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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Pyo Jan 15. 2016

회색빛 도시

대만의 골목길 이야기


매쾌한 공기와 어두침침한 하늘이  첫인상이었다. 


도시 계획이나 건축학적으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동남아의 건물들이 시멘트 상태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건물에 색을 입히지 않고 건물을 만든 재료의 색인 회색 그대로 둔다는 의미이다. 


예상하건대 너무너무 더워서 페인트 칠을 해도 금방 따가운 햇볕에 초콜릿 녹듯 페인트도 녹아내려서 건물이 엉망이 되어버려서일 거란 가설. 혹은 너무 뜨거운 햇살 때문에 페인트 색이 금방 바래 져버려서 아예 칠하지 않을 거라는 가설까지. 언젠가 건축가 친구가 생긴다면 꼭 물어보고 싶다.


골목길, 중산역 근처


우리나라 건물을 생각해보면 다양한 페인트 색으로 칠하거나 외벽을 고급화된 소재로 지어서 색상도 다양하고 그 소재도 다양하게 보인다. 아마도 앞으로는 내가 일하던 판교의 건축물들처럼 유리와 철골 구조로 된 건물 외벽에 대리석 소재들을 사용하여 마감한 건물들이 더욱 많아지지 않을까 싶다.


비교도 안될 만큼 비싼 자재와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높고 넓은 빌딩이기에 건물 하나하나를 보면 대만의 그것과 비교하였을 때 우리나라의 건물들이 압도적으로 멋져 보인다. 하지만 골목 단위로 비교하는 시점에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용산사, 대만


걸출한 스타들이 모여있는 스포츠팀의 경기를 보면, 가끔 너도 잘나고 나도 잘나서 누가누가 잘났나 뽐내기를 하다가 게임에서 지는 경우들이 생긴다. 그 상대가 우스운 네임 밸류를 가진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라도 팀워크로 똘똘 뭉친 상대라면 무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만약에 게임에서 지더라도 스타들로 구성된 팀은 오늘 컨디션이 별로라서, 운이 안 좋아서 그런 거일 뿐이라고 넘겨버리며 더 대단한 새로운 선수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혈안이 될지도 모른다.


골목길, 진탄역 근처


대만의 골목은 개별 건물이 건축학 적으로 완성도가 뛰어나지 않을 지라도 그들이 모여있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도시화가 진행된 큰 대로변의 바로  뒷골목만 봐도, 일정하고 균일한, 서로 닮은 건물들이 재미있어 보이는 골목의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것이 도시 건축의 결과물인지 아니면 건축의 제한적인 자원 때문에 발생한 결과물인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이들로 치면 청담동이나 신사동의 가게들부터 아주 오래된  밥집까지 그 속에 함께 녹아 있다는 점이 너무나도 놀라웠다. 해외여행을 하면 한 가지씩 수집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데 대만에서는 골목길의 사진을 수집하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길거리의 고목, 대만


새로운  도화지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매번 없애고 만들고 만을 반복하는 우리의 방식이 문득 떠올랐다. 몇십 년 전 외국인들이 한국에 방문하여 오밀조밀한 골목이 아름답다며 셔터를 눌러댔을 거 같다는 상상을 한다. 그 외국인들이 다시 한국에 방문하여 도시화가 진행된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대만의 골목길이 우리나라처럼 도시화의 과정에서 지금의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다시 대만에 방문하게 되면 지금과 같이 골목길 셔터를 누르는 이유가 그 아름다움 때문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배경의 모티브가 되었고, '꽃보다 할배'의 여행지로 방영되어 늘 가보고 싶었던 나라 대만. 늘 가보고 싶기만 했지 아무것도 몰랐던 대만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긴 시간은 아니지만 여행 중 관찰했던 짧은 생각들을 시간이 날 때마다 모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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