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존재에게 건네는 다정한 응원
"서로를 일으켜주는 덴 큰 힘이 필요하지 않다. 검지의 힘 정도만 있다면..."
<창밖의 아이들>로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수상한 이선주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검지의 힘>을 만나다.
잔인한 4월과 더 잔인한 5월을 견뎌내는 중이다.
이 좋은 계절의 한가운데에서 허덕이는 가련한 일인은 오늘도 계절을 그저 스쳐 보내고 있다.
2022교과서 개정 이후 이제는 고교학점제의 전면 시행을 해야 할 고1들의 향후 2, 3학년과 2028년 달라질 대입을 치뤄야 하는 학생들을 대비한 과정 편제와 운행을 위한 준비로 매일이 연수에 연수에, 회의에 회의에, 수정에 수정....끝이 없다.
게다가 중간고사 이후 본격적인 수행평가의 시즌이 돌아왔다.
예민한 학생들의 시선과 공정함을 무기로 대응하는 나와의 진한 한 판 승부가 진행 중이다.
그 와 중에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점수로 결과 산출 전, 오롯이 책에 몰두하는 학생들의 진지함을 보는 뿌듯함이 있다. 책 읽는 학생들은 그저 예쁘다. 독서의 시작이 어쩔 수 없는 타의였다 해도 본인의 기준으로 책을 선정하고, 완독의 책임을 다 하려 애쓰고, 그 내용에 몰입하는 모습은 늘 미소 짓게 한다. 이 맛에 잔인한 계절을 이겨낸다. 덕분에 나도 이것저것 의무 다 뒤로 하고, 책과 조우하는 귀한 시간도 가져 본다.
한마당 체육대회를 앞 두고, 연습과 예선전 등으로 땀내 풀풀 나는 아이들이 또 책에 푹 빠져 눈빛이 에사롭지 않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마에 땀도 채 마르지 않은 아이가 책 읽는 시간을 기다렸다고 활짝 웃는다. 읽다만 뒷얘기가 궁금해서 혼났다고 한다. 체육관에서 그렇게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뛰어 다니더니, 이번엔 또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다.
그래, 그래야 청춘이지. 열정을 지닌 청춘만이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책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지혜를 얻을 수 있다." -헤르만 헤세
"독서는 완성된 사람을 만들고, 담론은 재치있는 사람을 만든다." -베이컨
"책은 위대한 천재가 인류에게 넘겨주는 유산이다." -에디슨
<검지의 힘> 신작은 작가의 말에서 밝히듯, 무해한 아이들이 펼쳐가는 무해하고, 청량한 소설이다. 청소년의 다양한 고민과 갈등을 다루고 있으나, 혀를 내두르는 악한 이들도 없고, 절망적인 허무를 느끼게 하지도 않는다. 주로 학생들의 사실적인 대화 위주로 속도감 있게 전개하면서 서사를 밝게 술술 풀어간다.
비현실적인 검지의 힘을 지니게 된 주인공 하지와 그 주변의 친구들과 엮어가는 학창시절이 나로선 부러웠다. 누구나 겪을 법한 일이나, 아무 것도 아니라고 지나쳐가기엔 또 옳지 않은 일이라 여겨 가슴에 커다란 응어리로 남은 사건, 학폭 상황을 묵과한 일을 고등학생이 되어 돌아보며 현재 주위 친구들을 돕는 주인공의 따뜻함이 좋다.
내가 다음 피해자가 될까봐 두려워 보고만 있었던, 어쩌면 나역시 비웃음으로 흘깃거렸을 그 친구에 대한 미안함때문인지 고등학생이 된 하지에게 갑작스레 검지의 힘이 생겼다. 하등 쓸모없다 여긴 그 힘은 여러 친구들에게 옮겨다니며 친구들의 일상이 바르게 제자리를 잡도록 도와준다.
급식실 숟가락이나 휘게 하고, 책상에 홈이나 패게 할 뿐이라 오히려 생활을 더 조심하게 하는 것이라 여겼던 이 검지의 힘은 실제적인 힘으로 도와주기보다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사실 검지 자체가 해결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건 아니다. 그저 그런 검지를 지니고 있다는 것에 용기를 내어 한 발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친구들을 배려하고 도와주고픈 하지의 친절함도 작용한다. 중학시절에는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외면하고 뒤 늦게 후회한 자신에 대한 보상심리일까. 결국 매번 다시 하지에게 돌아오는 그 검지의 힘을, 미안했던 해일에게 주고프다는 말과 힘든 여름이 지나가길 바란다는 편지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차례>
검지는 검지만의 사정이 있다/슬정아
영웅은 아무나 된다/호여준
우정은 강물처럼 흐른다/정영인
모든 일은 되돌아온다/유익표
여름은 반드시 지나간다/김별
검지의 힘을 너에게/연하지
-은근히 티 안나게 괴롭히는 친구 이마를 밀어버리는 슬정아의 검지
-약자를 지키는 영웅이 되고싶은 호여준의 검지
-양육을 거부한 두 부모를 내동댕이 친 정영인의 검지
-이혼으로 헤어진 엄마의 연락을 기다리기 위해 무리하며 트렉터를 미는 유익표의 검지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그만 좀 하라고 외치며 책상을 내리친 김별의 검지
-중학시절 비겁함을 내내 간직했던 자신을 털어놓으며 검지의 힘을 전하고픈 하지의 검지
이 모든 검지는 위대하지도 유용하지도 않으나, 힘겨운 상황에서 한 걸음 나아가고자 하는 용기이다. 그리고 작은 힘이나마 필요한 친구의 간절함을 주고받는 우정이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사실 검지의 힘은 없어도 되었다.
서로에 대한 관심은 친구의 아픔을 놓치지 않고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그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그마한 위로와 응원이더라도 전달되면 같이 이겨낼 수 있다. 이런 선한 영향력이 바로 작가가 말하는 작으나 위대한 검지의 힘이 아닐까.
누군가 나를 대단한 사람인 양 치켜세워 주면 나도 모르게 우쭐해진다.
누군가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면 나도 나를 의심하게 된다. 반대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내가 한심한 눈으로 친구를 바라보면 그 친구는 서서히 무너진다.
단단한 자아 같은 건, 아직은 무리다.
우린 각자 고유한 색을 가지고 있어 서로의 색에 물들고 서로를 물들인다. 인간은 혼자 살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사람들하고만 살 수도 없다......마치 교실 반 배정처럼 말이다.
- p13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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