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Enter MOTAS, 시공의 미스테리

The Mystery of Time And Space

by 크리스



걱정 마세요, 때가 되면 우리의 합의를 상기시켜 드리겠습니다.

MOTAS 인트로 화면




방탈출과 나

내 인생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게임을 고르라고 한다면 정말 많은 작품들이 떠오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갖게 하는 게임은 단연 시공의 미스테리 - The Mystery of Time and Space (이하 MOTAS)이다. MOTAS는 우리나라에서는 '방탈출 게임'으로 잘 알려진 Point-and-Click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장르에 속하는 게임으로, 마우스 포인트를 이용해 사물들을 클릭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게임이다. Logan이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Jan Albartus가 제작하여 2001년에 처음 공개되었으며,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게임이다.


국내에서는 Crimson Room (크림즌 룸) 시리즈가 방탈출 게임의 원조로 많이 알려져 있고, 나도 실제로 MOTAS보다 이 게임들을 먼저 접해보았다. 그러나 자세히 찾아보니 MOTAS가 2004년 공개된 크림즌 룸에 비해 실제로 3년 앞선 선구자격이며, 외국에서는 훨씬 더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크림즌 룸의 크레딧에도 MOTAS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되어 있다.


내가 처음으로 포인트 앤 클릭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집에 있던 데스크톱 컴퓨터를 통해 부모님이 사주신 Pyjama Sam 시리즈, I SPY 시리즈 같은 영어교육용 CD-ROM 게임들을 플레이하고, 당시 유행하던 Good Night Mr. Snoozleberg (aka. 몽유병아저씨) 등의 플래시 게임들을 접하며 자연스럽게 온라인에서 재미있는 게임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클래식 포인트 앤 클릭 게임 (파자마 샘 2 / I SPY Treasure Hunt / 몽유병아저씨)



본격적으로 나를 '방탈출 게임 덕후'로 이끈 게임은 크림즌 룸이었다. 정확히 어떤 경로로 플레이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당시 '게임랜드' 같은 사이트에서 인기 게임으로 추천되어 있는 것을 보고 클릭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이 혼자서 클리어하기에는 꽤 어려운 난이도가 나의 도전정신을 자극했고, 대놓고 무서운 장면은 없지만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게임 내내 연출되어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을 휩쓸던 엽기&공포 코드에 부합하여 나에게 더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 같다.


크림즌 룸 中


그렇게 크림즌 룸을 몇 번의 재시도 끝에 혼자 클리어해 내고 난 뒤, 비슷한 류의 게임들을 찾기 위해 그 당시 활발하게 운영되던 네이버의 한 방탈출 게임 카페에 가입하게 되었다. 크림즌 룸의 후속작인 Viridian Room (비리디언 룸), 일본 특유의 병맛 감성을 자랑하는 Detarou 탈출 게임 (aka. 이상한 방탈출) 등을 찾아 재밌게 플레이했지만, 한 번 클리어 한 이후에는 굳이 다시 플레이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공의 미스터리

그때의 나는 여느 때와 같이 방탈출 게임 게시판을 둘러보던 중 '시공의 미스터리'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클릭하게 되었다. 플래시 형태로 게시글에 임베드되어 있던 다른 게임들과는 달리, 게시글의 링크는 회색 바탕에 노란 글씨로 기괴하리만큼 간결하게 ENTER MOTAS 라고 쓰여 있는 영문 사이트로 나를 인도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몇 년간 ENTER MOTAS 페이지는 내 즐겨찾기 상단에 고정되었다. 그 당시의 내 경험을 돌이켜 보며 MOTAS를 특별하게 느꼈던 몇 가지 이유들을 정리해 보았다.


기괴하리만큼 간결한 MOTAS 공식 사이트


MOTAS는 플레이 인터페이스부터 다른 방탈출 게임들과 달랐다. ENTER MOTAS 텍스트를 클릭하면 새로운 팝업창 속 게임 화면과 함께 하단부에 채팅창이 뜨게 되고, 채팅창은 게임에 접속해 있는 플레이어들이 서로 도움을 요청하며 공략을 주고받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나에게는 영어로만 가득 채워진 채팅창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고, 혼자 진행하다가 정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열심히 번역해가며 띄엄띄엄 채팅창 속 친절한 플레이어들에게 질문하여 풀어나갔던 기억이 있다.


MOTAS 中


하나의 방을 탈출하고 나면 엔딩 크레딧과 함께 다음 편 게임을 따로 찾아 넘어가야 하는 크림즌 룸 류의 방탈출 게임들과 달리, MOTAS는 게임 안에서 하나의 방을 탈출하면 새로운 퍼즐들로 잠겨진 다음 방으로 이어지는 구조였으며, 제작되어 있는 마지막 방까지 도달하면 'Coming Soon' 메시지와 함께 새로운 레벨이 업데이트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러한 업데이트 구조는 이미 새로운 방탈출 게임 찾기에 푹 빠져있던 나에게 매주, 매달 기대감을 안고 이 게임만을 리플레이하게 하는 메인 요소로 작용했다.


게다가 레벨을 클리어해가며 알게 되는 플레이어 캐릭터의 특이한 배경 스토리는, 마치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 만을 가지고도 만들었을 법한 심플한 2D아트 스타일을 통해, 나에게 지금까지도 진한 노스탤지어를 선사하는 재즈풍 사운드트랙들과 함께 거의 7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서 전개되었다.


