘 짜여진 구성으로 신파극 이상의 감동을 준 영화이죠.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감독의 연출답게 영화 속에는 눈길을 끄는 작은 디테일들이 있습니다. 광장의 시민들에게 나누어준 주먹밥과 80년대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간판들과 하늘을 날으는 헬기와 같은 디테일들은 역사적 문제들을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은연 중에 우리가 역사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장훈 감독은 영화를 많이 만든 감독은 아닙니다. 2008년 개봉한 <영화는 영화다>를 시작으로 2010년 <의형제>, 2011년에는 <고지전>의 감독을 맡았죠. 2012년에는 이재용, 강형철 감독과 함께 <시네노트>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하였는데, 이 영화의 경우 하나의 웹툰으로 시작해 각각의 감독이 각기 다른 결말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독특한 형식의 영화입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오늘 이야기 할 <택시운전사>를 연출했습니다. 이렇게 5편의 대중 영화를 짧게는 1년, 길게는 4~5년의 기간을 두고 만들었습니다. <택시운전사>가 흥행을 했으니 곧 감독의 다른 영화를 기대해 볼 수도 있겠네요.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택시운전사>는 실제 인물입니다  

영화는 잘 알려져 있듯 실존 인물인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을 기록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택시운전사들의 값진 희생을 스토리화 한 것이죠. 영화가 개봉되고 난 후 실제 택시기사였던 김사복 씨의 아들 김승필 씨가 영화 속 인물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밝히며 화제가 되기도 하였죠. 처음에는 진위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었지만 이후 김승필 씨가 직접 여러 증거들을 내놓고 힌츠페터의 부인이 이를 확인하면서 사실로 인정되었죠. 처음에 많은 이들이 의아해 했던 점은 실제 이름도 김사복인데 영화가 개봉한 당시까지 그를 찾지 못했던 점이었습니다. 영화에서는 그를 찾지 못해 ‘김사복’이 마치 가명인 것처럼 보여줬으니까요.

 이 점에 대해서 역시 김승필 씨가 설명한 부분이 있는데 우선 김사복 씨가 운전했던 택시는 일반 택시가 아니라 1980년대 있었던 ‘호텔 택시’였습니다. 호텔에 소속되어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운행하는 택시이죠. 그렇기 때문에 일반 택시 기사를 찾았던 과거의 노력에서는 그를 찾을 수 없던 것입니다. 또한 김사복 씨는 광주에 다녀온 뒤 계속 휴유증을 앓다 4년 후인 1984년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더욱 찾기는 힘들었겠죠.

 이러한 둘의 사연은 영화처럼 극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본 김승필 씨가 영화 마지막에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이 언급된 것을 보고 이를 자신의 SNS에 올리면서 이 모든 과정이 시작된 것이죠. 그리고 아들 김승필 씨가 김사복 씨의 여러 이야기들을 옮기는 과정에서 영화 속 장면들과 실제 사건과의 비슷한 점도 많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영화에서 만섭(송강호 분)과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이 광주를 빠져나올 때 군인들의 검문을 받게 되는데 이때 한 이름모를 중사(엄태구 분)의 도움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김승필 씨는 실제로 아버지가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었다고 증언하기도 하였죠. 결국 영화에 담겨진 수많은 이야기가 실제와 많이 닮아 있었다고 할 수 있겠죠. 물론 영화적 각색도 분명히 있었겠지만요. 잠시 각색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면 대표적으로는 당시 광주로 향한 인물이 김사복과 힌츠페터 2명이 아니라 3명이라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헤닝 루모어라는 녹음담당기자도 함께 있던 것이죠. 당시 영상 기술로는 영상 촬영과 녹음이 동시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녹음만을 전담으로 하는 담당기자가 늘 함께 했다고 합니다. 이 분은 현재도 살아계시는데 아쉽게도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네요.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택시운전사> 의 모티브는 힌츠페터 독일 기자   

영화는 광주민주화 운동에 직접적인 참여자가 아닌 그것을 지켜보는 외국인 기자와 서울에서 택시 기사를 하며 살아가는 만섭의 시선을 통해 광주민주화 운동을 이야기합니다. 그 당시 광주의 시민들 모두에게 너무 큰 상처였기에 그들의 시선을 빌리지 않고 외부자의 시선을 택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전체적인 영화의 모티브는 힌츠페터에서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함께 기억되고 이야기 되어야 할 김사복 씨와 같은 인물들과 함께 말입니다.

