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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란 Nov 07. 2020

연상호감독의 포스트아포칼립스 영화 <반도>

팟캐스트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입니다! 오늘은 지난 여름 코로나19 속에서도 뜨거운 화제를 모았던 영화 <반도>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영화 <반도>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살아남은 자들의 사투 반도! 부산행 그 후 4년,
폐허가 된 땅에 남겨진 자들이 벌이는
최후의 사투를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 



 포스터에도 나와있듯이 연상호 감독의 <반도>는 감독의 전작 <부산행>의 후속작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애니메이션 작품인 <서울역>에서부터 소위 ‘연니버스’라고 하는 감독의 세계관이 <반도>로 이어진 것이죠. ‘K-좀비’ 열풍을 선도한 <부산행>의 흥행 덕분에 개봉 전부터 <반도>는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굉장히 많은 관심과 기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대만과 싱가포르를 비롯해 베트남, 라오스, 덴마크, 뉴질랜드,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에 선판매를 달성하였죠. 특히 대만에서는 박스오피스 1위는 물론이고 하루만에 80만 US달러(약 9억 6천만원)의 수익을 거두었습니다. 싱가포르에서도 박스오피스 1위와 함께 14만 7000 싱가포르달러(약 1억 2718만원)의 기록을 거두어 ‘부산행’과 ‘기생충’의 오프닝 기록을 뛰어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흥행에는 물론 ‘부산행’에 이은 관심도 있었지만 지금의 현실적 상황과도 연결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지난 여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만과 싱가포르를 포함한 다른 국가들 역시 코로나19로 인하여 오랫동안 극장이 문을 닫기도 하는 등 영화계가 많이 침체된 상황이었습니다. 이후 다시 극장이 열리면서 <반도>가 상영하게 되면서 새로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많이 높아진 것이죠. <반도>는 그 기대감을 충족시킬만한 스펙터클을 위주로 홍보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반도>가 다루는 재난적 상황이 지금의 팬데믹 상황을 연상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봉 이후 <부산행>과 비교해 스토리의 짜임새나 논리적인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아쉬움이 담긴 반응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반도>가 흥행한 이유는 우리가 팬데믹이라는 공포 앞에서 서로를 피하고 멀리하는 상황에서 절실해지는 희망이 영화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속 김노인(권해효 분)이 한정석(강동원 분)에게 아이들을 이야기할 때 자신이 ‘지옥에서 발견한 희망’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러한 희망의 표현은 재난적 상황에서 미래 세대에게 갖게 되는 미안함과 겹치면서 영화를 보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여러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 같습니다.

 소위 ‘K-좀비’라고 불리는 최근 한국의 좀비 영화의 특징 역시 영화에 대한 관심의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 좀비 영화에서 좀비들은 죽어도 죽지 않는 잔인한 존재이고 그들과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라면 연상호 감독의 세계관은 보다 동아시아적 감성이 묻어나옵니다. 바로 동아시아적 상상력에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관계나 공동체에 대한 감성이죠. 영화 속 UN군 제인이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 준이(이레 분)가 자신이 살았던 이전 세상도 나쁘지 않았다고 되받아치는 것은 그 지옥 같은 공간에서도 가족을 이루고 살았던 그 삶 속에도 나름의 따뜻함과 애정,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이를 신파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이러한 감성이 영화가 특히 아시아 국가에서 크게 주목받게 된 이유라고 볼 수 있겠죠.

 한편 이러한 감성에 대해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역으로 이 감성이 단지 한국만의 고유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전의 할리우드 영화와는 조금 다른 특징 정도로 볼 수 있는 것이죠. 나아가서 사실 영화에는 여러 요소들이 섞여있습니다. 포스터에도 크게 홍보가 된 카체이싱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의 특징이고, 좀비라는 캐릭터 역시 그러하죠. 이러한 뒤섞임은 지금의 시대가 특정 국가의 고유한 색깔이 강조되는 시대가 아니라 그것들이 서로 섞이면서 새로운 모습을 가지게 되는 시대가 되었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영화 <반도>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면 <반도>는 <부산행>, <염력>에 이은 그의 3번째 장편 실사 영화입니다. 그 전에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활동하였죠. 서양화를 전공한 덕에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겠죠. <창>이나 <사이비>, 그리고 <부산행>의 프리퀄로 제작된 <서울역>등 애니메이션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탄탄한 스토리입니다. 이러한 강점은 <부산행>에서도 드러났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좀비를 로컬화하여 한국적인 특징을 스토리에 잘 녹여낸 것이죠. 이러한 강점이 곧 ‘연니버스’라는 감독만의 세계관을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차이나는무비 플러스>의 킬러 콘텐츠!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말그대로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영화 속에서 살리고 싶은 캐릭터와 이야기, 장면들(TO BE)은 살리고, 그렇지 않은 부분(NOT TO BE)은 다시 자신만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이미 만들어진 영화에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더해 색다르게 상상해보는 ‘리(Re)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죠! 


