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데이터로 읽는 직장인의 마음
새로운 경쟁은 '누가 더 많은 AI 토큰을 소비하는지를 겨루는 것'입니다.
뉴욕타임스의 케빈 루즈(Kevin Roose) 기자가 보도한 이 현상의 이름은 '토큰맥싱(Tokenmaxxing)'입니다 [1]. 토큰이란 AI 모델이 텍스트를 처리할 때 사용하는 연산 단위인데, 이 토큰 소비량이 곧 업무 성과의 지표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숫자가 좀 충격적입니다.
올해 봄, OpenAI의 한 엔지니어가 1주일 만에 2,100억 개의 토큰을 사용했습니다 [1]. 위키피디아 전체를 33번 채울 수 있는 양입니다. Anthropic에서는 한 개발자가 Claude Code에 월 15만 달러(약 2억 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1]. 이것이 단순한 과시라면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겁니다.
Meta는 2026년부터 직원 성과평가에 AI 사용량을 공식 반영하기 시작했습니다 [1].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GTC 컨퍼런스에서 "엔지니어에게 기본급의 절반에 해당하는 AI 토큰 예산을 추가로 지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
토큰이 급여의 '네 번째 기둥'이 되고 있습니다. 기본급, 보너스, 주식 옵션에 이어 AI 연산 예산이 보상 패키지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이 시리즈에서 AI 피로, 스킬 유통기한, 조직 설계까지 다뤘는데요, 오늘은 경영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이 현상의 의미를 짚어보려 합니다.
경영학에는 패러다임이 바뀌는 결정적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전환은 1911년, 프레드릭 테일러(Frederick Taylor)의 '과학적 관리의 원칙(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에서 시작되었습니다 [3].
테일러는 공장 노동자의 동작을 초 단위로 분석했습니다. 삽질을 할 때 삽의 각도, 팔의 궤적, 쉬는 간격까지 측정하고 표준화했습니다.
불필요한 움직임을 제거하고, 최소 시간 내 최대 생산량을 뽑아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테일러리즘의 핵심은 명확합니다. 육체적 동작의 최적화. 인간의 몸을 기계의 부품처럼 다루는 것입니다.
당연히 강력한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인간을 부품으로 취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전환은 1930년대, 호손 실험으로 촉발된 인간관계론(Human Relations Theory)입니다.
엘턴 메이요(Elton Mayo)와 연구진은 공장의 조명 밝기를 바꾸는 실험을 하다가 의외의 발견을 합니다.
조명이 밝든 어둡든, 관심을 받는 것 자체가 생산성을 높였습니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 감정을 가진 사회적 존재라는 인식이 경영의 전면에 등장한 것입니다.
세 번째 전환은 1990년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가 주창한 지식경영(Knowledge Management)입니다.
드러커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지식 노동자의 생산성"이라고 선언했습니다 [3]. 육체적 노동이 아니라, 머릿속의 지식과 창의성이 가치를 만드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노동자의 숙련된 동작보다 아이디어와 혁신이 경쟁력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저는 논문에서 이 흐름을 정리하면서 [3], 각 패러다임이 '인간 노동의 어떤 측면을 최적화하려 했는가'라는 관점으로 봤습니다.
테일러리즘은 육체적 동작을 최적화했습니다.
인간관계론은 감정과 관계를 최적화했습니다.
지식경영은 지적 창의성을 최적화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각 패러다임이 이전 패러다임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테일러리즘이 인간을 부품으로 취급한다는 비판을 받자, 인간관계론이 등장해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인간관계론이 생산성보다 관계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을 받자, 지식경영이 등장해 지적 자본의 가치를 부각했습니다.
각 전환에는 10~30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전환의 속도가 다른 것 같습니다.
ChatGPT가 등장한 것이 2022년 11월입니다. 토큰 사용이 보상 패키지의 일부가 된 것이 2026년 3월입니다. 불과 3년 4개월 만에 경영의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2026년, 네 번째 전환이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토큰맥싱을 단순한 유행이 아닌, 경영사의 맥락에서 바라보면, 이제 네 번째 패러다임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테일러가 삽질의 동작을 초 단위로 측정했듯이, 지금의 기업들은 직원의 AI 토큰 소비량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있습니다. 트래킹 도구인 톡스케일(Tokscale)은 개발자들의 토큰 사용량을 측정해 글로벌 리더보드에 공개합니다 [1].
Theory Ventures의 토마쉬 퉁구즈(Tomasz Tunguz)는 이것을 "엔지니어 보상의 네 번째 기둥"이라고 불렀습니다 [2]. 상위 25%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연봉이 37만 5천 달러라면, 10만 달러의 AI 토큰 예산이 추가되어 총 보상의 20% 이상이 연산 자원에 할당된다는 계산입니다.
과거에는 육체적 동작을 최적화했다면, 이제는 지적 연산을 최적화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새로운 테일러리즘'이라고 부르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테일러리즘에서 최적화의 주체는 경영진이었습니다. 노동자는 최적화의 대상이었습니다.
