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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약 Oct 30. 2021

아기와 변기와 불 뿜는 엄마

30개월 배변 전쟁

30개월의 아이를 열심히 키우던

9월 말 ~ 10월 말,

나는 작은 일에 쉽게 흥분하고 불같이 화를 내는

애엄마 한 사람을 발견하였다.


그 엄마는 아이가 고작 바지에 쉬를 했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빽빽 거리며 불을 뿜고 있었다.


아까도 분명히 변기에 쉬 하기로 약속 했는데

왜 자꾸 이렇게 약속을 안 지키냐며,

이렇게 자꾸 엄마를 화나게 할 꺼냐며,

고작 3살 난 아이에게 소리를 질러 댔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네가 직접 수건을 들고 가서 바닥을 닦으라고

바지는 알아서 빨래통에 넣으라고 소리를 쳤다.



아이는 엄마의 분노에,

괴물 같은 엄마의 눈에 놀라면서도

죄송하다며 앞으로는 약속을 잘 지키겠다며

안아 달라고 엄마를 좋아한다고 울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 엄마는

이렇게 계속 약속을 안 지키는 어린이는

앞으로 절대 안아주지 않을꺼라고

호되게 으름장을 놓았다.


무정한 엄마다.

그는, 바로 나다.




아마도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다가

요즘처럼 이렇게 폭발했던 적은 없던 것 같다.

(아니, 이미 많았는데 그새 까먹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쉽게 화를 내고 소리를 치는 건

내 안의 조급함이 또 다시 터졌기 때문일테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치 않고

언제나 ‘우리 아이 고유의 속도’를 존중해주리라 마음 먹지만

이건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마도 그동안은

아이의 성장이 알맞았기 때문에

오히려 언어의 측면 등은 조금 빠른 편도 있었기 때문에


내가 꽤 여유롭고 허용적인 마음으로

아이를 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역시,

아이가 어떤 알맞은 속도보다 늦어지는 상황에선

이렇게 걱정과 분노가 나를 덮쳤다.

그리고 나는 아이에게 소리치며 닦달을 했다.



아이와 비슷한 월령의 친구들은

이미 다 기저귀를 뗐다고 했다.


그런데 30개월의 아이는

아직까지도 자꾸 장난만 치며

도망가고 피하기에 바빴다.


어린이집 선생님 말씀으론

“평소에 **이가 어른들 말씀을 잘 알아듣는 걸 보면

배변 훈련 쯤은 충분히 잘 하고도 남는데,

평소에 엄마가

**이 하고 싶은대로 하게 많은 것을 허용해주니

**이가 이를 알고 자기가 편한대로 하려는거 같다”고 하셨다.


크게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우리 아이의 배변 훈련 속도가 늦다는 사실을

확언 받은 상황.


그리고 허용적인 부모가 되는 게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동안 내가

알맞은 훈육을 미뤘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선생님의 말씀이 옳았다.

사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른체 하고 있었다.



이렇게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자

내 안의 조급함, 불안함이

또 다시 기어 나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곧

낮은 분노의 역치를 장착하였다.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어떤 특이점에 대하여

조금은 삐뚤어진 시선으로 고착화시키는 단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십팔십팔 18개월, 미운 네살, 미운 일곱살 같은 말들.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이가 커가며 나와 충돌이 생기는 지점을 만날 때마다

‘아~ 그런 단어들이 있었지. 그러니까 아이가 이러지~’ 하면서

아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분노하는 나를 다독일 때가 있다.


그래서

30개월의 아이를 마주하고 분노하는 나를 보며

그런 단어를 찾아서 끼워 맞추려고 했다.

응? 그런데 30개월에 해당하는 말은 없네?



그래서 나는

아직 우리 아이는 3살이지만

아무래도 3월 생이니

이제는 우리에게 ‘미운 네살의 시기가 왔다’고 마음 먹기로 한다.

이렇게라도 정의를 해야

나의 분노가 조금은 타당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사실 30개월의 아이는 크게 잘못한 것이 없다.


바지에 쉬를 할 수도 있다.

엄마한테 깐족댈 수도 있다.

잘못해놓고도 씩 웃으며 안 혼나려고 장난칠 수도 있다.

그리고 늘 그렇듯 가랑이를 붙들고

시도때도 없이 안아달라 매달릴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냥 다 내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닐까 싶었다.


아이들은 커가고 에너지가 많아지고

때때로 그 넘치는 에너지를

비루한 내 몸뚱아리가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한 상황에 아이는 본인의 커진 생각으로

이제는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키도 꽤 커지고 말도 잘하는 이 아이에게

(그래도 고작 3살인 이 아이에게)

아마도 나는

네가 다 알아서 잘하기를 바라고 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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