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퇴 후 남편과 야식을 뜯는 시간, 이 시간은 주부인 나에게 매우 즐겁고 귀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물론 내가 육아와 살림을 멋들어지게 잘하는 건 아니지만, 이들은 '하는 것'은 티가 안 나더라도 '안 하는 것'은 바로 티가 나는 편이라 오늘도 나는 나름의 치열한 하루를 보냈다. 거실엔 여전히 아이의 장난감이 굴러다니고 소파엔 건조기에서 방금 나온 빨래들이 널려있지만. 그래도 일단은 오늘,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육아의 임무를 잘 마무리했다.
오늘도 역시 특별한 것을 하지도 대단한 것을 하지도 못했다. 그냥저냥 무탈한 하루를 보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하루. 어쨌거나 오늘도 안녕하고 무사한 하루를 마친 것에 축배를 들자.
대부분의 이 시간은 치킨과 맥주가 함께 한다. 임신과 출산, 모유수유를 거치며 '나의 맥주를 향한 열렬한 사랑'이 조금 잦아들긴 했지만, 여름밤엔 역시 한 모금의 맥주가 시원하고 반갑다. 야밤의 치킨은 굳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치킨이라는 이름 하나로 충분한 완성된 존재. 부연설명은 생략한다.
어쨌거나 오늘도 나는, 하는 것도 없이 하루 종일 육아와 살림에 치였다가 방금 해방되었다. 이렇게 맞이한 해방의 시간엔, 맛있는 야식을 더욱더 빛내줄 가벼운 미디어가 필요하다. 예전엔 이 시간에 넷플릭스로 괜찮은 영화를 찾아보는 편이었지만, 요즘은 왠지 영화는 호흡이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저 유튜브로 가벼운 가십거리를 보는 게 나았다. 이성적이고 감성적인 노동이 필요 없이 한바탕 웃고 즐기는 가벼운 이야기들. 오늘도 거실 매트 위에 작은 상을 펼친 뒤 우리는 신나게 야식을 세팅하고, tv 유튜브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런데 오늘 밤, 평소에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던 채널을 남편이 또 선택하였다. 가끔 몇 번 함께 본 적이 있었지만, 운영자의 태도와 생각이 나와 참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채널이었다.
나는 갈등과 싸움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다'는 생각에, 나와는 다른 의견 앞에서도 굳이 내 생각을 피력하지도 굳이 그 사람을 설득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냥 '너는 나와 생각이 다르구나. 그렇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잠자코 들어주는 편이다. 물론 나는 속으로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고 있더라도.
조금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보통은 참는 편이다. '그 사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이해하려 노력하며 '괜히 큰일로 벌이지 말자' 생각한다. 어떤 일에 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도 양쪽의 입장을 모두 이해한다며 적절한 조율을 도와준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죠.' 그러다 보니 거의 매일을 그냥저냥 웃으며 보내는 무탈한 하루. 밖에서는 다른 사람과 갈등할 일이 정말로 거의 없었다.
그런데, 남편에게는 왜 그게 안될까? 어째서 남편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처럼 수용적이고 배려심 넘치는 무조건적인 이해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가 그 이해를 바라게 될까. (아이러니)
싸움과 갈등을 싫어하는 나는, 남편과의 갈등에서 '본질적인 해결'을 원하기보단 겉으로 보이기에 '싸움이 커지지 않는 것, 싸움이 해결된 것'과 같은 양상을 바라곤 했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잘잘못을 따지자니 갈등이 더 커지는 것이 두렵고 염려되어 입을 꾹 다물었다.
신혼 때는 더 심했다. 밖에서 이해심 넘치는 사람으로 살아오느라 살면서 제대로 싸움을 해본 적 없던 터라, '남편과의 갈등 상황'은 내게 그저 불편하고 힘들고 싫은 시간이었다. 따라서 나는 상황과 대화를 회피하기 바빴다. 변명하자면 우선 내게는 이 거친 분위기에서 벗어나 내 생각과 마음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 감정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남편은 이런 나의 태도를 매우 답답해했다.
보통의 남자들이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본인 피셜에 의하면 남편은 남중, 남고를 거치는 동안 정의를 위해(!) 기꺼이 싸움을 하는 싸움닭으로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학교의 일진 하나가 본인 반 친구를 괴롭히기에 본인은 학교 뒤편 운동장에서 일진과 맞짱을 떴고, 학교 친구들이 싸움의 현장을 우르르 둘러싸자 선생님들이 그 광경을 보시고 싸우는 두 사람을 교무실로 불렀고, 싸움 현장에 함께 있었으나 싸움을 말리지 않고 방관하던 학생 모두는 체육관으로 불려 가 벌을 받았고, 그 후로 학교의 일진들은 전부 선생님들의 철저한 감시를 받게 되었다는데… 거의 뭐 말죽거리 잔혹사 같은 스토리를 내가 어디까지 믿어줘야 할지는 모르겠다.
어찌 됐든 이러한 싸움닭 남편은 자라서 대학생이 되었고 '경영학'과 '사회학'을 전공하였다. 애초에 정의로운(?) 싸움닭이었는데 대학생이 되자 학문의 깊이가 쌓이며, 말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데에 제대로 도가 튼 것 같다.
반면에 나는 기본적으로 평화주의자인 데다가 고등학생 때 이과를 택하고 대학은 약학으로 진학하며 평생을 토론과는 담쌓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남편은 대학 4년을 내내 어떤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누며 살았다는데, 나는 그 기간 정확한 과학적, 생물학적, 의학적 지식을 습득하기에 바빴다.
이렇게 토론과 싸움에 철저히 불리한 나였다.
그런데 오늘 밤 싸움이 붙었다.
