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하는 사람도 인정받고 싶습니다만
우리 집은 서울, 시댁은 청주. 오랜만에 우리 집으로 어머님+시누이들이 오는 날이었다. 추석이 코앞이라 곧 우리가 시골로 내려갈 터였지만, 서울 사는 시누이의 생일을 맞아 오신 어머님은 겸사겸사(당연히) 사랑스런 아이들(어머님의 아들과 나의 딸)을 보러 우리 집으로 오시게 되었다.
사실 어머님은 좋은 분이셨고 그다지 까다로운 점이 없으며, 내가 우리 식구들에게 밥만 잘 차려준다면 내가 집안에 어떤 새로운 물건을 들였든 집안이 휑하게 아무것도 없든 아니면 엉망진창 그지 꼴이든, 나의 살림 능력치에 크게 관심 없는 분이셨다.
본인의 부동산을 운영하시며 지금도 활발히 현업에 종사하시는 어머님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밖에서 일하셨다. 때문에 나는 어머님께서 시시콜콜한 '집안' 살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머님의 이러한 모습은, 신혼 초 한창 내가 그릇이나 소품에 관심이 생겨서 우리 집에 들인 예쁜 것들을 자랑했을 때 너무나 덤덤했던 반응으로 나를 당황시켰던 적이 있더랬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지금에 와서는, 어머님께서 살림살이에 별 관심이 없고 작은 변화에 무디신 점이 꽤나 편하고 좋았다. 아이가 있는 집은 늘 알록달록 온갖 잡동사니가 여기저기 널려있고 정리가 안되어있으며 발 붙일 틈을 찾기도 힘든데, 그런 점을 전혀 타박하지 않으실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예의 있는 사람이었다. 손님을 맞이하는 예의.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치부를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엉망진창으로 살고 있더라도, 그래서 가까이 사는 엄마가 가끔씩 우리 집에 왔다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머리카락과 거울에 온통 찍혀있는 아이 손자국과 가구마다 소복이 쌓여있는 먼지 구댕이에 놀라 나에게 1시간씩 구박을 하여 부족한 살림 실력을 꼬투리를 잡을지라도. 어머님께는 이러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저, 나름 5년 차 주부(아니 이렇게나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이 모양이라고?)답게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럴듯하게,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며 가정을 잘 건사해 살고 있어요"라고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머님께서 오시기 이틀 전부터, 나는 자연재해를 방불케 하는 우리 집 초비상 상태로 긴장의 끈을 붙잡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시간, 최대한 열심히 밀고 쓸고 닦았다. 거실에 널려있던 우리 집 어린이의 책이며 장난감을 치우는 과정부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이 관문을 넘어 깨끗해진 거실을 보니 작은 뿌듯함의 힘을 타 다음 장소도 야무지게 쓸고 닦고 할 수 있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던 시간이 이렇게 짧았던가? 나에겐 마지막까지 차마 치우지 못한 옷방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도무지 (나에게 추가로 이틀의 시간을 더 준다 하더라도) 그 시간 안에 해낼 자신이 없었고, 그래서 나는 출근한 신랑에게 카톡으로 '옷방의 문은 그 누구도 출입할 수 없도록 암묵적 봉쇄를 하자' 이야기하며 그렇게 이번 '어머님 맞이 청소'를 마무리 지었다.
청소가 끝난다고 손님맞이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저녁은 (우리 집에 어머님과 시누이들이 오는 날이면 자주 그렇듯) 오늘도 족발을 시켜먹겠지만, 다음날 아침과 중간중간 드실 간식들은 내가 준비해놓아야 할 일이었다. 아... 하지만 나는 요리를 지독하게 못하는 종족이었다. 남편과 아이는 평소에 나의 무(無) 맛 요리를 (사랑의 힘으로?) 잘 먹어 주었지만, 아마도 어머님과 시누이들은 다를 것이다. 나는 내가 한식으로 아침을 멋지게 차려내기란 어려울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고민을 안고 무작정 마트로 향해 멍한 표정으로 카트를 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과일 코너에 진열된 제철 무화과를 발견하였다. '아! 그래 이거다! 작전 상 내일은 브런치 타임으로 간다!' 갓 구운 빵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알맞게 익은 무화과를 올려 무화과 오픈 샌드위치를 만들기로 하였다. 샌드위치에 요거트와 커피까지 내어드리면 아마도 아침 식사로 적당히 그럴듯하게 느껴질 듯했다. 품은 크게 들지 않지만 그래도 성의가 없어 보이진 않을 것이다. 사실 이번 방문에 아버님까지 같이 올라오셨다면 이런 메뉴는 상상도 못 했겠지만, 이번엔 대접할 손님이 여자들 뿐이니 갬성갬성 카페 브런치 느낌으로 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내일 아침을 위한 빵과 무화과, 크림치즈, 요거트, 커피를 구입하고 오늘 중간중간 드실 간식으로 생크림 카스텔라, 과일, 과자 등을 구입했다. 이제 아이가 하원 하는 시간에 맞춰 어머님이 오실 때까지 2시간 30분도 남지 않았으므로 집에 와서는 부지런히 장 본 것을 정리하고 멜론을 손질했다.
