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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Pyo Dec 17. 2015

서핑하는 흑형.

아, 잘하지는 않습니다.

열심히만 하지 말고 잘해라!!


회사에서 종종 듣는 말이다. 저도 잘하고 싶어요. 서핑을 잘하고 싶어요. 아, 참고로 저는 서핑을 잘하지는 않습니다.



반자이 파이프라인, 노스쇼어, 하와이



하와이 노스쇼어에 가면, 초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분간이 안 되는 애들이 자기 키만 한 보드로 우리 집보다 키가 클 것만 같은 파도를 이리 가르고 저리 치고 위아래 돌리고 좌우로 잘라가며 넋을 잃고 보게 만든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나도 보드를 파도 거품으로 던진 후 몸을 밀착한 뒤 팔을 노 젓듯이 저어가며 파도로 향한다. 아까 본 외국 꼬맹이의 파도 타던 모습을 떠올리며 나도 잘 탈거라며 스스로에게 강제 동기부여를 한다. 마치 일하듯이.



낮, 와이키키 해변, 하와이



파도를 잡아탈 수 있을 정도의 먼 바다로 나간 뒤 파도를 기다린다. 그리고 때가 오면 육지로 향하는 파도에 내 몸과 보드를 살짝 실어 보낼 요량으로 이번엔 육지를 향해 아까보다 세게 팔을 젓는다. 정확히 말하면 피똥 싸게 팔을 젓는다. 아까 그 꼬맹이가 타던 기억 따윈 나질 않는다. 그냥 이 파도를 타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다. 


혹시 어릴 때 돌부리에 걸려 앞으로 넘어져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보드에서 앞으로 꼬꾸라져서 부서지는 파도에 얼굴을 처박는 과정에서 보이는 광경이 마치 그때와 같다. 땅에 머리를 박으면 골이 빠개지는 아픔과 함께 정신이 혼미해지지만, 해수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 몇 바퀴를 구른 뒤에나 물 밖으로 고개를 빼내어 숨을 쉴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듯하다.  익사당할뻔한 물고기처럼 눈이 시뻘게진 채로 겨우 보드에 몸을 의지한다.



선셋, 와이키키 해변, 하와이



잘하려고 하다 보니 몸에 힘이 들어가고 뻣뻣해지고 시야가 좁아졌다. 조류의 흐름, 파도가 가장 높은 peak point 파악, 파도가 깨지는 방향 확인, rip curl의 각도.. 다 생각하다가.. 잘 타 보려고 하다가 시야가 너무 좁아졌다. 정작 좋은 파도가 들어왔는데 잡아 타질 못했다.


한 2년 정도가 지난 지금도 서핑을 하다 보면 똑같은 광경을 본다. 여전히 그 짜고 더러운 방사능이 함유되었을지도 모른 바닷물에 얼굴을 처박는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짠물 속에서 통돌이를 당해도 그냥 웃어 버리곤 다시 보드 위에 몸을 얹어 먼 바다로 팔을 노 저어 나간다는 것.


잘하려 한다고 잘되지 않는다. 잘하는 건 그냥 결과일 뿐이다. 정말 중요한 순간이 왔을 때 실수하지 않게, 아니면 몰라서 놓치지 않게 지금은 그냥 준비하면 된다. 그러니 열심히 해라.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동안만이라도 열심히 해서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지금은 열심히 해라. 잘하는 건 그냥 결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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