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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란 Sep 27. 2020

<박하사탕>의 명대사는 '나 다시 돌아갈래'

팟캐스트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입니다! 오늘은 <김군>에 이어 광주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2탄으로 영화 <박하사탕>을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20년 전, 2000년 1월 1일 00시에 개봉한 이 영화는 2018년에 재개봉되었고, 지난 5월에 온라인으로 개최된 ‘5·1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영화제-시네광주 1980’에서도 상영된 작품입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영화를 안보신 분들이라도 명대사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영호(설경구 분)의 외침은 기억할 정도로 한 시대의 코드가 되었죠.  영화 <김군>을 이야기하면서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의 역사를 살필 때 잠시 언급했지만, <박하사탕>은 5·18민주화운동을 본격적으로 다룬 장편 극 영화 중 하나이죠. 그런데 앞서 개봉한 <부활의 노래>(1990)이나 <꽃잎>(1996)과는 다른 결로 광주민주화 운동을 포함한 국가의 폭력이 한 개인을 총체적으로 말살시키는 모습을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보여준 영화입니다. 그럼 이제 이런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만큼이나 유명한 감독인 이창동 감독은 사실 소설가로도 유명했습니다. 『녹천에는 똥이 많다』(1992)로 이미 유명했던 소설가가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 <아름다운 소년 전태일>의 각본을 쓰고 이후에 <초록물고기>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한 것이죠. <박하사탕>은 그의 두번째 영화였습니다. 사실 영화 감독으로서는 데뷔작 만큼이나 두번째 작품이 매우 중요합니다. 두번째 작품이 흥행에 성공해야 그 이후 작품도 계속해서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아시다시피 <박하사탕>은 크게 성공하였고 이창동 감독은 그 다음 작품으로 <오아시스>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습니다. 이 영화는 ‘문소리’라는 배우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기도 하죠. 

이후 <밀양>,  <시>, <버닝>을 차례로 연출하였죠. 모든 작품이 하나하나 수작에 뽑힐 만한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주제 의식이 영화를 거쳐가며 이어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윤리적 딜레마를 다루는 것이죠. <박하사탕>에서 잠깐 나오는 종교에 관한 문제는 <밀양>을 통해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그의 작품 속 문학적인 ‘촘촘함’은 <시>에서 극대화되는 것처럼 말이죠.


인간의 몸 (사진 출처 : Pixabay)


한편 이창동 감독 영화의 또다른 특징은 인간의 몸, 나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몸과 살, 육체라는 것은 성적인 장면 외에도 고문 장면, 일상적인 장면에서도 인간의 몸이 여과 없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실 예술가들이 인간의 몸을 그리는 것은 아주 오래되었죠. 그것은 꾸밈없는 몸 그 자체로, 주름이 져있든 구부러져있든 병이 들었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아름답게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많은 경우에 그런 몸을 가리는 겉치장이나 돈 혹은 명예와 같은 것을 ‘아름다움’과 연결짓기도 합니다. 이창동 감독은 있는 그대로의 몸을 가리는 것들을 걷어치우고 그 자체를 보여주기 위해 영화 속에서 나체를 많이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 내면의 어설프고 항상 흔들리는, 인간적인 모습은 가려지지 않은 몸을 통해서 더 잘 드러나니까요.


 포스터에서 볼 수 있듯이 <박하사탕>하면 기찻길 장면이 떠오르지요. 유명한 기찻길 장면을 시작으로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는 영화 <박하사탕>에서도 역시 캐릭터들의 몸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영화의 시간과 반대로 이야기 해보자면 1984년 가을 공안 경찰인 영호가 고문하는 청년의 몸, 첫사랑 순임(문소리 분)을 떠나보낸 뒤 홍자(김여진 분)와 보내는 밤에 부끄러워하는 홍자의 몸, 1987년 봄 시위를 벌인 박명식(김경익 분)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목욕탕 안 남자들과 붙잡힌 후 고문받는 명식의 몸, 순임의 고향 군산에서 순임을 그리워하며 만나는 술집종업원 경아(고서희 분)의 몸, 1994년 여름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 끝에 바람을 피는 영호와 홍자 두 사람의 몸. 이 모든 몸이 우리가 생각하는 ‘완벽한’ 상태의 몸이 아닌 모습으로 계속해서 보여집니다.


