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맘약 Aug 11. 2021

나에게 맞는 고도와 온도와 습도

서가에서 발견한 보물 (1)

때는 1월. 바깥은 추운 겨울이었다. 하지만 내 맘엔 따스한 봄볕이 비췄고 연분홍 벚꽃잎도 흩날렸다. 아직 이 맘을 사랑이라 하기엔 조금 일렀다. 역시 썸 정도가 괜찮을까? 여하튼 이것은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의 시작이었다. 아이를 향한, 가족을 향한 사랑은 차치하고, 나에게 다가온 새로운 두근거림. 이는 그를 더 많이 만나고 싶고 그의 새로운 면을 알고 싶은 호기심 그 자체였다.


그는 결코 화려하거나 소란스럽지 않았다. 그저 조용하고 편안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 연한 아이보리색 종이에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낸 그는, 나의 손과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늘은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어떤 삶을 보여주며 내 맘을 위로해줄까.



나의 일상은 호수의 오리 같았다. 겉으로 보기엔 물 위를 평화롭게 떠다니는 듯했지만, 실상은 늘 그 아래에서 힘겹게 발버둥 치는 중.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사실 나의 일상은 그리 희극도 비극도 아닌 아주 '평범'하고 '무사'한 하루하루였지만, 나는 그 속에서도 늘 이리저리 치이고 고뇌하며 방황하였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나로서.


나는 무언가 복잡한 세계 속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번뇌와 수많은 삽질은 현실적으로, 당장의 우리 가정의 생계를 위해선 거의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이런 나에게 다가온 그였다. 30대 중반의 삶을 살아가며, 누구에게라도 지혜를 묻고 길을 찾고 싶던 나에게. 그가 다가왔다.



그의 이름은 '책'이었다.





첫 번째 만남은 집 앞 작은 도서관에서 시작되었다. 얇고 작고 소담한 초록색 책으로부터.


내가 만난 첫 번째 책이 애초에 굉장히 잘 쓰인 까닭도 있었고 따라서 엄마로서의 내 삶에 매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내가 '책 읽기'에 이토록 빠지게 된 이유가 될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절한 타이밍이 필요하듯 나에게도 '딱 알맞은 때에 책이 찾아와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확한 설명은 어렵겠지만, 여하튼 거듭하여 책을 탐독하면서 나는 내 안의 조급함과 불안함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슬며시 내 삶에 감사가 찾아왔다.



사실 나는 그동안 다양한 삽질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나는 단시간 내에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스스로를 증명할 수 없다.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성과를 얻지 못하는 나는 외적인 가치가 점점 감소하는 것이다.' 아마도 나는 '엄마라는 이름'만으로 존재하는 나를 어딘가 게으르고 발전이 없는 부족한 사람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성장 없이 그대로 정체되어 있는 나.


이러한 자책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넘어,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보통의 평범한 주부'를 바라보는 나의 편협한 시선일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나 스스로를 얕보고 부정하는 것. 그리고 '집에서 아이 키우는 주부'를 향한 세상의 왜곡된 시선에, 나의 존재와 우리의 존재를 옹호하며 저항하지는 못할 망정, 나는 모두를 틀 안에 가둬놓고 있었다. 충격이었다. 누구보다 많이 배우고 경험했으며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소리친다 생각했던 밀레니얼 엄마의 심각한 모순이었다.



나는 '엄마의 사춘기'를 겪고 있었다. 사춘기라 함은 자고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하는 시기를 말할 테다. 그랬다. 나의 지난 시도와 도전이 가시적인 성과는 얻지 못한 건, 그래서 결국 빈 수레와 같은 삽질이 된 건, 그 안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 결여되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사춘기라 일컬었지만 그동안 나는 나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 따라서 이러한 얼렁뚱땅 자아를 가지고는 타인에게서나 스스로에게서나 '왜?'라는 질문에 늘 자신이 없었다.


이번 달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아니, 이것은 매우 아주 정말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이제 다른 것이 더 우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이렇게까지 몰라서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선은 경제적인 성과보다 내면의 성찰과 성장을 우선으로 해야겠다 생각했다. 물론 이러한 다짐은 사실, 아무런 소득이 없는 지금의 나를 향한 똑똑한 '자기 합리화'가 될 수도 있을 터였지만. 나는 나를 돌아봐야 했다.



돌아보면 짧은 시간 동안 참 다양한 삽질을 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한다며 집에서 무자본 창업을 한답시고 그렇게나 혼자서 전전긍긍, 노심초사했다. 그러다 남들이 맞다고 하는 길에 아무런 의심과 준비 없이 뛰어들었고 곧 쉽게 포기했다.


