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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란 Dec 02. 2020

박소담과 떠나는 기묘한 여행, 장률감독의 <후쿠오카>

팟캐스트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새로운 영화로 돌아온 장률 감독의 <후쿠오카>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권해효 x 윤제문 x 박소담 기묘한 조합, 더 기묘한 여행 후쿠오카


장률 감독은 <망종>(2005)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감독입니다. 그 외에도 <경주>(2013), <군산>(2018)과 같은 작품도 유명하죠. 이 세 편은 모두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장률 감독의 <망종> 보셨나요?

https://brunch.co.kr/@chran71/17


장률 감독의 <군산>, <경주> 영화의 네 가지 공통점

https://brunch.co.kr/@chran71/22


 전에도 이야기 하였지만 감독의 문제 의식은 결국 ‘경계’라는 단어로 집약될 수 있습니다. 경계에 서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경계를 넘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혹은 경계를 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쿠오카> 역시 경계를 다루는 영화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전까지 감독의 지역적 관심이 중국과 한국 사이의 경계였다면 이번에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까지의 경계로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죠. 

다른 일본 도시가 아닌 ‘후쿠오카’라는 도시를 선택한 것 역시 영화에서도 나오듯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지역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 그리고 조선족 이주자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지역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감독이 ‘경계’에 대해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본인 스스로의 정체성 문제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변 조선족 자치구에서 재중동포 3세로 태어난 감독은 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하고 문학 창작 활동을 하고 또 교수가 되어 중문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던 중 영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직접 연출을 하는, 문학인에서 영화인으로의 전환을 하게 된 것이죠. 이러한 배경, 즉 조선족으로서 중국에서 살아온 경험과 조선족 출신의 영화감독으로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경험이 감독으로 하여금 한국과 중국 혹은 북한과 중국 간의 경계에 대해 탐색하도록 이끈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영화 <후쿠오카>에서는 그 경계가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적 경계로 확장된 것이죠.


영화 <후쿠오카> 스틸컷 (출처 : 네이버영화)


영화는 소담(박소담 분)이 제문(윤제문 분)과 해효(권해효 분)와 함께 후쿠오카 여행에서 보낸 기묘한 사흘의 시간을 담고 있습니다. 제문과 해효는 과거 ‘순이’라는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했던 사이이고 소담은 제문이 운영하는 헌책방의 손님이죠. 어떻게 보면 어울리지 않는 이 세 사람은 후쿠오카에서 각자 벗어나지 못한 자신의 과거를 확인하게 됩니다. 제문과 해효는 여전히 ‘순이’를 잊지 못하고 이별의 휴유증으로 서로를 미워하고 있었죠. 한편 그런 둘 모두 똑같다고 말하는 소담은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면에서 결국 영화는 장률 감독 본인이 가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투영된 것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 또 경계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고민을 제문과 해효 그리고 소담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죠. 마치 누군가의 꿈처럼 흘러가는 영화 <후쿠오카>를 통해 우리 각자의 고민을 확장시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차이나는 한 장면

오늘은 영화 속 인상 깊은 한 장면을 인문학적으로 다시 읽어보는 ‘차이나는 한 장면’ 코너입니다. 

 이루고 싶은 꿈이 많아 잠도 많은 '꿈꾸미'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차이나는 한 장면’으로 뽑았습니다. 후쿠오카에서 지내던 해효가 제문이가 운영하는 헌책방에서 앉아있다 고개를 드는 장면이죠. 이 장면 직전에 제문은 해효에게 서로 위치를 바꾸어 본인은 후쿠오카에서 선술집을 운영하고 해효는 서울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보았죠. 때문에 이 마지막 장면은 후쿠오카에서 서울로 갑자기 전환된 장면임에도 마치 그 제안이 실현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언제든지 제문과 해효는 서울에 있을 수도 있고 후쿠오카로 건너갈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러나 동시에 이 장면이 완전한 현실이라고 확정 지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영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꿈이기 때문이죠. 영화를 보다보면 현실이라고 생각했을 때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말을 못한다는 해효의 단골 손님은 10년만에 처음으로 말을 하고 일본 여행이 처음인 소담에게 후쿠오카의 헌책방 주인은 1년 전에 소담이 맡기고 갔다는 인형을 건네 줍니다. 그 헌책방의 주인은 분명 해효가 엊그제에도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지만 가게 주인은 1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이야기하죠. 또한 중국어도 일본어도 못하는 소담이지만 그녀는 일본인과도 중국인과도 자연스럽게 대화합니다. 이러한 장면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논리적인 인과 관계로 생각하면 이해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전체가 누군가의 꿈이라면 금방 이해가 됩니다. 꿈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할리우드 영화나 기존의 다른 영화처럼 원인과 결과가 뚜렷하게 이어지는 완결된 서사를 기대한다면 이 영화는 이해될 수 없습니다. 영화는 당연히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선입견에서 벗어나 꿈의 영화로 보아야 하는 것이죠.