 사실 힌츠페터는 광주민주화 운동 뿐만 아니라 이후로도 계속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알리는데 힘을 다했습니다. 그러던 중 1986년 5공화국 말기 광화문에서 시위를 취재하던 도중 사복 경찰들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하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중상을 입어 기자직을 은퇴하게 되고 독일에서 생을 마감하였죠.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앞서 잠시 언급한 송건호 언론상(민주언론운동을 이끈 언론인 청암 송건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을 2003년에 수상하게 된 것이죠.

 지난 여름 열린 ‘시네광주 1980’에서 ‘광주의 기억’이라는 상영 셉션에서 ‘5·18 힌츠페터 스토리’라른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습니다. 장영주 PD가 연출을 맡았는데 그는 앞서 2003년에 <KBS스페셜> 의 '푸른 눈의 목격자'편을 통해 힌츠페터를 조명하기도 하였죠. 그때 방영분과 새로 조사한 부분들을 다큐멘터리로 정리하는 과정이 ‘5·18 힌츠페터 스토리’의 내용입니다. 여기서는 녹음담당기자 헤닝 루모어의 모습도 담겨져 있고 또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보니 택시운전사 속 광주의 모습과 비교해서 보는 것도 좋은 관람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의 킬러 콘텐츠!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말그대로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영화 속에서 죽이고 싶은 캐릭터와 이야기 혹은 더욱 살리고 싶은 캐릭터와 이야기, 장면들을 이야기 하는 코너입니다. 이미 만들어진 영화에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더해 색다르게 상상해보는 ‘리(Re)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알린 독일인 기자 힌츠페터 스토리를 모티브로 하여 당시 택시운전사들과 광주 시민들의 희생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에서는 어떤 TO BE와 NOT TO BE가 있을까요?


 지갑은 텅 비었지만 지식은 충만한 '신여성'은 TO BE, 살리고 싶은 캐릭터로 대학생 구재식(류준열 분)을 뽑았습니다. 대학가요제에 참가하기 위해 대학을 갔다는 그는 한츠페터와 만섭의 소통을 돕고 또 한츠페터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기도 하였죠. 그의 안타까운 마지막은 바로 광주를 먼저 빠져나온 만섭이 다시 광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만섭은 서울에 두고 온 딸을 생각하며 혼자 먼저 광주를 빠져나옵니다. 그가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순천이었죠. 시장에서 딸을 위해 작은 구두를 사고 국수로 허기를 달래던 중 식당 아주머니께서 주먹밥을 주십니다. 주먹밥을 보자 곧 그는 광주의 광장에서 아주머니들이 나누어 주던 주먹밥을 떠올리죠. 그리고 앞서 다른 손님들은 광주에서 불순세력 및 폭도들에 의해 군경이 사망했다는 신문 보도를 이야기하고 있었죠. 이런 와중에 주먹밥을 보자 그는 눈물을 흘리며 고민하게 됩니다. 자기가 직접 본 광주의 참상이 완전히 왜곡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결국 그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광주에 손님을 두고 왔다고 하며 다시 광주로 되돌아 갑니다. 이 과정에서 만섭의 변화가 주목할 만합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노래를 불러보지만 계속해서 광주가 떠오르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된 과정을 매우 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장면이 보여주는 것은 결국 평범한 누구라도 어떤 사건을 경험하면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실제 주인공인 김사복 씨 역시 광주를 다녀온 후 계속해서 힘들어하셨던 것이겠죠. 

 이렇게 돌아간 만섭은 병원에서 싸늘한 주검이 된 재식을 만나게 됩니다. 곧장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한츠페터와 목숨을 걸고 광주를 빠져나가 이 일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결심하죠. 만섭에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큰 사건이자 그의 마음을 돌아서게 한 재식과의 만남과 이별을 기억하며 그를 TO BE로 선정했습니다. 

                                                

