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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란 Jul 29. 2020

대만 최고 흥행영화 <하이자오 7번지>

팟캐스트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입니다. 오늘은 대만영화 시리즈 3탄! 웨이더셩(魏德聖) 감독의 <하이자오 7번지(海角七號)>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영화 <하이자오 7번지> 포스터 (출처 : 다음 영화)


 이 영화는 2008년 제 13회 부산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에 초청작으로 처음 국내에 소개되고, 2010년 3월에 개봉되었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흥행에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대만 영화 역사에서는 큰 의미를 가지는 영화입니다. 2008년 첫 개봉 당시 대만 영화계는 산업 자체가 거의 붕괴되어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대만내 제작 영화는 당시 거의 전무했으며 그나마 영화가 제작되더라도 관객들의 외면으로 극장에서 거의 상영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로는 대만 영화계가 1980년대부터 30여 년 가까이 오로지 영화제 수상에 초점을 맞춘 영화만 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비정성시(悲情城市)>를 만든 허우샤오시엔(侯孝賢) 감독, <하나 그리고 둘>의 에드워드 양 감독과 같은 소위 대만 영화 뉴웨이브 감독이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대만이 세계 무대에서 관심을 받게 됩니다. 대만 정부는 이로 인해 얻어지는 정치적 효과를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대만 영화에 적극적인 후원을 하기 시작합니다. 지원을 받은 영화제 수상이라는 감독 스스로의 동력이 후원자들의 요구와 만나면서 이때부터 영화제의 성향에 맞춘 영화들이 양산된 것이죠.


시장과는 상관없이 영화제에만 집중하는 과정에서 점차 대만 영화는 자국 내 관객들의 외면을 받게 되고 그것이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정점에 이르게 됩니다. 어떤 대응책에도 문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이때 대만 영화의 새로운 희망을 보여준 것이 바로 <하이자오 7번지>입니다. 이 영화는 대만 영화 역사상 지금까지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 관객 수를 동원하였습니다. 그 당시 이 영화의 수익이 원화로 200억 원 정도라고 하죠. 대만 영화 중 흥행한 영화로 손꼽자고 한다면 우리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나 <색,계>를 떠올리기 쉬운데 실은 이 영화가 대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화였던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은 이 영화가 대만 내 전체 영화 박스오피스에서는 17위에 머무른다는 것입니다. 1위부터 16위는 모두 할리우드 영화이고, <하이자오 7번지> 영화 이후 대만 내에서 대만 관객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것은 여전히 아쉬운 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영화 <하이자오 7번지> 중국・대만판 포스터 (출처 : 다음 영화)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오면 역시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하이자오 7번지>에서 ‘하이자오(海角, 해각)’은 곶을 의미하고 상징적으로는 바다의 끝, 머나먼 곳을 의미합니다. 중국 사자성어 천해해각(天涯海角)는 아득히 먼 곳 또는 두 사람 사이에 아주 먼 거리를 의미하기도 하지요. 영화의 배경이 되는 헝춘(恒春)이라는 곳 역시 실제 대만 최남단에 위치한 작은 해안 마을입니다. 또 영화 속에서 오래 전에 보낸 편지를 주인에게 돌려줄 때 역시 ‘해각 7호’라는 주소가 적혀 있어 지금의 사람들은 주소를 찾지 못해 당황하는 장면도 나오죠. 결국 영화 속에서 ‘해각’은 헝춘의 옛이름이자 주인공들 사이의 거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은 아직도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나요? 부치지 못한 7통의 러브레터”