우선 나는 나를 너무 몰랐다. 애초에 난 경제관념도 사업 수완도 거의 없었다. 경제관념이 없다는 건 불과 몇 달 전까지 30대 중반에도 재테크에 관해 예금, 적금밖에 몰랐다는 말로 설명이 될까? 그저 성실히 일해서 월급을 받고 저축할 줄만 알았던 내가, 주식이나 투자 없이 가만히 살다 보니 문득 벼락거지가 된 것을 깨닫고. 그제야 남들이 비트코인으로 돈을 번다기에, 몇 달 전 쌈짓돈을 비트코인에 다 몰아넣었다가 현재 -60%가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말로 나의 무지가 설명이 될까?


사업 수완이 없다는 건 아마도, 도매에서 소매로 넘어가는 과정, 내가 들이는 비용과 노동을 고려하여 이익을 남겨야 하는데 그 이익을 왠지 모르게 겸연쩍게 느끼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이익이 어색하고 부끄러운 나? 이걸로 충분하다. 나는 정말로 너무나 미숙한 경제인이었다.


그리고 사실 나에겐 sns 운영도 참 어려웠다. 말보다 글을 편하게 생각하면서도, 가벼운 sns 공간에서조차 '이것은 남겨지고 보여지는 기록'이란 생각에 글을 쓰는 것에 굉장한 무게와 부담을 느꼈다. (사진이 주가 되는 sns에서조차) 시시콜콜한 안부에도 순간적인 기분에 따라 답변을 달 수 없었다. 겨우 한두 줄의 문장이었지만 의미도 맞춤법도 정확하게 하고 싶어서, 짧은 글에도 나는 퇴고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나와 내 가족의 사생활을 오픈하는 것에도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 범위는 스스로 적절하게 정하면 될 터였지만 그 역시 나에겐 조금 어려웠다. 보고 싶은 친구들의 소식을 듣고 나의 일상도 소소하게 전하려는 마음이었지만, 이내 나는 나도 모르게 온라인 세상의 광고에 휩싸였고, 멋지고 잘 나가는 '그들이 사는 세상'을 눈으로 보며 상대적 박탈감은 커져갔다.


나는 sns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절대로 닿을 수 없을 듯한 멋진 세계, 그리고 지나치게 열려있는 소통의 장은 오히려 내게 부담과 상실로 다가왔다. 이렇게 스스로가 어색함을 느끼는 공간에서, 뱁새가 황새를 좇으려 기를 쓰고 달리자니 이건 참 봐주기에 안쓰러운 일이었다.





식물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저마다에 알맞은 고도와 온도와 습도가 필요할 테다. 열대에서 식물들이 잘 자란다고 빨간 동백을 열대에 심을 수는 없다.


나도 그렇다. 온라인의 세상에 노다지가 있다는 말에, 그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 나를 지금이 아니면 늦을세라 부리나케 옮겨 심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에게는 알맞은 고도와 온도와 습도가 필요했다.


나에게 알맞은 고도와 온도와 습도는 무엇일까. 여러 번 데이고 좌절하고 일어나서야, 그렇게 책을 만나 읽고 나서야. 그제야 나는 나를 제대로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나를 알고 세상을 좀 알아야 했다.


책을 읽으며 차츰차츰 조급함과 불안함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감사가 피어올랐다.



이래서 내가 책에 푹 빠진 것이다. 내 삶의 가장 중심이 되는 나를 돌보고 사랑하게 도와주며, 내가 알지 못하고 살지 못하는 다양한 세계를 들려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책을 읽으며 나는, ‘엄마라는 나의 이름’에도 더 충실하고 당당해졌으며, 이 이름을 가진 것에 더욱더 감사와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나아가, 현재를 함께 살고 미래로 나아가는 ‘인류로서의 내 자리와 역할’에 대해서도 (살다 살다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책을 읽고 나와 세상을 알아가며, 하루하루를 채우는 일이 너무나 즐겁다. 나에게 시간이 좀 더 많아져, 더 많은 책을 만나고 그와 이야기하기를 꿈꾸는 작은 바람! 긴긴 세월을 거듭 내려와 내 손에 닿은 소중한 책에게, 그리고 오늘도 새로이 세상에 영감과 비전을 제시하는 수많은 책에게 나는 늘 감사하다. 이 설렘과 충만을 어서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어야 할 텐데…


그리고. 그 해 겨울 엄마의 썸은 이제 끝났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는 이제, 책과 제대로 ‘사랑에 빠진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