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자리

현실 남편 2021

by 맘약

너만 힘든 척하지 마. 나도 힘들어!! 그리고 너는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잖아.


우리 부부가 치열하게 싸운 그날 밤, 남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출산과 육아로 내 삶의 지평이 변화하였다. 30년 넘게 공고히 잘 쌓아온 '나에 의한, 나를 위한, 나의 세계'가 갑자기 무너져 내린 것이다. 10달 전 나는, 아기가 우리에게 왔다는 놀랍고 기쁜 소식을 맞이하며, 변화될 나의 미래를 예상하고 그에 대비해 나름의 준비를 해왔더랬다. 하지만 '임신 출산 육아 대백과'를 읽으며 아기 손싸개와 흑백 모빌을 만들고 설레 하던 나는, 정말 순진하기 짝이 없는 예비맘일 뿐이었다. 내가 했던 대부분의 상상과 준비는 정말이지 현실 육아 앞에선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밤낮없이 똥오줌 못 가리고(이건 아직도..) 빽빽 울어대는 아이와 함께 마주한 낯설고 처절한 현실에서, 나도 속으로는 아이와 함께 수도 없이 울었다. 하지만 나는 본래부터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고! 그리하여 멘붕의 상황에서 정신을 놓았다가도 용케 곧 다시 붙들고 오늘의 쳇바퀴를 굴려나갔다. 아이는 쬐끔씩 성장해 어느 순간, 뒤집고 앉고 기고 걸었고. 그렇게 나는 아이와의 생존 기술을 나름대로 익혀가며 나의 현실을 잘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가 18개월이 될 때까지는, 정말로 이 집을 창살 없는 감옥이 아니고 무엇이라 하겠냐 싶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가 어리므로 밖에 데리고 가기가 힘들었고, 아이가 조금 자라서는 코로나니 뭐니 듣도보도 못한 세계적인 감염병에 소중한 아이를 집 안에서 지킬 수밖에 없었다. 현실이 이러하니 말도 안 통하는 이 꼬마를 데리고 하루 종일 집에서, 상전님 맘마 차려드리고 간식 챙겨드리고 똥오줌 치워드리고 재워드리고 놀아드리며 뒤치다꺼리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거실 창 깊숙이 들어왔던 아침 햇살은 어느덧 중천에 올랐다 산을 넘어가며 구름과 함께 다른 쪽 하늘로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남편에게, 내 말이 유일하게 통하는 사람다운 사람에게 온전한 한국말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도 분명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하루 종일 힘들게 살다가 퇴근을 했을 테지만. 그리고 그 늦은 퇴근길 마저 사회적 거리가 지켜질 리 없는 지옥철에서 또 다른 지친 하루를 살다 만난 타인의 땀과 냄새와 끈적임에 짓눌리며 힘겹게 왔을 테지만.


그런데 그렇게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는 웬일인지 오늘 우리 아이가 했던 예쁘고 사랑스러운 행동을 실컷 이야기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가 내가 예상했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나는 곧 나라는 사람의 어려움을 그에게 토하듯이 뱉어내고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 예를 들어 내가 밥을 차리는 시간 동안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놀아주지 않고 본인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것. 혹은 매주 돌아오는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을 잊고 멍 때리고 있는 것 등)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육아가 얼마나 감옥 같다느니, 나는 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그냥 집순이가 되어서 바깥세상 이야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되었다느니, 너는 밖에서 인정을 받지만 나는 이 말도 안 통하는 애랑 하루 종일 있으면서 무언가 하루 종일 바쁘게 열심히 보냈는데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느니' 하는 말을 뱉어냈다.


그런데 이런 일과가 자주 반복되자 나는 곧 표현법을 바꾸게 되었다. 사실 남편은 하루 종일 밖에서 꽤나 복잡한 일들을 했을 텐데 나는 어제나 그제나 비슷한 일상에 똑같은 불만이니 내 얘기를 시시콜콜하게 하는 게 굉장히 없어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런 생각에 미치고 나니 어느샌가 그의 퇴근 후, 공감이나 위로를 바라기보다는 그저 나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에게 한숨을 푹 쉬거나 한껏 쏘아붙이고는 마치 그가 주변에 없다는 듯이 원래의 내 일을 하였다. 그 순간, 나는 그저 육아와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었고 그는 그저 이 집의 가계를 위해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착한 사람이었다. 싸울 때에는 때때로 욱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그만큼 시간이 지나면 금방 화를 가라앉혔고, 뒤끝 있고 자존심이 강해서 절대 먼저 사과하지 않는 나에게 늘 먼저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 사과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분명 절대 나를 100% 이해할 수 없을 테였다. 실제로 그는 출산과 육아를 하지 않았을뿐더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는, '육아로 모든 것이 변했다'며 징징거리는 나에게 항상 많은 위로를 해주며 '당신이 힘든 것 잘 알고 있다. 고생한다. 잘하고 있다.' 얘기해주었고 나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랬다. 그의 에너지가 포지티브였을 때, 그는 그렇게 나를 격려하고 이해해줬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예쁘고 똑소리 나게 잘 크고 있는 건 엄마인 내가 육아를 열심히 잘하기 때문이라고 언제나 나를 치켜세워줬다.