영화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영화는 주인공들 사이의 거리를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대만의 일본 식민 시기 바닷가 오지마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일본인 선생님은 한 대만 학생과 미묘한 감정을 나누었지만 1945년 패망 후 일본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고, 이때 배에서 그녀에게 편지를 남기게 됩니다. 이 편지가 60년만에 돌아오면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 넘어오게 되죠. 실제 있었던 이 사실을 모티브로 감독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록음악에 환멸을 느끼고 고향 헝춘에서 임시 우체부로 일하게 된 아가(판이찬 분)는 우편물을 배달하지 않고 방안에 쌓아두기만 하였는데 이 우편물 더미 속에 그 옛 편지가 있던 것입니다. 한편 마을은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여느 시골 도시와 마찬가지로 게속해서 호텔이 들어서고 젊은 사람들은 빠져나가는 상황이었죠. 이때 마침 록페스티발이 열리게 되고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마을 사람들도 우여곡절 끝에 밴드를 이루고 그 속에서 각자의 즐거움을 찾게 됩니다. 이러는 과정에서 마을에 일을 위해 내려온 도모코(다나카 치에 분)는 궂은 일에 지쳐 술을 마시게 되고 우연히 만난 아가와 하루를 같이 보내게 되죠. 갑작스럽게 이어진 두 사람은 점차 감정을 쌓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영화는 역사 이야기를 시작으로 현재 대만인들의 모습들 또 대만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까지 여러 이야기들이 잘 어우러지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또 아슬아슬하게 감정을 이어갑니다. 중간중간 영화적인 장치에서 아쉬움도 있긴 하지만 대만 사람들에게는 일본 식민 당시의 기억이 향수로 다가오고 영화 전반에 흐르는 휴먼 코미디적인 요소가 큰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한편 영화는 중국 본토에서도 개봉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흥행에 실패하였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중국 내 반일 감정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식민지 지배 당시 일본인 선생님으로 있었던 일본인과 대만인 간의 사랑을 다루었다는 것이 일본에 대한 무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는 것으로 읽힌 것입니다. 또한 개봉 당시 영화를 둘러싼 정치적인 논란이 있었다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 OST 중에 밴드가 마지막에 부르는 <국경의 남쪽(国境之南)>이라는 노래가 문제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남쪽은 영화의 촬영지인 헝춘인데, 이것이 국경을 대만 국경으로 한정지은 것이라는 해석이 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대만 영화가 국제 영화제에서 호명되는 것에 대한 갈등도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둘러싼 사건들에서도 대만과 중국 본토 사이의 갈등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의 킬러 콘텐츠!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말그대로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영화 속에서 죽이고 싶은 캐릭터와 이야기 혹은 더욱 살리고 싶은 캐릭터와 이야기, 장면들을 이야기 하는 코너입니다. 60년 만에 온 편지를 모티브로 현재 대만인과 일본인 사이의 사랑 이야기와 편지가 배달된 바닷가 마을의 밴드 이야기를 담은 영화 <하이자오 7번지>에서는 어떤 아쉬움과 즐거움이 있을까요?


이루고 싶은 꿈이 많아 잠도 많은 '꿈꾸미'는 ‘투비’, 살리고 싶은 캐릭터로 60년전 일본인 선생님(아타리 코스케 분)을 뽑았습니다. 영화는 일본 식민 지배 하에 있던 대만에서 일본에 제국 교육을 하기 위해 왔던 선생님과 한 여학생 사이에 싹텄던 사랑을 이야기 하죠. 식민과 제국의 역사라는 거대 담론을 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만남이라는 미시적인 관계로 바꾸어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최근 과거사를 이야기하며 거시 담론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는데, 그 당시에도 물론 사람들의 삶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밥을 먹고, 가끔 마을 사람들과 어우러져 시간을 보내기도 했을 것입니다. 제국과 식민, 국가와 민족과 같은 거시적인 이야기가 아닌 미시적인 개인의 일상을 생각해본다면, 일본인 선생님 역시 제도와 역사에 희생당한 한 사람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국과 식민의 과정 속에서도 사랑은 꽃피고 있었으며 이것이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죠. 여기서 그에게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어떤 운동을 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가혹한 선택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막연히 잘못이라고 할 수 없는 개인의 사랑을 파괴하고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는 역사와 제도, 체제를 생각하면 이 세상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구분해 나누어 보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것 같습니다.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스펙트럼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 선생님이 어떻게 대만에 오게 되었고 학생과 어떤 과정으로 사랑에 빠지게 되고 왜 일본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으며, 편지는 왜 전달되지 못한 것인지 등 보다 많은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영화 속에서 그의 이야기들이 좀 더 살아났으면 보다 풍부한 감성을 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또한 역사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투비’로 일본인 선생님을 뽑았습니다.