  먼저 자막달린 중국 영화는 필요 없는 자영업은 영화 속 난민이 된 한국인들을 TO BE, 영화 밖 현재의 한국 사회를 NOT TO BE로 선정했습니다. 영화 초반 한국인 생존자들은 주한미군의 도움을 받아 홍콩으로 떠나게 됩니다. 홍콩에서 난민의 지위를 획득하여 빈민가에서 인간답지 않은 처참한 생활을 하죠. 뿐만 아니라 식당 같은 공간에서는 홍콩 현지인들에게 반도에서 온 사람들, 바이러스 등으로 불리며 부당한 차별을 받기도 합니다. 영화에서는 아주 짧게 나오기 때문에 홍콩에서의 이러한 차별적 대우의 모습을 영화가 조금 더 이야기 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 TO BE로 뽑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실 NOT TO BE라 할 수 있는 난민 감수성이 부족한 한국 사회의 모습 때문입니다.


영화 <반도>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보면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여기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한국 반도가 아닌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설립된 망명 정부였습니다. 또한 임시정부는 상하이에만 머무른 것이 아니라 1945년 해방 전까지 중국 항저우, 난징, 창사, 광저우, 충칭 등 중국 곳곳을 전전합니다. 이렇듯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주민 정부이자 디아스포라 정부, 즉 난민들에 의해 세워진 망명 임시정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20년 한국 사회는 난민들에게 어떠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2018년 예멘 난민 사태에서 보여진 우리 사회의 태도는  우리가 난민과 이주민에 대해서 환대를 실천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UN난민 기구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 1000명 당 난민 수용률은 세계 139위라고 합니다. 난민 인정 비율은 1.51%로 전세계 평균 24.1%에 한참 못 미치는 상황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도착하였을 때 그들을 대하는 일부 인종 차별적 태도이겠죠.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영화를 통해 우리의 배타적 민족주의나 인종주의에 대해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책사는 NOT TO BE, 영화 속에서 지우고 새롭게 각색해보고 싶은 장면을 가져왔습니다. 서대위(구교환 분)가 좀비와 외부인들에게 숨바꼭질을 시키는 장면입니다. 서대위는 631 부대 소속인데 이 부대는 좀비들로부터 민간인을 지키는 부대였지만 국가에서 버림받았다는 상실감에 추악한 모습으로 타락해버린 부대입니다. 감독은 그들을 좀비보다 더 잔혹한 존재로 보여줍니다. 아마도 형용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 어쩌면 가능한 타락해버린 인간의 잔혹함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장면은 스토리 상 꼭 필요한 장면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를 숨바꼭질이라는 작위적인 게임을 통해 보여준 것은 영화의 아쉬운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반도>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서대위는 이러한 게임을 보고 ‘여러분 여러분 그러고 놀 때 꼭 명심하세요 오늘까지만 사는 것처럼, 노세요 재밌게 노세요’라는 말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극악한 사람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내일을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나은 내일을 위해 무언가를 계속 바꾸고 실천하는 존재입니다. 그런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이에게는 미래 세대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전혀 없으니 전혀 말이 안되는 행동일지라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할 수 있는 것이겠죠. 구교한 배우의 열연으로 서대위 캐릭터 자체는 흥미롭게 보여졌지만 그것을 보여주는 장면들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바꾸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숨바꼭질을 포함한 게임 장면들을 NOT TO BE로 선정했습니다.