하지만 그날의 싸움에서, 그는 민낯을 드러냈다. 역시나 그는, 그동안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속으로는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육아와 살림을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경제적인 성과를 얻고자 노력하였다. 기존에 오랫동안 해왔던 쉬운 길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전혀 다른 길들을 계속 찾았다. 삽질처럼 보이는 새로운 일들에 계속 도전했던 것은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위해서였다. 육아와 경제적인 성과 모두를 얻기 위하여. 그래서 내가 시도했던 것은 현실적인 자본주의 삶에서 동떨어져 그저 내가 취미로 재미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함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나와 우리 가족이 조금 더 잘 살 수 있을까 치열하게 고민하며 육아하고 집안일을 하고 삽질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숭고한 나의 노력을, 이놈의 남의 편은 겉으로는 '고생했다 이해한다 힘내라' 했으면서 결국은 이해는커녕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분했다. 치열한 고뇌의 시간만큼 미칠 듯이 분했다. 하지만 나는 역시 말싸움에 약한 종족. 이번 싸움에서도 난 억울함과 분함에 눈물만 흘렀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그날의 세계대전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내가 그때에 제대로 반박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던 이유를 조금을 알 것 같았다. 나라는 자가 본디 '한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고 타인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는 말'에 대해 상당한 무게감을 두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는지라 말싸움에 약한 탓도 있지만. 어쩌면 그 싸움날, 그의 말에서 나도 모르게 '헉!!' 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사실 언젠가 남편의 입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에게 매일 나의 힘겨움을 토로하듯, 그 또한 종종 나에게 치열한 회사에서 매일매일 위아래로 치이는 본인의 현실을 토로했었다. 그리고 미칠 듯이 숨 막히는지 지옥철의 3시간을, 벌써 3년 가까이 혼자서 이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고 꾸려가는 버거운 현실을 이야기했었다. 그런 그의 말을, 나는 언제나 모른 척하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나는 현재 자발적 경단녀, 전문직 엄마이다. 따라서 재취업을 하겠다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재취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어쩌면 남편 입장에서는 더더욱 가정의 생계는 나 몰라라 한 채 쓸데없는 일만 벌이는 내가 괘씸한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물론 육아도 책임지고 적절한 경제적 성과도 내며, 이제는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밀레니얼스러운 사고로 무장한 사람! 하지만 어찌 나와 1살 차이인 남편이라고 그런 마음이 없으랴? 실제로 남편 또한 늘 주변의 기대에 맞춰 살아왔다. 열심히 공부하여 명문대에 그리고 대기업에. 남편도 마찬가지로 본인이 하고 싶은 다른 일과 꿈이 있지만, 부인과 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현실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모른 체했다. 그리고 언제나 나의 상황과 감정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육아 초반에는 정말 몰랐다. 이 조그마한 생명체를 거두며 내 앞가림하기도 바빴던 터라,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많고 사회생활도 곧잘 하는 다 큰 성인인 남편의 힘겨운 현실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1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냥 일상에서 '생각'이란 것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18개월이 되어 어린이집에 가고 나니, 아이와 떨어진 그 시간 동안 나는 조금씩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고 나아가 이렇게 남편의 자리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반성이 되었다. (물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이후에도 계속 살림과 육아에 얽매여있어 특별히 대단한 것을 하지는 못했지만) 점차 약간의 여유를 찾고 책을 읽고 생각하다 남편의 자리까지 생각하게 되니, 그동안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남편의 노고에 대해 미안함과 고마움이 밀려왔다. 그동안 정말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쩌면 나는 지금의 이 '주부의 삶'을 이제는 완전히 내 삶으로 받아들이고 편하게 느꼈던 것 같다. 물론 육아와 살림이 정말 쉽지는 않지만, 나에게 치열한 자본주의의 책임은 따르지 않는 삶. 남편이 책임지는 가계로 마음이 편안한 삶... 때문에 또 다른 고행이 예상되는 '뻔한' 워킹맘의 길을 스스로 고사한 것이었다. 나는 늘 이런저런 핑계를 댔다. '곧 둘째가 생길 거야. 그러면 또 임신, 출산, 육아 때문에 직장 생활을 오래 하지도 못할 거야. 그럴 바엔 굳이 새로운 일자리를 가질 필요가 없지. 우리 아이는 내가 전업맘이라서 많은 신경을 써주기 때문에 이렇게 밝고 똑똑하게 잘 자라는 거야...'


