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언젠가부터 이상하게 느껴지는 한국인들의 말버릇이 있다. 제3자인 여성을 언급할 때 따라붙는 “여자앤데”, “여자분인데” 같은 추임새다. 이를테면 이런 말들이다. “우리 팀에 대리가 한명 있어. 엄청 웃겨, 여자앤데…”, “교수님이 새로 왔다? 여자분인데….”
남성만 그런다면 상당히 눈살 찌푸려지는 일이겠지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자주 쓴다. 여성을 비하하거나 한정 짓는 맥락에서 주로 쓰이는 말도 아닌 것 같다. 지금껏 본 바로는 정말 별 뜻 없이 ‘그 사람은 여자’라는 의미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딘가 석연찮다. 남성을 언급하면서 “남자앤데”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걸 생각하면 더 그렇다. 뭐랄까, ‘공정’하지 못한 것 아닌가 싶은 느낌도 들고…. 여하튼 한번 그렇게 의식해버린 이후, “여자앤데”는 잠들기 전 방 안의 모기처럼 내 머리 근처를 왱왱 맴돌기 시작했다.
하도 신경쓰여 한번은 취재원과 저녁을 먹다가 물었다. “왜 그러는 걸까요?” 그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글쎄요, 지칭되는 사람의 성별을 알리는 게 필요할 때가 가끔 있어서? 그냥 언급하면 대부분 남자를 지칭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취재원은 이어 설명했다. 사회적 ‘표준’이 오랫동안 남성중심이어서, 사람들도 무의식적으로 제3자를 남성으로 받아들인다고.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말하는 대상이 여성임을 알리려다 보니 굳어진 말버릇 아니겠냐는 해석이었다.
‘대상의 성별을 알려야 할 상황’이 있는 건 맞다. 다만 생각보다 훨씬 드물다. 적어도 지금 사람들이 “여자앤데”를 붙이는 빈도만큼은 절대 아닌 듯하다. 예컨대 같은 팀 대리와 나눈 웃긴 대화를 친구에게 전할 때 “여자앤데”는 사실 필요없다. 같은 상황에서 대리를 ‘여대리’라고 하지 않듯이 말이다. 만약 “여자앤데”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다음처럼 말해야 한다. “대리가 한명 있어. 여자앤데, 경기도 성남 출신으로 1992년 12월생이며 형제관계는….” 왜 안 된단 말인가?
이처럼 “여자앤데” 언급의 효용은 애매한 반면 부작용은 비교적 뚜렷해보인다. 취재원 말처럼 “표준이 남성중심”인 사회에선 더욱 그럴 테다. 대화에서 “여자앤데”로 불리는 누군가는, “남자앤데”로 불리는 누군가보다 대화 속 무대의 더 불리한 위치에서 상상될 가능성이 높다. 현실은 언어에, 언어는 현실에 영향을 되먹인다. 그래서일까.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면 성별을 짚지 않는 언어문화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한국 언론사들은 몇년 전부터 ‘그녀’를 폐기했다. ‘여선생’이나 ‘여류시인’ 같은 단어도 사라져가는 추세다.
생활 속에서도 불필요한 “여자앤데”를 조금씩 줄여나가보면 어떨까 싶다. 가볍게 ‘그러게 굳이?’라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해도 충분하다고 본다. 물론 오랜 습관을 고치려면 강한 브레이크가 걸린다. 그 제동감은, 운동할 때 근육 아픈 게 몸 좋아지는 신호이듯, ‘어제보다 반발짝 평등한 사람이 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말의 내장지방을 걷어내는 개운한 기분! PT처럼 돈도 안 든다.
이 글은 <주간경향> 1505호(2022.12.05)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