경영진이 표준 동작을 설계하고, 노동자는 그것을 따랐습니다.
토큰맥싱에서는 방향이 다릅니다. AI 토큰을 어떻게 쓸지를 결정하는 것은 엔지니어 자신입니다.
젠슨 황이 말한 것은 "토큰을 이렇게 써라"가 아니라, "토큰을 줄 테니 생산성을 올려라"입니다 [2].
어떤 업무에,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AI를 활용할지는 개인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테일러리즘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입니다.
테일러리즘은 노동자의 자율성을 제거했습니다. 토큰맥싱은, 적어도 이상적으로는 개인의 자율성을 전제합니다.
AI 토큰 예산을 풍족하게 받은 엔지니어는 사실상 '1인 기업' 수준의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과거에 팀 전체가 해야 했던 코드 작성, 테스트, 문서화를 한 사람이 AI와 함께 수행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여기에 막대한 비용을 지원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투자이기도 합니다.
이 양면성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쪽에서 보면, 토큰맥싱은 개인에게 전례 없는 생산 도구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다른 쪽에서 보면, AI 사용량이 성과 지표가 되는 순간, 직원은 끊임없이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는 압박 아래 놓이게 됩니다.
토큰 맥싱에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MetLife의 2026년 Employee Benefit Trends Study에 따르면, 직원의 61%가 AI의 윤리적·안전 리스크(편향, 잘못된 정보, 책임 소재 불명확)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4]. 59%는 AI가 일자리를 없애는 속도가 새로운 기회가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빠를 것을 두려워합니다 [4].
특히 주목할 수치는 이것입니다. 24%의 직원이 "AI와 직접 경쟁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4].
토큰맥싱 리더보드가 만들어내는 역학이 바로 이것입니다. 토큰 소비량이 리더보드에 올라가는 순간, 그것은 성과 지표가 됩니다. 아래에 있는 사람은 불안해지고, 위에 있는 사람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토큰을 소비합니다.
한 비평가는 이것을 "에이전트 시대의 코드 줄 수 세기"라고 불렀습니다 [1]. 2000년대 초반, 일부 기업이 개발자의 생산성을 '코드 줄 수'로 측정했던 것과 같은 오류라는 것입니다. 의미 없는 프롬프트를 반복해서 토큰 수를 늘리는 것과, 정교한 판단으로 적은 토큰을 효과적으로 쓰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시니어 엔지니어의 업무 (설계, 멘토링, 아키텍처 의사결정)는 토큰을 많이 소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직에 가장 큰 가치를 만들어냅니다.
토큰 소비량이 성과 지표가 되면, 이런 고부가가치 업무가 평가절하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집단은 주니어 엔지니어입니다. 이미 AI 시대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불안을 안고 있는 이들이, 리더보드 하단에서 벗어나기 위해 토큰을 맹목적으로 소비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다뤘던 '누구나 코딩하는 시대' 글의 앤트로픽 연구가 여기서 다시 겹칩니다. AI에게 코드를 전적으로 위임한 사람은 이해도가 40% 이하였고, 개념적 질문을 던지며 학습한 사람은 65% 이상이었습니다 [5]. 토큰을 많이 쓰는 것과 토큰을 잘 쓰는 것은 다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조용한 사직과 소명 상실'에서 정리한 경영론의 흐름을 다시 보면 [3], 각 패러다임의 전환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할 때마다, '일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이 함께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테일러리즘에서 일하는 이유는 '돈'이었습니다. 동작을 최적화하면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받는다. 인간관계론에서는 '소속감'이 추가되었습니다. 동료와의 관계, 조직에 대한 일체감이 동기가 되었습니다. 지식경영에서는 '자아실현'이 핵심이 되었습니다. 나의 지식과 창의성이 가치를 만든다는 자부심.
그렇다면 토큰맥싱 시대에 '일하는 이유'는 무엇이 될까요?
토큰 소비량이 성과의 기준이 되고, AI 사용량이 승진의 조건이 되는 조직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일하게 될까요?
저는 조용한 사직의 확산 배경을 여섯 가지로 정리했는데 [3], 그 중 핵심은 '소명의 상실'이었습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감정. 일의 의미가 사라지고, 관성으로만 출근하는 상태.
논문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소명의 상실이 단순히 개인의 태도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한 심리적 계약의 약화, 세대 간 가치관 충돌, 기술 변화로 인한 직업 불안, 효율 중심 경영의 한계, 이런 구조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았습니다 [3].
토큰맥싱은 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층위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AI를 썼느냐'만 측정한다면, 이것은 소명의 회복이 아니라 소명의 추가적인 침식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나는 오늘 AI 토큰을 많이 소비했다"는 것이 "나는 오늘 의미 있는 일을 했다"와 같은 뜻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루터의 직업소명론이 하나의 렌즈를 제공합니다.
사직서 대신 소명을 쓰다 5화 에서 다뤘듯, 루터는 모든 정당한 직업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며, 직업의 목적은 자기 성취가 아니라 이웃을 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토큰의 가치는 소비량이 아니라 그 토큰이 누구에게 어떤 유익을 만들었느냐로 측정"되어야 합니다.
