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역할

by 진안


오래된 친구와의 대화는 거리낄 것이 없다. 서로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삶의 희로애락을 가감 없이 공유하고 나눈다. 모두 다른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고 경제활동을 하고 있어도 서로가 공감하기에 충분한 세월이 서로의 이해를 높여준다. 오랜만에 만나더라도 어김없이 이어지는 주제는 먹고사는 이야기이다.

“아 회사 출근하기 싫어.”

“너는 그냥 출근하면 되지, 우린 생사가 걸려있어.”

출근하기 싫다는 말에 자영업을 하는 친구들은 ‘생사’를 이야기한다. ‘생계’가 아니라 ‘생사’라는 단어에서 최근 얼마나 경기가 침체되어 있고 소비심리가 위축되어 있는지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사실 월급쟁이는 출근만 잘 해도 또박또박 나오는 월급이 있으니 생사가 걸린 일은 아닌 것은 맞다.

월급쟁이 신(scene)도 살아남기 쉽지 않은 정글이기에 두 가지 상반된 제안들이 이어진다. ‘조용한 퇴사’와 ‘직업인이 되자’라는 메시지이다. 조용한 퇴사는 말 그대로 조용히 스스로 퇴사의 마음으로 회사를 정말 왔다 갔다 하는 마음가짐이라고 보면 되겠다. 회사에 퇴사 통보로 의사를 밝히진 않았으나 회사는 그저 월급을 벌기 위한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이 되자는 말은 특정 분야에 대한 경험과 통찰로 자신만의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다. 이를테면 대체 불가능한 고성과자이자 전문가로서 one of them 이 아닌 only one, 퍼스널 브랜딩이 된 직장인이 되는 것이다. 자영업자들도 업을 생사로 표현한 것처럼 직장인 생활도 만만치 않게 극단적이다. 잘나가거나 스스로 낙오자가 되거나, 어중간한 중간은 없다. 어중간한 중간은 주니어 때까지만 가능하다. 시니어 레벨에 가까워질수록, 피라미드처럼 상단부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결국 아래로 미끄러 지거나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더 가까워지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이다. 피라미드 꼭대기에서도 떨어지지 않으려면 아슬아슬 까치발로 버티기를 해야 한다.

40대, 직장 생활 20년 차 정도가 되면 내가 갈 수 있는 단계가 어렴풋이 보인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언저리에서 조금 더 올라가거나 아래로 미끄러지거나 둘 중 하나다. 그중 나의 현재 마음가짐은 사실 조용한 퇴사에 더 가깝다. 올라갈수록 점점 높은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안고 갈 만큼 자리 욕심도 없고 일 자체에 매력도 잃은 지 오래다. 하지만 아직은 조직에서 나에게 바라는 바가 있는지 미끄러지진 않고 아슬아슬 걸터앉아 있는 중이다.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보며 목덜미에 담이 결리느니 지금, 현재만 보며 마음을 비우고 하루하루 책임을 다한다. 조용한 퇴사라고 해서 무책임해지는 것은 아니다. 딱할 만큼만 에너지를 투여하고 큰 기대도, 야망도 품지 않는 상태를 유지한다. 삶의 동기는 회사 밖에서 찾는다. 독서를 통해 사유하고 글을 쓰며 나로 살아간다. 직장은 목적이나 목표가 아닌, 나로 살기 위한 수단이 되어 생계를 든든히 유지해 준다. 월급은 내가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자유를 준다. 만약 직장이 없었다면 돈이 되는 글을 쓰기 위해 나의 유일한 행복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회사 생활은 내 삶을 안정적으로 지탱해 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누군가에겐 직장 생활이 인생의 목표이자 목적일 수 있다. 또 다른 이에겐 나처럼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목표였다가 수단으로, 그리고 또 수단이었으나 목표가 될 수도 있는, 정해진 고정된 정답은 없다. 다만 지금의 나에게 적합한 직장의 역할을 찾아갈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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