자막달린 중국 영화는 필요 없는 자영업은 TO BE, 살리고 싶은 캐릭터로 만섭과 힌츠페터가 광주에서 빠져나오는 장면에서 그들을 도와준 검문소 중사(엄태구 분)를 뽑았습니다. 만섭과 힌츠페터는 광주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원래의 서울 번호판을 숨기고 전남 번호판을 사용하죠.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광주의 아픔을 담아내고 이를 보도하기 위해서 그들은 서울로 향하게 되죠. 그러나 광주로 통하는 모든 길들은 이미 군인들에 의해 차단된 상태였죠. 만섭과 힌츠페터도 결국 검문소에서 차를 멈추게 되고 검문소 중사는 그들을 차에서 내리게 한 뒤 차 여기저기를 살펴봅니다. 이때 중사는 차 트렁크에서 서울 번호판을 발견하죠. 숨막히는 이 순간 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보내줍니다. 자기가 검사했는데 기자도 아닌 택시기사니 문제 없다는 말과 함께 말이죠. 만약 그가 그때 그들을 붙잡았다면 광주민주화 운동의 참상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더 오래 걸리고 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겠죠. 이런 의미에서 검문소의 군인 역시 큰 용기를 낸 인물로 꼭 TO BE, 살려야하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그리고 이 장면이 실제 사건이었다는 점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앞서 잠시 이야기 했듯 실제 당시 광주를 빠져나올 때 도움을 준 군인이 있었다는 증언은 힌츠페터 뿐만 아니라 김사복 씨의 아들 김승필 씨 역시 한 적이 있습니다. 군인 신분이었기에 자신의 도움이 밝혀지면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었음에도 큰 용기를 낸 그 찰나의 정의로움을 깊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루고 싶은 꿈이 많아 잠도 많은 '꿈꾸미'는 주인공 만섭의 정신을 TO BE, 영화 속 살리고 싶은 부분으로 뽑았습니다. 여기서 만섭의 정신은 택시기사로서의 그의 직업 정신입니다. 만섭은 ‘손님이 가자면 택시는 어디든지 가는 거지’라는 말을 하고 또 그 말그대로 어디든 향하는 캐릭터입니다. 이때 ‘어디든’은 물리적으로 먼 곳 뿐만 아니라 가까운 곳도 당연히 포함하고 평탄한 길이 아닌 거칠고 위험한 길을 헤쳐나아가야 하는 곳도 포함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택시의 본질이기도 하죠. 요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택시’와 관련해 어디든 갈 수 있는 만섭의 직업 정신을 TO BE, 살리고 싶은 캐릭터로 뽑았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책을 사랑하는 책사도 TO BE를 선정했습니다. 바로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 위르겐 힌츠페터입니다. 영화 속 그의 캐릭터 뿐만 아니라 그의 실제 삶에도 주목한 선택입니다. 영화가 개봉하기 1년 전인 2016년 세상을 떠난 그는 계속해서 택시운전사 김사복을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 2011년 생전 인터뷰에서도 그를 만날 수만 있다고 곧장 서울로 가 다시 그의 택시를 타고 변화된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고싶다고 이야기를 하였죠. 물론 김사복 씨는 광주에 다녀온지 4년 후인 1984년에 먼저 돌아가셨기 때문에 만날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광주 이후 그의 삶을 듣거나 또 그의 사진이라도 다시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힌츠페터의 스토리 역시 영화만큼이나 가슴 아프게 느껴집니다.

 힌츠페터와 김사복 씨의 안타까운 사연 뿐만 아니라 힌츠페터가 걸어온 삶의 행보 역시 그가 TO BE, 살리고 싶은 캐릭터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 그는 광주민주화운동 뿐만 아니라 한국의 민주화 운동 전반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던 인물입니다. 그 과정에서 안타깝게 사복 경찰에게 구타를 당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였죠. 이러한 노고를 인정 받아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는 이렇듯 여러가지 각도에서 의미있게 돌아볼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그가 김사복 혹은 아들 김승필 씨라도 만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안타까움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생전에 자신을 광주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는데요. 이에 그의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이 광주 5·18 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광주민주화 운동을 세상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가 오늘의 마지막 TO BE입니다.


‘인문학 드레싱’

이번에는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의 두번째 코너. 영화를 보고 떠오른 역사, 문학, 음악, 철학 등 인문학적 감성을 더하여 더욱 풍요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시간, ‘인문학 드레싱’입니다.