영화 <하이자오 7번지> 스틸컷 (출처 : 다음 영화)


자막달린 중국 영화는 필요 없는 자영업은 ‘낫투비’, 죽이고 싶은 장면을 뽑았습니다. 아가와 도모코가 갑작스럽게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되는 장면입니다. 영화 초반부터 이 장면 전까지 두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만나는 장면은 그다지 많이 나오지는 않는데 어느 날 갑자기 술에 취한 도모코가 아가의 집 유리창을 깨버리고 하루를 같이 보내고 그러면서 호감을 가지게 되는 모습이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특히 대만 영화가 청춘의 사랑을 다루는 방식에 익숙해진 다음 이 영화를 보게 되니 이 모습이 더 괴리감이 크게 느껴져 영화의 감성과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사랑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가 정해진 것이 없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타오를 수 있는 것이라 하지만 과거 부치지 못한 편지 이야기, 밴드 이야기 등 가야할 길이 먼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너무 짧게 비추어진 것 같아 더 큰 아쉬움이 생겨납니다. 오히려 이 장면을 죽이고 두 사람이 호감을 가지게 되고 이후 변화하는 감정선을 조금 더 보여주었으면 또다른 감성을 가진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영화 이야기에 조미료를 채워줄 책사는 영화 속 조연들 중 한 인물을 ‘투비’로 선정했습니다. 80세 우체부 할아버지로 나온 마오 할아버지(린쭝런 분)입니다. 영화의 배우들을 살펴보면 영화와 현실이 맞닿는 부분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주인공 아가를 연기한 판이찬(范佑臣)은 실제 대만 가수에서 활동을 하면서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중국판 OST를 부르기도 하였죠. 여주인공 도모코를 연기한 다나카 치에(たなかちえ)는 일본인이지만 국립대만사범대학교에서 공부해 대만 문화와 언어에 익숙한 배우죠. 영화에서 록페스티발에 함께한 일본 가수 아타리 고스케도 실제 가수입니다. 주인공들만 보아도 감독이 배우들의 실제 모습과 캐릭터 간의 상관 관계를 많이 고려한 것으로 보이는데, 조연들 중 주목해볼 인물이 바로 마오 할아버지를 연기한 린쭝런(林宗仁, Johnny C.J Lin)입니다. 영화 속에서 그는 동그란 기타처럼 보이는 대만의 전통 악기인 월금으로 밴드에 참여하였는데, 실제 월금 연주자이기도 합니다. 60이 넘는 나이에 데뷔작이기도 한 이 영화를 통해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리한 일정 때문이었는지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전문 배우라고 해도 믿을만큼 훌륭한 연기를 보였고 또 조연들의 이야기가 보다 주목받을 수 있는 ‘투비’입니다.


영화 <하이자오 7번지> 스틸컷 (출처 : 다음 영화)


지갑은 텅 비었지만 지식은 충만한 '신여성'은 도모코 할머니의 이야기를 ‘투비’, 더 살리고 싶은 캐릭터로 뽑았습니다. 영화 <러브레터>나 <클래식>에서 처럼 편지는 수진자와 발신자가 주고 받는 장치로 영화 속에서 활용되는데, 이번 영화 <하이자오 7번지>에서는 그런 모습이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60년 전 과거에서 건너온 일본인 선생님의 신호를 누가 받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아가와 토모코의 이야기는 할머니의 스토리와 연결되지 않고 결국 할머니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되죠. 할머니도 여전히 그 시간을 그리워하고 그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있었다면 할머니와 일본인 선생님의 이야기가 아가와 도모코의 이야기와 겹쳐지면서 보다 깊은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시간을 오가는 영화에서는 시간을 넘어서고 마음이 전이되는 장면이 중요하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그런 장치들이 조금 더 부각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인문학 드레싱’

 이번에는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의 두번째 코너. 영화를 보고 떠오른 역사, 문학, 음악, 철학 등 인문학적 감성을 더하여 더욱 풍요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시간, ‘인문학 드레싱’입니다.


