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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tie Yang Mar 04. 2019

핀란드에서 꿈꾸는 일상

꿈이 현실로....지금 나는 핀란드에서 여행을 하고있다

나의 한국 이름은 양운이, <운이>가 핀란드어로 <Dream>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단다. 일상탈출을 꿈꾸다 실제로 현실로 넘어오니 진짜 실감이 안난다. 여행이 끝나가고 있을 지금 아직도 살짝 꿈꾸고 있는 느낌이랄까?


나의 고등학교때 꿈은 무역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였다. 여행을 좋아하던 나는 해외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나라 별 주종목을 A에서 B와 C로, B에서 A와 C로 옮겨가며 일종의 무역체인을 만들어서 몇달 혹은 몇 년씩 현지인처럼, 또는 유목민(Nomad or Freelancer)처럼 그렇게 살아가며 현지인들과 친구도 하고 tourist가 아닌 로컬사람처럼 그들과 생활하며 사는 게 꿈이였다. 대학에서 국제무역(International Business)을 공부하는게 재미있었다. 연세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1년을 다니는 동안 여름방학을 이용 해 <현대상선>에서 써머 인턴쉽을 하면서 해외영업부에서 국제무역에 대해 조금씩 발을 넓혀갔다.


그러던 중 미국으로 들어가 졸업할 무렵부터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졸업과 동시에 바로 회계사사무실에 취직하여 AICPA 시험준비에 들어갔다. 전공이 회계학이 아니였기에 같은 경영학임에도 회계사 자격증을 따기위해 필요로 하는수업을 이수해야했고, 시험을 대비해 문제풀이반도 일하면서 공부하려니 또한 쉽지않았다. 한가지에만 집중....그걸 그 때는 왜 몰랐을까? 둘 다 잘하려고 욕심부려서 너무 잘하려고 열심히 따라가다 결국은 burnout이 되어 잠시 한국으로 쉬러 들어왔다. 몸이 아프니 수업도 못 따라가겠고 일은 또한 못나갈 만큼 아파왔다, 좀 쉬라는 몸의 신호인가보다. 좀 쉬다가 다시 도전해야겠다고 결정을 내리고 바로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엄마가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쉬엄쉬엄 하거라. 인생은 마라톤이야, 너무 한꺼번에 기운 다 빼면 finish line까지 갈 수가 없어. 어느 누구도 너보구 빨리 직장을 잡아야한다고 push하는 사람은 없어. 집에서 쉬면서 몸을 일단 체력보강하고 시험은 차근차근 준비해." 라며 위로해 주셨다. 체력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자신있는 나였는데 공부하면서 회계사 사무실에 일하는 게 정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엄청 힘들었나보다. 회계사 사무실이 당시 뜨고있던 Abercrombie와 GAP부터 꽤 유명한 회사들을 관리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늘 긴장하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신경이 늘 예민해 있는 탓이였으리라. 당시 잘나가는 Big 5 회계법인에서 경력을 쌓아 나온 후 개인사무실을 차린 중국인 오너가 경영하는 개인 회계사 사무실 이였던지라, 모든 staff들이 각자의 업무를 일당백으로 해야했고 그에 따르는 책임감 또한 컸었다.


사무실은 San Francisco에서 가장 비싼 Financial District의 고층 빌딩(highrise)에 위치하고 있어, 주차비도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으로 거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BART(베이 지역의 지하철)를 타고 출퇴근했다. 정직원은 회사에서 파킹비를 내주는데, 당시 공부하면서 일해야했던 나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때라 주차비가 따로 나오지 않았다. 이를 아끼려고 나는 BART로 Emeryville이라는 동네에서 Bay Bridge를 건너 매일 출퇴근 했다. 동생이 아직 학생이라 버클리대학에 재학중이였고, 나랑 같이 살 때라 혼자 샌프란시스코쪽으로 나와 아파트를 구하기에는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워 에머리빌에서 commute 해야했다. 하루에 한시간 이상씩 걸려 출퇴근하다보니 피로가 누적되었으리라. 나의 체력이 방전되어 갈 무렵, 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더 이상 하고싶지 않다는 몸이 보내는 신호!


먹고살려고 직업결정을 하다보면 늘 마주치는 벽이였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현실적으로는 회계사가 돈버는 수단으로는 최고의 직업이였을 지는 모르나, 머리가 먼저 거부를 했었던 거 같다. 추측컨데 머리(brain)와 체력(physical strenth)이 싸우다 머리에 밀린거다. 논리적으로는 회계사자격증을 취득하여 남들이 부러워하는 Big 5 Accounting Firm에 들어가 또박또박 월급받으며 사는 게 순탄한 삶이였으리라, 그러나 내 머리 속에서는 안정적인 삶을 거부하고 있었던거다...그 결과  Finally the brain won!