영화 <박하사탕> 스틸컷 (출처 : 다음 영화)


여러 캐릭터의 몸과 그때마다 보여지는 각기 다른 신체 부위(엉덩이, 등, 가슴, 손 등)는 몸이 가지는 여러 층위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어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목욕탕에서 샤워를 마친 명식의 몸이나 순임이가 칭찬하는 과거 영호의 ‘고운 손’은 아주 일상적인 몸입니다. 그런데 그 일상적인 층위를 파괴하고 왜곡하는 몸(고문하는 영호의 손, 1980년 광주에서 오발 사고를 일으킨 영호의 손)과 파괴당하고, 왜곡당하는 몸(물고문 받는 명식의 몸)도 등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너무도 순수해서 혹은 그 반대 이유로)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몸(영호와 첫날밤을 보내는 홍자의 몸, 불륜이 들킨 홍자의 몸)과 비일상적인 행위에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몸(미스 리와 차 안에서 성관계를 가지는 영호의 몸)도 등장하죠. 이러한 여러 겹의 몸들은 정당한 시위에 대한 국가의 폭력적인 억압, 고문 그리고 윤리적 층위에서 불륜과 같은 문제에 있어서 한 사람을 가장 먼저 그리고 깊숙하게 망가뜨리고 변화시키는 것이 ‘몸’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또한 캐릭터 속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모습의 몸이 드러나듯이 인간 정신의 변화를 가장 먼저 드러내는 것 역시 몸의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이창동 감독의 다른 영화에서도 몸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소재이니 영화 <박하사탕>을 몸에 주목해 다시 보시는 것도 재미있는 관람이 될 것 같습니다.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의 킬러 콘텐츠!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말그대로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영화 속에서 죽이고 싶은 캐릭터와 이야기 혹은 더욱 살리고 싶은 캐릭터와 이야기, 장면들을 이야기 하는 코너입니다. 이미 만들어진 영화에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더해 색다르게 상상해보는 것이죠. 리(Re)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죠!


 이루고 싶은 꿈이 많아 잠도 많은 '꿈꾸미'는 순임을 TO BE, 살리고 싶은 캐릭터로 뽑았습니다. 영호는 일말의 자기 양심을 이유로 순임이가 자신을 떠나게 만들었죠. 자기 같은 부도덕한 사람에게 순수한 순임이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이유야 어쩄든 영호의 선택 역시 물론 중요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결국 순임의 삶도 힘들고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또 나아가 순임의 불치병과도 연관이 있을 수도 있죠. 마지막 순간까지 영호를 그리워했다는 순임의 남편(박세범 분)의 말이 순임이가 평생 어떻게 살아왔는지 암시해주기 때문입니다. 만약 영호가 순임이를 버리지 않았더라면, 죄 많은 사람들끼리 또 자기 양심에 비추어 부도덕한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하며 살았더라면 서로를 돌보며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라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결국 영호의 판단은 두 사람 사이의 ‘돌봄’의 가능성을 파괴해버린 것이죠. 

그렇기에 순임을 TO BE, 살려본다는 것은 첫번째로 영호에게서 멀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두번 째로는 세상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남아 영호 옆에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영호의 삶이 계속해서 어긋난 것은 국가가 내세운 폭력과 억압적인 구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호를 사랑이라고 하는 또다른 정서적 감정이 보듬어 주었다면, 순임이가 옆에 있었다면 지난한 삶을 살아온 두 사람 모두가 더 행복했을 수도 있겠죠. 사회적인 무언가 말고도 정서적인 것이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에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왜 개인이 책임지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개인과 구조의 문제는 사실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구조적인 억압을 구조적으로 해결해준다고 해서 그때 겪은 감정의 응어리들은 절대로 다 풀어질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그것은 영원히 개인에게 남아 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정서적인 돌봄도 필요하기에 순임이가 살아남아 영호와 순임이가 서로 의지하며 잘 살아나갈 수 있도록 TO BE, 살리고 싶은 캐릭터로 뽑았습니다.


