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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담 Feb 01. 2024

도둑맞은 세뱃돈

세뱃돈을 도둑맞았다!


 요즘도 소매치기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겠지만, 주위에서 잘 보이지 않고 그런 피해를 보았단 얘기도 잘 듣지 못한다. 어느 곳이나 설치된 CCTV 등의 치안의 발전도 있겠으나, 지갑에 현금을 거의 들고 다니지 않는 추세와 훔친 카드 사용은 바로 덜미가 잡히는 것도 큰 이유일 것이다. 차라리 핸드폰 절도가 더 빈번히 뉴스거리로 등장할지언정 '지갑서리'는 거의 듣지 못했다. 아예 지갑을 줍더라도 그 자리 그대로 두는 것이 오히려 절도의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충고를 할 정도이다. 주인을 찾아준다는 선의로 지갑을 주웠다가 바로 경찰서에 가지 않으면 CCTV 영상을 바탕으로 절도로 오해 받거나 내용물 갈취의 덤을 당할 수도 있다.

 

 학창시절만 해도 버스나 지하철 소매치기가 꽤 극성이었다. 소재가 얇은 백팩을 생각없이 매고 탄 버스에서 내리면 여지없이 옆구리가 깨끗이 일자로 그어 구멍이 나 있고 딱 지갑만 사라지고 없어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가슴팍에 안고 있어야 했는데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하며. 소매치기를 탓하기보다는 내 탓을 먼저 할 만큼 빈번한 사고였다.


 대중교통 이용하는 궁색한 학생이 현금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다고. 나로선 용돈을 한 번에 잃어버리는 큰일이었고, 엄마에게 간수 못한 꾸지람과 다시 손 벌려 조금이라도 다시 용돈을 받아내야하는 절체절명의 사건이었다. 형제 중 유달리 나에게만 그런 사건이 자주 일어났었다.

 

 당시 가정형편에 값비싼 옷이나 가방을 들고 다닌 것도 아니니 나를 부잣집 딸로 착각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니 이는 그저 나의 조심성 없는 태도가 문제라고 가족들은 나를 덜렁이라 평하지만, 나로선 상당히 억울한 부분이긴 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이런 소매치기 당한 역사의 출발은 초등2학년으로 거슬러간다. 그냥 말도 안되는 변명이라도 하자면 그 때부터 마가 끼었다고 본다. 일 년에 한 번 받는 세뱃돈은 당시 우리에게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귀한 용돈이었다. 대가족 장남인 아빠로 고생하는 엄마가 늘 안쓰럽고, 명절이니 제사 때마다 북적거리는 집안의 소란과 떠안은 어린 사촌들 돌봄까지 불만이 많았지만, 설날만큼은 세뱃돈의 달콤한 유혹으로 다 상쇄할 수 있었다. 그 날 역시 차례 후 입은 한복 그대로 앞에 복주머니에 가득찬 세뱃돈에 뿌듯해하며 가족 다같이 설날 특집 영화를 보러 갔었다. 커다란 극장에 가득한 인파와 들뜬 어린 마음은 복주머니 간수에까지 신경을 쓰지 못했다. 이리저리 인파에 휩쓸려 자리를 잡고 앉았으나, 영화가 채 시작되기도 전에 복주머니는 줄만 덩그러니 남은 채 사라지고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이후 눈물 콧물 범벅의 어린 꼬마에게 무슨 영화가 눈에 들어왔으랴. 사라진 용돈의 기회비용과 함께 엄마의 꾸지람으로 새해 액땜을 톡톡히 해야만 했다. 이는 두고두고 가족들 사이에 회자되는 놀림거리이자 나의 덜렁이 별명을 확고히하는 사건이 되어 버렸다. 누구의 잘못인가를 떠나 나로선 정말 억울하고 세상이 무너지는 슬픈 날이었다.


 설날이면 여지 없이 떠오르는, 지금은 웃고 말 헤프닝이다.


#설날 #세뱃돈 #소매치기 #추억 #헤프닝 #덜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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