  책사는 전시콘텐츠를 인문학 드레싱으로 가져왔습니다.  2020년 6월 24일부터 9월 27일까지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열린 6·25 전쟁 70주년 특별기획전 <사람-을 만나다>를 다녀왔습니다. 전시는 6·25 전쟁과 관련된 38명의 38가지 이야기를 디지털 아카이브화 하여 전시하였습니다. 전시 설명을 옮겨보자면 ‘위대한 전쟁영웅으로부터 파란 눈의 외국인, 이제는 종적을 찾을 수 없는 소년 병사들까지’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죠. 이 중에는 전쟁을 알린 아나운서부터 전쟁을 화폭에 담은 화가, 학도병들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죠. 학예연구사는 38명의 선정 기준을 ‘증언할 수 있음’에 두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책사의 눈길은 끈 것은 소설가 하근찬의 『수난이대』 입니다. 소설 속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왼팔을 잃고 아들 진수는 6·25 전쟁에서 다리를 잃게 됩니다. 결국 아버지와 아들, 이 대(二代)가 비극적인 한국사에 희생된 인물인 셈이죠. 아주 예전에 읽은 소설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어 더욱 특별한 느낌이었습니다. 전시는 기념비 혹은 묘비처럼 각각의 스토리가 세워지는 모습으로 설치되었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 속 힌츠페터처럼 무언가를 기록하고 증언함으로써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그 시대를 기억하고 또 그 사람에 대한 애도를 표현하는 것이라 느껴집니다. 현재는 온라인으로 특별기획전을 감상하고 또 학예연구사의 해설도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으니 여러분도 전시를 감상해보시는 것을 추천해드립니다.



6·25 전쟁 70주년 특별기획전 <사람-을 만나다> 포스터 (사진 출처 : 전쟁기념관 홈페이지: https://www.warmemo.or.kr/front/bbsList.do)


꿈꾸미는 그림을 드레싱으로 가져왔는데요 빈센트 반 고흐의 <신발> 연작입니다. 먼저 연작 중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신발(A Pair of Shoes)> (사진 출처 : 네이버 미술백과)


 빈센트 반 고흐는 1886년부터 7점의 신발 연작을 남겼습니다. 공통된 점은 위 작품에서도 보여지듯 매끈한 신발이 아니라 거칠고 낡은 신발입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도 신발이 중요하게 담겨져 있는데 기억나시나요? 대학생 구재식(류준열 분)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할 때 그와 그의 동료들의 시신은 제대로 관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병원 바닥에 눕혀져 있었죠. 이때 만섭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재식의 낡은 운동화를 발견하고 재식의 시신에 신겨줍니다. 그 피 묻은 신발을 보는 만섭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신발에 관해 조금 더 이야기 해보자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이어받은 1987년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1987>에서도 이한열 열사의 타이거 운동화가 담겨져 있습니다. 두 영화가 신발을 중요하게 다룬 것은 신발이라는 것이 우리를 어딘가에서 또다른 어딘가로 옮겨주는 매개체이자 신체의 확장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만섭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야 하는 재식이에게 마지막으로 신발을 신겨준 것이겠죠. 반 고흐 역시 이러한 신발의 의미를 고민하면서 <신발> 연작을 그렸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작품을 드레싱으로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반 고흐의 <신발> 연작이 유명하게 된 데에는 학자들의 논쟁이 큰 역할을 합니다. 먼저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라는 철학자가 <신발>을 먼저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는 1935년 후반부터 1946년 말까지 자신의 강의에서 계속해서 <신발>을 언급하죠. 이는 후에 『숲길(Holzwege)』이라는 강의록으로 출판되기도 하였죠. 그는 여기서 고흐가 그린 신발을 고된 노동 끝에 닳고 닳은 농부의 신발이라고 해석합니다. 고흐의 <신발>이 농부의 고된 노동과 땀을 보여준다고 해석한 것이죠. 이러한 해석 이후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라는 철학자는 고흐의 <신발>과 하이데거의 비평에 대해서 나름의 해석을 더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해석이 더욱 논쟁적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은 메이어 샤피로(Meyer Schapiro)라는 미술사학자가 하이데거의 해석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그림 속에는 그저 낡은 신발 한 켤레 뿐인데 농부와 관련된 아무런 정보없이 농부의 신발이라 해석하는 것은 너무도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비판하죠. 그리고는 이 신발이 농부의 신발이 아닌 반 고흐 자신의 신발이며 반 고흐는 신발을 통해 자화상을 그린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결국 이 논쟁이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예술을 감상하는 사람의 역할과 위치가 중요한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발> 연작은 크게 주목받은 작품은 아니었지만 하이데거라는 철학자의 해석으로 작품의 가치가 높아진 것은 그 예술을 감상하는 사람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죠. 영화 <택시운전사> 역시 우리가 계속해서 또다른 해석을 가미하면서 본다면 더욱 의미있고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여성은 지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공개된 정재일 음악감독과 장민승 영화감독의 영상 작업 '내 정은 청산이오'를 드레싱으로 가져왔습니다. 정재일 음악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옥자>의 음악감독을 맡은 것으로도 유명하죠. 장민승 감독의 경우 세월호 사건의 아픔을 다룬 ‘보이스리스(Voiceless)’를 통해 에르메스 미술상을 받기도 하는 등 미술 작가와 영화 감독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가입니다. 이 둘이 협업하여 이번에 공개한 ‘내 정은 청산이오’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부상자들이 실려왔던 ‘구 국군광주병원’과 수감자들이 붙잡혔던 ‘광주교도소’와 같이 5·18민주화운동의 상흔이 간직되어 있는 곳에 남아있는 흔적들에 무용과 음악을 더해 만든 영상 작업입니다. 작업은 세월은 흘러도 기억은 남아 있고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구 국군광주병원’은 영화 <택시운전사>에서도 계속해서 나온 장소이죠. 작품의 제목 ‘내 정은 청산이오’는 진도의 씻김굿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진도 씻김굿은 거센 진도 앞바다에서 죽은 분들을 위로하는 노래죠. 작품 내에서 진도 씻김굿을 일부가 담기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작품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분들의 넋을 위로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작품에서 보여지는 장소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데요. 우선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라는 에세이에서 ‘모든 장소는 시간의 이름이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모든 장소에는 그 시간의 결을 살았던 사람들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는 뜻이겠죠. 이런 의미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상흔을 간직한 장소들을 단지 물리적인 부피의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 쌓여있는 장소로서 보아야 하겠죠. 유튜브에서 공개되어 있으니 감상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자영업은 중국어와 관련된 드레싱을 가져왔습니다. <택시운전사>와 한국 영화가 중화권에서 어떤 제목으로 번역되었는지 사례들을 가져왔죠. 사실 <차이나는무비플러스>에서 중국, 대만 영화를 다룰 때 제목이 아쉽다는 이야기를 자주하였는데요 <택시운전사>는 어떻게 번역이 되었을까요? 우선 영화는 <택시운전사>는 중국 대륙을 제외하고 홍콩, 대만에서는 바로 그 해 9월에 개봉되었고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민주화 운동을 다룬다는 의미에서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겠지요. 영화가 대만에서 개봉될 때는 <我只是個計程車司機(나는 단지 택시기사일 뿐이다)>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평범하고 담담한 문장의 제목으로 옮겨졌죠. 여담으로 여기서 택시를 일컫는 대만과 중국의 언어 차이를 볼 수도 있습니다. 대만에서는 ‘거리에 따라 계산해서 가는 차’라는 의미에서 지청츠어(計程車, jìchéngchē)라고 부릅니다. 중국 대륙에서는 ‘빌려서 가는 차’라는 의미에서 츄즈츠어(出租车, chūzūchē)라고 부르죠. 여하튼 대만에서는 평범하게 옮겨진 <택시운전사>는 홍콩에서는 조금 특별하게 번역됩니다. <역권사기(逆權司機)>라고 번역이 된 것이죠. 여기서 ‘역권(逆權, 거스릴 역, 권세 권)’은 권력에 저항한다는 뜻입니다. 사기(司機, 맡을 사,틀 기)는 운전기사를 의미하죠. 그래서 <역권사기>는 ‘권력에 저항하는 택시운전사’라는 뜻입니다. 