영화 <박하사탕>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순임은 참 생각할 수록 안타깝기에 더욱 살리고 싶은 캐릭터입니다. 우선 영호는 앞서 말한 것처럼 분명한 국가폭력의 피해자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억압적인 국가 구조 속에서 그 내면이 파괴되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한편으로 철로 위에서 자살하기 전 영호의 삶을 영화를 따라 살펴보다면 어쩌면 영호에게 이미 그런 부도덕하고 파괴된 내면의 기질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1984년 공안 경찰로서 첫 고문 장면부터 1994년 IMF 때 영호의 모습을 보면 자신의 과거 실수에 대한 반성의 태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필요하죠. 그런데 오히려 영호는 아내를 때리고, 개를 때리고 또 불륜도 져지르고 사업이 망하기 전까지 돈이 전부인 양 살았습니다. 심지어 순임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카메라도 너무 간단하게 팔아버린 뒤 그 돈으로 총을 사고 끝끝내 갈 곳이 없자 철로 위에 올라가 ‘돌아가’고 싶다고 외치며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이런 영호가 정말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까 의심되기도 합니다. 구조를 잘못 만나 비극이 커지긴 했지만 영호 개인 내면에도 성숙하지 못함이 있었던 것이죠. 결국 개인이든 구조든 각각 나름대로 떠안아야 할 것이 있는 것이고, 그것들이 서로 맞물려 가야만 성숙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성찰하지 않는 영호의 삶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고통받게 만들었죠. 이런 모습에 브레이크를 걸어준 것은 순임이였습니다. 결국 괴상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영호처럼 국가적 폭력에 고통받고 힘들어 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도 순수함과 부끄러움을 간직한 순임이가 아닐까요?


 와 연결해서, 지갑은 텅 비었지만 지식은 충만한 '신여성'은 순임의 남편 신광남을 TO BE, 살리고 싶은 캐릭터로 선정했습니다. 자신의 아내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영호를 찾아오고, 자기를 붙잡으러 온 나쁜 사람으로 착각해 헛소리를 하는 영호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오히려 옷도 사주고, 카메라까지 돌려주는 그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착하고 침착해보이죠. 이런 모습으로 보아 순임이가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 덕이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남편 신광남을 살려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비추어보는 것도 영화를 보다 재밌게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한편 그를 살려야 할 또다른 이유는 순임의 남편이라는 자리가 사실 영호가 가장 원했던 자리라는 점입니다. 이런 점에서 남편 신광남은 영호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신광남과 영호가 만나는 장면을 보면 두 사람의 겉모습이 대비됩니다. 영호는 며칠은 씻지 않은듯 헝클어진 머리와 지저분한 옷으로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집에서 살고 있고, 반대로 신광남은 멀끔한 정장 차림에 말투와 행동 모두 점잖은 어른의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맑고 깨끗한 샘물같은 그의 모습은 현재 영호의 비참한 몸과 마음의 영호를 비추어 원래 영호가 가지고 있던 순수함과 지금의 상황까지 이르게 된 자기 과거를 돌이켜보게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무너진 영호의 선택은 결국 자살이었지만요.


영화  <박하사탕>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자막달린 중국 영화는 필요 없는 자영업도 TO BE를 골랐는데요, 주인공 영호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캐릭터 자체라기 보다는 영호의 ‘기억’과 ‘손’에 주목해보았습니다. 우선 영호의 기억과 관련해서 영화의 첫 장면에서 영호가 ‘돌아가’고 싶다고 외치는 그 시점은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노동조합 동지들과 야유회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순임을 만난 시점이었을 것입니다. 그때가 영호에게 있어 가장 순수하고 행복했던 순간이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영화는 얄궂게도 1979년 가을, 그때가 아닌 바로 4일 전으로 돌아갑니다. 1979년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영호의 외침은 1994년과 1987년, 1984년 영호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시간들을 모두 거친 이후에야 보여집니다. 이런 영화 구성은 아무리 떠올리기 싫은 기억일지라도 그 망각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줍니다. 아픈 기억을 모두 지우고 아름다운 기억만 남기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도 생각하게 해주죠. 이런 의미에서 ‘기억’에 대한 문제를 조금 더 살려서 영화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TO BE로 선정했습니다.