그리고 이제는 나의 아점을 먹을 시간이었다. 그러나 며칠간 열심히 청소를 했음에도 부족해 보이는 곳이 보였기에 나는 다시 청소기와 물티슈를 들었다. 짧은 청소를 마치고 이제 나는 정말로 늦은 아점을 먹기 위해 테이블에 앉았다.
사실은 오늘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그래서 장을 볼 때 떡볶이 재료도 함께 구입했더랬다. 그런데 조금 전 어머님께서 30분 정도 일찍 오신다는 전화를 주셨던 터라 마음이 좀 급해졌다. 떡볶이 만들어 먹기는 사치를 부리는 듯하여 포기하고, 나는 어젯밤 아이가 먹다 남긴 모닝빵과 샐러드를 냉장고에서 꺼내 입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아이를 하원 시키기 위한 준비물(놀이터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먹을 음료수, 간식)을 챙기고 킥보드를 들고 집 밖을 나섰다.
어머님 오시는 시간에 맞추어 아이를 평소보다 조금 일찍 하원 시키고, 어린이집 앞 놀이터에서 어머님과 시누이들을 만났다. 자주 영상통화를 하긴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한, 두 달 만에 만난 시댁 식구들을 아이는 조금 낯설어하며, '오늘은 놀이터에서 놀고 싶지 않으니 집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엄마가 간식하고 킥보드 다 챙겨 나왔구먼. 으이구~) 하지만 그렇다고 이 3살 아이의 어색한 기운이 오래가는 것도 아니었다. 놀이터에서 집으로 향하는 5분 남짓한 길에, 이미 이 꼬마는 할머니 손을 붙잡고 연신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드는 데다가 폴짝폴짝 뛰어가며 오랜만에 만난 어머님과 시누이들을 환영했다. 집에 도착해서는 자신의 온갖 장난감들을 늘어놔 자랑을 했고, 고모를 위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춤까지 추며 손님맞이를 제대로 했다. (든든)
나는 준비해 놓았던 간식을 차례로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꼬마와 함께 (다 같이) 다시 놀이터에 나가 열심히 놀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이와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린 후 아이를 위한 고구마 말랭이를 부지런히 만들었다. 그다음 다시 어른들에게 간식을 대접하고 아이와 밀가루 반죽 놀이를 했으며 한참을 놀고 밀가루 반죽으로 온몸이 하얗게 된 아이를 씻겼다. 아마도 하원 후 4시간쯤 지난 듯했다. 아이를 씻기고 옷을 입혀 다시 거실로 나오니 주문한 족발이 집으로 도착했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왔는지 퇴근한 남편도 먹을 것에 딱 맞춰 집으로 왔다.
남편이 샤워를 마친 후 우리는 둘러앉아 족발을 먹었다. 족발은 정말 맛이 있었고, 나는 5년 차 주부임에도 여전히 미숙한 요리 실력을 숨기며, 어머님과 시누이의 저녁 식사를 따로 차리지 않고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는 배달의 사회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식사를 하면서 행해진 대화 주제는, 늘 그렇듯 우리의 귀여운 아이와 남편의 회사 생활이었다. 평소에는 아이의 성장에 대해 얘기하며 아이의 춤과 노래를 듣고 박수 쳐주는 것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오늘은 남편이 주인공이었다. 거의 세 달 가까이 이어진 긴긴 재택근무를 마치고 남편은 오랜만에 사무실로 출근했더랬다. 그러한 남편이 지난주에, 특정 업무를 처음 맡은 것이 전혀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업무를 매우 설득력 있고 깔끔하고 잘 처리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임직원 회의에서 한 임원이 그 업무를 한 남편을 언급하며 '이 사람의 역량을 업무의 기준으로 삼으라' 할 정도로 남편을 치하하였고, 그 사실이 소문이 나 많은 선후배에게 칭찬과 부러움, 인정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새로운 부서에서 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입지를 다지는 것이 참 어려웠을 텐데... 정말로 대단한 남편이었다. 정작 본인은, 각종 자료를 찾아보고 알맞은 틀을 만들어 설득력 있는 문서를 만드느라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살짝 겸손을 부린다. 하지만 '오늘 정말 히트였어 히트'라고 껄껄 웃는 남편의 얼굴은, 회사에서 받은 인정과 그에 대한 기쁨으로 가득했다.