 

 이루고 싶은 꿈이 많아 잠도 많은 '꿈꾸미'는 TO BE를 가져왔습니다. 바로 김노인(권해효 분)입니다. 김노인은 민정(이정현 분)과 두 딸 준이(이레 분)와 유진(이예원 분)과 마치 가족처럼 지내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제정신 상태가 아닌 미쳐버린 인물이기도 하죠. 사실 미친 사람이라고 하면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영화 속 시대는 이미 좀비들로 폐허가 된 상황이기 때문에 미친 사람을 미치지 않은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반도> 스틸컷(출처 : 네이버 영화)

 

 우선 영화 속 인물들은 세 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좀비가 있고, 좀비의 세계 안에 갇혀 살고 있는 사람들(좀비가 될 수도 탈출할 수도 있는 사람들), 그리고 김노인입니다. 좀비들은 세계를 파괴하고 동시에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존재들입니다. 무언가 보이기만 하면 물어 뜯으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죠. 서대위나 황중사(김민재 분), 한정석과 민정과 같은 사람들은 좀비로 가득찬 세계 속에서 이 공간을 탈출하거나 혹은 유지하고자 합니다. 서대위 역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은 있으나 그 가능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공간을 유지하며 권력을 정복하고 살아가는 것일 뿐이죠. 결국 이들의 세계는 공간을 또 권력을 유지하려는 부류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부류의 대립이 계속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김노인은 미친 사람이지만 좀비로 폐허가 된 아포칼립스(종말, 대참사의 의미) 이전의 세계를 현재와 이어주는 사람입니다. 또한 아포칼립스 이후, 즉 탈출 이후의 세계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를 열어주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제인, 즉 UN군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죠. 그러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로 가는 것은 프리(pre) 아포칼립스의 모든 것을 경험한 김노인에게는 허락되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것에 그치고 그 길에 함께 서지는 못한 것이죠. 이러한 안타까움에 그를 TO BE, 살리고 싶은 캐릭터로 선정했습니다.


 지갑은 텅 비었지만 지식은 충만한 '신여성'도 TO BE, 살리고 싶은 캐릭터를 선정했습니다. 한정석의 매형인 구철민(김도윤 분)입니다. 그는 정석과 함께 한국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아내와 아들 모두를 좀비에 의해 잃게 되었죠. 이후로는 홍콩에서 온갖 차별을 받으며 생활하다 정석과 함께 한국에 남아있는 돈을 구해오기 위해 다시 한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631부대에게 잡혀 그들의 놀잇감이 되죠. 그러나 결국 그를 구하러 631부대에 온 정석에 의해 구출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석이 곧 위기에 처하게 되고 이번에는 정석을 구하기 위해 철민은 나서고 이때 안타까운 죽음을 맞게 됩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안타까워 TO BE로 그를 선정한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그가 말하는 ‘상식’ 때문입니다. 영화는 반복적으로 상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상식은 누군가를 구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 다시 말해 더 큰 희생을 피하기 위해 누군가를 포기하는 것이죠. 그 ‘상식’으로 인해 구철민은 아내와 아들을 잃었고 또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게 됩니다. 계몽주의 시대의 프랑스 지식인 볼테르(Voltaire)는 ‘상식은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하기도 하였죠. 


연희동에 위치한 <갤러리 8pm> (사진 출처 : 공예인)


 신여성이 만난 한 학생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 학생은 위 갤러리 사진 속 회색 벽에 ‘흔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덧붙였습니다. 이 문장은 위 간판과 조화를 이루면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 상식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간혹 견고하고 누구나 인정하는 상식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러한 상식은 어디에도 없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구철민 역시 그러한 ‘상식’ 때문에 시도조차 안해보는 태도를 이야기한 것 아닐까 생각하면서 그를 오늘의 마지막 TO BE, 살리고 싶은 캐릭터로 골랐습니다.


‘인문학 드레싱’

이번에는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의 두번째 코너. 영화를 보고 떠오른 역사, 문학, 음악, 철학 등 인문학적 감성을 더하여 더욱 풍요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시간, ‘인문학 드레싱’입니다.

 꿈꾸미는 오늘 두 개의 드레싱을 가져왔습니다. 첫번째 드레싱은 영화 드레싱으로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Friedrich Wilhelm Murnau) 감독이 1922년(혹은 1921년)에 연출한 <노스페라투(Nosferatu)>입니다. 연상호 감독은 ‘좀비’라는 캐릭터를 한국 영화에 적절하게 녹여들였는데, 이 영화는 최초의 드라큘라 공포 영화입니다. 좀비와 같이 변형된 인간을 주제로 한 첫 공포 영화인 셈이죠. 그렇기 때문에 영화사에서 호러물과 공포물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이야기되는 영화입니다. 유튜브 검색을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영화사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 찾아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영화 <노스트라투>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두번째 드레싱은 미술 드레싱입니다. 바로 ‘차가운 추상’의 선구자로 불리는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추상 회화입니다. 먼저 작품을 살펴볼게요.