 한편 영화는 손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주인공 영호는 주변 사람들에게 위악적인 삶을 살았죠. 그런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영호의 손입니다. 1984년 가을 어느 날, 순임이는 영호를 찾아와 ‘뭉뚝하고 좀 못생겼는데 참 착하게 보이는 손’ 때문에 영호가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하죠. 영호는 알 수 없는 표정과 함께 옆에 있던 홍자의 엉덩이를 더듬은 뒤 ‘착하죠’라고 손임에게 되묻습니다. 상처받은 순임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죠. 그런데 홍자를 추행하는 그 손은 어딘가 어설퍼보입니다. 순임을 밀어내기 위해(혹은 자기 죄책감을 덜기 위해) 일부러 보여주는 행동이니 자연스럽지 않았던 것이죠. 1980년 광주에서 역시 자신에게 맞지 않은 일을 하다보니 그 손은 어설프고 서툴러 결국 오발 사고를 내고 만 것이라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자신에게 입혀진 오물을 벗겨내듯 시간을 거슬러 1979년 야유회에서 카메라 프레임을 따라하며 들꽃과 순임이를 담아내 손, 순임이가 ‘착하다’고 표현한 그 손은 어설프고 서투르긴해도 위악하거나 거짓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영화가 말하는 ‘착한 손’은 무엇일까요? 자영업은 그것을 ‘노동하는 손’이라고 보았습니다. 야유회 역시 노동조합 동지들과 함께 떠난 것이었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노동했던 1979년 그때에 영호만이 오직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간직했으니까요.


영화 <박하사탕>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책을 사랑하는 책사는 TO BE로 살리고 싶은 장면을 골랐습니다. 우선 1980년 광주에서 영호가 오발 사고로 한 여학생을 죽이는 장면입니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계속해서 어긋난 행동을 반복하는 영호의 모습을 이해하게 해주는 장면이기 때문이죠. 영호는 처음에는 순임처럼 보였던 한 여학생에게 빨리 도망가라고 외치면서 어이없는 실수로 그녀에게 총을 쏘고말죠. 이 한번의 실수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영호는 자살에 이르는 삶의 궤적이 아닌 다른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서 이 장면을 영호가 오발 사고를 내지 않는 것으로 바꾸어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장면들을 다시 써보는 것처럼 다루어 보았는데요. 한국 현대사의 지난한 세월을 다루어서 그런지 모두 TO BE, 살리고 싶은 부분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영호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는 여전히 고민되는 부분으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영호는 비겁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누구나 그렇듯 조금 서툰 사람인 걸까요? 자기 바로 옆에 있는 아내 홍자와 딸을 보지 않고 거대한 세계를 다루는 신문에 집착하는 영호는 무엇을 알고 싶어서 매일 신문을 보는 것이었을까요? 

그리고 한편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다루는 영화의 태도는 어떤가요? 분명한 국가 폭력으로 탄압된 이 사건을 다룸에 있어서 한 개인의 입장에 주목하는 것은 국가 폭력으로 지금까지도 고통받는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는 또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요? 이런저런 고민들을 끊임없이 하게 만드는 영화 <박하사탕>입니다.


‘인문학 드레싱’

이번에는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의 두번째 코너. 영화를 보고 떠오른 역사, 문학, 음악, 철학 등 인문학적 감성을 더하여 더욱 풍요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시간, ‘인문학 드레싱’입니다.


먼저 책사는 두 가지 드레싱을 가져왔습니다. 이창동 감독이 각본을 쓴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그와 관련된 책 『우리들은 정당하다 - 중국 여성노동자 삶, 노동, 투쟁의 기록』 입니다. 앞에서 잠시 말했듯 이창동 감독은 소설가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했죠. 영화에 입문하게 된 첫 작품은 각본을 맡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입니다. 한국의 노동운동을 상징하는 인물 전태일의 스물셋. 실제 그 모습을 다루는 영화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는 그의 외침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포스터와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올해는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지 50주년이 되는 해라 그와 관련된 영화와 도서들이 새롭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우리들은 정당하다 - 중국 여성노동자 삶, 노동, 투쟁의 기록』(나름북스) 입니다. 전태일 50주기 공동 출판 프로젝트 <너는 나다>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 여성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책입니다. 이 시리즈의 수익금은 전태일기념관을 위해 쓰인다고 하는데요, 코로나19로 인해 조금 화제성이 떨어진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에 드레싱으로 올려서 <박하사탕>과 함께 감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어서 자영업도 노동과 관련된 시 한편을 드레싱으로 가져왔습니다. 박노해 시인의 <가리봉 시장>입니다. 

먼저 시를 감상하고 더 이야기해볼게요.


가리봉시장에 밤이 깊으면 가게마다 내걸어 놓은 백열전등 불빛 아래 오가는 사람들의 상기된 얼굴마                다 따스한 열기가 오른다.


긴 노동 속에 갇혀 있던 우리는 자유로운 새가 되어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깔깔거리고 껀수 찾는 어깨들              도 뿌리뽑힌 전과자도 몸부벼 살아가는 술집여자들도 눈을 빛내며 열이 오른다.