함께 식사를 하며 우리 모두는 남편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님을 바라보았다. 아들이 바쁜 회사일로 늘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안쓰러워하셨는데, 이렇게 인정받는다 하니 얼마나 자랑스러우실까? 오늘의 어머님도 참 기쁘고 뿌듯해 보였다.
비록 저녁 식사는 족발로 버텼지만, 나는 분명 내일 아침 식사를 위해 무화과 오픈 샌드위치와 멜론과 요거트와 커피와 생크림 카스텔라를 잘 준비해놓았다. 그리고 내일 아침, 어머님과 고모와 함께 조금은 여유롭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었다.
그런데 일하는 여성인 어머님은, 다음 날 중요한 고객을 만나는 날이라 바쁘시다며 그날 밤, 바로 댁으로 돌아가셨다. 평소 같았음 귀여운 3살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아이의 재롱을 더 보다 가려고 무조건 하룻밤은 주무시고 가셨을 텐데... 이제 곧 추석이라 아쉬움이 없으셨는지 이번에는 반나절만에 바로 짐을 싸셨다. 그렇게 어머님의 이번 방문은 급작스럽게 마무리되었다.
엉겁결에 생각보다 짧게 치르고 끝난 손님맞이에 약간 당황했지만, 곧 나는 식사자리를 치우고 집안을 정리하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평소처럼 아이를 재웠다. 그렇게 오늘 하루가, 어머님이 우리 집에 오셨던 오늘 하루가 잘 마무리되나 싶었다.
누워서 잠들려고 하니 갑자기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몇 날 며칠을 바쁘게, 밥도 허겁지겁 먹어가며 정신없이 이리저리 일을 했었다. 하지만 어느 누가 나의 수고를 알며 잘했다 인정하고 칭찬해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남편은 나에게 이틀 동안 청소하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고, 본인 퇴근 전에 엄마와 동생들을 잘 대접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이건 그저 내가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를 한 것일 뿐이었다. 안 하는 게 이상한 것, 하는 게 당연한 것일 뿐.
'짜루짜루 진짜루, 뭔가 나 되게 바빴는데?' 하며 내가 한 일을 돌아보니 또 딱히 한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아이 하원 후에 어머님과 시누이들을 만나 기껏해야 집에서 빵과 커피와 과일을 대접했고, 심지어 내가 그것들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를 봐달라고' 한 기분이었다. 평소처럼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를 왔다 갔다 하다 집으로 돌아와 밀가루 반죽을 가지고 조금 놀아주고는, 오랜만에 집으로 오신 어머님과 시누이들을 두고 겨우 같이 먹는 한번뿐인 저녁 식사를 냉큼 배달어플로 시켜서 먹었을 뿐이었다. 맙소사!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것인가?
물론 냉장고에는 무겁게 장을 봐 왔지만, 미처 대접하지 못한 샌드위치와 간식거리 등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어차피 지금 본래의 목적을 잃은 유명무실한 것이었다. 깨끗하게 치우느라 노력했던 집은 또다시 이틀을 못가 더러워질 게 분명했다. 한 차례 폭풍우가 다가온다 하여 그것을 잘 넘어가기 위해 아등바등했지만, 이 모든 것은 그냥 너무나 당연한 것일 뿐이었고 나에겐 어떤 특별한 성취감도 남지 않은 채 그저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아쉬움에서 나아가, 내가 한 '어떤 일'에 대해 약간의 허무함까지 밀려왔다.
너는 네가 '몇 시간' 동안 '열심히 자료를 조사하고 문서를 만든 일' 덕분에 다른 사람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기도,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인정과 칭찬을 받기도 하는구나. 너는 그러한 성과와 인정을 통해 더더욱 멋진 일을 해내며 성장하는 사람이 되겠구나.