이전 글에서 다뤘던 81,000명 인터뷰 연구의 결과가 이것을 뒷받침합니다. 사람들이 AI에게 가장 바라는 것 1위는 생산성이 아니라 'Professional Excellence(전문적 탁월함)'였고, 그 뒤를 개인적 변화, 삶의 여백, 시간의 자유가 이었습니다 [6].
사람들은 단순히 더 많은 토큰을 쓰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겁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합니다. 한국 직장인에게 토큰맥싱은 아직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AI 도구 사용 시간이 성과 보고서에 포함되기 시작한 조직이 있습니다.
많은 기업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한 업무 개선 사례"를 발표해야 하는 자리가 생기고 있습니다. 어느덧 AI를 '잘 쓰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 사람'과 동일시되기 시작했습니다. 토큰맥싱의 한국판입니다. 리더보드는 없지만, 이미 보이지 않는 경쟁이 많은 기업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다뤘던 AI 피로 글의 결론이 여기서도 유효합니다. "AI를 '더 많이 일하는 데' 쓸 것인가, '더 잘 사는 데' 쓸 것인가." 토큰맥싱 시대에 이 질문은 더 날카로워지고 있습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토큰맥싱은 경영사의 네 번째 패러다임 전환의 신호탄일 수 있습니다.
육체적 동작의 최적화에서, 감정의 최적화, 지식의 최적화를 거쳐, 지적 연산의 최적화로.
하지만 이 패러다임이 테일러리즘의 반복이 되지 않으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토큰의 '양'이 아니라 '질'을 측정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토큰을 소비했느냐가 아니라, 그 토큰이 어떤 가치를 만들었느냐를 봐야 합니다. 이것은 이 시리즈에서 계속 반복되는 주제입니다. '도구를 쓰는 것'과 '도구의 결과를 판단하는 것'은 다릅니다.
둘째, 토큰 이전에 소명이 있어야 합니다.
왜 이 일을 하는가. 이 일이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만드는가. 이 질문이 먼저 있어야, 토큰은 그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가 됩니다. 질문 없이 토큰만 소비하면, 그것은 1911년 테일러가 스톱워치로 삽질을 재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셋째, 토큰의 혜택이 공정하게 분배되어야 합니다.
현재 토큰맥싱은 실리콘밸리 엔지니어 중심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AI의 영향은 모든 산업, 모든 직군에 미치고 있습니다. MetLife 조사에서 59%의 직원이 "AI가 기회보다 빠르게 일자리를 없앨 것"을 두려워한다고 답했습니다 [4]. 한국의 직장인도 예외가 아닙니다.
토큰 예산이 일부 엘리트 엔지니어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직원의 역량 강화 도구가 되려면, 조직 차원의 투자와 설계가 필요합니다. 이전 글에서 다뤘던 '조직 설계가 먼저'라는 메시지가 여기서도 유효합니다.
AI가 직원에게 1인 기업 수준의 역량을 부여하는 시대. 그 역량을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를 묻지 않으면, 우리는 100년 전의 실수를 더 정교한 형태로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경영의 역사가 알려주는 것은 이것입니다. 새로운 도구가 등장할 때마다, 진짜 질문은 도구의 성능이 아니라 "이 도구를 가지고 인간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였습니다.
스톱워치를 든 테일러에게도, 토큰 리더보드를 운영하는 실리콘밸리에게도, 이 질문은 동일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무엇을 위해 토큰을 쓰고 있나요?"
[1] Roose, K. (2026). Tokenmaxxing: The race to use the most AI at work. New York Times / Hard Fork Podcast.; Tokscale 글로벌 리더보드. (OpenAI 엔지니어 주간 2,100억 토큰, Anthropic 개발자 월 15만 달러, Meta 성과평가 AI 사용량 반영)
[2] Huang, J. (2026). GTC 2026 Keynote. NVIDIA.; Tunguz, T. (2026). Theory Ventures analysis. (기본급 50% 토큰 예산, 보상의 네 번째 기둥, 상위 25% 엔지니어 37.5만 달러 + 토큰 10만 달러)
[3] 김광태. 조용한 사직과 소명 상실: 조직이론과 기독교 소명 개념의 통합적 고찰. 신앙과 학문, 2025, 30.3: 5-38.
[4] MetLife. (2026, March). 24th Annual U.S. Employee Benefit Trends Study. (직원 61% 윤리·안전 리스크 우려, 59% 일자리 소멸 두려움, 24% AI와 경쟁 압박, 67% 고용주 AI가 마찰·불신 초래 인정) [5] Shen, J. H., & Tamkin, A. (2026). How AI Impacts Skill Formation. Anthropic / arXiv:2601.20245. (AI 위임 그룹 이해도 40% 이하 vs 개념적 질문 그룹 65% 이상)
[6] Anthropic. (2026, March 19). What 81,000 People Want from AI. (159개국 80,508명: Professional Excellence 18.8%, 개인적 변화 13.7%, 삶 관리 13.5%, 시간의 자유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