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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un 20. 2017

지중해의 길냥이들 열한 번째 이야기

배려왕 오스카.. 나 포크 쓰는 고양이야


지중해 길냥이 무리 중에 오스카라고 불리는 오렌지 태비 (오렌지색 줄무늬) 냥이가 한 마리 있다. 

오렌지 태비는 통계적으로 8:2 의 비율로 수컷이 월등히 많다고 한다.

오스카도 통계적으로 수컷일 확률이 높고, 덩치나 신체구조로 봐서도 수컷으로 보이는데 무리에 끼어있는 새끼 고양이들을 챙겨줄 때 보면 오히려 암컷에 더 가까워 보인다. 

 겁쟁이지만 배려심은 최고

오스카는 우리가 먹이를 주면 언제나 새끼 고양이들이 먹는 것을 지켜보다가 새끼들이 다 먹고 나면 남은 것을 먹고는 한다. 그런 녀석이 이뻐서 신랑이 녀석을 특별히 챙겨주려고 하는데 이 녀석이 원체 겁쟁이라 챙겨주는 것도 쉽지가 않다.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화들짝 놀라서 줄행랑을 쳐버려서 녀석을 주려고 하던 음식은 다른 고양이들이 재빨리 낚아채가고는 한다. 


하지만 녀석이 눈치는 있어서 신랑이 자기를 챙겨준다는 것을 알고 언제부턴가 도망치지 않고 신랑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물론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신랑이 자기를 위해 먹이를 내려놓으면 조심스레 다가와 먹고는 한다. 하지만 그것도 다른 재빠른 길냥이들에게 빼앗기기 일수다. 


그런 경우  다른 녀석들 같으면 그 음식을 놓고 싸울 텐데 오스카는 싸움은커녕 멀뚱멀뚱 지켜보고만 있다. 

"그래 많이 먹어라. 나는 저 집사라 불리는 인간들이 더 줄 거야"라는 표정으로 신랑을 바라본다. 


혹시나 겁이 많아서 못 싸우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가장 사나운 스릴러가 오스카 앞에서는 얌전해지는 것을 보면 고양이들 사이에서까지 겁쟁이는 아닌 것 같다. 


나 포크 쓰는 고양이야 

오스카에게 먹이를 주면서 가끔씩 재미있는 모습을 보고는 한다. 

바닷가라 바람이 심하게 불 때가 있는데 그때 먹이를 담은 플라스틱 접시가 바람에 휙~ 날려가면 다른 길냥이들은 겁을 먹고 숨을 곳 먼저 찾는다. 하지만 오스카는 침착하게 한 발로 접시를 누르고 그 안의 것을 먹는 것이다.


"오... 녀석 머리 좀 쓰는데."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신랑이 포크에 먹이를 살짝 올려서 바닥에 내려놓았더니 포크를 한 발로 지그시 누르고는 그 위에 있는 먹이를 핥아먹기 시작했다. 다른 길냥이들은 포크가 이리저리 움직이니 먹으려다 포기하기 때문에 다른 냥이들의 방해 없이 오스카에게만 먹이를 줄 방법이 생긴 것이다.  


"얘야 누룽지는 긁어먹어야 맛있고, 고양이 먹이는 깡통을 핥아먹어야 맛있는거야."

포크, 스푼이나 깡통 등 모든 용기에 담긴 먹이를 차분히 잡고서 먹는 법을 알고 있는 오스카. 

녀석들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나 보다.  

 

게으름은 필수 

오렌지 태비는 고양이들 중에서도 매우 게으른 편에 속한다고 한다. 

작은 동물이나 새를 잡으러 다니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귀찮아하고, 다른 고양이에 비해  먹고 자는 것에 월등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오렌지 고양이라고 하는데 이 녀석이 딱 그 과다. 

때로는 일어나는 것이 귀찮아서  먹이를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백수 냥이다. 


까칠하고 성격 나쁜 스릴러도 오스카 옆에서 잠을 자고 오스카에게는 관대한 것을 보면 길냥이들 사이에서는 꽤나 두리뭉실한 녀석 같다. 

너무나 겁이 많아서 결코 다가서지 않을 것 같은 오스카. 

그런데 요즘은 우리가 잠깐잠깐 만지는 걸 허락한다. 

그런 오스카를 볼 때마다 길냥이들과 우리의 인연이 길게 이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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