나는 '몇 날 며칠' 열심히 무언가를 했으나, 결국 나조차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인가' 의심할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일'을 했구나. 아마도 집안은 곧 48시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터이고, 오늘 나에게 이런 수고가 있었다는 것을, 오늘 우리에게 이런 하루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나의 일은 그저 이렇게 지나가겠구나. 그렇구나. 나는 그저 집구석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무언가를 할 뿐이구나...
아니? 이게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열등감과 허무함까지 가야 할 일이었나?
(누가 뭐라고 욕하든) 어쨌든 긴장된 하루를 마무리하고 녹초가 되어 드러누워 있는 내 몸뚱아리에, 오늘의 불꽃을 서서히 꺼가며 깜빡깜빡하는 나의 정신은 혼자서 양극단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깜'에서는 '집안일은 왜 맨날 해도 해도 이 모양일까?', '빡'에서는 '우리 남편 진짜 대단하네', '깜'에서는 '아~ 나도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다~~~', '빡'에서는 '그런데 어머님은 잘 내려가셨나?', '깜'에서는 '아.. 근데 진짜 뭔가 분하다 으으으', 그리고 '빡'에서는 '졸...ㄹ........ㅕ.........ㅓ...........zzz'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어제의 기절이 무색하게 또다시 아침이 밝았고 꽤 산뜻했다. 나름의 숙제를 잘 끝낸 덕분일까? 마음이 편안했다. 그럼 나는 '어제로써 한 편의 수행평가를 마무리 지었으니, 이제 맘대로 널브러져서 보고 싶은 넷플릭스나 실컷 볼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은 경기도 오산.
오늘의 나는 어린이집 행사가 있는 날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한복을 잘 입혀서 보낸 후,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니 온갖 플라스틱과 종이를 바리바리 싸들고 나가서 분리배출을 해야 한다. 그 후에는 양가에 보낼 추석선물을 골라야 하고 그와 함께 꽃다운 우리 아이 추석빔도 골라야 한다. 어제 장을 보면서 이번 주에 먹을 기본 식량은 채워놓았으니 오늘은 다행히 장은 안 봐도 되고, 게다가 이번 주에는 청약 달력도 특별한 사항이 없으니 마음을 놓아도 된다. 하지만 이번 주 혹은 다음 주 내로 어린이 통장을 만들 예정이니 어느 은행 혜택이 좋은지 조사를 해야 하고, 아직 아이가 배변 훈련을 열심히 하는 중이니 기저귀가 떨어지지는 않도록 하되 아이에게 배변 훈련을 촉진할 만한 당근으로 무엇을 제시하며 설득하고 종용할지 고민해봐야 한다. 또한 최근에 (엄마 욕심에) 꽤 비싼 영어 전집을 들였으므로 당분간은 어린이책에 눈 닫고 귀 닫으며 더 이상 훑어보고 욕심 내지는 않되, 그래도 다음에 또 돈이 모이면 어떤 책들을 고르고 싶은지 리스트업은 해두어야겠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니, 산뜻했던 아침의 쨍한 햇살이 괜히 또 거슬리고 마음이 바빠졌다. 그리고 또 이 많은 생각 중에 '나라는 사람'이 없음을 깨닫고 아쉬운 맘이 들었다. 도무지 겉으로는 절대 드러나지 않는 살림하는 엄마의 노고... '아~ 안 되겠다. 오늘은 그냥 별 생각하지 말고 나를 위해 책을 좀 읽어야겠다. 그리고 어젯밤 나는 무언가 때문에 그렇게 억울했으니, 일단은 나라도 나를 인정하고 그 하루를 잊지 않아야겠다.'
그리고 생각했다. 살림하는 엄마인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 생각이 내 마음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나는 '82년생 김지영'도 아니고 '90년생이 온다'도 아니고, 그렇다고 끼인 세대라 표현하기도 이상한 그 어느 중간에 위치한 밀레니얼 세대의 30대 주부이자 엄마.
이런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우선 나의 자리와 나의 일에 대해 더 진지하게 바라보고 고민하고 생각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아이가 일어나기 전, 열심히 어제의 하루를 썼다.
아이가 일어났다. 난 식빵을 굽고 크림치즈를 바르고 꿀을 바른 후 아이에게 '그놈의 무화과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였다. 그리고 살구빛 한복을 곱게 입혀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