왼쪽 : 피에트 몬드리안, <빨강, 노랑, 파랑, 검정이 있는 구성>(1921)  오른쪽 : 피에트 몬드리안,<브로드웨이 부기우기>(1942~1943)(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좌


그림에서 보이듯이 몬드리안은 검은선으로 구획을 나눈 공간에 빨강, 노랑, 파랑 3원색을 배치하는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이러한 그의 구상과 배치는 디자인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영화 <반도>를 보고 이 그림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반도> 역시 공간의 구획에 관한 영화, 즉 공간의 배치가 인간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을 다루는 영화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폐허가 된 반도를 떠나는 즉 어떤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 혹은 탈출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러한 구조는 많은 영화가 공유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재난 영화는 대부분 재난이 일어난 공간을 벗어나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혹은 테러 영화라면 폭탄이 설치된 공간에서 폭탄을 제거하거나 그 공간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이야기 구조를 다루죠. 결국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어떤 공간이 주어지고 그곳은 여러 다른 공간들로 나누어져 있는데, 영화 속 등장인물이 속한 공간이 다른 공간 혹은 침입자에 의해 억압을 받고 그것에 저항하는 구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공간을 넘나들기 시작하면서 정체성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반도>에서는 좀비들의 공간(반도), 살아 남은 자들의 공간(반도 밖), 또 그 속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의 공간(631 부대)과 그렇지 못한 이들의 공간(민정과 가족들의 아파트, 피난처)이 있죠. 그리고 그 공간들의 구획에 균열이 생겼을 때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영화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역시 공간의 구획과 그것의 균열은 사건이 됩니다. 강의실을 생각해보면 강의실의 앞쪽은 교수의 공간입니다. 책상과 의자가 있는 뒤쪽은 학생들의 공간이죠. 결국 강의실은 교수와 학생 두 주체로만 구성된 공간입니다. 특히 그 두 주체 사이에도 매우 큰 권력 차이가 존재하는 공간이죠. 한편 이 곳에 교수도 학생도 아닌 사람이 들어온다면 강의실은 굉장히 이질적인 공간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교직원이 강의실에 들어오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뭔가 PC에 문제가 생긴다는가 등의 기술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뿐입니다. 그리고 교수와 학생은 그가 문제를 해결하고 떠날 때까지 진행하던 수업을 멈추게 되죠. 이렇듯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공간에서도 주어진 공간은 우리들의 정체성을 만들어 내고, 또 우리는 그 구획을 따르거나 혹은 따르지 않음으로써 정체성과 권력 구조를 강화하거나 혹은 희석하거나 균열을 내며 살아갑니다.

 몬드리안의 추상회화 역시 검은 선을 통해 정확하게 세 가지 색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선이 무너져 색이 서로 겹치게 된다면 그의 추상회화가 가진 ‘깔끔’하고 ‘모던’한 특징은 사라지고 맙니다. <반도>에서 공간의 구획을 보고 또 우리 일상 생활에서 공간을 되돌아보기 위해 이렇게 미술 드레싱을 소개하였습니다.


이어서 신여성은 에리히 프롬(Erich Pinchas Fromm)의 『불복종에 관하여』 를 인문학 드레싱으로 가져왔습니다. 몬드리안의 추상회화처럼 공간을 나누고 그에 따라 정체성을 부여하는 주체가 있다면 그와 반대로 그 공간의 구획을 흩트리고 무너뜨리고 또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가는 주체도 있겠죠. 이 책은 그러한 ‘불복종’에 관하여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어 자기 손으로 만들어낸 것들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자기가 생산한 것들 앞에, 국가 앞에, 자신이 만든 지도자들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 에리히 프롬, 『불복종에 관하여』 中 - 