하지만 사실은 그냥 내가 하기 싫었던 것이다. 남편이 말했듯 위아래로 치이기 싫었던 것이고 지옥철을 타기 싫었던 것이고. 실제로 그의 말대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항상 재미있게 열심히 사는 사람, 꿈이 있는 사람'이란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남편에게 기생하면서…


엥? 내 입에서 기생이란 말까지 나오다니? 이렇게 힘든 주부의 가사와 육아의 노고를 너무 깎아서 얘기한 듯해 이 단어는 얼른 취소해야겠다. 어쨌거나 남편은 나에게 '함께 벌어 돈을 모아 우리의 2년짜리 메뚜기 삶을 어서 벗어나자'며 줄곳 맞벌이를 이야기를 하였으나, 나는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그저 내 상황과 감정에 앞서, 빨래를 빨래통에 넣을 줄 모르고 아이 머리도 제대로 감길 줄 모르는 남편을 보며 한심해하거나 분노할 줄만 알았지, 남편의 답답하고 막막한 심정은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남편의 심정을 절절히 이해하고 나서 나는 다시 '빛나는 일터'로 돌아갔느냐?' 아쉽지만 그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육아가 우선이고 또 조만간(?) 언젠가 생길 둘째도 생각해야 하고. 그리고 여전히 나의 자아실현에 관심이 많은 욕심쟁이 밀레니얼이라 나의 미래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불쌍하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나와 결혼하여 나와 가족을 이룬 자가. 오늘도 이른 아침, 잠들어있는 아내와 딸을 보며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같이 더 늦잠 자고 싶은 마음)을 안고 열심히 지옥철에 몸을 싣고 일터로 나가서 치열하게 싸웠을 그가.



나도 남편이 지금보다 조금 더 돈을 적게 벌더라도 워라벨이 있는 일을 하길 바라고, 그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더 나은 삶과 자아실현을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시간이 있기를 바란다. 정말 정말 사랑의 마음을 담아 간절히 바란다!!


아! 그런데 그러고 보니 지금보다 돈을 조금 더 적게 버는 건 안 되겠다. 다음 달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 계약을 새로 하는데 2년 전보다 5%가 더 올라 살림이 빠듯하다. 어휴. 지금보다 돈은 조금 적게 버는 건 아무래도 안 되겠다... 역시 결론은 내가 취직을 하는 것인가? 그런데 나는 전처럼 빡센 일을 하면서 육아랑 살림은 도무지 못할 것 같은데? 다른 엄마들은 둘 다 잘하는데 나는 왜 자신 없고 이 모양이지? 아이고... 답이 없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 남편의 자리와 마음이, 그 현실의 무게가 다시 한번 오롯이 느껴졌다. 남편의 무게, 가장의 무게, 밀레니얼 아빠의 무게…


그리고 사춘기 소녀마냥, 늘 자기 자신에 진심이고 생각이 많아서 어려운 엄마, 아내, 그리고 나의 자리를 오늘도 역시 나는 열심히 생각해본다.





이렇게 오늘 하루 절절히 남편을 생각하고도, 퇴근 후 남편이 양말 하나를 빨래통에 넣지 못했다고 (안 그래도 아이 땜에 지저분해진 집안) 내가 하루 종일 청소한 집안을 어지른다며 잔뜩 불만을 늘어놓고 툴툴대는 나다.


하지만 또 육퇴 후, 그와 함께 넷플릭스를 몰아보며 치킨 뜯을 생각을 하니 역시 우리는 오늘도 즐겁게 동고동락하는 사이, 역시 이 사람은 ‘남 편’이 아닌 ‘내 편’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오늘도 평화로운(?) 현실 부부의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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