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가리봉 시장을 찾아 친한 친구랑 떡볶기 500원어치, 김밥 한 접시, 기분나면 살            짜기 생맥주 한 잔이면 스테이크 잡수시는 사장님 배만큼 든든하고 천오백원짜리 티샤쓰 색깔만 고우면 친구들은 환한 내 얼굴이 귀티난다고 한다.


하루 14시간 손발이 퉁퉁 붓도록 유명브랜드 비싼 옷을 만들어도 고급오디오 조립을 해도 우리 몫은 없어, 

우리 손으로 만들고도 엄두도 못내 가리봉 시장으로 몰려와 하청공장에서 막 뽑아낸 싸구려 상품을 눈부시게 

구경하며 이번 달엔 큰맘 먹고 물색 원피스나 한 벌 사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앞판 시다 명지는 이번 월급 타면 켄터키치킨 한 접시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하고 마무리 때리는 정이는 

2,800원짜리 이쁜 샌달 하나 보아둔 게 있다며 잔업 없는 날 시장가자고 손을 꼽는다.


가리봉 시장에 밤이 익으면, 피가 마르게 온 정성으로 만든 제품을 화려한 백화점으로, 물 건너 코큰 나라로 

보내고 난 허기지고 지친 우리 공돌이 공순이들이 싸구려 상품을 샘나게 찍어 두며 300원어치  순대 한 접시로 허기를 달래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구경만 하다가 허탈하게 귀가길로 발길을 돌린다.


            박노해 - 「가리봉 시장」, 『노동의 새벽』 中



 시인은 1970~80년대 구로공단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영호와 순임이 만나게 된 것도 구로공단 야학을 통해서였죠. 구로공단에 대해 설명드리면 우선 1960년대부터 해외의 전자산업 업체들, 특히 노동집약적 공정을 담당하는 제조업체들이 한국에 유입되면서 한국에서는 저임금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는 국제적 하청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1964년 출범한 구로동단은 최대 노동자 규모를 가진 대표적인 수출산업단지로 자리매김 하였죠. 이 곳은 70년대 초반 섬유·의류·봉제 업종을 중심으로 한 경공업 중심의 시기를 거쳐, 80년대 중공업단지의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런데 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제조업의 생산성 하락으로 인해 제조업체들이 더 싼 인간비를 찾아 구로공단을 떠나 해외나 서울 외곽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하고 외환위기 이후 노동유연화는 손쉬운 해고가 가능해지면서 예전의 모습을 잃게 되었죠. 이러한 역사를 지나 지금은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로 변화해 청년 노동자들로 대표되는 첨단 IT산업 중심의 새로운 노동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70~80년대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에 처해있던 이 공간의 문제는 해결된 것일까요? 시인의 이름처럼 ‘노동 해방’은 이루어졌을까요? 영화 <청년경찰>이나 <범죄도시>의 배경이 된 가리봉동의 현재 모습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공단 외곽지역에는 여전히 일부 제조업체들이 남아 있어 중년여성노동자들로 대표되는 제조업 중심의 오래된 노동시장이 유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이 지켜질리 만무한 비정상적인 노동환경은 이제 해외에서 유입된 이주노동자나 외국인노동자 혹은 중국 동포들이 그대로 물려받은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나아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박노해 시인의 다른 시 한편을 더 드레싱으로 얹어보죠.


올 어린이날만은

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다.


작업복을 입었다고

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공장장님 로얄살롱도

부장님 스텔라도 태워 주지 않아

한참 피를 흘린 후에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어

36년 한 많은 노동자의 손을 보며 말을 잊는다.

비닐 봉지에 싼 손을 품에 넣고

봉천동 산동네 정형 집을 찾아

서글한 눈매의 그의 아내와 초롱한 아들놈을 보며

차마 손만은 꺼내 주질 못하였다.


