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말고 사랑만 받고 싶어

by 틈새

그 애와의 연애를 끝내고, 문득 생각했다. 아, 나 진짜 연애 잘 못하는 사람이구나. 연애에 100% 잘못이란 없겠지만, 지난 연애의 과오를 또 반복하다니. 이건 너무 발전 없는 거 아닌가 싶었다. 나는 늘 참고 참고 또 참다가 펑. 그렇게 1년 남짓 쌓아두다 터지고, 결국 헤어지는 게 늘 내 연애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남자들은 그제야 울었다. 그제야 자신을 돌아봤다. 그게 괘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날 사랑하긴 했구나 싶었다. 하지만 겨우 그런 걸로 안도하는 나도 참 못났다 싶은게 퍽 씁쓸했다.


남자들의 레퍼토리가 대부분 똑같은 게 놀라웠다. 늘 참아주고, 생각하고, 맞춰주던 나였기에 ‘다른 사람같다’는 말까지 듣는 그 상황이 똑같았다. 그런데 나는 더 이상 그런 걸로 우쭐해하지 않는 연애를 하고 싶었다. 마음이 부서지더라도, 다 쏟아붓고 사랑할 만큼 하는 그런 연애를 하고 싶었다.


상처받기 싫어서 하는 이해타산적인 연애에는 이제 이골이 났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건 남자와의 연애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세상과도 그렇게 연애를 하고 있었다. 상처받을까봐 지레 겁을 먹고, 그래서 용기를 내지 못하고, 결국 내가 원하는 것도 숨긴 채 참고 참다가 마음의 병을 키웠다.


엄마는 어릴 적 내게 말했다. “넌 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없니?” 정말 그랬다. 엄마가 나무의 푸르름이나 하늘의 맑음을 감탄할 때 나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엄마는 호기심으로 세상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나는 무관심으로 세상을 미워하던 사람이었던 걸까. 그래도 아직은, 헤어진 그 애가 조금은 궁금하다. 왜 내게 그렇게 담담한거냐고 계속 묻기만 한건지. 잔인하게 이별을 왜 고하지는 못한건지. 그렇다면 아직은 사랑인걸까. 왜 담담한거냐 계속 내게 물어본 그 애의 그 질문도 사랑인겅까. 물론 우린 이제 사랑만으로는 되지 않는게 세상에 생각보다 많다는걸 알아가고 있는 나이지만서도 말이다. 그냥 그게 사랑인지 아닌지가 궁금하긴 하더랬다.


나도 헤어지고 나서야 깨달은 게 있다. 기대지 않는 척했지만, 사실 나는 그에게 많이 기대고 싶었다. 서운하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많이 서운해하고 있었다. 서른 여자 계약직 그런 키워드에 괜히 기가 죽어서 괜히 자격지심이 들어서 네 옆의 내가 초라하다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기댈 데가 없으니 그동안 연락을 잘 하지 않던 친구들에게 분산적으로 기댔다. 서운할 일이 없으니 초라함을 느낄 일이 없으니 오히려 자유롭고 행복했다. 친구들은 내가 독립적인 줄 알았다. 연락이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난 내가 안 서운해하고 쿨하고 자격지심도 없는 줄 알았다.아니었다. 나는 사실, 되게 사랑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었다.


그런데 왜 그 말을 남자친구에게는 늘 하지 못했을까. 아마 내일, 그 애를 다시 만나 얼굴을 보게 돼도 그런 말은 못할것 같다. 나는 아마 또 이렇게 말하겠지. “내가 사랑한 건, 너가 아니라 날 사랑하던 너였다고.” 날 사랑하지 않는 너는 더 이상 내가 사랑하던 그 사람이 아니라고. 그 말은 자존심이고, 방어일 거다. 언제쯤이면, ‘니가 날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널 많이 사랑했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난 솔직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은데 늘 사랑앞에선 세상앞에선 솔직하기가 어렵다. 그건 아마도 내가 상처말고 사랑만받고 싶은, 아직은 어린 애같은 구석이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이 고통이 견딜 수 없이 커진 그런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난 솔직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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