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이치 자이 개포>는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에 위치한 대단지 아파트이다. 2018년 3월에 분양을 했고 올해 7월부터 입주가 시작되었다. 현대건설에서 건설한 프리미엄 아파트로서 브랜드 가치도 좋고, 지하철 수인분당선 대모산입구역 및 3호선 대청역이 바로 앞이라 대중교통도 편리하다. 게다가 학군 좋은 대치동도 바로 옆이다.
'대한민국 교육을 대표하는 최적의 교육여건과 신속한 교통여건을 기본으로 코엑스, 현대백화점, 양재천 등의 다양한 생활 인프라를 통해 생활의 차이를 만들어 새로운 강남이 시작된다는 기대를 한 몸에 받은' 디에이치 자이 개포.
이곳은 아파트 곳곳을 채우는 최신식의 각종 옵션은 물론, 작은 도서관이나 체육 시설 등 거주자를 위한 커뮤니티 공간도 잘 마련되어있어 여유롭고 품격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아파트 단지였다. 아마도 2021년 8월 현재, 다른 곳은 비할 바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아파트일 것이다.
이러한 디에이치 자이 개포에서 며칠 전 무순위 청약 공고가 떴다. 30평형 1세대, 그리고 40평형 4세대. 이렇게 총 5가구가 무순위 청약으로 튀어나왔다. 2018년 분양가 그대로 청약이 진행된다 했고, 분양의 시점으로부터 3년이 지난 터라 이미 현재 아파트의 가격은 많이 올랐으며, 현재 전세 시세가 분양 가격을 뛰어넘을 정도라고 했다.
청약 금액은 옵션까지 포함하여 30평대의 가격은 약 15억, 40평대의 가격은 약 20억이었다.
15억, 20억은 나에게 굉장히 현실감 없는 금액이었지만 이 단지에 청약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당첨이 되었다는 가정 하에, 우선 전체 금액의 20%에 해당하는 금액만 있으면 계약을 진행할 수 있었고 비록 주택담보 대출은 받을 수 없다 하더라도 실거주 의무가 없는 단지였기 때문에 전세로 돌리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3~4억 정도의 금액으로 강남에 있는 최고급 프리미엄 아파트를 내 이름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청약 공고가 뜨고 지원하기까지 1주일, 그리고 발표가 뜨기까지 추가로 1주일. 나는 꽤 마음이 부풀어있었다. 당첨이 된다면 우선 20%의 계약금을 마련해야 했기에 현재의 집을 빼고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손을 벌여야 했다. 그리고 재빨리 나머지 금액을 메우기 위해 전세를 구해야 했다. 갈길은 멀었지만 당첨만 된다면 이건 로또나 다름없는 인생역전이었다. 부동산 어플을 둘러보니 이미 이 단지의 많은 아파트가 전세로 나와있었지만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놓는다면 금방 세입자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잠깐 정신이 들어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 아니 세상에 도대체 누가 15억이 넘는 집에 전세를 사는 거지? 돈이 그렇게 많은가? 수중에 15억, 20억이 있다면 내 집 마련을 하고 말지 왜 전세를 살까?
하지만 곧 그런 생각을 거두기로 했다. 세상에 누군가는, 내 입장에서는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한 결정을 내릴 만큼 돈이 엄청 많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겠지.
그리고 상상을 이어갔다. 아마 갈수록 전세 시세는 자꾸 오를 테니 나도 조금씩 전세를 올려야겠다. 그러면 조금씩 부족한 금액을 채울 수 있으리라. 언제쯤 모든 금액을 다 청산하고 우리가 그 집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우리는 강남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일단 그곳에 우리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행복하겠지라 상상했다.
전세 돌리기를 전전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도 돈을 모아 그 집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마도 더 이상 그 아파트는 새 아파트가 아닐 것이다. 20년이 넘게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좋을 것이다. 신랑 월급의 절반 이상을 대출이자를 갚느라 치열하게 살겠지만 우리에게는 강남에 아파트가 있으니 그걸로 됐다.
이제는 꽤 선명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나는 여기서 수를 쓰기도 했다. 30평형 1세대에 도전을 할 것인가, 40평형 4세대에 도전을 할 것인가. 이미 15억, 20억은 너무 커서 그 차이가 가늠이 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확률을 높이기 위해 40평형 아파트에 청약 지원을 했다.
