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잘 믿어주는 사람이 되는 과정
사이드 프로젝트로 주변인들을 인터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어제도 여느 때처럼 열심히 남의 이야기를 담고 있던 중, 갑자기 나의 주제로 들어갔다. 오래된 메일함에서 발견한 대화 내용이 감정을 건드린 것이다. 카페에서 나와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우산 아래서 소리 내 울었다. 어제는 그런 날이었다.
책을 내기 위해, 구독자를 모으기 위해 공적인 글쓰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닌, 나를 위한 정리의 공간이 필요했다. 공감 가는 글 읽기를 멈추고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 졌다. 비슷한 사람들은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사람에 지쳐 많은 것들을 끊어냈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에게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이기에.
심리상담을 1년 넘게 받고 있지만 최근 들어 답은 내 안에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선생님께 물어보고 싶은 것은 차츰 줄어들고,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넌 오늘 왜 화가 났어?" "그 사건이 네게 중요했던 이유는 뭐야?" 선생님이 다정히 물어봐주시던 걸 이제 내가 해줄 수 있게 됐다. 좋은 신호였다.
작년에 나는 심리적으로 두 팔이 잘려나가는 듯한 경험을 했다. 내가 가장 의지하는 두 개의 공동체 안에서 뿌리내리지 못한 채 정처 없이 떠돌았다. 그리고 이와 관련되어 2년 동안 다섯 번의 이별을 경험했다. 정확히는 두 사람과 여러 번의 이별이었지만. 혼돈도 이런 혼돈이 없었다.
항상 나의 초점은 내가 아닌 상대방이었다. 너의 감정이 소중해서, 고마워서, 미안해서. 진실로 나를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때쯤엔 내 곁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나 같이 시린 겨울 같은 이별들이었다. 삶에서 만난 가장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이별은 원래 아름답지 않은 거니까. 연애라는 게 늘 그렇듯 반은 나의 책임이었고, 반은 그들의 책임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내 잘못만 검열하고 나에게만 모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후회했고, 상대방이 힘들어하던 장면들만 악몽처럼 떠올랐다. 매일 남의 감정에 이입해 울었다. 힘들어하는 나 자신은 매몰차게 내버려 둔 채.
흔들, 흔들, 일상이 흔들렸다. 누군가의 마음을 소중히 어루만지며 살았는데 왜 결국 나만 힘든 것 같지? 그저 나를 불행하게 만든 사건으로만 끝내지 않기 위해 배운 것들을 꼽아보았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았지만 사실 태어나 처음, 나를 뼛속 깊이 이해하게 된 날들이었다. 나라는 사람의 성향, 내게 중요한 가치와 기준까지.
결론적으로 나의 선택은 다시 돌아가도 똑같을 거고, 그 당시로선 최선이었다. 모든 과정들은 나를 보여준다. 큰 실수는 내가 나를 잘 믿어주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안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를 나누고 옳고 그름을 평가받으려 했다는 것. 그땐 약해져 있을 때라 어쩔 수 없었다. 이 역시 돌아가도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절대 그럴 일이 없어야 할 터이다. 이번에 크게 배웠으니 아팠던 만큼의 값어치는 해야지.
내가 사랑하는 너의 부분은 성찰이야. 우린 모두 불완전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뒷걸음질을 치기도, 옆으로 걸어보기도 해. 너는 그걸 생각으로 다 짜내고 이해한 뒤에 곱씹어 넘기려고 하는 사람이고.
답답한 마음에 나눈 친구와의 대화에서 나온 내용이다. 때론 성찰 없이 휙 넘길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감정을 덜 느끼는 사람이고 싶다-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이렇게 만들어져 버린 것을 어찌할 도리가 있나. 내가 나를 잘 믿어줘야지. 그리고 성찰을 했으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야지. 언제까지고 이렇게 힘들 수는 없다. 글로 정리를 하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