요즘 시대에는 게임 제작자 및 제작사들이 게임 제작 및 업데이트 과정을 트위터, 스팀 등의 플랫폼에서 공개하고 유저들과 함께 활발히 소통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게임 콘텐츠를 기다리는 체감시간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당시의 나에게는 꾸준히 ENTER MOTAS 페이지에 접속하며 이미 클리어 한 레벨들을 다시 플레이하고, 다음 이야기를 상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MOTAS의 사운드트랙, 유쾌하면서도 괴이한 감성의 그래픽 스타일, 그리고 복잡한 퍼즐들을 풀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시간들이 나의 어린 시절 방탈출 게임 관련 기억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게 되었다.




로건과 알바터스의 행방불명

하지만 그 이후 게임이 완결되고, 추억에 젖을 때마다 다시 플레이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MOTAS는 나에게 이토록 강력한 임팩트로 남지 않았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며 학업에 열중하다 보니 (물론 수많은 다른 게임들을 접했던 이유도 있지만), MOTAS는 한동안 내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수년간 잊고 지내던 이 게임을 다시 떠올리게 한 계기 중 하나는, 20대에 접어들면서 내가 좋아하게 된 게임들을 돌아보면서였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른 글에 정리해 보려고 하는 Do Not Feed the Monkeys, Papers Please 등의 포인트 앤 클릭 게임 류를 플레이하는 나 자신을 보며 '내가 왜 이런 게임들을 좋아하게 되었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도달한 지점이 MOTAS였다.


불과 지금으로부터 1년도 채 되기 전인 2020년 12월 말 Adobe Flash Player에 대한 지원이 종료되면서 온라인상의 많은 플래시 게임들은 사람들의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당시의 나는 막연히 방탈출 게임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MOTAS처럼 의미가 큰 게임은 누군가가 백업하거나 또는 플래시가 아닌 다른 형태로 변환하여 배포를 하는 등의 방식으로 보존될 줄 알았다, 아니 그러길 바랬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달리 MOTAS는 더 이상 플레이가 사실상 불가능해져 버렸다.


플래시 지원이 끝난 이후 나는 여러 방면으로 MOTAS와 제작자의 근황을 찾아 검색해 보았다. 그러나 내가 알게 된 것은 MOTAS는 2008년 이후 더 이상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고, 제작자인 Logan (Jan Albartus)도 해외의 수많은 유저들이 최소 2015년 경부터 컨택을 시도해 보았으나 현재까지 아무런 답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그가 인터넷과의 인연을 완벽히 단절하였거나, 어쩌면 사망하였을 수도 있다는 설도 있다.


MOTAS 첫 번째 레벨 / 이후 레벨 진행 도중 만나는 컴퓨터 속의 MOTAS (it's so meta...)


물론 많은 게임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갑작스러운 서비스 종료를 하게 되거나 삭제되기도 하지만, 나의 게임 인생에서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MOTAS를 더 이상 플레이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 굉장히 아쉽다.


전문 프로그래머가 아닌 사람으로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안들은 다 시도해 보았지만 아직은 MOTAS를 다시 플레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언젠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플래시 포맷으로 남아있는 원작 게임 데이터를 복원한다면, 뒤늦게라도 추억 속에 남아있는 미스터리한 MOTAS세계관을 다시금 여행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시공간이 시작된 이래로, 우주는 태양계에서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상호작용하는 매우 복잡한 원소의 시스템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시공간의 관찰자인 우리는 우주의 모든 측면을 가능한 모든 각도에서 목격했습니다.
우리에게 시공간은 미스테리, 끝도, 시작도 없습니다.

항상 이렇지는 않았습니다.
한때 우리는 해답과 지식을 찾기 위해 우주를 배회하는 종족이었지만
더 많은 의문과 비참함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우리의 첫 번째 구성원이 우리가 보고 살 수 있는 공동의 현실 뒤에
더 깊이 구조화된 과정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영겁의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이 대체 현실을 관찰하는 것은
관찰자가 공통의 현실에 대한 기억이 없을 때에만 가능했습니다.

이론은 이렇습니다.
한 사람이 일단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살게 되면,
그(녀)는 자신들의 기억과 경험에 대한 교리로 인해
이 대체 현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 평행우주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간들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동의한 대로 좋은 보고를 받기를 바라지만,
당신이 우리가 기억을 지우도록 허락했기 때문에
합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때가 되면 우리의 합의를 상기시켜 드리겠습니다.

- MOTAS(Mystery Of Time And Space)의 오프닝 전문





등장 게임 리스트

The Mystery of Time and Space - Jan Albartus (Logan)

Crimson Room & Viridian Room - Toshimitsu Takagi

Pyjama Sam 시리즈 - Humongous Entertainment

I SPY 시리즈 - Scholastic

Good Night Mr. Snoozleberg (몽유병아저씨) - Sarbakan

Detarou 탈출 게임 - Detarou

Do Not Feed the Monkeys - Alawar Entertainment

Papers Please - Lucas Pope


기타 링크

MOTAS 공식 페이지

MOTAS 플레이 영상

MOTAS 사운드트랙

MOTAS 레딧 페이지

MOTAS 나무위키

플래시 게임 아카이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