경쟁률이 나왔다. 이번 로또 청약에는 25만 명이 몰렸다고 하며, 접수 건수는 각각 절반씩 차지하여 30평형의 경쟁률은 12만:1로, 40평형의 경쟁률은 3만 2천:1로 나왔다고 한다. 실로 엄청난 경쟁률이었다.
그나마 나는 40평형을 선택함으로써 확률을 줄였다는 것에 작은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곧 이 엄청난 수치에 말문이 막혔다.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는 청약이라면, 해당 사람들이 놓치지 않고 청약을 잘할 수 있도록 '서울시에서 출근 시간을 늦춰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어린 시절, 내가 한동안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수능시험의 한 해 수험생 숫자는 대략 60만 명 정도였다. 그리고 한 해 서울대 입학 정원은 약 3000명. 모든 수험생이 다 서울대에 지원한다 하더라도 경쟁률은 고작 200:1이다. (실제로 지원하는 학생 수로 경쟁률을 따지면 6:1이라고 한다.) 나는 그 시절,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했음에도 200:1의 경쟁률을 뚫고 서울대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로또 청약은 단지 운만으로 3만: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것이었다.
경쟁률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나는 곧 달콤했던 한여름밤의 꿈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나 결과는, '그들이 사는 세상'의 일로 마무리되었다.
내가 한 상상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열흘 정도 꿈꿔왔던 그 달콤함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나의 현실은 외벌이 남편과 3살 아이와 함께, 서울 변두리의 3억 중반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세 금액의 절반 이상은 은행의 돈이다. 그런데 나는 왜 나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에 설레고 한껏 기대하며 꿈을 꿨던 것일까? 현실은 계약금의 절반도 갖지 못한 상황인데, 어째서 나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디에이치 자이 개포에서 사는 삶을 꿈꿨던 것일까? 집은 결국 '사는 곳'인데, 나는 왜 결코 살 수 없는 내 집을 '사는 것'을 꿈꿨을까?
나의 꿈은 대단했다. 그 40평대 아파트에서 대대손손 살며, 언젠가 우리 아이에게 이 아파트를 물려주는 것까지 꿈꿨다. 그런데 꿈에서 깨니 내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아주 달콤한 꿈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아무것도 갖지 않은 지금의 현실에서, 나의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줘야 하는 것일까?
며칠 전 뉴스에 이런 기사가 나왔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2017년 5136만 명에서, 50년 후인 2067년엔 3689만 명으로 줄어들고, 100년 뒤인 2117년엔 무려 1510만 명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서울을 비롯한 많은 대도시의 인구가 4분의 1토막이 된다고 한다. 나와는 상관없는 먼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그 수치의 갭이 너무 커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미래는 어쩌면 나의 아이가 살아갈 가까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출산의 문제가 점점 더 심해지며 우리 사회가 그러한 방향으로 가는구나. 그리고 이런 마음도 들었다. 아마도 그때는 일자리도 집도 남아돌 텐데, 내가 과연 이렇게 아등바등 살면서 집을 소유하고 그 집을 아이에게 물려주는 게 의미 있을까.
오늘도 집값이 오르는 2021년 8월의 현실에서, 우리처럼 이리저리 눈치 보며 가만히 있다가, 벼락 거지가 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신혼 때 살았던 그 허름한 아파트를 사놨어야 한다'는 아쉬운 후회가, 우리 부부의 대화에 오늘도 함께 한다.
집값은 언제까지 오를 것인가. 내 집 마련은 가능할까? 나는 내 집을 갖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을까?
집값이 올라 문제라는 얘기를 하다가도, 다른 사람은 어찌 되든 '나만은 그 인생역전의 기회에 냉큼 올라타려던 나'를 돌아본다. 앞으로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하고 고민해보다, 평소와 똑같이 하루를 보내는 것 말고는 마땅한 답이 없는 것 같아, 오늘도 그저 평범한 하루를 살며 이 상황을 합리화해본다.
꿈은 달콤했다. 그렇지만 아마도 나는,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또 비슷한 꿈을 꿀 것이다. 결국은 늘 그렇듯 금세 또 현실을 직시하고 이곳에 발붙여 살겠지만.
'집'에 대한 생각, '도시에서의 삶'에 대한 생각, '미래'에 대한 생각, '나의 아이에게 진정 물려줄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 오늘도 엄마는, 하는 것 없이 많은 생각에 머리가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