현재를 살아가다보면 하루하루 먹고살기 급급해서 <꿈>이 무엇이였는지, 당초부터 꿈이란 게 존재했던 것인지 페이드(fade)되어버리고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나 또한 그 중 하나였으니까. 그래도 살아오면서 내가 훌쩍 미국을 떠나 지금의 이 자리에 핀란드라는 나라의 수도 헬싱키에 있는 <무모함>처럼 나의 젊은 시절에 지금같은 무모한 일을 한 번 저지른(?) 적이 있다. 


미국에 건너 간 지 한 13년쯤 되어갈때인가? 1990년에 미국으로 이민가서 여태 살았으니깐 무려 횟수로만 29년 째니 참 오래도 살았네, 한국에서 살은 시간보다 미국에서 보낸 세월이 훨씬 길다. 이젠 외국사람이 물어보면 한국사람이라고 말하기도 뭐한게 한국실정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한국정세나 여러 문제를 얘기하다보면 말문이 막히거나 모르는 게 참 많다는 걸 느낀다. 한국에 나름 관심있는 외국인들은 거의 덕후 수준으로 한 분야에 대해 깊이 알고 있어서, 말을 듣다 보면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한국이라는 조그만 아시아의 나라에 무한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니 참으로 고맙다. 그래도 난 나름 1.5세인데 어쩔땐 2세들 에게 마저도 부끄러워진다. 미국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나라 한국에 대헤 관심을 가지고, 한국어부터 역사와 현세파악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대단한 젊은 2세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최근 일부러 한국 신문도 찾아서 많이 읽고, 최대한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제는 한국에사는 친구가 김정은과 미국대통령 트럼프가 대담을 위해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 했다는 말을 듣고 CNN Live로 보았다. 


다시 무역업으로 돌아가서, 나의 무모함의 시작은 2003년 초반에 일어난다. 


세 살 아래인 여동생이 갑자기 사춘기에 들어서며 여드름으로 무척 고생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여드름 전문 치료용(Acne) 화장품이 미국에서도 당시 알려지지 않은 때라 <여드름 전용 치료용 화장품>이란 타이틀 하나 만으로 TV에서 인포머셜로 전 미국을 휩쓸 때였다. 이런 아이템이라면 한국에 들여가면 진짜 대박날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 바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당시 미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던 프로액티브는 당시 슈퍼모델이였던 신디크로포드가 모델로 활동을 할때라 더더욱 인기몰이를 해가고 있을 때였다. <프로액티브>를 한국에 들여가겠다고 무모한 삼십대 초반에 여행가방 딱 하나들고 혼자 한국으로 갔다. 일산의 한 오피스텔에서 지내며 캘빈클라인 속옷과 피아노나 바이올린 연주자들을 위한 공연용 미국드레스를 가지고 나갔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무작정 <식약청>이란 데를 찾아갔다. 당시 기능성 화장품은 기능성으로 인정받기위해 연구소에 보내 <성분 테스트>와 <기능성 여부를 확인>받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기능성 화장품 담당자 분께서 현재 다른 미국회사가 이미 <프로액티브>를 들여오려고 기능성 테스트를 진행중이며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든다고 설명을 해주셨다. 한 발 늦었구나....일단 <프로액티브>는 한 보 후퇴하고, 다른 아이템들을 알아보기로 했다. 사실 <캘빈클라인>이나 <빅토리아 시크릿>의 속옷을 어디에 유통시켜야할 지 난감한 지라....지금 같았으면 아마존이나 이베이가 있지만 그때만해도 그런 게 없었다. 어디에 팔아야 할 지는 직접 발로뛰어 다녀야했다. 결국은 유통 루트를 잘 몰라 죄다 헐값에 디자인 부티크에 넘기고, 6개월 만에 외롭고 쓸쓸했던 한국에서의 생활을 접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모아두었던 돈은 모두 탕진하고 다시 직장을 들어가야했지만 맘속 한 구석에는 <도전> 이라는 단어와 <비지네스 마인드>가 늘 꾸물꾸물 한 구석에 남아 언젠가는 다시 꺼내야지하고 늘 다짐하곤 했다. 그치만 현실속에 살다보니 그 또한 맘 한구석에 꽁꽁 숨겨두고 꺼내보지 않았다. 


15년 만에 다시 그 꽁꽁 숨겨두었던 나의 비지네스맨쉽 (Entrepreneurship)이라는 <꿈>을 다시 꺼내어보았다. 핀란드에 가지고 온 나의 꿈, 내 이름부터 <운이= Uni = Dream> 이라니 이번엔 반드시 이루어내고야 말테야. 


현재의 나의 꿈은 북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고 내가 사랑하는 이 핀란드란 나라를 널리 알리는 데 중점을 두고있다. 핀란드 사랑! 이게 현재 나의 꿈 <DREAM> 이다.


#visitFin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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