대만과 홍콩에서 개봉된 <택시운전사> (사진 출처 : 卡卡洛普 Gamme, ,broadway circuit)


 여기서 조금 더 홍콩의 한국 영화 번역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택시운전사>와 많은 연결지점을 가진 영화 <1987>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 역시 홍콩에서 매우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1987>의 제목은 <역권공민(逆權公民)>으로 옮겨졌습니다. ‘공민(公民)’은 시민과 비슷한 뜻으로 ‘역권공민’은 ‘권력에 저항하는 시민들’이라는 뜻이죠. ‘역권(逆權)’이 들어간 작품이 또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2013년에 홍콩과 대만에서는 이듬해에 개봉된 영화 <변호인>입니다. <변호인>은 ‘권력에 대항하는 변호인’이라는 뜻의 <역권대장(逆權大狀)>으로 옮겼습니다. 여기서 ‘대장(大狀)’은 광둥어로 변호인을 뜻합니다. 이렇게 세 영화는 홍콩에서 ‘역권 3부작’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세 영화가 담고 있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영화가 홍콩에서 큰 울림을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럼 이상으로 <김군>과 <박하사탕>에 이어 광주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3부작을 마치고 다음에 또 좋은 영화로 찾아오겠습니다!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ㅣ팟캐스트ㅣ
 더 자세한 내용을 들으시려면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www.podbbang.com/ch/13254        


또 있습니다. 팟티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podty.me/cast/182234 


ㅣ네이버 오디오 클립ㅣ

오디오클립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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