우선 소중한 육퇴 시간에 남편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유튜브 채널을 선택하였다. 싸움이 없는 평탄한 세계를 좋아하는 나에게, 평소 그 운영자의 사고와 태도는 늘 불편했었다. 어느 한쪽으로 편향된 사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태도. 그래서 전에도 가끔씩 '저 사람은 굳이 왜 저렇게까지 말해?'라고 얘기하며 내가 이 채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비춰왔었다. 일상생활에서라면 나는 절대 그런 무례한 사람은 만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쭉 못 알아들었던 것 같다.
물론 나도 가끔씩은 그 채널을 통해, 바쁜 일상을 사느라 관심 갖지 못했던 측면에 대해 알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채널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이 나의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별로 관련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종종 관심을 가졌기에 오늘도 그냥 함께 보았다.
그러다 결국 일이 터졌다. 오늘은 더더욱, 잠자코 보고 있자니 그 운영자가 하는 모든 말이 너무 편향되어 있으며 어느 한 조직을 향해 무조건적인 비난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소수의 행동을 너무 확대 해석하여 그가 속한 집단을 완전히 매몰하고 있었다.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 채널을 보고 남편이 웃고 있었다?! 갑자기 내 남편이 저 편협하고 단정적이고 무례한 사람의 의견에 100% 동조를 하고 웃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소름이 돋고 화가 났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그러고 보면 너는 진짜 배려가 없고 편향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며 화를 내었다.
남편은 당황했다. 갑자기 왜 모든 사고의 단계를 뛰어넘고 자기를 특정 사람으로 단정 짓느냐 물었다. 자신은 그저 세상의 이야기를 알고 싶은 마음에 여러 가지 사건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찾아서 듣는 것이고, 저 사람의 의견에 대해 일부 동조하는 것도 있지만 저 사람의 이야기가 100%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이야기했다. 본인이 그 채널을 보고 웃은 것은 그저 그 부분 하나가 공감되었을 뿐.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다면 나에게 어떤 생각으로 웃은 것이냐 질문을 하면 되지 갑자기 비판도 아닌 비난을 하는 것은 나의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저 유튜버를 싫어할 수는 있지만 저 사람도 비난할 수는 없다고 했다. 저 사람은 그저 표현의 자유를 가진 이 사회에서 자신의 개인 채널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뿐이라고 했다.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아까의 상황에서 화가 난 이유는 분명히 있었지만 그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어떤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뭔가 억울하고 답답했지만 지금 그가 한 말은 모두 옳았다. 나는 아마도 이번 싸움에서 진 것 같았다.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째서 그 유튜브 채널의 시선과 태도에 불편함을 느낀 것일까? 그런데 그 불편함에 대해 나의 의견을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던 것일까? 나는 남편에게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점점 깊게 파고들자니 단순히 이번 싸움과 그 패인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내가 세상을 너무 모른다는 것에 있었다.
그랬다. 나는 세상을 잘 몰랐다. 그저 평탄했던 나의 하루에, 무탈했던 오늘 하루에 만족해왔다. 싸움과 갈등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라는 말로 나를 보호하며, 세상에 너무나 무심하고 무관심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투쟁하는 모든 사건과 사람들에게.
이 세상이, 사회가, 정치가, 그리고 경제가 어떻게 맞물려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누가 누구의 이익을 위하여 누구를 대변하며 살아가는지, 이 일을 통해 어떤 사람이 혜택을 얻고 어떤 집단이 피해를 입는지 나는 관심이 없었다. 한정된 시각과 표현 방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지만, 따지고 보면 나는 그 유튜버가 지적하는 사건의 내면에 대해 그 사람의 반만큼도 알지 못했다.
나는 늘 일상적인 판단을 했다. 그 판단의 근거는 그저 나와 비슷한 평탄한 삶을 살아가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스치듯 지나가는 미디어의 목소리였다. 깊게 고민하지 못했다. 그저 내 삶을 살아가는 데에 바빴다. 보통의 사회에 기준에 맞춰 '지금의 제법 평화로운 일상'에 닿기까지, 그동안 나는 나름의 치열한 노력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얻게 된 나의 하루와 자리에서 오늘도 살아갈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만 머물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아이도 키우고 있으니 세상에 대해 더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많은 사람과 함께 살아갈 사회에 대해 제대로 알려줄 필요도 있었고, 세상을 살아갈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도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으로서도, 내가 살아갈 사회를 선택하고 힘을 싣는 데에, 나의 권리를 찾고 보호하는 데에, 그리고 손톱만 하더라도 타인을 위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데에 관심을 쏟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선은 공부가 필요했다.
생각했다. 갑자기 그동안 내가 외치던 평화로움이 '진정한 평화'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갈등과 싸움을 회피하던 나의 일상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갈등과 싸움이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갈등과 싸움을 통해 세상이 변하는구나. 나의 의견을 올바로 피력하고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지지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구나. 만약 그것이 정당하고 꼭 필요한 것이라면, 우리 아이도 싸움이 필요한 곳에서 잘 싸울 수 있는 아이가 되도록 내가 도와줘야겠구나.
그래서 나는 평화주의자의 가면을 벗기로 했다. 나도 싸움닭이 될 것이다! 세상을 알기 위해 공부하고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우선은 남편과의 말싸움에서 이기기로 다짐했다. 아마도 남편과의 말싸움에서 제대로 이기는 날, 나는 조금 더 성장한(?) 내가 되어있으리라.
역사와 사회를 좋아하는 문돌이 남편을 언제쯤 따라갈 수 있을진 모르겠다. 하지만 우선 한 발씩 한 발씩 책을 읽고 공부하며 세상을 알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