영화 <후쿠오카> 스틸컷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이렇게 영화를 꿈이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이제 이 영화가 누군가의 무의식이라고 연결지어 볼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가 꿈을 통해 한 개인의 서사를 이야기 한 것처럼 말이죠. 결국 이 영화는 제문의 꿈일 수도, 해효의 꿈일 수도, 소담의 꿈일 수도 혹은 감독의 꿈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꿈의 서사를 통해 감독은 사실 우리의 현실 역시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다시 말해 우리의 기억도 감각 역시 꿈처럼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해석을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갑은 텅 비었지만 지식은 충만한 '신여성'은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주목했습니다. 영화는 헌책방에서 낮잠을 자는 제문에서 시작해 같은 헌책방에서 해효의 모습으로 마무리가 되죠. 이 둘은 과거 두 사람 모두 좋아했지만 이별하게 된 순이와의 관계 때문에 28년 간 서로를 잊은 듯 멀리 살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서로를 그리워하고 재회를 꿈꾸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여성은 이 두 장면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와 영화의 스토리를 윤동주 시인과 연결지어 해석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순이’라는 시를 극 중 이름으로 썼듯이 장률 감독은 윤동주 시인을 모티브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죠. 윤동주 시의 특징이라면 잃어버린 것들, 즉 고향, 친구, 시간을 그리워하고 그 상실감으로부터 회복하는 것을 꿈꾸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한 사람(제문 혹은 해효)이 다른 한 사람(해효 혹은 제문)을 그리워하고 순이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상상하는 스토리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 ‘순이’가 아니라 제문과 해효가 서로를 또 과거를 그리워하는 ‘현재’ 입니다. 한 마디로 영화는 그리움과 회복을 바라는 마음을 시처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책사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을 한 장면으로 뽑았습니다. 바로 소담이 헌책방의 새 주인 유키(아마모토 유키)와 송전탑(철탑) 밑에서 입을 맞추는 장면입니다. 소담은 후코오카 어디에서나 보인다는 송전탑이 보이지 않자 그것을 찾아내는 게임을 제안하죠. 팀이 된 소담과 유키는 조금 숨을 몰아쉴 정도로 뛰어다니고 마침내 송전탑을 찾게 됩니다. 이때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끼며 두 사람은 가볍게 입을 맞춥니다.



 물론 이 입맞춤은 이렇게 해석해 볼 수도 있습니다. 윤동주가 죽음을 맞이한 후쿠오카 땅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이 입맞춤을 할 수도 있고, 근대를 상징하는 송전탑 아래에서 과거와 현재가 뒤섞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한국과 일본, 과거와 현재의 만남은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순간에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악수도 포옹도 아닌 입맞춤으로 이 둘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죠. 입맞춤은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인정에서 나오는 인사법이니까요. 그리고 입맞춤의 주체는 한국과 일본, 과거와 현재 뿐만 아니라 소담 내면의 여러 자아들 사이의 합일로 확장시켜 읽어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럼에도 입맞춤이 아닌 다른 표현 방법은 없었을지 의문점은 계속해서 가져볼 수 있겠죠.


자막달린 중국 영화는 필요 없는 자영업은 공원에서 소담과 한 중국 여성이 서로 각자의 언어로 대화하는 장면을 차이나는 한 장면으로 선정했습니다. 소담은 벤치에서 혼자 울고 있던 그녀에게 다가가 왜 여기서 울고 있는지 묻고 그녀는 그런 소담에게 중국어로 자신이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말해줍니다. 아무런 통역도 없지만 소담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죠. 대화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서면서 소담에게 중국어를 못하는데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냐고 묻는 제문과 해효에게 소담은 이렇게 답합니다. “우린 너무 긴장하고 살아서 그래요” 이 대사는 소담의 자유로움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음은 준비되었지만 말하지 못했던 것, 다시 말해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경계에서 긴장을 조금 풀고 편안한 상태를 갖춘다면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죠. 이 대사처럼 우리는 너무 긴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또 편안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인문학 드레싱’

이번에는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의 두번째 코너. 영화를 보고 떠오른 역사, 문학, 음악, 철학 등 인문학적 감성을 더하여 더욱 풍요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시간, ‘인문학 드레싱’입니다.

