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으면 없나요(2)
이 글은 소명출판의 문예지 『문학인(2021년 겨울호)』에 실린 제 산문 「보이지 않으면 없나요」를 옮겨온 포스트입니다. 왜 인제사 올리냐고 물으신다면, 저작권이라는 게 그런 것이더라고 답하겠습니다... 1년 전에 쓴 글이라 문장도 엉성하고 지금의 제 생각과 다른 점도 곳곳에 보여 민망합니다. 다시 보니 솔직히 대대적 수정 땡기는데 꾹 참고, 기왕 쓴 거 웹에 하나쯤 아카이빙하는 차원에서 올림요. 아무튼 좋은 기회를 주신 문학인 편집부에 감사드리며! 글은 분량사정상 2회로 나눴습니다.
1편 읽으러가기:
우리는 몰락하고 있는 게 아닐까, 뚝뚝 끊어진 채로[보이지 않으면 없나요(1)]
https://brunch.co.kr/@chrbbg/265
대학생의 예를 들었지만 ‘안 보이는 존재’는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길거리에 장애인이 보이지 않아 의아해한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부족한 편의시설과 열악한 복지제도는 그들을 좁은 방이나 시설로 내몬다. 시선이 안 닿는 곳에서 그들은 비가시화되고 끝내는 없는 존재가 된다. 장애인 집회마다 등장하는 주요 구호가 ‘우리가 여기 있다’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은 타인의 시선 하나하나가 절실한 이들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서울 판자촌인 상계동 주민들을 강제이주시킨다. 원주민들은 용역 깡패까지 동원하는 국가에 저항하지만 결국 삶의 터전을 뺏기고 땅굴에서 살게 된다. 판잣집에 살 때 그들은 최소한 ‘보이는 곳’에 사는 ‘보이는 존재’일 수 있었다. 국가권력은 그들을 ‘안 보이는 곳’인 땅굴에 밀어넣었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2)는, 그래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3)는 서울에서 그들은 없는 존재로 잊혔다.
문제를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 버리는 ‘88년 스타일’은 오늘날 보기엔 극단적인 이야기 같다. 정말 그럴까? 불과 10년 전인 2011년 『한겨레21』 편집장이던 안수찬 기자(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는 민주정책연구원에 ‘가난한 청년은 왜 눈에 보이지 않는가?’라는 글을 기고했다. 빈곤 청년을 심층취재한 기사의 취재기인 이 글에서 안 교수는 ‘통계상으로는 명백히 존재하는 가난이 왜 보이지 않는지’ 묻는다. 달동네가 사라진 서울에서 빈곤의 주거지는 반지하로 숨었고, 가난의 일터는 수도권 변두리 공단으로 밀려났다. 도심 속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빈곤 청년들은 유니폼을 입고 “가난을 화장한다.” 안 교수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가난이 사라진 시공간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더 이상 가난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중략…) 가난이 대부분 체감되지 않는다면, 그 효과는 간단하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시선이 가닿지 않 는 곳에서 사람들이 계속 사라지고 있다.
누군가는 반박할 것이다. ‘나는 4년제를 나왔지만 주변에 고졸 친구가 있어서 잘 안다’라고. 맞는 말이다.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시야라는 것이 참 묘해서 어느 쪽으로 시선을 두느냐에 따라 보이던 것도 흐려지거나 밀려난다. 앞서 인용한 대학생들에게도 고졸이나 지방대 지인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직장 취업’에 시선을 맞춘 순간 주변부가 흐릿해지고, 쟁쟁한 대학 졸업생들이 뚜렷하게 보였을 테다. 사회 부정의에 분노하는 양심적 정치인이나 유명인사들조차 정작 자녀가 대학입시를 치를 나이가 되면 꼼수와 온갖 찬스, 때로는 불법적인 수단까지 동원해 가며 스펙을 만들어주곤 하지 않나.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른다. ‘소외된 이들이 안 보인다는 주장도 상층에서 본 관점 아니냐’라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보는 정보 공유 공간인 미디어에서 이미 그런 일이 벌어지는 중이다. 20대는 대학생으로, 30대는 깔끔한 셔츠에 사원증을 건 ‘MZ세대’로 표상하자고 공론장이 합의해버린 것이다*(4). 담론과 정책과 여론은 그들을 중심에 놓고 짜인다. 대학과 대학 밖의 격차를 다룬 기사를 쓰며 만난 고졸 취재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확실히 대학교 다니는 친구들은 기사도 많은데 우리와 관련된 기사는 별로 없었네요”(김모씨·22),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에 대한 기사라든가, 거의 한 번도 못 본 것 같아요”(최모씨·19) 이들의 소외감은 누가 설명해 줄 것인가.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누가 비난받아야 하는가? 쉬운 해답이 있다. 학벌이 애매하다며 걱정하는 ‘인서울 대학생’들을 자기 기득권도 모르는 ‘배부른 아이들’이라며 비난해버리면 편하다. 마찬가지로 도시 외곽 공단을 모르는 도심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을 ‘세상 물정 모른다’고 욕하면 손쉽다. 명쾌하다. 그러나 오답은 늘 가장 명쾌한 모습으로 학생을 유혹한다. 편한 비난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지경에 지금 우리는 서있다.
