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광화문에서 영월까지, 변절의 지도

단종의 고립에서 읽어낸 현대 정치의 비열한 생존법

by Itz토퍼

“봤어요?” 요즘 인사가 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유해진 배우에 대한 이야기와 눈물 나는 영화 대사와 장면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누고 있으니, 조금 다른 각도에서 작가적인 촉을 발휘해볼까 한다. 이런 대작을 그냥 스크린 속의 이야기로만 남기기엔 아깝지 않나. 정중하게 이 시대로 ‘모셔와서’ 할 말 좀 해야겠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한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군주 중 하나인 단종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5세기 조선은 유교적 충절과 왕권의 정통성이 서슬 퍼런 칼날 아래 놓여 있던 시대였다.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올랐으나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하고, 강원도 영월의 거친 산세 속에 유배된 단종의 처지는 단순히 한 개인의 몰락이 아닌, '정당한 권위'가 '강한 무력' 앞에 무너지는 시대적 균열을 상징한다.


당대의 현실은 냉혹했다. 세종과 문종이 쌓아 올린 찬란한 문치는 하룻밤 사이에 피바람으로 변했고, 어제의 충신들이 오늘의 역적이 되는 배신의 정치가 횡행했다. 영화는 이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을 발판 삼아 권력의 중심부에서 가장 먼 곳으로 밀려난 '버려진 왕'과 그를 지키려는 선한 사람들, 그리고 '권력의 흐름을 좇아 등을 돌린 인간들'의 내면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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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립, 헌신, 그리고 배신’의 방향에서 본 해석


권위의 상실과 고독한 실존: 버림받은 왕


영화 속 단종은 절대 권력의 상징에서 가장 무기력한 존재로 추락한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 '민심을 잃거나 정파적 고립에 빠진 지도자'의 모습과도 닮았다. 정점에 서 있을 때는 세상 모든 빛이 자신을 향하는 것 같지만, 권력의 누수가 시작되는 순간 지도자는 가장 먼저 고립의 공포를 마주한다.


현대의 정치인들 역시 지지율의 급락이나 당내 주도권 상실 속에서 영화 속 단종이 느꼈을 법한 '섬'과 같은 고독을 경험하긴 한다. 하지만 ‘감히’라는 말을 붙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반전의 기록을 남겼다. 당장은 패배자로 보였던 단종은 사후 240여 년이 지난 숙종 대에 이르러서야 '단종'이라는 묘호를 얻으며 공식적으로 복권되었다. 이는 당장의 권력 상실이 영원한 실패가 아님을 시사하지만 어딘지 씁쓸하다.


오늘날 '정치적 생명'만을 연장하기 위해 분투하는 지도자들에게, 진정한 권위란 당대의 무력이 아닌 후대의 평가와 정당성에서 온다는 사실을 단종의 복권 역사는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씁쓸한 기시감을 느낀다. 무기징역과 사형 선고를 받은 국가적 죄인이 감옥살이 몇 년 만에 사면받는 오늘의 현실을 보면 쓴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240년이라는 세월을 무덤 속에서 견뎌 정당성을 회복했던 과거에 비해 오늘날의 우리는 절대적으로 관대해진 것인가, 아니면 정치권력이 그때보다 더 철저하게 비열해진 것인가.


신념의 무게와 연대의 윤리: 단종을 돌보는 사람들


왕을 끝까지 지키는 이들은 화려한 권력의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명분과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도리를 위해 자신의 삶을 던지는 '가치 지향적 정치 그룹'을 상징한다. 오늘날의 정치 지형에서도 ‘간혹’ 당장의 이익보다는 정책적 소신이나 정치적 의리를 지키며 험로를 택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가치는 무려 300여 년 뒤인 정조에 의해 찬란하게 빛났다. 정조는 영월 장릉에 '배식단'을 세워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신하들을 대대적으로 기렸다. 역사적으로는 분명한 위로가 되는 지점이지만, 한편으로는 죽고 난 뒤 수백 년이 흘러서야 겨우 이름 석 자를 올리는 현실에 '의미 없는 기분'이 드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영화 속 조력자들의 헌신은 현대 정치인들에게 정치가 단순히 승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끝까지 지켜내야 할 인간적 예우와 신념의 과정임을 강조한다. 비주류로 몰려 잊히는 듯해도 그들이 지킨 '의리'와 '명분'은 결국 역사의 주류로 부활한다는 작은 희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생존의 논리와 변절의 일상성: 등을 돌린 사람들


가장 뼈아픈 현실은 어제까지 충성을 맹세했던 이들이 가장 먼저 등을 돌리는 장면이다. 이는 현대 정치의 '기회주의적 속성'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권력의 향방에 따라 진영을 옮겨 다니는 행태는 오늘날에도 '실용 정치'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곤 한다. 지금도 박쥐처럼 밝은 민주화의 한낮에는 어둠의 동굴 속에 날개를 접고 매달려 있다가, 다시 어둠의 기회를 엿보는 비열한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세조부터 중종 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끊임없는 정치적 격변과 사림의 등장은 변절을 통해 얻은 권력이 얼마나 모래성 같은지를 증명한다. 승자의 기록으로만 남을 줄 알았던 배신의 역사는 후대 왕들에 의한 단종 복권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재평가되고 비판받았다. 시스템의 붕괴 앞에서 자신의 안위만을 우선했던 선택들이 결국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어떤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게 되는지, 영화와 역사는 동시에 경고하고 있다.


결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와 이를 바로잡으려 했던 숙종, 정조의 노력은 권력의 속성을 폭로하는 거울이다. 버려진 지도자의 고독을 외면하고, 소수의 헌신을 비웃으며, 다수의 배신이 상식이 된 사회를 과연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기성세대들은 아이들의 맑은 얼굴을 마주하며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영화 속 인물들과 그들을 대하는 역사의 태도 속에 자신을 '반드시' 대입해 보아야 한다. 내가 지키려는 것이 찰나의 왕좌인가, 아니면 수백 년 뒤에도 부끄럽지 않을 가치인가.


'왕과 사는 남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무엇인가? 권력은 유한하나 그 권력이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인간의 진실과 명분'은 영원히 기록된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다.


요즘 툭하면 유튜브나 SNS에 말과 글 올리기 좋아하는 정치계 인물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감상문 한 편씩을 공식 발표하면 어떨까. 특히 그 ‘V0와 V1과 살았던 인간들’, 그리고 그 시대에 정치계에 이름을 올렸던 ‘사람과 인간들’ 말이다.


그들의 문장 속에서 과연 어떤 '진실'이 발견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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