훤한 대낮에 산동네 구멍가게 주저앉아 쇠주병을 비우고

정형이 부탁한 산재 관계 책을 찾아

종로의 크다는 책방을 둘러봐도

엠병할, 산데미 같은 책들 중에

노동자가 읽을 책은 두 눈 까뒤집어도 없고


화창한 봄날 오후의 종로 거리엔

세련된 남녀들이 화사한 봄빛으로 흘러가고

영화에서 본 미국 상가처럼

외국 상표 찍힌 왼갖 좋은 것들이 휘황하여

작업화를 신은 내가

마치 탈출한 죄수처럼 쫄드만


고층 사우나 빌딩 앞엔 자가용이 즐비하고

고급 요정 살롱 앞에도 승용차가 가득하고

거대한 백화점이 넘쳐 흐르고

프로 야구장엔 함성이 일고

노동자들이 칼처럼 곤두세워 좆빠져라 일할 시간에

느긋하게 즐기는 년놈들이 왜 이리 많은지

―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

선진 조국의 종로 거리를 나는 ET가 되어

얼나간 미친 놈처럼 헤매이다

일당 4,800원짜리 노동자로 돌아와

연장 노동 도장을 찍는다.


내 품 속의 정형 손은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

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 들고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

노동자의 피땀 위에서

번영의 조국을 향락하는 누런 착취의 손들을

일 안 하고 놀고먹는 하얀 손들을

묻는다.

프레스로 싹둑싹둑 짓짤라

원한의 눈물로 묻는다.


일하는 손들이

기쁨의 손짓으로 살아날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박노해 - 「손무덤」, 『노동의 새벽』 中


꿈꾸미는 영화 <박하사탕> 속 등장인물들의 파멸이 건강하지 못한 사회에서 비록했다는 점에 주목해 ‘건강’과 관련된 드레싱을 가져왔습니다. 바로 ‘시민건강연구소’라는 연구소 입니다. 이 곳에서는 건강권에 관한 이론을 개발하는데, 단순히 신체 건강을 넘어서 사회적 건강까지도 아우르는 권리를 연구합니다. 윤리와 정의, 불평등과 형평성, 공공과 민간, 경제와 시장, 경쟁과 효율성 등을 모두 다루는 것이죠. 


프란츠 파농(1925~1961) (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인 프란츠 파농이라는 학자는 흑인들이 가진 정신질환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식민지’라는 사회가 만들어 낸 사회적 문제라는 주장을 합니다. 이처럼 한 개인의 건강 문제는 결국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죠. ‘시민건강연구소’에서는 이처럼 사회적 차원에서 건강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여성은 이창동 감독과 연결점이 있는 책을 드레싱으로 가져왔습니다. 영화평론가 신형철이 ‘씨네21’에 연재했던 영화 평론을 모은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마음산책, 2014)입니다. 이 책에서 이창동 감독의 또다른 영화 <시>를 다룬 부분이 있는데요, 여기서 이창동 감독의 윤리학적인 관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둘러싼 일련의 논의들을 넓은 의미에서 ‘윤리학’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 그 논의의 장에 개입하는 모든 종류의 글쓰기는 ‘윤리학적 텍스트’를 생산할 것이고, 그 하위 범주 중 하나로 ‘윤리학적 문학 텍스트’를 또한 생산할 것이다. 이런 종류의 문학작품을 쓰는 데 필요한 특별한 자질이 있을까? 윤리학적인 의제를 활성화시키는 효과적인 서사 구조를 창조해내는 능력을 나는 ‘윤리학적 상상력’이라고 부른다. 내가 보기에 ‘윤리학적 상상력’은 다음 세 가지 요소를 서사 내부에 절합(節合)해내는 능력이다. 

사건, 진실, 그리고 응답.


첫째, 그 일이 있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어떤 존재론적 단절의 계기로서의 사건이 발생한다.

둘째, 주체가 미처 그 의미를 확정할 수 없었던 사건의 진실이 뒤늦게 밝혀져 주체에게 압력을 행사한다.

셋째, 진실의 압력 속에서 그 진실에 충실하기 위해 주체는 모종의 응답을 시도한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심급이다. 이 단계에서 작가는 세계를 향해 그가 아껴둔 마지막 말을 건넨다.


-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산책, 2014, p134 –


이렇게 보면 영화 <박하사탕> 속 영호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하사탕>에서 보여준 한국 현대사의 비극들은 돌이킬 수 없는 사건들이었고, 그 사건들의 진실 속에서 영호는 계속해서 서툴렀죠.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지만 그의 응답은 성숙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응답은 사회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나 윤리(학)적으로 응답할 의무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것으로 마치고 다음에 또 좋은 영화로 찾아오겠습니다!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 



ㅣ팟캐스트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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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podbbang.com/ch/13254        


또 있습니다. 팟티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podty.me/cast/18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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