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뎌 집으로...,
떠나올 때의 마음과 다시 돌아갈 때의 마음가짐이 참 아이러니하다. <50일 간의 북유럽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특별히 따로 준비한 것 없었던 것 같다. 주로 입던 옷, 쓰던 물건 위주로 다 pack하고, 아주 작은 캐리온용 소형 여행용가방과 머리가 잘 마른다는 극세사수건, 눈의 나라에서 겨울을 보내기 위한 안쪽에 양털이 달린 윈터부츠 한 켤레 정도 사서 넣었다. 나의 이번 여행목표는 사실 <미니멀리즘>이였다. 왜냐구? 난 물건을 사기는 잘 사는데 정리정돈을 잘 못한다, 아니 아주아주 못한다. organize가 안되니 집안이 온통 안쓰는 물건으로 늘 꽉 차있다. 나는 물건을 버릴 줄을 모른다, 그리고 사서 쟁여놓는 걸 좋아해서 한꺼번에 사두고는 어디에 뒀는지 모르는 타입이랄까? 우리집에 한 번 쯤이라도 와 본 사람이라면 이 쯤에서 아~하고 고개를 끄덕이는게 눈에 선하다,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언제부터인가 나의 현재상태나 상황을 점검하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변하고 있다는 걸 느낀 순간은 언제부터일까?
누군가에게 나를 맞추어 살아간 다는게 나를 바꾸는 계기가 될 줄을 모르고 살아온 거다. 결혼해서 아님 연애를 시작하면서 부터일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를 맞추어 가는 게 즐겁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내가 나를 버리게 된걸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좋아서 하는 건지, 아님 다른 사람이 좋다니깐 나도 그렇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린 건지 혼돈과 착각 속에 살아가게 되면서부터 나의 자아를 잃어버리게 된 것 같다. 아마도....
어쨋든 나는 이번 여행을 혼자 떠나오면서, 온전히 나 자신 만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 같아 좋다. Solo Traveler란 단어가 생소하지만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보면 혼자 여행다니는 사람을 종종 마주치게 된다. 혼자 호텔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이번 장기 여행계획을 짜면서 budget travel을 해야하다보니 호스텔을 많이 이용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혼자 다니는 여행의 소중함과 때론 생전 처음보는 사람과 친구가 되어보기도 하고, 잠시 <인간관계>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았다.
대화는 할 때는 그 사람의 삶보다는 그사람의 언어와 톤, 행동과 단어 선택, 또는 표정에 주로 주목했는데 지금보면 그때 그때 사람은 상황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아마도 내가 사람보는 눈이 없었던 것 같다. 때론 사람에게 실망하기도하고, 갑자기 같은 여자지만 대화하다가 매력에 흠뻑빠져 두세시간도 훌쩍 넘어버린 적도 있으나 지금와 생각해보면 그건 잠시 나의 착각이였던 거다. 내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가 있으면 둘이 그 내용에 대해 얘기를 했을 뿐이지, 그 사람과의 진솔한 대화는 진정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면 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된통 당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반면 시큰둥하게 답하던 사람이 결국은 나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버린 경우도 적지않다. 대화를 많이 한다고해서 그 사람을 많이 안다는 것도 아니고, 나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잘 쳐준다고 나의 편인게 아니였더라....대화란 자고로 시간과 관계없이 솔직하고 진심이 담겨있어야 진정한 대화랄까?
이번 여행길에서 만난 수많은 인연 중에 정말 감탄했던 건 아이슬란드에서 밤길에 길잃고 헤맬때만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농구선수 아이였다. 내가 산 심카드가 핀란드에서 밖에 쓸 수 없다는 건 그 나라를 떠나고 나서였다. 핀란드에서 스웨덴, 노르웨이와 덴마크를 거쳐 마지막 여행국인 아이슬란드에서 그것도 마지막 날 밤에 길을 잃었다. 아이슬란드 시티센터에서 일단 와이파이 되는 카페에서 구글맵을 찾아 캡처하고, 또 친구가 보내 준 메신저에 저장된 맵을 이용해 둘 다 보면서 버스정류장을 찾고 있었으나, 실시간이 아닌지라 목적지를 한참이나 지나 친 후에야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한밤 중에 길에서 헤매고 있을 때 지나가는 행인 1, 2를 발견, 한걸음에 달려 가 지도를 보여주며 여기 아느냐고 물었더니 농구연습끝나고 집에 가는 길인데 내가 찾는 버스를 타는 버스정류장을 알려 준다며 같이 걸어가줬다. 한 30여 분을 같이 걸으며 지루하지 않은 대화를 이어나갔던 아주 마음이 이쁜 아이였다. 아이슬란드 사람치고 가장 인상에 남는다. 아이슬란드는 대체적으로 관광객에게 최악이였던 기억 밖에 없는데, 자연경관이 정말 정말 아름다운 이 나라에 다시 오고싶게 만들은 고마운 아이다. 나는 이 아이를 아이슬란드 고딩이라 부르련다. <베르고>라고 했던것 같기도하고....너무 고마워서 이름도 물어봤는데 아 이런! 적어 둘 껄 아쉽다.
