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진작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결국 결혼 조건이 맞지 않아 헤어지게 될 거라는 걸. 대기업 7년 차 남자와, 임용 시험을 볼지조차 망설이던 기간제 교사. 그게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그 안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고, 작아진 나를 결혼 상대로는 볼 수 없었던 너 역시 멀어져갔다. 아, 그래서구나. 나는 네가 내 곁에 있을수록 ‘서른, 여자, 계약직’이라는 단어에 미칠 것만 같았던 거구나.
너는 겉으로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늘 교묘하게무언가를 더 원했다. 적당히 젊고 예쁜 건 좋지만, 조금 더 성취하길, 조금 더 성장하길, 조금 더 반짝이는 행복을 너와 함께하길. 그래, 너는 나의 일상적인 행복 따위는 싱겁다고 여겼고, 그렇게 나를 조종해왔다.
그래서일까. 이별이 슬프지 않았다. ‘결혼에 대한 확신’과 ‘욕심’을 이유로 이별을 통보하다니 오히려 화가 났다. 화가 없는 나인데도 불구하고. 너는 많이도 울었다. 좋기만 했다며, 너처럼 자신을 이해해준 사람은 없었다며, 마음은그대로인데 자신은 함께 모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이게 다 자기 욕심인 것 같다며.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쩌라고. 그러면서도 울고 있는 너를 심지어 나는 달랬다. 그래도 정이 있으니까.
“왜 이렇게 성숙하냐”며 더 울던 너에게 나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게 아니라, 나는 네 비겁함에 동조할 생각이 없는 거야. 대신 이렇게 말했다. “미움은 없어. 각자 맞는 사람 만나면 되는 거야. 사실 나도, 네가 나를 만나는 게 늘 의아했어. 나도 같은 결론이었고, 다만 통보 방식이 아니라 대화로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때 깨달았다. 내 깊은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내가 사람을 잘못 봤고, 너도 나를 잘못 봤다는 걸. 마지막까지 나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너의 시선이 또 한 번 불편했다. 그래서 솔직히 말했다. 그건 부담스럽다고. 헤어질때 모습이 진짜라면 난 참 괜찮고 넌 참 별로네 라는 유치한 생각도 같이 했다.
그리고 관계에서 벗어나자, 이상할 만큼 자유로웠다. 서른의 여자는 계약직이어도 싱거운 행복에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너는 네 불안과 결핍을 내 조건으로 채우려했던 사람이었다. 물론 누구나 그런 면은 있겠지만, 그걸 대화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과 혼자 단정짓고 마무리하는 사람은 다른 것 같다. 그리고 후자의 사람은 그 어떤 사람과도 절대 행복할 순 없으며 발전도 없겠다 싶었다. 결국 나는 각자의 다름을, 각자의 속도를, 각자의 성장을 존중하지 못하는 관계 속에서 벗어나 이 마지막 페이지를 끄적이는 중인거다. 그리고 바로 미련없이 이 책을 덮었다.
해방이다. 자유다. 헤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내 우울의 근원은 너였고, 우리가 서로의 결핍을 채우려 욕심만 부리고 진짜 대화는 하지 않았다는 걸. 그래도 난 나름 시도했다며날 위로했다. 다음 연애에서는 더 많은 의미있는 대화를 해봐야지. 싱거운 행복을 싱겁다고 느끼지 않고 담백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봐야지. 또 이러다 상처받고 무너지고 난리를 치겠지만, 그래도 난 다시 일어나고를 반복하며 그냥 그렇게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