 에리히 프롬은 이 문장이 포함된 「인류여 번성하라」라는 장을 통해 우리가 만들어낸 이 세계의 문제를 비판하고 그것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철저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쌓아올린 자본과 조직체계에 둘러싸여 있는 허구적인 상상력을 깨뜨려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영화 <반도>에서처럼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다시 말해 우리가 갖고 있던 지식의 모든 힘을 합쳐도 감당할 수 없는 재난적 상황에서 우리는 그 성찰을 보다 어려운 것이겠죠. 그러나 그런 시기일 수록 더욱 필요합니다. 영화 <반도> 뿐만 아니라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나 넷플릭스 <버드박스>에서 다루고 있는 것처럼 인간은 본능적이고 취약하고 나약하기 때문에 재난적 상황에서는 인간이 더 사악해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는 그렇기에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연결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어떠한 시기에도 성찰과 반성이 가능하다고 그 희망을 떠올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사는 배우와 관련된 드레싱을 가져왔습니다. <반도>에서 민정 역을 열연한 이정현 배우입니다. 이정현 배우는 가수와 배우를 넘나드는 엔터테이너로 최근에는 KBS 예능프로그램 <신상출시 편스토랑>에서 요리 내공을 보여주기도 하였죠. 이정현 배우의 데뷔작은 장선우 감독의 1996년 작  <꽃잎>입니다. 당시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오디션을 보았는데 경쟁률이 무려 3000 대 1에 이르렀다고 하죠. 광주민주화 운동의 참상을 다룬 <꽃잎>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그녀는 이후로도 계속해서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연기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199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와>, <바꿔>, <줄래>, <너> 등 테크노 여전사 이미지 뿐만 아니라 바비인형의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큰 히트를 거두었습니다. 상당히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였음에도 국내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강한 이미지 때문이었는지 계속해서 공포 영화의 귀신 배역처럼 강한 배역이 주로 들어와 2000년대에는 거의 연기를 선보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2011년 박찬욱, 박찬경 형제의 <파란만장>을 통해 다시 연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후 <명량>,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스플릿>, <군함도> 등에 출연하였고 이번 <반도>를 통해 또 한번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에게 모습을 보여주었죠. <반도> 영화에 대해서는 아쉬운 부분도 분명히 있을 수 있지만 그녀의 연기를 보면 그녀가 또 한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좋은 모습을 기대하게 됩니다.


자영업은 역사와 관련된 드레싱을 가져왔습니다. 영화 속 ‘631 부대’를 보고 연상하게 되는 역사에 실존했던 ‘731 부대’입니다. 물론 감독은 ‘631’이란 숫자에 특별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다고 하였지만 영화 속 그들의 잔혹함과 좀비, 즉 일종의 바이러스를 다루는 방식은 분명 731 부대의 악행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731 부대는 1936년 일제가 세균전을 연구하기 위해 관동군(일본의 중국침략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말까지 만주(滿洲)에 주둔했던 일본 육군부대의 총칭) 산하에 설립한 부대입니다. 731 부대는 전쟁 포로를 대상으로 생체 해부 실험, 냉동 실험 등 매우 반인륜적인 실험들을 자행했습니다. 1940년 이후에는 해마다 600여명의 수용자들이 생체 실험에 동원이 되었다고 하죠. 최소 3000여명 이상의 중국인, 한국인, 몽고인, 러시아인 등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정말 말할 수 없을만큼 끔찍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을 칼로 찌르는 것은 물론 매독 주사를 주입한다는가, 위를 절제하여 식도와 대장을 연결했을 때 사람이 살 수 있는지 등의 실험이죠.


<경향신문> 1994년 8월 14일 치 (사진 출처 : 한겨례신문, 24년 전 “오늘, 일본군 731부대 생체실험 사진이 처음 공개됐다”)


 한편 영화를 보면 주한 미군이나 UN군이 등장하죠. 731 부대와 관련해서 역시 미군의 이야기를 해볼 수 있습니다. 조금 결은 다르지만요. 일제의 패망 후 731 부대의 책임자인 이시이 시로 중장을 비롯한 전범들은 사면을 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굉장한 출세 가도를 밟게 되죠. 이러한 배경에 바로 미군이 있습니다. 미군이 731부대의 모든 자료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그들을 사면 및 복권시켜주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난징대학살이나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서는 국제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유독 731부대에 관해서는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731부대와 관련해서는 <차이나는무비플러스>에서 영화 <주전장>과 <신문기자>를 다루며 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두 영화와 <차이나는무비 플러스>를 함께 보세요. 


차이나는무비플러스 <주전장> 편

https://brunch.co.kr/@chran71/24


오디오도 링크해봅니다. http://www.podbbang.com/ch/13254?e=23139964


차이나는무비플러스 <신문기자>편

https://brunch.co.kr/@chran71/30


그럼 이상으로 <반도> 리뷰를 마치고 다음에 또 좋은 영화로 찾아오겠습니다!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ㅣ팟캐스트ㅣ
 더 자세한 내용을 들으시려면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www.podbbang.com/ch/13254        


또 있습니다. 팟티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podty.me/cast/182234 


ㅣ네이버 오디오 클립ㅣ

오디오클립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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