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을 잃어버린 세대가 왔습니다

[시리즈] 일터의 관계학

by 테오

최근 이름 있는 스타트업의 인사 임원, 리드분들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며 브런치에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주제가 다섯 가지 정도 됩니다. 그만큼 제가 깊이 고민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화두를 던져준 자리였기에, 이를 하나씩 글로 정리해 보려 합니다.


최근 직장 선호도 1위를 차지한 국내 한 핀테크 스타트업의 채용팀 리드분은 식사 중 이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업무는 잘하는데, 회의에 들어오면 말이 조각조각이에요. 앞뒤 맥락 없이 결론부터 말하고, 반응이 없어도 그냥 끝내요. 눈도 잘 못 마주칩니다."


농담도, 훈계도 아니었습니다. 2026년 봄, 많은 조직이 같은 증언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날 자리에 있던 다른 스타트업 CHRO 한 분도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성과 평가 대신 줄글로 피어 리뷰를 쓰는데, 올해는 제가 읽을 수가 없을 정도예요. 결론만 있고, 왜 그렇게 느꼈는지 맥락이 빠져 있어요."


한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서 같은 증상이 확산하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숫자는 이미 말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이 현상은 한국만의 일이 아닙니다.

Rowan Center for Behavioral Medicine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과 2024년 사이 Gen Z가 사회불안(social anxiety)으로 상담을 요청한 건수는 908% 증가했습니다. [1] 2019년 기준 대비 약 10배입니다. 같은 기간 미국 성인 전체의 사회불안 증가율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상승폭입니다.


Pew Research Center가 2022년 발표한 팬데믹 후속 조사에는 또 다른 숫자가 있습니다. Gen Z 응답자의 65%가 "팬데믹 이후 사회적 기술을 다시 배워야 한다고 느꼈다"라고 답했습니다. [2] '다시 배운다'가 아니라, '다시 배워야 한다고 느낀다'입니다. 이 세대가 자신의 사회화 공백을 스스로 먼저 인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미국 Intelligent의 2024년 설문은 기업의 시선을 보여줍니다. 1,243명의 비즈니스 리더 중 40%가 "Gen Z 졸업생이 직무에 준비되어 있지 않다"라고 답했고, 그중 70%는 그 원인으로 '커뮤니케이션 스킬 부족'을 지목했습니다. [3]


이 세 숫자를 겹쳐 보면 그림이 뚜렷해집니다. 젊은 세대는 자신의 사회화 결핍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임상 현장은 그 결핍이 불안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기업 현장은 그 결핍을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세 지점은 서로 다른 표현을 쓰지만 같은 원인을 가리킵니다. 성인기 초반에 쌓아야 할 '대면 상호작용의 총량'이 한 세대 단위로 비어버린 것입니다. 그 빈자리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따라잡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사회화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 유독 '맥락'이 사라졌을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문제가 '세대의 기질' 때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Northeastern University의 행동과학 교수 Kristen Lee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4] "Gen Z가 대학 생활의 핵심 시기를 원격으로 보냈다는 사실이 결정적이다. 그 시기는 정체성 형성과 대면 상호작용의 밀도가 가장 높아야 할 시기다."


대학 2~4학년은 사회심리학의 오래된 개념인 '사회화 자본(socialization capital)'이 집중적으로 형성되는 시기입니다. 동아리 회의에서의 어색한 침묵을 견디는 법. 같은 수업 동기와 3일 연속 밥을 먹는 경험. 모르는 사람과 5분간 이야기하다가 연락처를 교환하게 되는 흐름. 이런 수천 번의 '작은 사회화'가 쌓여 성인 커뮤니케이션의 기초가 만들어집니다.


코로나 학번은 바로 그 시기를 화면 너머로 보냈습니다. 수업은 Zoom, 회의는 Discord, 저녁은 배달 앱이었습니다. 기술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그저 '맥락을 지연시키며 머무는 경험'의 총량이 구조적으로 줄어들었을 뿐입니다.


여기서 '맥락을 지연시키는 경험'이란 조금 생소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오프라인 대화는 목적을 단번에 꺼내지 않습니다. 밥을 먹다가 농담이 오가고, 농담 뒤에 가벼운 질문이 나오고, 그 질문을 통해 본 주제로 흘러갑니다. 이 '한참을 돌아서 본론에 도달하는' 구조가 맥락을 만듭니다.


온라인 상호작용은 구조상 이 지연이 어렵습니다. Zoom 회의는 정시에 시작하고 정시에 끝납니다. Slack 메시지는 결론이 앞에 있고 맥락은 실종됩니다. 이 형식은 업무에는 효율적이지만, 사회화 자본을 쌓는 방식으로는 빈약합니다. 즉, 우리가 흔히 칭찬하는 '간결함'은 사회화 관점에서는 결핍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British Council은 2024년 리포트에서 이 결핍을 감정 지능(EQ), 비즈니스 라이팅, 그리고 대면 인터랙션, 세 가지 영역으로 정리했습니다. [5] 세 영역 모두 '혼자 공부해서 키우기 어려운' 것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결국 타인이 필요하고, 타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필요한 자원입니다.




