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들의 스트레스성 탈모
길냥이들의 탈모
가끔 고양이를 쓰다듬다 보면 손길을 타고 털이 쑤욱 빠져나올 때가 있고, 스스로 핥아낸 털 덩어리를 토하듯이 쏟아내는 것을 볼 수 있다. 고양이들도 사람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탈모증이 생기고는 한다.
일반적인 영양 상태가 나빠서 건강을 잃거나 병에 걸린 경우
고양이 백선과 같은 감염, 또는 진드기나 벼룩과 같은 기생충의 감염이 있는 경우
호르몬 과잉이나 결핍 등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인한 경우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은 경우 등이 그 예이다.
우리가 먹이를 주고 있는 지중해 바닷가의 길냥이들이 두 주 전에 심각한 외적 스트레스를 받아 갑작스러운 스트레스성 탈모를 얻게 되었다.
스트레스의 발단은 Sant Joan ( 산 조안/산 후안)이라는 스페인의 축제에서 비롯되었다.
6월 24일 산 후안의 날을 기념하는 전야제에서는 요란스러운 불꽃 행사가 밤새도록 이어진다.
바닷가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뛰어넘거나, 바다의 파도를 뛰어넘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 때문에 23일 저녁부터 바닷가에 모여든 사람들은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여기저기서 불꽃을 터뜨리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지역 바닷가에도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해변에 모닥불을 금지한다는 지역 정부의 발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닥불이 가득 피어올랐다. 그리고 폭죽과 불꽃놀이, 광란의 음악소리가 밤새도록 울려 퍼져 잠 못 들게 했다.
길냥이들이 살고 있는 보트 정박장 2층 레스토랑에도 예외 없이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레스토랑과 정박장에서는 불꽃놀이를 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지만 그 또한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길냥이들이 살고 있는 보트와 덤불 사이로 폭죽이 터지고 불꽃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축제가 끝나가는 새벽.. 시에서 나온 수많은 청소부들과 트럭들이 바닷가와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하루 종일 주변을 헤집고 다녔다.
시의 발표에 의하면 그날 바닷가에서만 수집된 쓰레기가 8천5백 킬로그램에 달한다고 한다.
바닷가가 조용해질 즈음 먹이를 싸들고 바닷가로 나갔다.
"나비야" 부르는 소리에 어렵게 몸을 끌고 나오는 길냥이들의 모습은 차마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지쳐있고, 눈에는 공포가 서려있었다.
이유 없이 머리를 흔들고, 제대로 먹지를 못하며, 거칠게 몸을 핥아 털이 뭉텅이로 빠지기 시작했다.
저마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듯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서도 내 주변에서 떠나지를 않아 아주 오랜 시간 녀석들 옆에 앉아있었다.
그중 가장 심각한 증세를 보인 건 언제나 당당했던 스릴러다.
불꽃이 튀었는지 배 옆부분의 털이 살짝 그슬려 있었고 그 충격 때문인지 눈에 초점을 잃고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보이며 먹이를 먹기 위해 다가오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몸을 핥아대서 이삼일 사이에 대부분의 털이 빠져나갔다.
다가오지 못하는 스릴러를 위해 멀리 먹이를 따로 놔주고 녀석이 놀라지 않도록 먹이를 먹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앉아서 계속 조용하고 부드럽게 말을 시켰다.
"많이 놀랐지?" "이제 괜찮아"
내 말을 알아듣는 것일까? 다시 마음을 열은 듯 조금 거리를 좁혀 들어왔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는 내가 옆에 앉아있는 동안에는 가까운 곳에서 졸기도 한다.
광란의 밤이 지난 지 2주를 넘겼지만 냥이들은 여전히 예민하고 경계가 심하다.
하지만 우리 가족 옆에서는 눕기도 하고, 졸기도 하는등 조금씩 안정된 모습을 보여줘서 그나마 안심이 된다.
그렇게 천천히 마음의 안정을 찾고, 뜨거운 여름이 지나면 녀석의 털도 전처럼 풍성해질 수 있을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