먼저 책사는 마오 할아버지와 관련된 악기,  월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월금(月琴)은 중국에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중국의 월금은 4현의 목이 짧은 모습입니다. 이것이 점차 퍼지면서 고구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서도 목이 긴 형태로 변형된 월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에는 3줄로 된 악기, 샤미센(さみせん[三味線])이 있습니다. 이 역시 월금의 일본식 변형이라고 볼 수 있죠. 악기의 변화를 살펴보아도 역시 중국, 대만, 한국, 일본이 아주 오랫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시간을 보내왔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죠.

대만과 한국과 비슷한 역사를 이야기하자니 잊혀지지 않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오키나와’ 입니다. 2019년 10월 31일 오키나와의 슈리성 불타버린 사건 기억 나시나요? 이때 많은 분들의 반응 중 하나가 오키나와가 독립국가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키나와에는 1406년 쇼(尙)씨에 의해 통일왕국인 류쿠 왕국(琉球王国, 1429~1879)이 세워졌고 그 이후 계속해서 독립적인 문화와 언어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조공국이 되었습니다. 이때 일본은 중국과 무역을 하는 류쿠왕국의 조공을 취하기 위해 독립국의 지위를 꽤 오랜기간 유지시켰는데, 사실상 이때부터 흡수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중일 월금의 각각 변형된 형태들(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또한 오키나와는 지리상으로는 일본보다는 대만에 가까워 대만과 또 문화적인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데 이 연결고리 중 하나가 월금이기도 합니다. 류큐왕국은 중국과의 무역 과정에서 수입된 이 악기를 궁중음악에 채택했고 ‘산신’(三線, さんしん)이라는 명칭으로 불렀습니다. 이것이 16세기 후반경 오사카의 사카이 시(堺市)에 전해지면서 본격적으로 개량되었고, ‘샤미센’으로 정착한 것이죠. 오키나와 현에서는 현재까지도 이 악기를 가리키는 호칭으로 ‘산신’과 ‘샤미센’의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한다고 하니 그들만의 문화가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죠.

동아시아 역사에서 잊혀지고 있는 독립국 오키나와의 이야기와 월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이자오 7번지>에 얹어보았습니다. 


신여성은 인문학 드레싱으로 노래를 가져왔습니다. 이미자 선생님이 부른 <섬마을 선생님>입니다. 


“해~당화 피고지는~ 섬마을에~

철새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19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이름은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 마오


구~름도 쫓겨가는~ 섬마을에~

무엇하러  왔는가 총각 선생님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시름을 달래보는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떠나지 마오”


영화 속 도모코와 일본인 선생님을 보면 이 노래가 떠오릅니다. 섬이라는 외딴 곳에 찾아온 외지인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 영화와 이 노래에서 공유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도모코의 흰 코트도 첫사랑의 하얀 마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이 마음도 결국 국가간의 전쟁과 갈등으로 이루어지지 못하였죠. 우리나라 역시 이런 아픔은 여럿 겪은 적이 있었죠. 일본과의 관계 외에도 남북 전쟁 당시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의 편지가 영화 속 편지처럼 언젠가 서로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져온 드레싱이었습니다.


