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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un 30. 2017

지중해의 길냥이들 열두 번째 이야기

나? 카리스마 스릴러야.

사람들이 저마다의 성격을 가지고 있듯이 길냥이들도 한 마리 한 마리 저마다 다른 성격과 습성을 지니고 있다.

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녀석들이 있고, 사람은 따르지 않지만 고양이들과는 사이좋은 고양이들이 있고, 사람과도 다른 고양이들과도 섞이지 못하는 녀석들이 있다.

다른 고양이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고양이들은 대부분 까칠하며 공격적인... 한마디로 한 성깔 단단히 하는 녀석들이다.


오늘 소개하는 지중해의 길냥이가 바로 한 성깔 단단히 하는 "스릴러"라는 녀석이다.

"스릴러"라는 이름은 녀석의 까칠하고 사나운 성격 때문에 딸아이가 지어준 이름이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호랑이 얼굴에 사자의 갈기를 한 범상치 않은 외모로 시선을 끌더니, 까칠한 성격으로 또 한 번 시선을 끌었다.


귀찮은 건 질색이야

녀석은 사람을 무서워하지는 않지만 사람이 가까이 가는 것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먹이를 줄 때도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면 가차 없이 발톱을 세운다. 처음에 멋모르고 다가갔다가 화들짝 놀라기를 여러 번 했었다.


녀석의 발톱은 사람들에게만 향하는 것은 아니다.

먹이를 먹다 귀찮게 하는 고양이들이 있으면 가차 없이 발톱을 세워 머리를 강타한다.  표독스러운 "야옹"도 없이 아주 무표정하고 시니컬한 표정으로 강타를 날린 뒤 다시 먹는 것에 집중한다.


그런 녀석을 대장 고양이가 내버려 두는 이유는 녀석이 까칠하기는 해도 규칙은 확실히 지키기 때문일 거다.

녀석이 가끔씩 사납게 굴며 발톱을 세우기는 해도 먹이를 혼자만 독점한다거나 다른 고양이들의 구역을 침범하는 일은 없다. 자기를 귀찮게 하지 않으면 먹이를 먹고 멀리 떨어져서 무리를 지켜보며 관망만 할 뿐이다.

귀찮게만 안 하면 말썽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고양이는 폼생폼사

처음 만날 날부터 꽤 오랜 시간 스릴러는 배고프다고 다가와 우는 일이 없었다.

우리가 "나비야~"를 외치면 번개처럼 달려 나오는 길냥이들 사이에 섞여서 함께 달려 나오지만 우리 앞에 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침을 뚝 떼고 우리를 관찰하고는 했다. 우리에게 배고프다고 보채지도, 울지도, 애교를 부리지도 않고 그저 레이저를 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


자존심으로 중무장하고 사자 갈기 같은 털을 고고하게 휘날리며 서있는 모습은.. 한마디로 "폼생폼사"다.


너의 정성이 지극하니

그런 녀석이 까칠함을 조금 누그러뜨린 것은 신랑이 스릴러와 오스카에게 조금 더 신경을 쓰면서부터다. 겁쟁이 오스카를 위해 먹이를 따로 챙기다 보니 오스카와 늘 붙어있는 녀석에게도 먹이를 따로 주기 시작했는데 녀석이 그 특별대우를 받으며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기에게 주는 건지 헷갈려하더니 이제는 신랑의 눈빛과 마주치면 자기 먹이가 나오는 줄 알고 신랑 옆으로 살짝 다가가 그 특별한 시간을 즐긴다.


물론 그 특별한 시간이 방해를 받으면 (오스카를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나 까칠한 발톱이 날아간다.

녀석은 분명 "저 기특한 집사 녀석이 나를 극진히 아끼고 따르는구나"라고 느끼는 것 같다.

그리고 "기특한 집사 녀석의 정성"에 작은 답례를 하는 차원에서 아주 아주 가끔씩 집사 녀석의 "쓰담 쓰담"을 허용하고 있다.  


까칠해도 친구는 소중해

까칠한 성격에 친한 고양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데 희한하게도 겁쟁이 오스카와 유독 친하고, 오스카에게는 무척이나 관대하다. 스릴러는 다른 고양이들에게는 까칠해도 오스카에게는 뭐든 양보하며, 몸을 비비고, 함께 잠을 잔다.  


한 마리는 겁쟁이고 한 마리는 사납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둘이 함께 있으면 그 단점들이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사이좋고 평범한 두 마리의 고양이일 뿐이다.

겁쟁이와 까칠이의 우정은 아마도 한 녀석이 갈 때까지 변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여름마다 털갈이를 해서 전혀 다른 고양이가 된다.
어이... 생긴거 가지고 말하지 말라고...


여름마다 털갈이를 해서 자신의 자랑거리인 갈기를 잃어버리는 녀석.

그 때문인지 여름이면 좀처럼 힘을 못쓰는 녀석.

언제 부턴가 발톱을 세우는 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가끔 발톱을 세우면 마치 친구들 때려놓고 부모님이나 선생님들 눈치 보는 어린아이처럼...  슬쩍 우리를 바라보는 녀석.

그리고 먹이 그릇을 우리 옆에다 놔도 "멀리 놔달라"는 무언의 불평 없이 가까이 와서 먹이를 먹는 녀석.


녀석의 변화에 "스릴러도 나이를 먹나 보다"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들 즈음... 날카로운 강타 한번 날리고 도도하게 걸어가며 우리를 돌아본다.

"나? 카리스마 스릴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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