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와 홍어 사이

우리가 사랑하는 먹거리, 그리고 서로 다름의 의미

by Itz토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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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 맞이한 설날, 창밖을 보며 그때를 연상해 본다. 그런데 갑자기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이 있다. 바로 어릴 적 제삿상에 빠지지 않았던 ‘산적’이다.


경상도 집안에서 자란 나는 제사 때마다 이 산적을 제일 기다렸다. 사람들은 이를 ‘돔배기 산적’이라 불렀는데, 타지 사람들에게는 낯설 이 이름의 정체는 바로 상어고기다. 돔배기는 소고기나 돼지고기와는 다른 결의 매력을 지녔다. 뽀얗고 단단한 살점은 입안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씹을수록 배어 나오는 특유의 담백함과 고소함은 묘한 중독성이 있다. 살짝 퍽퍽한 듯하면서도 쫄깃하게 씹히는 그 독특한 식감을 나는 무척이나 사랑했다.


젓가락으로 큼직한 토막을 집어 한 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퍼지는 그 충만한 맛이 어린 마음을 든든하게 채워주곤 했다. 지금도 돔배기라는 이름만 떠올리면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그 맛이 사무치게 그립다.


이 독특한 이름에는 지역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돔’은 단단한 흰 살 생선을 뜻하는 방언이고, ‘배기’는 고기 덩어리를 뜻한다. 즉, 돔배기는 ‘토막 낸 상어고기’라는 뜻을 담고 있다. 과거 교통이 불편했던 시절, 바다가 없는 경상도 내륙 지방까지 상어고기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천일염에 절이는 과정이 필수였다. 부패를 막기 위한 지혜가 담긴 염장법 덕분에 돔배기는 특유의 감칠맛과 단단한 식감을 얻게 되었다. 이름 하나에 지역 고유의 조리법과 척박한 환경을 이겨낸 삶의 양식이 깃들어 있는 셈이다.


고교 시절, 전라도 고흥의 도양에서 온 친구를 따라 그의 고향 집에 갔을 때 처음으로 홍어를 접했다. 코를 찌르는 알싸한 향과 쫀득한 식감에 처음엔 움찔했지만, 호기심 많은 나에게 홍어는 꽤나 흥미로운 음식이었다. 비록 내 마음속 1순위인 돔배기만큼은 아니었지만, 홍어 역시 나름의 깊은 매력이 있었다.


같은 바다에서 왔지만, 영남과 호남의 선택은 이토록 다르다. 한쪽은 발효를 통한 강렬한 향으로, 한쪽은 담백하고 단단한 식감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왜 나는 그토록 돔배기 산적을 좋아했을까? 아마 단순히 미각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산적 한 점에는 대가족이 모였던 북적거림, 장손 집안으로서 지켜온 제사의 무게, 그리고 어린 나를 설레게 했던 명절 특유의 특별함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다름의 의미: 갈등을 넘어 공존으로


우리는 오랫동안 영남과 호남이라는 이름 아래, 정치적 이념과 지역적 갈등의 벽을 높게 쌓아왔다.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고 날 선 공방을 주고받던 아픈 역사는 우리 사회 곳곳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제삿상 위에 놓인 홍어 한 점과 돔배기 한 점을 나란히 두고 본다면 어떨까.


전라도의 홍어와 경상도의 돔배기는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각기 다른 바다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지혜이자 척박한 세월을 견뎌온 역사의 흔적이다. 어떤 집은 알싸한 홍어를 올리고, 우리 집은 담백한 돔배기 산적을 올린다고 해서 그것이 비난이나 차별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이 ‘다름’이야말로 우리 문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소중한 자산이다. 삭혀서 깊어지는 맛과 단단하게 다져진 맛은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커다란 식탁 위에서 각기 다른 빛깔로 어우러진다. 해묵은 갈등을 잠시 내려놓고, 그들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맛'으로 먼저 이해해 보고 싶다.


결국 다름이란 갈등의 불씨가 아니라,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하나로 나아가기 위한 이해의 출발점이다. 나는 그 다름의 흔적 속에서 나만의 행복을 발견했고, 이제는 그 행복이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무는 따뜻한 공존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정말 먹고 싶다. 홍어와 돔배기 산적이 한 상에 올라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그런 맛있는 집이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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