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테라피: 빛을 죽여야 빛나는 운명이라니
‘심리상담의 가장 큰 라이벌은 점집이다.’ 라는 교수님의 농담에 다들 웃기에 나도 웃었지만, 실은 그 농담을 이해하기도 이해했어도 웃기에도 어려웠다.
그래, 그 농담 기억이 난다. 학생들은 ‘심리학과 최고의 아웃풋은 건대 앞 대박 난 점집’이라는 말로 응수하곤 했지. 모두 웃고 지나갔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농담은 뼈대가굵었던 것 같아. 심리학을 전공하는 동안 숱하게 들었던 질문,
‘심리학과라고? 그러면 내 심리 맞춰봐’
라는 질문을 떠올리면 더욱 그래. 처음에는 그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심리상담을 점집처럼 무언가를 ‘맞추는’ 과정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어쩌면 그런 오해로 심리학과를 전공하게 된건지도 모르겠어.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조금의 확실함이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봐.
오해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도구들이 미래를 예측하거나 삶의 단서를 제시하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는 점은 여전히 흥미로웠어. 상징과 비유를 통해 삶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곤 했거든. ‘눈이 멀게 할 정도로 빛나는 태양이라 바다를 만나 윤슬을 이뤄야 한다’는 사주가들의 표현이나 ‘순백의 이미지를 돋보이기 위해 블랙의 대비가 필요하다’는 퍼스널 컬러 및 향수 진단가 개개인들의 조언들이 단순한 문장이 아니었지. 오히려 그 안에서 삶을 해석할 여지를 발견했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문장을 기어코 또 만들어냈지.
빛을 죽여야 빛날 수 있는 운명. 그게 내 운명이라니.이건 기구하고도 찬란한 위로구나.
삶이 늘 모순으로 가득 찼다고 생각했었어. 그리고 그 모순을 받아들이는 게, 유연하게 조화롭게 나아가는 게, 늘 그렇게도 힘들었어. 그런데 저렇게 운명을 빛으로 비유하니,왜인지 모르게 그 모순들을 다 품어낼 수 있는 힘이 솟아오르는 듯했어. 모순에 의미가 부여되었기 때문인가봐!
하지만 모든 접근들이 동일한 경험을 주는 것은 아니었어. 예리하게 진단해 주는, 소위 말하는 ‘용한 곳‘에서는 오히려 지루함을 느꼈거든. 그곳에서는 엄마의 항암 치료와 아빠의 사업 실패까지 정확히 맞췄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어. 맞췄다는 놀라움도 잠시, 꾸벅이는 졸음의 헤드뱅잉을 수긍의 끄덕거림으로 둔갑하려는 필사적인시도만이 이어졌지.
이유는 간단했어! 이야기의 주체가 아닌, 단순한 수용자로머무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야… 반대로, 상징과 비유를 통해 삶의 해석을 열어주는 곳에서는 참여자가 되어 직접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지. 단순히 예측의 결과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느껴졌어. 아이러니하게도, 정확한 예측보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결핍이 더 큰 위안을 주었던 거야.
누군가에게는 정확한 예측이 해석의 여지를 제공할 수도 있어. 그러나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심리상담과 점집, 그 외의 다양한 접근 방식들이 모두 인간이 처한 상황과 삶의 의미를 탐구하며 해석해 가는 과정이라는 점인 것 같아. 그리고 이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로고테라피[Logotherapy]에서 말하고 있듯, 삶의 의미를 탐색하고 발견하는 것이 곧 치유와 회복의 길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네. (*로고테라피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상담 이론으로, 인간이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해 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내가 개인적으로매우 좋아하는 이론이다.)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거지만 구체적으로 삶의 의미를 주체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약한 존재라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 같아. 인간은 누구나 죽기에, 죽음 앞에서는 약자지만 그 약함을 인정하는 데서 나오는 강함이 있어. 어쩌면 이것이 ‘빛을 죽여야 빛난다’는 말의 참뜻일지도 모르겠네.
빛나기 위해 어둠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때로는 복잡한 삶의 단순한 본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이 강하다고 말하는 사람 중 진정으로 강한 사람을 본 적이 없고, 자신이 약하다고 말하는 사람 중 진정으로 약한사람도 본 적이 없어. 인간은 스스로를 해석하는 과정 속에서 강함과 약함을 동시에 품는 존재이기 때문일거야. 그리고 이 사실은 자주 위로가 되는 것 같아. 강함 속의 약함, 약함 속의 강함을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리는 순간들이 많았으니까.
마음은 보이지 않는 영역이라 그 중요성이 종종 간과되지만, 마음의 풀림은 관계나 삶의 풀림으로 이어지기에 그 어떤 부분보다도 중요한 것 같아. 흔히 점집, 사주, 심리상담을 찾는 사람들을 마음이 약하다고 치부하기도 하지만, 정작 남을 약하다고 무시하는 이들은 자신의 강함에 취해 자신의 약함을 보지 못하곤 했어. 그리고 그 약함을 보지 못한 채 내버려 두면, 마치 잡초처럼 무성해져 나중엔 손쓸 수조차 없게 되곤 하더라고?
결국,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삶을 살아가는 힘이 생기며, 그 질문 속에서 우리의 약함과 강함이 공존하며 빛을 발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렇게우리 모두가 존재만으로도 빛이 날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그런 게 삶이라면 그래도 아직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 맞아, 아둥바둥 살아가보려고 이렇게 두서없는 편지를 한 번 써봤어. 힘든 마음이 들 때 마다 살아가보려는 발버둥의 편지를 또 쓸게. 그 동안 잘 지내고 있으렴.
모순의 아픔을 딛고 일어설 나로부터,
P.S. MBTI가 대중화된 뒤로 “내 심리 맞춰봐”라는 말이사라진 것 같아. MBTI에 대한 시선은 갈리지만, 개인적으로는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흥미로운 도구라고생각해! 내 유형인 INFJ는 비공식적으로 ‘벨벳을 품은 칼’이나 ‘히틀러 vs 예수’처럼 표현되는데, 그 말들이 ‘빛을죽여야 빛나는 운명’처럼 모순을 담고 있어 마음에 들었어. 이처럼 작은 의미라도 찾을 수 있다면, 나름대로 재미있고 살 만한 세상인 것 같아. 삶이 힘들면 그 사실을 너무 쉽게 잊곤 하지만, 다시 떠올리면 그만이지.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해보고 싶어. 모든 것은 결국엔 빛날 테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