조직은 그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CHRO들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이 세대를 '그냥 놔두는 것'은 해답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밥 사주고 회식하며 가르치는 것'도 해답은 아닙니다. 후자는 오히려 심리적 안전감을 훼손합니다.


조직심리학의 오래된 두 개념이 여기에 해법의 뼈대를 제공합니다.


첫째, Van Maanen과 Schein의 조직 사회화 이론(1979)입니다. [6] 이 이론은 신입이 조직의 일원이 되는 과정에서, '순차적·고정적·연속적·부여된 정체성' 같은 구조화된 경로를 밟을 때 적응 성공률이 높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코로나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방임이 아니라 명시적 구조입니다.


둘째, Amy Edmondson의 심리적 안전감(1999)입니다. [7] 무언가를 묻거나 틀릴 때 불이익이 없을 거라는 감각이 팀에 자리 잡을 때, 학습과 사회화가 가속됩니다. '맥락 없는 말'을 지적하기 전에, '맥락 없는 말을 해도 안전한' 자리를 먼저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두 이론은 얼핏 상반되어 보입니다. 전자는 '구조를 더하라'라고 말하고, 후자는 '경계를 낮춰라'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 쌍입니다. 구조가 있어야 관계의 예측 가능성이 생기고,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심리적 안전감이 만들어집니다. 반대로 안전감이 있어야 구조 안에서도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위 이론에 비추어 생각하면, 코로나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자율성 강화'가 아닙니다. '예측 가능한 구조 + 예측 가능한 온정'의 조합입니다.




실무 언어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이론만 반복하면 현장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CHRO들과의 대화, 그리고 FranklinCovey의 Gen Z 리포트를 종합하면 네 가지 실무 원칙이 나옵니다. [8]


첫째, 맥락의 스캐폴딩(Scaffolding)을 문서화하세요. 회의 시작 전 배포되는 한 장짜리 사전 맥락 노트는 코로나 세대에게 단순한 친절이 아닙니다. 그들이 '조각나지 않은 말'을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자산이 될 수 있습입니다. 노트는 '결론한 줄, 배경 세 줄, 질문 두 개' 정도의 형식이면 충분합니다.


둘째, 1:1 멘토링을 의무화하세요. 주 1회 30분이면 충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멘토가 '업무 선배'가 아니라 '관계 코치' 역할을 맡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누구와 어떤 대화를 했나요"라는 질문은 주간 업무 목록보다 훨씬 깊은 사회화 데이터입니다.


셋째, 구조화된 리추얼(ritual)을 도입하세요. 매주 화요일 점심때의 10분짜리 팀 체크인, 혹은 프로젝트 시작 시의 킥오프 템플릿. '자발적 어울림'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대신 반복 가능한 리추얼이 사회화의 부담을 구조로 흡수하게 합니다.


※ 리추얼: 매일 나 자신을 위해 반복적으로 행하는 의식 활동


넷째, 피드백 허들을 낮추세요. 월 1회의 거창한 1on1보다 매일 10줄 이내의 비동기적인 소통이 더 효과적입니다. 피드백을 자주 받는 경험 자체가 그들이 '맥락 있는 말'을 만드는 연습이 됩니다. 긴 말을 잘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긴 말을 할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네 가지를 'Gen Z 전용 프로그램'으로 포장하지 마세요. 세대 이름표를 붙이는 순간, 당사자는 이를 낙인으로 받아들입니다. 그저 '온보딩 표준'이라고 이름 붙이면 충분합니다. 코로나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특별 대우'가 아니라 '평범한 반복 가능성'입니다.




구체적인 장면으로 그려보면


추상적으로 설명하다 보니 손에 잡히지 않을 수 있어, 세 개의 장면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겠습니다.


장면 하나.

입사 2개월 차 A가 월요일 오전 10시 팀 회의에 들어옵니다. 예전 방식이라면 "A 씨, 지난주 어땠어요?"로 회의가 시작됩니다. A는 한 박자 멈추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 계산하다가, "네, 그냥 뭐…" 하고 대답합니다. 이 장면은 A가 '소극적'이어서가 아닙니다. 그저 '열린 질문'을 즉흥적으로 해석하는 근육을 덜 써 보았기 때문입니다.


새 방식은 한 줄 더 붙이면 됩니다. 사전에 배포된 어젠다에 "각자 지난주 배운 것 하나, 막힌 것 하나를 한 문장씩"이라는 구조를 미리 넣어두는 것입니다. A는 주말에 그 한 문장을 고민할 시간을 얻습니다. 같은 10시의 회의지만 A의 발언은 질적으로 달라집니다.


장면 둘.

A가 슬랙에 갑자기 "이거 안 되는데요"라고만 적습니다. 앞뒤 맥락도, 스크린샷도, 시도한 방법도 없습니다. 상사는 답답함을 느낍니다. 이때 '질문을 잘 못하는 애'라고 판단하면 끝입니다.