 자영업이 가져온 드레싱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자영업은 윤동주 시인을 드레싱으로 가져왔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장률 감독의 영화에서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그런데 윤동주 시인이 영화 <후쿠오카>와 어떤 관련이 있길래 감독은 ‘순이’를 좋아했던 해효의 가게에 윤동주의 ‘자화상’이 붙여놓고 10년간 말문을 닫은 가게 단골이 ‘사랑의 전당’을 읊게 한 것일까요? 이 물음은 시인의 생애를 살펴보면 해결이 됩니다. 우선 시인은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을의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망국의 설움을 갖고 이주한 조선인들이 조국이 다시 밝게 빛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어졌습니다. 이곳에서 윤동주는 명동(明東)소학교를 졸업하고 가족이 용정으로 이주해 용정에 있는 중학교를 다니게 됩니다. 이후에 또다시 가족을 따라 평양으로 가 숭실(崇實)중학교로 전학하게 되지만 학교에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학교가 폐교됩니다. 그래서 윤동주는 다시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光明)학원을 졸업하고 우리가 알고 있듯이 서울의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현재의 연세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죠. 졸업 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릿쿄[立敎]대학, 교토의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을 차례로 다닙니다. 그러던 중 1943년 항일운동에 참여했다는 일제의 체포로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이 되고 광복을 조금 앞두고 이곳에서 2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렇듯 윤동주 시인은 어느 한 곳에 정착하여 머무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주를 반복하는 경계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시인 윤동주(1917.12.30 ~ 1945.2.16) (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영화 속 제문과 해효가 만나지 않았던 28년이라는 시간은 윤동주의 삶이 지나온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영화는 윤동주의 삶을 반추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이 시를 통해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처럼 제문과 해효도 자신들의 과거를 계속해서 회상하고 또 시인이 경계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것처럼 소담도 계속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해가고 있기 때문이죠. 소설처럼 이야기를 풀어가는 보통의 영화들과 다르게 시처럼 한 구절 한 구절에 의미를 담아낸 것도 장률 감독의 문학적 감수성의 표현이자 윤동주 시인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윤동주의 시가 읽어보고 싶습니다. 신여성이 가져온 시 한편을 통해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유고작인《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에 수록된 <별헤는 밤>입니다.


윤동주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꿈꾸미는 후쿠오카와 관련된 드레싱을 가져왔습니다. 바로 후쿠오카 아시아 영화제(Fukuoka Asian Film Festival, FAFF)입니다. 1976년부터 준비해 1987년부터 매년 여름 열리는 영화제입니다. 마에다 슈이치로(前田秀一郎)라는 영화평론가와 그의 아내가 직접 주최하는 행사이죠. 그렇기 때문에 흔히 영화제하면 생각나는 휘황찬란한 모습이 아니라 작은 소극장을 빌려 진행되는 작은 행사입니다. 영화 역시 독립영화를 위주로 다루고 있죠. 한편 후쿠오카 시에서 두 부부에게 함께 영화제를 진행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시에서 함께 주최를 한다면 보다 큰 규모의 행사가 될 수 있지만 부부는 이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공공기관 주최 행사의 성격과 민간 주최 행사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후쿠오카 시에서는 아시아 국제 영화제를 따로 만들어 운영을 하고 두 부부는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영화제를 열고 있다고 합니다. 두 개의 후쿠오카 영화제. 언젠가는 꼭 가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책사는 이어서 후쿠오카에 대한 이야기를 인문학 드레싱으로 가져왔습니다. 후쿠오카의 이름에 관련한 이야기와 후쿠오카와 우리 역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후쿠오카의 이름에 관련해서 후쿠오카는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후쿠오카와 하카타입니다. 하카타는 후쿠오카의 옛 이름으로 에도시대(1603~1868) 때부터 후쿠오카라는 지명이 붙여진 것이죠. 다시 말해 하카타라 불리어 온 시대가 압도적으로 길기 때문에 후쿠오카가 속한 규슈 외의 지방 사람들에게는 하카타라는 이름이 더 익숙합니다. 그래서 후쿠오카의 명물에는 하카타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죠. 예를 들어 가장 유명한 것으로 하카타 라면이 있지요.


후쿠오카의 밤거리 (사진 출처 : 후쿠오카시 공식 시티 가이드 요카 나비, https://yokanavi.com/ko/feature/157800/)


언제부터 일까요? 바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입니다. 이때 일본으로 가장 많이 건너간 직업은 도공(陶工)이죠. 420년이 넘은 아주 오래된 도공의 역사가 일본에 있는 것이죠. 후쿠오카에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가고시마 현에는 이들의 역사를 다루는 심수관 박물관이 있습니다. 심수관은 일본에 끌려와 사쓰마도기를 만든 심수관가(家)를 총칭하는 말로 심수관가는 사쓰마(현 가고시마)번에 소속되어 사족(士族·사무라이) 대접을 받으며 대대손손 도자기를 빚어왔습니다. 그들이 빚어온 ‘사쓰마야키(薩摩燒)’는 일본 도자기의 대명사가 되었죠. 현재 심수관은 15대 심수관이고 14대 심수관은 작년 2019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고인은 조선 도공의 망향을 다룬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우리에게는 《료마[]는 간다》라는 책으로 알려져 있죠)의 1964년 작 소설 《고향을 어찌 잊으리오 를 통해 일본내에서도 유명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 분은 1974년 서울대에서 강연을 하기도 하였는데 이때 한 일화가 있어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당시 고인은 일제 식민 지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에 그는 "(일본이 저지른 죄가 큰 것이기는 하나) 거기에만 얽매일 경우 젊은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여러분이 36년을 말한다면 나는 370년을 말해야 하지 않겠냐”라고 답해 화제를 모은 것이죠. 영화 <후쿠오카>에서 보이는 한국, 중국, 일본의 허물어진 경계와 이 답변을 연결시켜 본다면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차이나는무비플러스> 장률 감독의 <후쿠오카> 편 마치겠습니다.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 



ㅣ팟캐스트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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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podbbang.com/ch/13254        


또 있습니다. 팟티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podty.me/cast/18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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