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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기자의 긁적끄적 Dec 11. 2022

우리는 몰락하고 있는 게 아닐까, 뚝뚝 끊어진 채로

보이지 않으면 없나요(1)

이 글은 소명출판의 문예지 『문학인(2021년 겨울호)』에 실린 제 산문 「보이지 않으면 없나요」를 옮겨온 포스트입니다. 왜 인제사 올리냐고 물으신다면, 저작권이라는 게 그런 것이더라고 답하겠습니다... 1년 전에 쓴 글이라 문장도 엉성하고 지금의 제 생각과 다른 점도 곳곳에 보여 민망합니다. 다시 보니 솔직히 대대적 수정 땡기는데 꾹 참고, 기왕 쓴 거 웹에 하나쯤 아카이빙하는 차원에서 올림요. 아무튼 좋은 기회를 주신 문학인 편집부에 감사드리며! 글은 분량사정상 2회로 나눴습니다.


선이란 점과 점의 연결이다. 그렇다면, ‘시선’은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연결이 아닐까. 선이 있다는 건 곧 2개 이상의 연결된 점이 있다는 뜻인 것처럼, 우리는 무언가에 대한 시선을 갖는 순간 대상과 연결된다. 말하자면 시선이란 그 자체로 관계맺기다. 시선이 따뜻하든 차갑든, 올곧든 왜곡돼 있든, 시선이 연결을 전제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반대로 ‘본다’는 행위가 없으면 시선도 생기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면 연결도 없고 선도 없다. 만나는 사람과 사는 장소가 신분에 따라 촘촘히 나뉜 계급사회에서 시선은 늘 짧게 끊겼다. 파편화된 시선들은 각자의 공간 안에서만 맴돌았다. 왕족의 시선은 궁전 안에서만, 시골 농부의 시선은 농촌에서만, 거지의 시선은 뒷골목에서만. 궁전 앞에 몰린 서민들을 보고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된다”고 말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일화는 와전이지만 오래 살아남았다. 18세기 프랑스 궁전에서 자라 평생 왕족과 귀족만 만나온 어떤 사람이 빵 없는 이들의 처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설정은, 사람들이 듣기엔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때문에 건설적인 공동체는 서로 다른 처지인 사람들의 시선을 꾸준히 만나게 한다. 누구나 자연스럽게 자기 주변을 위주로 눈길을 두기 때문에, 의식적으로라도 새로운 시선을 계속 만들어준다. 민주주의는 어쩌면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시선을 늘려 온 과정일지도 모른다. 주거·교육정책의 소셜믹스, ‘나 여기 있음’을 보여주는 집회, ‘우리가 알아야 할 어떤 삶’을 의제화해 보여주는 언론 등이 그런 장치다. 다른 삶을 간접 경험하게 해 주는 문학과 영화도 같은 역할을 한다. 서로가 연결될수록, 다시 말해 ‘보일수록’ 사회가 단단해진다는 교훈을 지난 역사에서 배운 결과다.


몰락하는 공동체는 반대로 작동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의 시선을 촘촘한 칸막이로 차단한다. 칸막이는 소득수준일 수도, 학벌일 수도, 인종일 수도, 지역일 수도, 성별일 수도 있다. 칸막이가 많고 높을수록 몰락에 가까운 사회다. 곳곳에 수많은 ‘그들이 사는 세상’이 만들어지고 그보다 더 많은 게토가 생겨난다.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보일 수 있는 기회’조차 불균등하게 배분되기 시작한다. 높은 세계는 어디서 봐도 보이는데 낮은 세계는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도입부처럼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어쩌다 보니 언론사 밥을 먹으며 사회를 가까이서 만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보고 있는 게 맞다면, 나는 지금 한국 사회가 사람들의 시선을 뚝뚝 끊어대며 몰락이 기다리는 방향으로 내달리는 것만 같아서 무섭다.


뉴시스


'청년들'이 분노했다고?

 

지난해 여름 내가 느꼈던 어떤 위화감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당시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른바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다. 언론사들은 너나없이 ‘인국공 사태에 청년들이 분노한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힘든 공채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손쉽게’ 정규직 일자리를 얻은 비정규직 직원들을 보며 분노를 터트렸다는 이야기다. 헤드라인은 주로 이런 식이었다. 「취준생의 울분 “2년간 준비했지만 기회 박탈, 그걸 따지는 겁니다”」, 「“기회는 불평 등 과정은 불공정, 결과 역차별……노력하면 바보”」…….


