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말띠'들이여. 고개를 들라. 곧 당신들의 새해가 밝아온다
내년은 60년에 한 번 돌아온다는 ‘화마(火馬)’, '불의 말' 해다. 그러고 보니, 새해에는 이 불꽃같은 기운을 타고난 분들이 어느덧 환갑을 맞이하신다. 우선, 뜨거운 인생 1막을 성실히 완주하신 그대들에게 진심 어린 환갑 축하의 인사를 먼저 건넨다.
그런데 이 ‘화마’라는 녀석, 참 억울한 구석이 많다. 바다 건너 섬나라 일본에서는 이 해에 태어난 여자가 드세고 기가 세기 때문에 남편의 운을 꺾는다는 해괴한 미신이 있다지 않나. 참나, 태어나기도 전부터 남의 집 귀한 딸내미들을 ‘기피 대상’으로 분류하다니. 말로만 듣던 가스라이팅의 고전판이자, 국가적 차원의 ‘후려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일제 잔재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서도 은근슬쩍 “말띠 여자는 다루기 어렵다”느니, “팔자가 세다”느니 하는 일본식 잣대를 들이대곤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불의 말’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전혀 다른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불꽃을 품고 대지를 달리는 붉은 말이라니! 이건 불운의 징조가 아니라, 사실 ‘압도적인 생동감’의 다른 이름 아닌가? 굳이 남의 나라의 칙칙한 판단을 따르거나 고민할 필요 없다. 우리에게는 이 기운을 훨씬 더 귀엽고 생기 있게 표현하는 근사한 단어가 이미 있으니까. 그렇다, 모름지기 우리 것이 좋은 법이다.
바로 ‘말괄량이’다. 사전에서는 말괄량이를 두고 ‘말이나 행동이 차분하지 못하고 덜렁거리는 여자아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그건 이 시대의 사정에 대해 잘 모르는 사전적 해석일 뿐,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말괄량이는 세상이 정해놓은 좁은 보폭에 자신의 다리를 억지로 맞추지 않는 사람이다. 남들이 “조신하게 걸어야지”라고 훈수를 둘 때, 이미 저만치 앞서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뒷모습. 그 펄펄 끓는 에너지가 바로 ‘화마’의 본질이다.
생각해 보면, 이 시대의 여성들에게 정작 필요한 건 거창한 성취보다 이런 말괄량이 같은 활력이다. 남편의 운을 뺏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운전대를 꽉 잡고 가고 싶은 방향으로 거침없이 달려 나가는 힘 말이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고삐에 꿰여서 ‘이랴’ 하면 이리 가고, ‘워워’ 하면 저리 가는 수동적인 말이 대체 어디가 좋단 말인가.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그 당당한 기운으로 필요하다면 남편을 등에 태워줄 수도 있는 그런 여장부가 훨씬 매력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다가올 불의 말띠 해를 ‘조심해야 할 해’가 아니라 ‘말괄량이처럼 분명한 자기주장과 활력이 넘치는 해’로 임명하기로 했다. 물론 이 해에 태어날 모든 여자 아기들이 그러하길 바란다.
얌전하게 앉아 누군가의 운을 보필하며 살기엔, 그녀들 속의 불꽃은 너무나 뜨겁지 않은가. 그러니 전국의 불말띠들이여, 새해에는 더 많이 웃고, 더 자주 덜렁대며, 더 힘차게 앞발을 내디디시라. 누가 뭐라든 콧방귀 한 번 크게 ‘히힝!’ 뀌어주고, 각자의 불꽃을 동력 삼아 오늘을 마음껏 달려가는 것이다.
위대한 명성을 얻지 못하면 어떤가, 적어도 그대들 세상에서는 가장 생명력 있게 살아있는 ‘불꽃 말괄량이’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