30 여 분의 긴 도보여행을 함께 하며 내가 알아낸 바로는 그 아이의 관심사는 주로 농구와 게임, 이스포츠, 한국이 e-sports로 유명하다는 사실까지 알고있었다. 그의 꿈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대뜸 voice actor라고 했다. 잉, 그게 뭥미? 만화영화의 더빙을 하는 성우가 되는 것이 자기의 목표이자 꿈이라더라. 너무 멋찌지 않은가? 그래서 영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자기 친구는 영어를 잘 안써서 영어로 말하는 걸 부끄러워 한다며 자기 영어 어떠냐고 물어봤다. 뭐 미국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언어구사를 잘하는 것 같다고했더니 깔깔거리며 너무 좋아라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유럽국가들의 노래 경연 대회인 Eurovision을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미국에 살아서 유럽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에 대해 무지하다고 솔직히 불었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며 그는 최근 본인의 엄마가 평소에도 노래하는 걸 즐겼는데 이번에 유로비전에서 파이널까지 올라가서 5월에 이스라엘에서 열리는 마지막 스테이지 유럽 챔피언쉽에 올라갈 꺼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응원 갈꺼냐고 물었더니 본인은 졸업식이 있어서 참석을 못해 너무 아쉽다고 했다. 자기 엄마 이름도 말해줬는데 당연히 까먹었다, 아이고~~~ 아이슬란드 대표이니 나중에 유투브 찾아서 봐야겠다. 나도 이 아이의 엄마를 응원한다, 아이도 멋찌지만 이 아이를 잘 키워주신 엄마가 정말 멋있다고 생각한다. 곡 선정에 있어 하나는 주로 사람들이 많이 아는 미국팝송을 부르고, 다른 하나는 자기나라 언어로 된 곡을 선정할 수 있다고 했다. 아, 기대된다. 나도 꼭 봐야지. 어느 덧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버스정류장에 붙어있는 싸인보드를 보더니 이제 버스가 막 도착할 꺼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섭게 버스가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었다. 아! 이야기를 더 하고싶은데 벌써 헤어져야 하다니, 너무 너무 고맙다 아이슬란드 친구야! 버스가 서자 마자 잠깐만, 나랑 빨리 사진 한장만 찍자며 진짜 후다닥 찍는 바람에 흔들리는 사진을 남기고 말았지만 참 진솔한 대화를 나눈 것 같다. 나는 주로 들어주는 사람 역할이였지만 이 아이슬란드 청년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시간이였던 것 같다.
난 평소에 주로 내 말 만하지 남의 이야기를 잘 집중해서 듣지를 않는다. 고쳐볼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참 힘들더라....그런데 이 아이는 하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서 나도 모르게 잠자코 듣기만 하고있었던 거 같다. 난 주로 맞짱구 쳐주는 정도? 최근들어 이렇게 재밌게 이야기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정말 오랜만이다. 자신의 꿈 이야기와 최근 관심사를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이야기 보따리에 흠뻑 빠졌던 것 같다. 그야말로 비타민같은 아이였다. 이 아이 덕분에 아이슬란드에서 미아(?)가 될 신세를 면하고 호텔까지 잘 찾아왔다. 내가 도착하는 순간 안도하는 친구의 한숨이란....휴~~~~나도 나름 길 잘찾는 사람인데 오늘은 길치가 된 느낌이다. 그런데 나도 정말 무서웠었다고, 흥 칫 뿡!
오늘 제목은 원래 이게 아닌데....D-7, 집으로 돌아갈 날이 딱 일주일 코 앞으로 다가왔다. ㅋㅋ 이게 제목이였는데 말이지, 아직 내가 집필을 하다보면 딴 길로 새는구나...갈 길이 멀다. 작가의 길은 참 멀고도 험하다더니, 나 어릴 적 꿈은 라디오작가였다. 후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