떨어짐이 곧 죽음을 뜻하는 사회라면, 시선을 위로만 둔다고 무작정 비난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세계로의 시선을 차단해버리는 사회라면, 시선을 멀리 두지 못하는 이들을 욕할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재난영화 속 빙하처럼 쩍쩍 쪼개지는 중이다. 건널 수 없는 틈이 점점 벌어지고, 발 늦은 이들이 서 있던 유빙은 떨어져나가 망망대해 끝으로 사라진다. 재난영화에서 비극은 그나마 무작위지만 현실에서는 추락의 순번이 정해져 있다. 약한 이들부터 떠내려간다. 무너지는 빙하를 피해 모두가 육지 쪽 고지대에 시선을 고정하고 달려가는 풍경이 그 뒤로 펼쳐진다. 누군가는 넘어진다. 그는 비탈을 따라 바다 쪽으로 미끄러져 사라진다. 영화는 그에게 카메라를 비추겠지만 현실의 카메라는 아닐 것이다. 현실에서는 누구나 넘어질 수 있는데도.
각자의 명쾌한 답을 찾는 대신, 함께 어려운 질문을 던져 보면 어떨까. 사회에 칸막이를 치며 다른 세계로의 시선을 끊는 이들은 누구인지, 생존을 위해 위쪽만 보며 미칠 듯이 달릴 수밖에 없도록 우리를 몰아넣은 이들은 누구인지 묻는 것이다. 물론 모두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거리로 나설 용기를 강요할 수는 없다. 다만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명쾌한 답’보다 한 발짝 더 디뎌볼 수 있을 테다. 답은 고르는 순간 멈추지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우리를 계속 나아가게 한다.
함께 던지는 질문을 어디서 시작할까. 사회가 쳐 놓은 칸막이를 넘어 우리가 서로를 보려 할 때, 당장의 내 주변보다 조금만 더 먼 곳으로 시선을 던져 볼 때, 전에 없던 점과 점의 연결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주 작지만 누구도 강제로 되돌릴 수 없는 변화다. 시선이 연결되면 서로의 세계를 알게 되고, 그렇게 서로의 세계를 계속 알아갈수록 거대한 빙하의 기울어진 윤곽이 모두에게 드러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세상을 자꾸 쪼개고 기울이려는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지점도 그로부터 멀지 않을 것 같다.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문명의 시작이 무엇이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부러졌다가 붙은 흔적이 있는 다리뼈’라고 답했다고 한다. 다리가 부러진 동물은 살아남을 수 없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쓰러진 채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된다. 그러나 부러졌다가 붙은 다리뼈는 그가 치유될 때까지 누군가 옆에서 도왔다는 증거다. 미드는 누군가 곤경에 빠진 다른 누군가를 돕는 그 순간에서 문명의 시작을 찾았다. 지금 한 번 더 우리의 다리뼈가 부러지려 하고 있다. 우리는 어느 방향을 골라야 할까. 좋은 방향을 고를 수 있다면, 우린 지금과는 다른 세계를 얻을 것이다.
*(2)당시 유행한 정수라의 노래 <아! 대한민국>(1983) 가사 중 발췌.
*(3)위의 노래.
*(4)가끔 다른 청년도 등장할 때가 있다. 편의점 조끼를 입고 가난한 표정으로 삼각김밥을 씹거나, 위험한 사업장에서 산업재해를 당할 때다. 이미지 또는 사건으로만 소비되는 것이다. 그들의 고통 말고 다른 이야기(사회지도층의 자녀 입시비리, 주식과 비트코인, MZ세대의 취미 등)를 할 때 언론이 그들에게 전화를 건 적이 얼마나 되나. 그들은 (언론이 필요로 하는 정도까지만)불쌍하거나, 때로는 죽어서야만 짧은 목소리를 겨우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