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었다

#1

by 맘약

어느덧 나도 3년 차 엄마가 되었다. '엄마의 탄생'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은 2019년 3월의 일이었다.


다른 모든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아이를 낳고 키우며 전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순간이동했다. 지난여름부터 이어진 임신의 버거움, 24시간의 진통 및 후벼 파는 고통과 함께 했던 출산의 힘겨움만 끝나면, 조금은 낯설고 어렵겠지만 사랑스런 아이와 함께하는 뿌듯하고 행복한 새 삶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라 믿었다. 3월의 갓난아이는 따뜻한 봄볕 아래서 낮잠을 자고, 나는 그 아이를 봄볕보다 더욱더 따스하고 포근한 시선으로 바라보리라. 세상 속 푸르름이 짙어지는 첫 번째 어린이날엔 신랑이랑 나랑 살랑살랑, 통통하고 귀여운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사랑스런 가족의 이름으로 공원을 산책하겠지. 마치 모네의 그림에서 볼 법한 따스한 빛깔과 선선한 바람의 상상. 하지만 그것은, 99.9%의 육아현실과는 정확히 반대편에 위치한 단단한 착각의 허상이었다. B.U.(Before Umma)의 시절.


밤낮은 뒤바뀌고 잠은 모두 빼앗기고. 등 센서 장착기의 이 아이는 온종일 내 품에 안겨있으려 했고, 하루 종일 비위를 맞춰주랴 고군분투하는 내 마음은 모른 채 이유도 안 알려주며 자꾸 울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린 채 미역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 마시던 처절한 굴욕의 시간들. 이러한 순간들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너덜너덜한 기분이니 이쯤에서 기록을 마무리한다.


이제껏 30이 넘는 인생 동안, 나는 어디서 성격이 나쁘다거나 이상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주 가끔 치열한 부부싸움을 할 때의 남편을 제외하고는. 그러나 이런 꽤 배려심 있고 인내심 있는 괜찮은 성격의 나조차 제대로 열 받고 욱하는 힘겨운 순간들이 나의 일상에 끊임없이 찾아왔다. 육아야 말로 창살 없는 감옥이라 했던가? 많은 엄마들의 표현대로, 나의 눈과 손을 끊임없이 붙잡는 돌봄이 필요한 존재와의 고립된 육아 일상은 하루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조차 다른 세상의 일로 만들었다.


하지만 다행이었다. 우리 아이는 비교적 순한 편이었고 나와 기질이 잘 맞았다. 무엇보다 나는 이 아이가 단 10분 만에 우주의 모든 엔트로피를 거실로 끌고 오더라도, 밥과 반찬을 입이 아닌 옷과 바지로 먹더라도, 자기도 한 목소리 하는 인간이라며 존재감을 뿜어내어 소리를 지르더라도, 덮어줘도 덮어줘도 이불을 발로 차고 끊임없이 내 귀를 만지며 물을 찾느라 매일 밤 나를 잠 못 들게 할 지라도. 배가 뽈록 튀어나오고 손목 발목에 통통한 살이 접히고 웃긴 얼굴로 내 표정을 따라 하고 힘껏 팔을 벌리며 안아달라 매달리는 이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킁킁킁 너는 정말 정수리 냄새마저 사랑스럽구나.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나를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나의 아이. 오늘도 세상을 한 뼘 흡수하고 그만큼 또 한 발짝 나아가는 연두색 새싹 같은 존재에 나는 정말이지 흠뻑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 친구는 정돈된 나의 세계를 시시각각 헤집어 놓았다. 아니 꾸준히 뒤바꿔 버렸다. 하지만 나는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에 꽤 행복을 느꼈고, 게다가 가끔은 '나 또한 이제 겨우 엄마 나이 3살'이라는 마음에, '부족한 게 당연하지. 어수룩한 게 당연하지. 앞으로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어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를 충분히 위로하였다. 앞으로 10년이 더 지나도 나는 겨우 엄마 나이 13살일 뿐. 40대 중반의 여유롭지만 조금은 세상을 많이 알아버린 중년 여성의 나라는 느낌보다, 여전히 사랑스러울 사춘기 소녀와 매일매일 지지고 볶는 최전선 부대의 대장일 거란 생각에, 내 얼굴엔 유쾌한 미소가 피었다. 전쟁 같은 육아의 세계. 정말이지 B.U.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었지만, 나는 나름 아이를 키우는 일에 보람과 가치를 느끼며 만족하고 있었다. 아이는 건강했고 하루하루 자라났으며 소소하고 별 탈 없는 괜찮은 일상이었다.


하지만, 문득 그리고 불쑥. 때때로 종종 '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아마도 돌 이전까지의 긴긴 독박을 지나, 어느 정도 자란 아이를 데리고 어느 자린가에 갈 수 있는 시기였나 보다. 그때쯤 나는 어느 자리에서나 "안녕하세요. 저는 **이 엄마예요."라고 소개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런 소개와 대화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 때나 어느 자리에서나 누구의 엄마로 말하고 불리는 세상에서, 나는 내가 하는 일이나 소속된 조직 혹은 오롯한 나의 이름으로 불렸던 때가 얼마나 까마득한 과거의 시절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과거가 생각보다 그렇게 까마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저 B.U. (Before Umma)와 A.U. (After Umma) 시절의 차이일 뿐.


그간 엄마라는 정체성을 오롯이 받아들였던 나는, 사실 누구의 엄마로 사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가끔 내 이름에 대한 그리움과 허전함이 들었고, 때때로 '아이는 자라는데, 그토록 청춘의 에너지를 외치던 나는 지금 어디에 있나. 왜 나는 정체되어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아니었다. 그런 생각은 때때로 드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커졌다. 나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 계발을 즐겼으며 에너지가 많고 갖가지 재능도 풍부했다.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을 품었고 꿈도 컸으며 여행과 경험을 즐겼고 한 때는 치열하게 공부도 도전도 성취도 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배움과 실천과 정보와 기회와 성장과 가치를 추구하던 나. 그러고 보니 나는 전형적인 밀레니얼 세대의 일원이 아니던가?


그랬다. 나는 밀레니얼 세대의 엄마였다. 갑자기 참을 수 없어졌다. 이렇게 아이만 키우며 내 삶을 보내는 것이 너무나 아쉽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세상을 향해 치열하게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내가 '어느 상황에서든 내 선택에 책임지고 적응을 잘하고자 노력하는 성실한 사람'이어서 그렇지, 이렇게 대단한 내가 육아에만 매달리는 것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일이야!' 누구도 강요한 적은 없었지만 그간 참 억울했다며 대들고 싸우고 싶은 느낌. 나는 더더욱 사회에서 내 이름이 듣고 싶어 졌다. 조금 더 생산적인 내가 되어, 집에서도 밖에서도 모두 다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아마도 나는 꽤 효율적으로 시간을 운용할 수 있을 터였다. 육아든 일이든 뭐든 잘할 수 있을 테였다.


그러나 한동안 나는 육아와 살림에, 그리고 이 망할 놈의 코로나 때문에, 집 밖에 나가지 못하고 무언가 시도도 못한 채 그저 sns로 사람들을 만났다. 엄밀히 말하면 만났다기보다 그들의 삶을 구경했다. sns를 통해 마주한 타인의 삶은 나와 다른 세계였고 멋진 세계였다. 모두가 참 잘 나가 보이고 대단해 보였다. 부러웠다. 어쩌다 보니 소통을 위한 sns 때문에 나는 더 위축되었고 스스로가 더 정체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공허함과 불안함이 찾아왔다. 이제는 정말 나의 기량이나 재능을 발휘할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그것이 육아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