꿈꾸미는 심리학 용어를 <하이자오 7번지>에 얹을 드레싱으로 가져왔습니다.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입니다. 러시아의 심리학자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이 발견한 심리적 효과로 우리에게는 아직 끝마치지 못한 일을 마음 속에서 쉽게 지우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자이가르닉은 한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들이 어떻게 수많은 주문을 헷갈리지 않는지 궁금해졌고, 계산을 마친 후 웨이터에게 자신이 주문한 메뉴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기억력 좋던 웨이터들은 이번에는 전혀 대답하지 못하였죠. 여기에서 착안해 실험을 하게 됩니다. 그 실험에서 한 그룹에게는 방해가 있는 환경에서 다른 그룹은 어떤 방해도 없는 상태에서 업무를 수행하게 한 뒤 어느 그룹이 자신의 업무 더 잘 기억하는지 확인해본 것입니다. 그 결과 방해를 받은 쪽의 업무 기억이 더 좋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완결되지 못한 일에 대해서 계속해서 미련을 두고 기억하려는 성향, 경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죠.

이러한 효과를 생각해보면 <하이자오 7번지>에서 60여년 간 전달되지 않은 편지가 끝내 전달되는 ‘자이가르닉 효과’를 잘 보여준 영화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또 이 효과를 가장 잘 활용하는 분야 중 하나가 드라마입니다. “To be continue...”로 끝나버리는 드라마는 이 효과를 이용해 다음 편을 계속 생각하게 하고 기대하게 만드는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마무리를 잘 짓는다면 이 효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영화 속 편지처럼 끝나지 않은 것에 계속해서 미련을 두는 것도 우리의 자연스러운 모습인 것 같습니다.


자영업은 영화 속에 등장한 괴테의 시를 인문학 드레싱으로 소개했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아가와 아타리 코스케가 각각 중국어와 일본어로 <들장미>라는 노래를 듀엣으로 부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곡은 원래 슈베르트가 괴테가 쓴 시를 보고 만든 가곡입니다. 그럼 괴테의 시 <들장미>를 감상해보겠습니다.


들장미(Heidenroslein) –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한 소년이 장미를 보았다

들에 핀 장미꽃

너무도 싱그럽고 해맑아

소년은 가까이서 보려고 달려갔다

기쁨에 겨워 바라보았다


장미, 장미, 붉은 장미

들에 핀 장미꽃.


소년이 말했다 너를 꺾을테야

들에 핀 장미꽃

장미는 말했다

널 찌를테야 나를 영원히 잊지 못하도록

난 고통 받지 않을거야


장미, 장미, 붉은 장미

들에 핀 장미꽃


그러나 거친 소년은 꺾고 말았다

들에 핀 장미꽃

장미는 자신을 방어하며 찔렀다

하지만 외침소리도 소용없이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장미여, 장미여, 붉은 장미여

들에 핀 장미여.


이 시 속 장미꽃과 소년의 관계를 식민지 대만과 일본과의 관계에 비추어 볼 수도 있습니다. 일본이 식민지 대만을 발견하고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식민지로 삼고 황민화 교육을 펼치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죠. 어떠신가요? 이 시를 그렇게 볼 수 있을까요? 이 시를 읽고 가곡에도 관심이 생기신다면 영화 속 두 사람이 부른 노래를 찾아 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중국어와 일본어 듀엣으로 부를 때 독특한 감성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차이나는 한마디

영화 속 중국어 한마디를 배우는 시간 ‘차이나는 한마디’ 입니다. 오늘의 차이나는 한마디는 영화 마지막 아가가 무대에 오르기 전 도모코를 끌어안으며 그녀에게 남긴 대사입니다.


“남아줘, 아니면 내가 따라갈게.”

중국어로는 “留下来或者我跟你走.”


“留下来 liúxiàlái 或者 huòzhě 我跟你走 wǒgēnnǐzǒu.”

(리우씨아라이 후어즈어 워건니저우)


 그럼 다음에 또 좋은 영화로 만나뵙겠습니다. 再见�~



ㅣ팟캐스트ㅣ
 더 자세한 내용을 들으시려면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www.podbbang.com/ch/13254        


또 있습니다. 팟티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podty.me/cast/182234 


ㅣ네이버 오디오 클립ㅣ

오디오클립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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