내게 위화감을 준 것은 이슈 자체가 아니라, 신문지 위에 오른 이름들 이 뚜렷하게 보여주는 어떤 공통점이었다. 그들은 십중팔구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A모씨이거나, 서울 한 대학교의 졸업을 앞둔 B모씨였다. 서울의 대학에 다니거나 다녔던 취업 준비생들이 알파벳만 바꿔가며 계속 등장했다. 심지어 한 종합일간지는 이른바 ‘SKY’ 대학교를 나와 연봉 8,000여만 원을 받는 인국공 사무직 직원 한 명을 인터뷰해 기사를 내기도 했다. 그는 명문대를 나와 토익 960점까지 받은 자신이 잘못 살았던 거냐며 울분을 토했다. 정규직이 된다는 보안요원들은 기존 사무직 정직원들과 다른 TO로 전환되는 것이었지만 오해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갑자기 언론비평을 하자는 건 아니다. 인터뷰이들의 감정까지 비난할 마음도 없다. 다만 그들의 목소리를 다룬 언론의 태도가, 우리가 주변 세상을 볼 때 빠지기 쉬운 어떤 함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때 나온 기사들은 대부분 사회부 저연차 기자들이나 20대 중반 인턴 기자들의 취재에서 나왔다. 기자는 서울권 대학 출신 비중이 상당히 높은 직군이고, 그런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기자들은 자연스럽게 주변 인맥을 통해 청년 취재원을 구했을 것이다. 그래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인국공 사태’ 몇 주 동안 한국의 ‘청년세대’는 입시 성적 상위 10%의, 서울 명문대에 다니거나 졸업한, 괜찮은 기업의 정규직(주로 사무직) 일자리에 도전해볼 수 있는 계층으로만 나타났다.


분절된 세계의 다른 쪽은 어땠을까. 당시 내가 직접 인터뷰한 고졸·전문대 취재원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정부의 소통에 문제는 있지만, 오래 일해 전문성을 갖춘 이들에게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고 그들은 말했다. 하지만 당시 미디어는 ‘서울의 세계’에만 돋보기를 들이밀었다.


대학생 시절의 내게도 취업 준비 중인 후배들 몇몇이 ‘학벌이 애매한 것 같다’는 고민을 가끔 토로했다. 대개 좋은 고등학교를 나오거나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서울의 이른바 ‘인(in)서울 대학에 가뿐히 들어온 후배들이었다. 왜 그들은 ‘인서울’에 다니면서도 학벌을 불안해했을까? 주변 인맥이 자신과 비슷하거나 학벌 스팩트럼상 더 상위인 대학생들로 구성됐기 때문이었다. 또는 자신이 ‘노려 볼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경쟁자들의 학벌이 더 높아서일 것이다.


고백하자면 잘난 척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그런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청소년기엔 그나마 가족의 직업 특성상 남들보다 조금 더 다양한 계층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갖게 된 뒤로는 세계가 조금씩 좁아져 가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가깝게 지내는 이들이 누구인지 돌아보다가 아찔해질 때가 종종 있다.


우리는 ‘인서울 대학생’ 같은 이들이 청년세대의 극히 일부라는 것을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고 그들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한다. 물론 그 기자들의 잘못도, 그 후배들의 잘못도 아니다. 이건 사회가 개인들의 세계를 어떻게 구성해주느냐의 문제다. 한국 사회에서 각자의 세계는 어릴 때부터 갈라져 점점 멀어진다. 대학 서열에 따른 간극도 크지만 대학과 대학 밖의 격차도 심각하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신입생의 가구소득을 보면, 대학 구분(일반대·전문대·교육대·사립대)과 설립 구분(국공립·사립)을 막론하고 고소득자는 늘고 저소득자는 줄어 왔다*(1). ‘대학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돼야 한다’라는 명제 자체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지금의 대학은 그나마 있는 사다리조차 톱으로 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경향신문, 「저소득층 ‘대학생 될 기회’ 갈수록 줄어든다」, 2021.10.11.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10101618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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