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공백을 대하는 자세

공백을 여백으로, 삶을 나만의 시간으로

by Itz토퍼

어릴 적, 한 학년이 올라가면 늘 새 교과서에 어울리는 새 노트를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이전 학년의 노트를 펼쳐보면 늘 여백이 많았습니다. 필기를 다 마치지 못한 페이지들, 깨끗한 종이들. 아까운 마음에 저는 그 여백을 그냥 두지 못했죠.

바로 그 빈 공간에 제가 좋아하던 만화 주인공 아톰을 그렸습니다.

일종의 낙서였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그 노트는 오히려 그 여백의 그림들 때문에 더 소중한 물건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그림이 없었다면 버렸을 겁니다. 모든 노트마다 서로 다른 주인공이 그려져 있었고, 덕분에 쓰레기로 변할 뻔한 노트 한 권이 소장품으로 변했죠.


20240818_193811-2-00.jpg 일본 오사카의 한 매장에서 만난 '아톰'


지금 우리 인생도 어쩌면 그와 비슷한 시점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평생을 수고한 일터에서 은퇴한 분들, 혹은 어쩔 수 없이 직장을 중도에 그만두고 다음 걸음을 준비하는 분, 그리고 이제 막 학업을 마치고 사회로 발을 내딛는 청년들, 만남과 이별. 그 외 우리의 감정선이 잠시 중단되는 순간. 누구나 한 번쯤은 멈춤의 시기를 맞이합니다.

혹시 그 시간을 단순히 ‘공백’이라고 여기시나요?


그것을 ‘여백’이라 부르면 어떨까요?


공백과 여백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릅니다.

공백은 단순히 비어 있는 상태이지만, 반면 여백은 남겨둔 공간, 새로움을 담기 위한 여유로운 자리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공백이 단절된 멈춤이라면, 여백은 새로운 준비입니다.

결론적으로 공백이 끝을 의미한다면, 여백은 시작을 품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남겨진 노트의 뒷부분을 만일 공백이라고 여긴다면 버릴 수도 있고, 다시 묶어서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백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제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듯 새로운 의미로 채울 수 있습니다.

결국 여백이란 ‘나만의 목적’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다음 시작을 위한 보너스 같은 시간입니다.


큰 외삼촌은 젊은 시절 외국 상선을 타는 외항 선원으로 일했습니다.

2년에 한 번 집으로 돌아올 때면, 국내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외국 물건들을 한가득 짊어지고 왔죠.

한 번은 깡통에 든 버터를 가지고 왔습니다. 당시 시골에서는 그걸 어떻게 먹는지도 몰라 부엌 한구석에 처박아 두었지요.


어느 여름날 저녁, 마당에 멍석을 펴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수제비를 먹고 있었습니다.

매일 먹던 메뉴라 조금 질릴 때쯤,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서양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버터라는 걸 수제비에다 넣으면 무슨 맛일까?”

한 숟가락 넣어보니 다들 냄새부터 느끼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제 입에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외삼촌도 한입 먹더니 감탄했습니다.

“와~! 이거 맛이 신기하네! 이태리에 이런 맛이 나는 면이 있다고 하는데, 뭐라더라?”

지금 생각해 보면 크림파스타 맛이랑 똑같았죠.

그날 이후로 저는 종종 그렇게 이태리맛 수제비를 즐겼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여백에 이전에는 상상도 못 한 새로운 맛을 더해보면 어떨까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들, 늘 망설이던 시도들. 바로 그 여백의 시기에 해보는 겁니다.

어쩌면 그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가진 숨은 맛, 아직 발견하지 못한 향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종종 거창한 목표 앞에서 망설입니다.

“이걸 해낼 수 있을까?”, “아직 준비가 덜 됐어.”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시작하는 것입니다.

완벽한 조건이 갖춰지는 순간은 없습니다.

오히려 작은 첫걸음이 큰 변화를 이끄는 출발점이 됩니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작은 행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작은 행동을 통한 새로운 도전


작가는 첫 문장으로, 사업가는 첫 아이디어로, 마라톤 주자는 첫 발걸음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결과만을 중시하다 보니 이런 ‘시작의 힘’을 잊곤 합니다.

거대한 목표 앞에서 위축되거나, 이미 늦었다고 단정 짓기도 하지요.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처럼, 중요한 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입니다.


작은 행동이 쌓이면 결국 변화가 됩니다.

하루 한 장의 책, 하루 한 단어의 암기, 하루 한 번의 산책. 그렇게 쌓인 작은 노력들이 결국 큰 성취를 만들어 나갑니다.

‘한 걸음’은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그 한 걸음이 없다면 아무 방향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움직여야 방향이 생깁니다. 방향이 생기면,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아주 작은 한 걸음을 내디뎌 보세요.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변화로 충분합니다.

글 한 줄을 쓰거나,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거나, 배우고 싶던 일을 위한 자료를 찾아보는 것, 무엇이든 좋습니다. 중요한 건 행동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결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의 속도로 걸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언제나 작은 움직임에서 비롯됩니다.

사람들은 몸이 늙으면 마음도 늙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몸이 늙는 것이 아니라 내일에 대한 태도가 늙는 것입니다.

만약 내일에 대한 태도가 여전히 젊다면, 그 사람의 삶은 결코 늙지 않습니다.


은퇴 후의 시간, 혹은 일을 잠시 멈춘 사람의 삶에는 ‘여백’이 찾아옵니다.

저는 이 여백을 단순한 공백이 아닌, 그동안 사용된 시간 이후 주어진 인생의 보너스 타임, 나 자신이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자유의 시간으로 봅니다.

물론 이 시기에는 큰일을 이루기보다, 작고 단순한 행동으로 하루를 채우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작은 행동이 존재의 감각을 되살리는 움직임입니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커피를 내리고, 커튼을 젖히고 창을 연 후 계절의 냄새를 맡고, 오래된 친구에게 안부를 전하는 일. 세상은 변함없지만, 그 순간의 나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런 행동들은 삶의 속도를 조율하는 리듬이 되어주고, 공허한 마음을 잔잔히 채워줍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나 자신과 다시 연결되는 손짓이며, 세상과 온기를 주고받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결국 여백의 시간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아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작고 단순한 행동 하나하나가 내 삶의 흐름을 다시 조율하는 '손끝의 일'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인생의 여백을 진정한 ‘보너스 타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작은 행동으로 이 여백을 채우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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