대신 팀의 질문 템플릿을 주면 어떨까요? "(1) 하려고 한 것 (2) 기대한 결과 (3) 실제 결과 (4) 시도한 것 3개" 형태의 네 줄 구조입니다. A는 처음엔 어색해합니다. 그러나 3주가 지나면 이 구조가 A의 사고 구조로 자리 잡습니다. 조직은 '질문을 잘하는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잘하도록 훈련하는' 구조를 갖추어야 합니다.


장면 셋.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A가 혼자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A야 같이 먹으러 가자"라고 누군가가 부릅니다. A는 "저는 괜찮아요"라고 답합니다. 이때 조직은 종종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합니다. "요즘 애들은 회식도 싫어해"라며 결론짓거나, 반대로 "더 적극적으로 부르자"며 강도를 높이거나.


두 선택 모두 실패합니다. 세 번째 선택이 필요합니다. 팀 캘린더에 '화요일 12:20 팀 런치 (참석 Optional)'라는 고정 슬롯을 만드는 것입니다. '강요되지 않은 예측 가능성'이 열쇠입니다. A는 억지로 결정하지 않아도 되고, 불참해도 되며, 나갈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A가 '예측 가능한 기회'를 얻는다는 점이며, A는 몇 주에 한 번씩 그 기회를 스스로 '선택'하게 됩니다.




오해하기 쉬운 두 가지


이 맥락에서 조직이 빠지기 쉬운 함정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첫째, "Gen Z는 특별하다"는 성급한 일반화입니다. Deloitte의 2025 Global Gen Z 설문은 오히려 다른 풍경을 보여줍니다. [9] Gen Z의 근무 동기, 성장 욕구, 조직 기여 의지는 이전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차이는 기질이 아니라, 사회화 자본의 분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대론'으로 문제를 덮어버리면 진짜 처방을 놓칩니다.


둘째, "그러니까 다 대면으로 돌려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원격근무가 코로나 세대를 망친 원흉이 아닙니다. 문제는 '사회화 맥락이 제거된 상태로 일이 시작되는 것'이지, '공간 자체'가 아닙니다. 하이브리드 환경에서도 스캐폴딩·리추얼·1:1이 제대로 설계되면 결핍은 메워집니다. 복귀 명령은 해법이 아니라 회피에 가깝습니다.


세 번째 함정도 하나 있습니다. "결국 AI가 다 해결해 줄 거다"라는 기대입니다. AI는 보고서 초안을 대신 써주고 회의 요약을 해주지만, 사회화 자본을 만들어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AI가 커뮤니케이션의 공백을 메워주는 동안, 사람 간의 맥락 근육은 덜 쓰이게 됩니다. 코로나 세대의 결핍 위에 AI 의존이 겹치면, 조직은 '간결하지만 연결은 약한' 팀으로 수렴하게 됩니다.




다시, 처음의 장면으로


처음에 인용한 채용팀 리드의 말로 돌아가보겠습니다.

"회의에 들어오면 말이 조각조각이에요."


이 장면에서 문제로 보이는 것은 '말'이지만, 실제로 부족한 것은 '맥락'입니다. 그리고 맥락은 개인이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함께 만드는 자본입니다.


한 세대가 맥락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한 세대가 맥락을 형성할 기회를 잃었던 것입니다.

이 차이는 중요합니다. 전자라면 우리는 그 세대를 탓하게 됩니다. 후자라면 우리는 조직을 다시 설계하게 됩니다.


2026년의 좋은 조직은, 후자 쪽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CHRO들이 지금 이 질문 앞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분들이 들려준 현장의 목소리는 하나였습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글이 제시한 네 가지 원칙과 세 가지 장면이 완벽한 정답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세대를 탓하지 않는'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는 있다는 생각에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코로나 세대는 조직에 짐을 지운 세대가 아닙니다. 조직에 '사회화를 다시 고민하고, 설계할 기회'를 준 세대입니다.




References


[1] Rowan Center for Behavioral Medicine. (2024). The Gen Z Stare: Social Anxiety and New Communication Styles. https://rowancenterla.com/the-gen-z-stare-social-anxiety-and-new-communication-styles/

[2] Pew Research Center. (2022). Social Skills Relearning After Pandemic Restrictions: Gen Z Findings.

[3] Intelligent. (2024). Business Leaders Survey on Gen Z Workforce Readiness (N=1,243).

[4] Lee, K. (Northeastern University). Behavioral science commentary on pandemic-era socialization and Gen Z communication. Cited in Rowan Center 2024 report.

[5] British Council. (2024). Gen Z in the Workplace: Bridging the Soft Skills Gap to Drive Success. https://corporate.britishcouncil.org/insights/gen-z-workplace-bridging-soft-skills-gap-drive-success

[6] Van Maanen, J., & Schein, E. H. (1979). Toward a theory of organizational socialization. Research in Organizational Behavior, 1, 209-264.

[7] Edmondson, A. (1999). Psychological safety and learning behavior in work teams.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44(2), 350-383.

[8] FranklinCovey. (2025). Understanding Gen Z in the Workplace. https://www.franklincovey.com/blog/understanding-gen-z-in-the-workplace/

[9] Deloitte. (2025). Global Gen Z and Millennial Survey 2025. https://www.deloitte.com/global/en/issues/work/genz-millennial-surve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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